295화 이정의 교병지계(驕兵之計)로 죽령을 넘으려 하다.
동현은 이정의 말을 듣고는 더욱 더 확신했다.
회귀 전 보았던 석품과 칠숙의 기록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본래 석품과 칠숙은 선덕여왕이 왕위를 받았다는 것에 대해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켰다고 알고 있었어. 헌데 이 자들을 여기서 보다니… 이거 일이 풀리려니 너무 잘 풀리는군.’
동현은 역사적 기록을 떠올리며, 석품과 칠숙에 관련된 첩보를 듣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정이 말한 대로의 성격이라면 자신들이 일으키는 반란은 반드시 성공한다는 생각을 하며 난을 일으켰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비록 지금은 역사가 자신으로 인해 많이 바뀌어서 죽령을 지키는 장수들이 되었지만, 석품과 칠숙이 평소 진평왕에게 불만이 많았다는 이정의 말에 역사적 기록에 있던 선덕여왕에게 불만을 품었던 것과 같은 심리라고 생각했다.
“그놈들은 내가 보기에 만약 진평왕이 조금만 노쇠했더라면 반란을 일으켰을 놈들 같네. 자네 생각은 어떤가?”
“제 생각도 그러합니다. 그들은 지금 같은 시기에도 자신들의 왕을 계속해서 욕하고 다니니 언젠가 때를 노려 반란을 꿈꾸겠지요.”
“그렇겠지. 분명 그들은 지금 공명심에 들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우리 고구려 군을 물리치면 신라에서 그들의 입지는 더욱 높아질 것이고 제멋대로 굴 수 있을테니 말이야. 건드리는 사람들이 없어지는 것이지. 그래서 말인데…….”
“……?”
“우리가 죽령 전투에서 석품과 칠숙을 이기더라도 서라벌로 진군을 하지 않는 것이 어떤가?”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생각을 해보게. 우리가 석품과 칠숙을 이겨서 생포하게 되었을 때 말일세. 그럼 그들이 어떻게 반응할 것 같은가?”
“그들이 소인배라면 분명 우리에게 목숨을 구걸하겠지요. 하지만 조금이라도 기개가 있는 자들이라면… 얼른 자신들의 목을 베라고 말하지 않겠습니까?”
동현은 이정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그렇겠지.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최종적인 목적인 수군이 서라벌을 점령할 수 있도록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시간을 끌어주는 일이야. 하지만 죽령이 뚫려서 우리가 같이 서라벌로 진군을 해보게. 그렇다면 이 조령에 있는 김서현은 군을 분명 물릴 것이고 서라벌로 돌아가 농성을 하려 할 것이야. 그러면 일이 더욱 어렵게 될 수도 있네.”
“으음…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겠습니다. 하지만 장군.”
“……?”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석품과 칠숙을 이기게 되어 생포를 하게 되었을 때는 어떻게든 진군해야 합니다.”
“왜 그리 생각하는가?”
“석품과 칠숙을 물리치면 분명 신라 군사들 중 살아남는 군사들이 있을 겁니다. 그럼 그들 중 누군가가 죽령을 빠져나가 서라벌로 소식을 전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깐 자네 말은… 어차피 서라벌에 소식을 전할 테니 진군을 해야 한다?”
“그렇습니다. 진군 하면서 수군과 수시로 연락을 취해 협공을 하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손쉽게 서라벌을 뚫을 수 있을 겁니다.”
“음…….”
“만약 장군께서 말씀하신대로 죽령에 신라군을 그대로 잡아놓으실 생각이시라면… 거짓으로 패한 척하며 잡아 놓는 것이 낫습니다.”
동현은 이정의 말에 눈을 번쩍 뜨며 묻는다.
“거짓으로 패한 척을 해라?”
“예. 장군. 그렇게 되면 죽령에 있는 석품과 칠숙은 워낙 호전적인 성격이니 승세를 타고 계속해서 우리 고구려 군을 공격하려 할 것입니다. 그리되면 요충지인 죽령을 벗어나 우리 고구려 군 진지를 직접 공격하고자 그 지점을 버려 두고 우리와 대치하겠지요. 진지를 세우고 말입니다.”
“과연… 그 틈에 우리는 일부 군사를 돌려 죽령을 점령하고 그들을 깊숙이 끌어들여서 섬멸하여 죽령 전투를 마무리 짓는다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그렇게 하면 시간도 끌면서 전투도 수월하게 끝낼 수 있으니,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그것 참 좋은 계책이로군! 좋아! 지금 당장 고요종에게 전령을 띄우도록 하지! 자네 말대로 교병지계(驕兵之計)를 실행하라고 말이야!”
“예! 장군! 아… 그리고 혹시 모르니 태왕 폐하께도 이 말을 전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혹시 흔들릴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패배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우리 고구려의 신하들이 다시 한번 시끄러워지지 않겠습니까?”
“그 일은 걱정 말게. 막리지와 대모달께 전령을 띄우면 되는 일이니깐…….”
“예! 장군!”
교병지계. 적의 교만심을 키워서 방심하고 얕보게 만든 후 한 번에 승리하는 계략을 말한다.
이 계책이 이정의 머리에서 나오자 동현은 무릎을 치며 감탄했고 죽령의 고요종에게 전령을 띄워 전달했다.
“교병지계라… 아주 좋은 계책이다.”
“역시 장군의 왼팔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군요.”
“맞아. 장군께 오른팔 왼팔은 사훈 군사와 이정 부군사가 아닌가?”
“그렇습니다. 저 같은 놈은 두 사람의 발치에도 미치지 못하지요.”
“허허허… 장군께 지금까지 자네가 세운 공에 대해 잘 알고 있네. 그리 겸손할 필요는 없어.”
“그리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으음… 그렇다면 적에게 어떻게 패한 척 하며 깊숙이 끌어 들이냐가 관건이겠군.”
“깊게 생각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응? 그것이 무슨 말인가?”
“장군께서 그들에 대해 분석한 내용을 주시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연기를 잘하는 사람을 앞세워서 패한 척하고 달아나면 그들은 자연히 따라 나올 것입니다.”
“음… 그럴까?”
“우리는 현재 이 위치만 고수하고 현재 한 번도 죽령을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혹시나 모를 정보를 얻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때마침 장군께서 이런 중요한 정보를 저희에게 보내 주셨지요.”
박준은 잠시 숨을 고르고는 계속 말을 이어간다.
“제 생각이 맞다면 장군에 의한 서찰 내용을 봤을 때 분명 저들이 죽령에서 군사를 이끌고 이곳으로 올 것이 분명합니다.”
“죽령을 버려두고 내려온다고?”
“그럴 것입니다. 서찰 내용에 둘 다 매우 다혈질이고 호전적인 성격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생각이 있는 자들이라면 자신들이 유리한 지세를 차지했는데 내려올까?”
“일단 저들과 붙어 보시고 결정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일부 군사들로만 붙으면서 남은 군사들로는 교병지계 계책에 대해 준비를 하면서 말입니다.”
“으음… 좋아. 자네가 그렇게까지 말하니 한번 해보지. 자네 예상처럼 자네가 우리를 먼저 공격할 것이라는 예상과 다르게 우리가 먼저 성문 앞으로 가 도발을 하는 걸세. 그렇다면 저쪽에서 반응이 있겠지.”
“좋은 결단이십니다.”
“일단 3천의 군사만 데리고 가지. 단석한, 단종수와 함께 말이야. 자네는 이 영채를 지키면서 우리 계책을 실행 할 준비를 하도록 하게.”
“예. 부장님.”
그렇게 고요종은 단석한, 단종수와 함께 개마무사 3천의 군사를 이끌고 죽령 근처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후…….
“어디까지 쥐새끼처럼 숨어 있을 거냐?! 신라 놈들은 모두 겁쟁이란 말이냐?!”
“그러니깐 너희가 백제에 지는 거다! 하하하하! 애들아! 저 놈들을 마음껏 놀려줘라!”
“계집애들인가?! 전쟁터에 나와서 싸우지는 않고 쳐 박혀만 있게?!”
“그러게 말이야! 저 녀석들이 내 아들이었다면 내가 엉덩이를 걷어차 줬을 거야!”
고구려 군사들은 고요종의 명령 아래 마음껏 죽령에 있는 신라 군사들을 도발하며 욕을 해댔다.
그 모습을 위에서 내려다보던 석품과 칠숙.
“으윽… 저 놈들을 그냥?!”
“참게. 석품이. 총관 어른의 명령이 있지 않았나?”
“저도 압니다. 하지만… 저 놈들을 봐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총관 어른께서 도발을 해 올 수도 있으니 참고 그저 굳게 지키라고만 하였네. 나도 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
“…….”
“일단 오늘 하루는 지켜보도록 하지. 하지만 내일 저런 행동이 계속 된다면… 잠깐 저들을 상대하고 오는 것도 괜찮겠군.”
“내일 말씀입니까?”
“그래. 저들은 분명 우리가 나오지 않을 걸로 생각하고 있을 걸세. 자네도 알겠지만 이 죽령은 수비하기가 매우 좋은 곳이라 잘 지키기만 해도 고구려가 우리를 넘지 못하니 말이야.”
“그야 물론입니다.”
“그러니 적이 저렇게 기세등등하며 도발할 때 맞상대를 하지 말고 내일쯤 경계가 느슨해졌을 때 우리가 저들의 추측을 뒤집고 기습 공격하면 어느 정도 성과를 낼 수 있을 걸세.”
“그것참 묘안입니다. 하지만 이찬 어른.”
“응?”
“만약… 우리가 내일 나갔다가 패하면… 어찌 되는 것입니까? 총관 어른이 내린 명령 불복종으로 목이 달아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석품의 말에 칠숙은 피식 웃으며 대답한다.
“그래. 총관 어른이라면 마땅히 그러실 만하지. 하지만 우리의 왕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네.”
“……?”
“어디까지나 군을 내어 준 사람은 현재 왕이시지. 그리고 우리가 패배하면 총관 어른도 그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아무래도 조령과 죽령의 모든 전선을 총괄하는 분이시니 말이야. 그렇지만, 내가 보았을 때 지금의 왕은 총관 어른을 죽일 수 없어.”
“어째서 말입니까?”
“우리 신라에 총관 어른만큼 군사를 잘 부리는 자가 있나? 잘 생각해보게.”
“음… 병부령 어른도…….”
“있어봐야 병부령 어른이 다이지 않나? 그 둘로 우리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를 지금까지 막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너도 알 텐데?”
“그건 그렇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큰 처벌을 피해갈 수 있을 거다. 우리는 이번 전쟁에서 지면 총관 어른께 돌아가는 것이 아닌 우리 왕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면 되는 것이야.”
“과연… 그렇게 하면 귀족들은 우리를 보호해 줄 것이고 지금의 왕은 우리를 어쩔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 그러니 내일 안심하고 싸우자꾸나.”
“예! 이찬 어른!”
그렇게 석품과 칠숙은 다음 날을 위해 고요종의 도발을 꾹 참아냈다.
고요종은 석품과 칠숙이 나오질 않자 박준과 다시 한번 상의한다.
“역시 내 예상대로 나오지 않는군. 어찌 했으면 좋겠는가?”
“제 생각엔 부장님께서 내일 오늘 했던 것처럼 도발을 하면 반드시 나올 것입니다.”
“어째서?”
“지금 저들은 우리가 힘이 빠지고 경계가 느슨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힘이 빠지고 경계가 느슨해진다라…….”
“예. 저들은 분명 착각하고 있을 겁니다. 오늘 일로 인해 우리가 저들이 성에서 나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으음… 그것을 노리고 내일은 반드시 기습을 해올 것이라는 말이군.”
“그렇습니다.”
“좋아. 그럼 내일 한 번 더 해보지. 자네는 뒤를 계속 부탁하네.”
“염려 마십시오. 모든 준비는 이미 다 완료 되었습니다.”
그렇게 고요종은 다시 한 번 박준의 말대로 따르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
고요종은 아침 일찍 단석한, 단종수와 함께 3천의 군사를 이끌고 신라 군사들이 주둔한 곳 근처로 가 도발했다.
“으음… 아직도 나오지 않는 것인가?”
“그런 것 같습니다.”
“아니야. 왠지 우리가 군을 돌리려 할 때 나올 것 같다.”
“군을 돌릴 때 말입니까?”
“그래. 후미의 적을 치는 것이 가장 큰 피해를 입힐 수 있지 않는가?”
“그건 그렇습니다. 으음… 그럼 이렇게 하시지요. 부장님.”
“……?”
“제가 신라군이 올 것을 대비해 후방을 경계하면서 퇴각을 하겠습니다. 그러면 피해를 최소화 하면서 우리의 목적지까지 퇴각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조심해야 하네. 여기서 실수하면 포로가 될 수 있어.”
“그 정도 각오도 없이 전쟁터에 나오겠습니까?”
단석한의 말에 고요종은 씩 웃으며 대답한다.
“그래. 자네 말이 맞아. 그럼 그렇게 하지.”
“제 청을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존의 영채를 버리고 그 뒤의 영채로 퇴각하는 것… 맞습니까?”
“맞네. 작전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군. 저들이 나오면 이제부터 시작이야. 우리는 한동안 연달아서 계속 패배하는 척하며 영채를 버릴 것이야. 어느 정도 군량과 무기를 쌓아두어 우리가 정말로 신라의 놀라운 기세에 눌려 퇴각하는 것처럼 말이지.”
“그럼 마지막 지점에서는… 저들이 방심하고 대부분의 군사를 끌고 나올 테니 한꺼번에 덮쳐서 죽령을 점령하실 생각이시군요.”
“맞네. 자… 그럼 시작해 보지.”
“예. 부장님. 종수야.”
“예. 형님.”
“우리가 후방을 확실히 경계하며 막아야 한다. 내가 후방을 막으며 퇴각할 때 너무 한쪽으로 쏠린다 싶으면 네가 나서서 군사를 이끌고 빈자리를 메워라. 그리고 천천히 군을 뒤로 물리는 것이다. 할 수 있겠지?”
“물론입니다. 형님.”
고요종과 일행들은 이정의 계책을 본격적으로 시행하려 군을 움직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