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2화 이정은 작전 변경에 따른 계책을 내고, 동현은 이정을 감동시키며 다시 한번 충성을 맹세를 받다.
영양 태왕은 연태조와 을지문덕의 조언에 결심한 듯 탁상을 크게 내리치며 앉아 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말한다.
“좋아! 지금 석우 부총사에게서 온 서찰을 용양장군에게 보내게! 내가 그의 판단력을 한 번 믿어볼 것이야!”
“영명하십니다! 태왕 폐하! 지금 당장 보내겠습니다!”
그렇게 영양 태왕은 연태조와 을지문덕의 조언을 받아들여 석우의 서찰을 동현에게 보냈다.
* * *
그 시기 동현은 부장 고요종과 자신의 수하들을 거느리고 5만 군사와 함께 천천히 당항성으로 진군 중이었다.
시간을 끌어야 했기에 속도를 높이지 않고 늦추면서 천천히 진군을 하는 도중 석우의 서찰을 받게 되었다.
“으음… 우산국이라…….”
“그렇다는 건 우리가 이 당항성에서 필요 이상으로 시간을 끌어 줘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하지만 당항성 전투에서 시간을 끄는 것은 그만큼 한계가 있어. 우리는 수군이 바로 서라벌로 직공(直攻)할 것을 생각하여 시간을 계산해서 이곳까지 왔네. 그런데 여기서 우산국을 치고 서라벌을 친다면 이 당항성에서 필요 이상으로 시간을 끌게 되어 신라에서도 눈치를 채지 않을 수 없을 것이야.”
동현의 말에 이정이 빙그레 웃으며 대답한다.
“저 역시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미 장군께서는 어떻게 대처할지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내가?”
“예. 장군. 장군께서 얼마 전 여기 고 부장님께 이야기 한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아……!”
“그것이 지금 상황의 해답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역시 이정일세. 나를 깨우쳐 주어서 고맙네! 자네 말은 남천을 치라는 뜻이 아닌가?”
“맞습니다. 장군. 그리고 지금 남천을 당항성과 함께 치면 더 큰 이득이 있습니다.”
“오! 어떤 이득이 말인가?”
“일단 우리 군은 아직 신라의 영토를 넘지 않았습니다. 조금만 더 가면 신라 영토이긴 하나 이곳은 어디까지나 우리 고구려의 영토라는 것이지요.”
“그 말은… 신라군을 적절하게 속일 수 있다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우리가 신라에게 위력정찰을 하는 것처럼 위장하면서 신라군을 넘을 듯한 모습만 보이며 위협을 여러 번 가하는 것입니다. 국경근처에서 군을 이끌고 왔다 갔다 하면 처음에는 경계할 것이나 나중에는 느슨해 질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위력정찰로 신라군의 판단력이 흐려질 때… 군사들의 일부를 돌려서 남천을 기습하여 점령하는 것입니다.”
“과연! 아주 좋은 계책이로군!”
동현이 무릎을 탁 치며 기뻐하는데 이정은 아직 말이 끝나지 않은 듯 계속 이어간다.
“이렇게 하면 예전에 장군께서 말씀하셨던 남천을 점령하고 난 뒤 원산성과 후방에서 올 신라군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남천을 점령할 때쯤 우리 본군은 당항성으로 진군하여 공격을 할 것이니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 남천에 구원을 오려던 신라군도 이곳을 구원하지 못하고 당항성을 구원하기 위해 움직일 것입니다.”
이정은 동현의 반응을 살피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
“그 사이 우리는 장군께서 계획하셨던 이 남천을 빠르게 요새화 하고 둔전을 일구게 하면 이후에는 이곳을 절대 넘보지 못할 겁니다. 후방을 공격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우리 고구려는 남천을 손쉽게 얻을 수 있으니 매우 큰 이득이 아니겠습니까?”
“과연… 참으로 대단하도다. 이정. 자네에게 내가 정말 많이 배웠네.”
“과찬이십니다. 장군.”
“고 부장은 어떻게 생각하오?”
“매우 뛰어난 계책이라 생각됩니다. 이정 군사의 계책을 미십시오. 장군.”
“다른 사람들의 의견은 어떤가?”
동현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묻는데 모두 동의한다.
그런데 그 때 박준이 동현에게 묻는다.
“장군. 그렇다면 군을 둘로 나누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남천으로 가는 군사의 수와 장수들을 정해야 할 것 같은데… 누가 가면 되겠습니까?”
“그래. 그것이 문제로군…….”
동현이 박준의 의견을 듣자 고민하는데 고요종이 나선다.
“용양장군. 제가 가겠습니다.”
“고 부장이 말이오?”
“예. 장군. 예전부터 장군께서 제게 베푼 은혜에 보답하고 싶었으나 그 기회가 없던 것이 한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큰 기회가 생겼으니 제가 남천으로 가서 신라군을 무찌르고 그곳을 점령하겠습니다. 그리고 그곳을 점령한 공을 장군께 돌리겠습니다.”
동현은 고요종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내가 어찌 공을 세운 장수의 공을 빼앗겠나? 그것은 오로지 자네의 공일세.”
“제가 장군의 명령을 듣고 움직이는 것이니 장군의 공이 훨씬 큽니다.”
“하하하! 사람 참… 그리 말해 주니 고맙군. 좋아. 자네를 보내도록 하지. 그렇다면 자네를 보좌할 장수들도 좀 보내야 하는데… 같이 계책을 짤 책사 한 명과 장수들 몇 명이 갔으면 좋겠구만. 혹시 자원할 사람있나?”
동현의 말에 박준이 제일 먼저 손을 든다.
“제가 고 부장을 보좌하여 남천으로 가겠습니다.”
“오! 박준! 자네라면 안심이지! 좋아. 그럼 장수들은 누가 가겠나?”
동현의 말에 두 명의 장수가 손을 든다.
“저희 형제가 가겠습니다!”
“단석한과 단종수라… 좋아! 그럼 그렇게 결정을 하지. 이정 군사.”
“예. 장군.”
“고 부장에게 얼마의 군사를 주는 것이 좋겠는가?”
“2만의 군사를 주면 될 듯합니다.”
“으음… 그 정도로 되겠는가? 남천 그곳은 꽤 큰 땅이라고 들었는데…….”
“충분합니다. 그리고 기습전인 만큼 2만보다 많아서도 안 됩니다. 그것보다 많으면 기습하는데 오히려 좋지 않습니다.”
“하긴… 그것도 그렇겠군. 하지만 하나 걸리는 것이 있네.”
이정이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무엇입니까?”
“기습이라고 해도 성을 공격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 기습적으로 움직이게 되면 공성장비가 개마무사들의 속도를 충분히 따라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되네. 비록 우리 전군이 전부 개마무사들이라 기동에 유리하다고는 하나 보급부대 속도도 고려해야하지 않겠나?”
“이번에 보급부대도 좋은 말로 하여 수레를 끌도록 하지 않았습니까?”
“물론 그랬지.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네. 보급부대에는 공성장비로 조립할 장비들은 물론이고 군량도 실려 있는데 빠른 개마무사 군의 기동력을 따라갈 수는 없다고 생각하네.”
동현의 걱정에 이정은 여전이 웃으며 대답한다.
“역시 장군이십니다. 병법의 기본에 철저하시니 말입니다. 하지만 장군. 그 점은 염려치 않으셔도 됩니다.”
“응? 어째서?”
“소인이 남천에 세작을 띄워 알아보았사온데 현재 남천을 지키는 장수는 장수라고 할 수 없는 자라고 합니다.”
동현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응? 장수라고 할 수 없는 자라? 그것이 무슨 말인가?”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장수라는 뜻입니다. 장군.”
“허어… 그렇단 말인가?”
“예. 장군. 그것에만 혈안이 되어 전쟁 전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백성들의 땅을 어떻게 하면 더 빼앗고 세금을 어떻게 하면 높이 쳐서 받을까 궁리하는 자 일뿐입니다. 그런 곳의 방비가 철저하게 되어 있겠습니까?”
“과연 그렇군.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곳의 방비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는 확인해 보는 것이 좋을 터인데?”
“저도 그렇게 생각하여 며칠 전 세작을 한 번 더 띄워서 그곳을 파악하게 했습니다. 아마 오늘 밤 늦게 세작에게서 보고가 올 것입니다.”
이정의 말에 동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좋아. 그 세작의 보고가 들어오는데로 나에게 알려주게. 그리고 자네가 예상한 대로 되면 바로 군을 움직여서 계획대로 하지.”
“예. 장군! 그리하겠습니다!”
“모두들 언제든지 군을 움직일 수 있도록 준비를 해 두어라! 그럼 이만 해산!”
동현은 그렇게 모든 장수들과 회의를 파했다.
이정도 막사를 나가려는데 동현이 붙잡는다.
“이정은 잠시 남게.”
“아… 예.”
동현의 말에 이정은 나가려다 말고 본래 앉아 있던 자리에 다시 앉는다.
그렇게 모두가 나가고 둘만 남게 되자 동현이 묻는다.
“이보게. 이정.”
“예. 장군.”
“자네도 알 걸세. 이번 신라와의 전투가 내 입지를 더욱 크게 할지 못할지 말이야.”
“물론입니다. 장군.”
“이번에 자네가 낸 전략이 실패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네. 하지만… 만약에 말이야. 우리 계책을 신라에서 간파한 이가 나타난다면 내 입지는 물론이고 자네 또한 무사치 못할 걸세.”
동현의 말에 이정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대답한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이번 일에 대한 결과로 어떻게 될 것이라는 것도 말입니다. 그러니 제 걱정은 하지 마십시오. 장군께서는 자신의 안위보다 수하들의 안위를 더 챙기시는 분이 아닙니까? 자신 때문에 수하들이 다칠까봐 걱정이셔서 저를 이렇게 따로 부르신 것이겠지요.”
“후우… 맞네. 솔직히 모든 책임을 내가 안고 갈 수 있게 된다면 차라리 그렇게 하겠네. 자네들은 나를 따른 죄 밖에 없는데 나 때문에 처벌 되는 것은 옳지 못하니 말이야.”
“장군. 장군께서는 이 고구려의 기둥이시고 앞으로 이끌어 나가야 하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그런 분을 모시겠다고 결정한 것은 바로 제 결정이고 말입니다.”
동현은 감동한 표정으로 이정을 바라보았다.
“장군께서는 과거 저를 등용하실 때 원대한 포부를 드러내시면서 같이 가보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를 기억하십니까?”
“내가 그날을 어찌 잊겠나? 절대 잊지 못할 걸세.”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장군과 함께 큰 꿈을 지금까지 키워왔습니다. 그러니 저희의 목숨 때문에 약해지셔서는 안 됩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시작이지 않습니까?”
“내가 그걸 어찌 모르겠나? 하지만 나 때문에 그리 된다면 자네들에게 내가 큰 죄를 짓는 것 같아서 말일세.”
동현이 이렇게 대답을 하자 갑자기 이정은 의자에서 내려오더니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는 갑자기 강한 어조로 말한다.
“장군께서 저를 비롯한 모든 수하들을 끔찍하게 생각해 주신 은혜에 어찌 충성을 다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만약 일이 잘못되어 패한다고 해도 장군의 잘못만이 아닌 장군을 잘못 보좌한 저와 장수들의 잘못이기도 하니 저희도 장군을 따라 마땅히 같이 처벌을 받겠습니다.”
이정이 말을 하며 땅에 머리를 박는다.
그런 이정을 보며 동현이 황급히 그를 부축해 일으키며 말한다.
“그리 말해주니 고맙네… 후우… 내가 괜한 말을 했군. 아직 그런 상황은 벌어지지도 않았는데 말이야. 미안하네.”
“아닙니다. 이것은 마땅히 전쟁에 나온 장수라면 할 수 있는 고민입니다. 이제부터 마음을 다 잡으시면 됩니다.”
“그래. 자네 말이 맞아. 앞으로도 잘 부탁하네.”
“여부가 있겠습니까?”
“사훈이 자네를 정말 높게 평가하더군. 자신보다도 수가 높고 병법에 매우 능통하다고 말이야. 이번에 사훈이 자네가 공을 세울 기회가 없다하여 추천을 했었지. 알고 있는가?”
“물론입니다. 그리고 과한 칭찬입니다. 제가 어찌 사훈님의 지략을 따를 수 있겠습니까?”
“아니야. 나도 사훈처럼 자네가 뛰어난 지략을 가졌다고 보네. 그래서 사훈의 말을 허락한 것이야.”
“장군…….”
“내가 앞으로 이 고구려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사훈과 함께 자네의 도움이 절실해. 나는 사훈과 자네를 내 오른팔과 왼팔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앞으로 우리 힘든 역경이 닥치더라도 잘 헤쳐 나가 보세!”
동현의 말에 이정은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며 대답한다.
“소인 이정… 장군께 평생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하겠나이다!!”
이정은 이전처럼 다시 한 번 충성 맹세를 하고는 자신의 막사로 돌아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