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7화 백기, 김국반을 도발하여 유인하다.
백기는 동현의 밀명을 듣고는 자신의 막사로 돌아와 잠을 자는 것도 잊은 채 한 동안 의자에 앉아 무언가 생각에 잠긴다.
‘신라 멸망이라니… 이번 출전의 목적은 당항성 점령에만 있지 않다?? 만약 이번 작전이 성공하면… 우리 백제는 한반도에서 고구려에 둘러싸이게 된다. 내가 하는 행동이 잘 하는 행동인 것일까?? 온조 어라하의 계시를 받았지만… 그래도 마음에 걸리는구나.’
백기는 자신의 나라에 대한 충성심이 굉장히 깊은 자였다.
동현이 위장한 온조에게서 계시를 받지 않았다면 자신은 고구려를 돕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는 백기.
하지만 당시 현장에서는 온조의 목소리를 들은 사람은 자신뿐만이 아니라 같이 사신으로 간 사람도 들었기에 고구려를 돕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같이 사신으로 간 사람들 중 몇 명은 은밀하게 고구려에 선을 넣어 백제에 관련된 정보를 고구려에 주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 사람들도 온조의 계시를 듣고 행동을 바꾼 것.
자신들이 직접 겪은 일이니 고구려를 돕는 길이 자신들의 살 길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백기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기에 적극적으로 고구려에 협조를 했지만 자신의 나라 백제를 생각하면 별로 마음이 좋지 않았다.
‘후우… 그래도 이것이 우리 백제가 살 수 있는 길이라니깐 어쩔 수 없지…….’
백기는 온조가 내린 계시를 떠올리며 자신의 행동이 백제를 위한 행동이라는 것에 위안을 삼았다.
다음 날 아침…….
드디어 동현은 백제의 백기를 내세워 당항성 공략에 나섰다.
백기는 날이 밝자마자 당항성 성문 앞으로 가 큰 소리로 외쳤다.
“나는 백제 장수 백기다!! 여기 성주가 김국반이라고 들었다! 신라왕의 동생이라고 했던가?!”
백기가 외치는 소리에 성 위에 있던 김국반이 앞으로 나와 외친다.
“그래! 내가 김국반이다!! 네놈… 내 동생을 죽였던 놈이로구나?!”
“하하하! 그래! 내가 네 동생을 죽였지! 너나 동생이나 하나같이 겁쟁이구나!”
“뭐라?!”
“네 동생은 과거 나와 굴산성 전투에서 싸웠을 때도 지금의 너와 같이 성문을 열어 주지 않고 지키다가 죽었다! 아… 물론 마지막에 내 머리를 베겠다고 성에서 나왔다고 죽기는 했지만 말이야!! 하하하! 나와 1대 1로 대결을 벌여서 목 없는 귀신이 됐지!”
“어디서 거짓을 말하는 것이냐?! 내 동생은 너의 매복에 걸려서 죽은 것이지 너와 1대 1로 대결을 벌이다 죽은 것이 아니다!”
“하하하하! 그렇게 믿고 싶다면 믿어라. 나도 거짓을 말하지는 않으니 말이야. 형이라 해서 더 나은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겁쟁이로군. 그래도 동생은 굴산성 전투에서 나를 죽여 어떻게든 불리한 전황을 뒤집어 보겠다고 나섰는데 너는 오히려 성 안에만 쳐 박혀 있으니 네 동생보다도 훨씬 겁쟁이다! 상대할 가치조자 없군! 쯧쯧… 저런 놈을 신라에서 갈문왕에 봉하다니… 신라왕이 어떤 자인지 알만 하구나!”
백기는 이렇게 말을 하며 당항성 앞에 나와 있던 자신의 말을 뒤로 물리려 한다.
그 모습을 본 김국반은 손을 부들부들 떨며 분노하는데 옆에 있는 장수들이 말린다.
“저… 전하! 참으십시오! 저 자는 전하를 도발하여 밖으로 끌어내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전하! 참으셔야 합니다!”
“으윽… 나도 안다. 하지만 마지막 말은 도무지 참을 수가 없구나. 감히 우리 폐하를 욕보이다니 말이야.”
“전하!! 절대 출진하시면 아니 됩니다!!”
“그렇습니다! 전하! 출전은 불가합니다! 그저 굳게 이 성을 지켜야 합니다!”
김국반은 수하들의 간곡한 부탁에 겨우 화를 가라앉힌다.
“후우… 자네들이 극구 말리니 참겠다. 하지만… 더 이상은 나도 한계다. 백기 저놈이 또 다시 도발을 해 온다면… 이 성문 앞까지만 치고 빠지는 전략을 써서 돌아올 생각이다.”
“저… 전하!!”
“더 이상 아무 말 하지 말라. 그리고 그 정도면 깊이 들어가지만 않으면 되니 괜찮을 것이다. 너무 걱정 하지 마.”
“…….”
김국반의 말에 수하들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겁쟁이 김국반아!! 계속 그렇게 성 안에만 쳐 박혀 있을 것인가?! 어차피 성 안에 갇혀 있어도 너는 죽을 운명이다!”
“저… 저놈이?!”
“전하! 나가시면 아니 됩니다!”
“내가 아까 말하지 않았느냐? 날 말리지 말라고!!”
“저… 정 나가고 싶으시다면 지금 말고 조금 있다가 나가십시오.”
“뭐라?!”
“적들은 우리에게 도발을 계속하나 반응이 없으면 분명 돌아갈 것입니다. 그때 성문을 나서서 뒤를 치시옵소서!”
“과연… 좋은 생각이다!”
“단… 절대 깊이 들어가셔서는 아니 됩니다! 전하!”
“나도 알고 있다. 그것은 걱정 하지 말거라.”
김국반은 수하의 요청을 받아들여 백기와 그의 군사들이 도발을 멈출 때까지 꾹 참고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전하! 지금입니다!”
“좋아! 다들 나를 따르라!!”
김국반은 백기와 그의 군사들이 도발을 멈추고 돌아가려 하자 뒤를 치기 위해 당항성의 성문을 박차고 나왔다.
갑작스레 문이 열리자 성문 근처에 있던 군사들은 당황하는데 백기는 이것을 마치 예상하기라도 했다는 듯 소리친다.
“동요할 것 없다! 모두 침착하게 신라군에 응전하면서 퇴각하라!! 퇴각!”
백기의 통솔력 덕분인지 백제군은 금방 안정을 되찾으면서 빠르게 퇴각을 했다.
그런 모습에 김국반은 자신이 이기고 있는 줄 알고 매우 기뻐하며 소리쳤다.
“네 이놈! 백기야! 목을 내놓고 가거라! 어딜 도망가느냐?!”
“생각보다 강하구나! 다음에 붙자!”
“내 사전에 다음이란 없다! 계속 추격하라!! 공격!!”
김국반은 군사들을 이끌고 계속 뒤를 추격하는데 옆에 있던 수하가 와서 추격을 말린다.
“전하!! 이제 멈추셔야 합니다! 더 이상 들어가면 위험합니다!”
“아직 위험할 것이 없는 평지이며 매복할 곳도 없다! 그러니 더 추격을 해도 괜찮다!!”
“저… 전하!”
“계속 추격하라! 나를 따르라!!”
“와! 와!”
김국반은 수하의 조언을 무시하고 계속 추격을 했다.
백기는 그 모습에 미소를 지으며 군사들에게 소리친다.
“계속 퇴각하라! 청색 깃발이 보이는 곳으로 계속 달리는 것이다!”
백기는 계속 군사들을 독촉하여 퇴각을 했고 김국반이 계속 자신을 추격해 오기를 바랐다.
그리고 얼마 후…….
“제기랄… 내빼는데 정말 쥐새끼 같군.”
“전하. 이제 이만하면 되었습니다. 백제군도 많이 죽였으니 성과를 달성한 셈이니 이만 돌아가시지요.”
“무슨 소리?! 몰아칠 때 확실히 몰아쳐야 한다. 음… 좋아. 잘 되었군. 지금 너는 가서 당항성의 군사 절반을 데리고 오거라.”
“예? 그게 무슨…….”
“말하지 않았느냐? 몰아칠 때 몰아쳐야 한다고.”
“전하! 그것은 절대 불가합니다! 근처에 고구려 군이 있지 않습니까?”
“고구려 군은 3만이다. 그리고 우리 당항성이 공략하기 쉬운 성이라 하나 절반을 제외하고도 2만 5천의 군사가 성에 있지. 그리고 백제군과 연계가 되지 않는 걸 봐서 두 나라간 알력 싸움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둘은 같이 움직이지 않을 것이야. 설사 고구려 군이 움직인다하더라도 고구려 군과 전투가 벌어졌단 이야기를 듣고 군을 돌려도 늦지 않다.”
“하… 하지만… 고구려 군은 우리 삼국 중 가장 강한 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 위에 있고 그들은 성 밑에 있다! 누가 유리한가?!”
“…….”
“더 이상 아무 말 하지 말고 성 안의 군사 절반을 데리고 오라! 알겠느냐?!”
“예… 전하…….”
김국반에게서 명을 받은 수하는 불안한 표정으로 어쩔 수 없이 당항성으로 말을 달린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전하. 절반의 군사를 데리고 왔습니다.”
“수고했다. 그럼 다시 추격한다.”
“전하.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도 안다! 수상한 곳이면 나도 군사를 멈출 것이니 걱정 말라!”
“…예 전하.”
“자! 추격을 계속한다! 그리고 반드시 백기의 목을 벤다!”
“예! 전하!”
김국반은 자신의 동생의 원수를 갚는 것에 정신이 팔려 당항성 안에 있던 절반의 군사들을 동원해 백기가 달아난 곳을 군을 휘몰아 나아간다.
그 모습을 백기가 미리 보내 놓은 척후병이 보았고 보자마자 바로 백기가 있는 곳으로 가 보고를 했다.
“그래? 절반의 군사를 빼내왔다고?”
“예. 장군.”
“하하하! 왜 이리 늦나 했는데… 군사를 동원하느라 그랬군. 김국반 녀석… 원수를 갚는 것에만 눈이 멀었어.”
“헌데… 정말 그런 무기가 있다는 것이 사실일까요? 밟아서 터지는 무기라니…….”
“시험까지 해봤다니 믿을 수밖에 없지 않느냐? 아… 그나저나… 우리 군에서 용양장군에게 보낸 두 명은 어떻게 하고 있다하더냐?”
“예. 우리가 전면에 나서서 김국반을 유인한다고 하자 이럴 수는 없다며 화를 냈다 합니다.”
“우리가 편히 움직일 수 있도록 용양장군께서 데리고 가주신 것은 감사하나… 그로 인해 용양장군이 많이 힘드시겠군.”
“그게 그렇지가 않습니다.”
“응?”
“그 두 명은 용양장군의 수하인 돌석비에 의해 바로 잠잠해졌다고 합니다.”
“설마… 무력을 쓴 것인가?”
“무력을 썼다기 보다… 일방적으로 맞았다고 봐야합니다.”
“일방적으로 맞았다고?”
“예. 계속 고구려 진영에서 깽판을 치다가 돌석비에 의해 바로 제압당했다고 합니다.”
수하의 말을 들은 백기는 어이없어 한다.
“허어… 그래도 한 나라의 장수인데… 그렇게 쉽게 제압을 당했다고?”
“예. 두 장수 다 5합을 넘기지 못하고 제압당했다고 합니다.”
“허어… 용양장군의 밑에는 범 같은 자가 넘치는 모양이구나.”
“그런 모양입니다. 그 돌석비라는 자가 제일 강한 자가 아니라고 하니 말입니다.”
“으음… 아무튼 그 일은 용양장군에게 맡기면 되는 것이고… 문제는 이제 김국반을 어떻게 처리하는지가 중요하다.”
“어차피 그 일은 용양장군이 알아서 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렇겠지. 하지만 우리도 준비를 해 놓아야 한다. 혹시 일이 잘못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백기는 자신이 맡은 바 임무를 완수하며 동현을 도왔다.
그 때 동현은 백기가 김국반과 당항성의 군사들을 잘 유인해 오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이정에게 묻는다.
“파진포를 적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잘 묻어 두었겠지?”
“물론입니다. 장군.”
“좋아… 이제 시작이군.”
“그렇습니다. 드디어 장군께서 만드신 무기가 세상에 첫 선을 보이는군요.”
“그래. 잘 되어야 할 텐데… 불발 하나 없이 말이야.”
“하나가 불발이 되더라도 하나가 터지면 다른 것도 연쇄적으로 터질 겁니다. 그것은 시험에서도 확인하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하지만 만일이라는 것이 있으니 말이야. 음?”
동현이 이정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한 군사가 동현에게 다가와 보고를 한다.
“장군! 지금 김국반과 군사들이 이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 잘 되었군. 모두 파진포가 전부 터지고 나면 혹시 모르게 살아남은 신라군을 공격한다. 항복하면 적들을 받아주되 항복하지 않으면 철저하게 적을 죽여라! 알겠느냐?!”
“예! 장군!”
“내 명령이 있기 전까지 아무 소리도 내서는 안 된다!”
“예!!”
동현은 군사들에게 신신당부를 하며 명을 내리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