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8화 고구려, 백제와 동맹을 맺다.
수연은 조송의 말에 잠시 눈을 감고 생각을 빠르게 정리한다.
그리고 잠시 후…….
“소녀의 생각으로는 두 가지의 조건을 더 말할 것 같습니다.”
“두 가지라?”
“예. 우리 고구려가 당항성을 칠 때 분명 백제에서도 같이 치게 해 달라고 조건을 걸 것 같습니다.”
“응? 당항성을 같이? 그건 왜?”
“우리 고구려와 백제가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보이면 신라는 더욱 더 큰 압박을 받고 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그리고 서라벌에서는 분명 우리 고구려와 백제가 동맹을 맺었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조송은 이에 그치지 않고 한마디 말을 더 붙였다.
“게다가 대응하는데 혼란을 겪으며 시간이 지연되겠지요. 현재 백제 왕은 그것을 생각한 겁니다.”
“으음… 좋아. 그럼 마지막 한 가지는?”
“우리의 계획이 잘 풀리지 않았을 때를 조건으로 걸 겁니다.”
“어디 한번 말해 보게.”
“좀 전에 제가 말했던 계획에 어려움을 겪는다면 분명 백제 왕은 우리 태왕 폐하께 같이 친정을 하자고 할 겁니다.”
수연의 말에 조송은 매우 놀란다.
“친정이라니? 그게 말이 되는가?”
“충분히 됩니다.”
“…….”
“우리 태왕 폐하께서 백제 왕의 조건에 따라 친정을 하게 되면 신라군의 방침이 우선적으로 백제군을 물리치자는 것에서 바뀔 수도 있습니다.
“방침이 바뀐다?”
“예. 신라도 우리 고구려와 백제 중 어느 나라가 더 강한지 알고 있습니다. 헌데 우리 태왕 폐하께서 직접 군을 이끌고 자신들의 영토로 들어가 보십시오. 그렇다면 시선이 백제에 쏠리겠습니까? 아니면 우리에게 쏠리겠습니까?”
“당연히 우리지.”
“그렇습니다. 백제 왕은 지금 그것을 노리고 있는 겁니다. 시선이 우리에게 쏠린 틈을 타 하나라도 더 많은 영토를 차지하기 위한 계책이지요.”
“과연… 듣고 보니 일리가 있군. 3가지 조건이라… 흥미롭군. 아… 참! 만약에 말일세. 이 3가지 조건 외에 다른 조건이 나오면 어찌 대응하는 것이 좋겠나?”
조송의 말에 수연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어차피 우리가 이 백제에 온 것은 동맹을 맺기 위해서입니다. 그쪽에서 조건을 건다면 우리도 태왕 폐하께 이를 말씀드리고 서로의 의견을 조율해 동맹을 맺을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음… 그래. 네 말이 맞다. 네 말을 듣고 나니 일이 술술 풀리는구나. 고맙다!”
“아닙니다. 그럼 전 이만 나가 보겠습니다.”
조송은 수연에게 여러 의견을 물었고 수연은 백제 왕에 대한 협상의 주도권을 조송이 놓치지 않게 하기 위해 아낌없이 조언을 해 주었다.
그런데 그때.
“조송님. 백제 왕이 찾는다고 합니다. 지금 바로 대전으로 오라고 합니다.”
“그래? 알았다.”
조송과 수연의 대화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백제 왕이 보낸 한 군사가 소식을 전해 주자 조송은 빠르게 의관을 정제하고는 그 군사를 따라 대전으로 향했다.
“부르셨습니까? 어라하.”
“그래. 며칠 간 잘 지냈느냐?”
“예. 어라하. 신경 써 주신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래. 질질 끌 필요 없이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지. 자네도 내가 오늘 왜 부른 것인지 잘 알 것이야.”
“물론입니다. 어라하.”
“자네가 제안한 동맹 제의를 받아들이겠네. 단… 조건이 있네.”
“조건 말입니까?”
“그렇네. 이 조건을 들어줘야 우리도 고구려의 동맹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군. 일단 첫 번째 조건으로…….”
백제 무왕은 자신이 생각한 조건을 말하기 시작했다.
조송은 무왕의 말을 듣자마자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무왕이 말하는 것들이 다 수연이 말했던 것과 일치했기 때문이다.
‘수연이가 참으로 대단하구나. 무왕의 의중을 이토록 정확하게 읽다니…….’
조송은 무왕에게 기쁜 표정을 내색하지 않고 모두 들은 후 고개를 숙이며 대답한다.
“일단 이 조건들을 태왕 폐하께 돌아가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그리하게. 단 우리도 답을 오래 기다려 줄 수가 없네. 그믐(30일)안으로 답을 주면 좋겠군.”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렇게 조송은 백제 무왕을 알현하고 수연과 함께 고구려로 돌아갔다.
영양 태왕은 조송에게 조건에 대해여 모두 설명을 듣고는 수고했다며 그녀의 등을 두들겨 주었다.
그러고는 연태조와 을지문덕을 불러 좀 전에 들었던 내용들을 모두 말해 주었다.
“다 좋으나 마지막 조건이 마음에 걸리는군요. 친정이라니…….”
“그렇습니다. 태왕 폐하. 백제 왕이 무례하기가 짝이 없군요.”
“하지만 이해는 간다. 부여장 그놈은 즉위하자 마자 신라를 공격하겠다며 말한 놈이니깐… 실제로 신라로 친정을 한 것이 몇 번 되지 않느냐?”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렇다면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않은가?”
“하지만 태왕 폐하. 모든 것을 백제 왕의 의도에 따라 움직여 줄 필요는 없습니다.”
“소인도 그리 생각합니다. 그쪽에서 태왕 폐하께 출전하라고 하는 것은 시선을 이쪽에서 끌 수가 있으니 하는 말일 겁니다. 백제보다 우리 고구려가 국력이 훨씬 크고 군사력도 좋으니 말입니다.”
“그렇겠지.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방법이 없다…….”
“그렇다면 태왕 폐하. 용양장군에게 조언을 구해 보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용양장군에게?”
“예. 태왕 폐하. 용양장군에게 분명 방법이 있을 겁니다. 특히 이번에 우리 사신으로 간 인물들도 용양장군의 추천에 의해서 다녀온 것이니 만큼 그들을 통해 물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을지문덕의 말을 들은 영양 태왕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겸백(글자를 기록하기 위해 쓰이던 비단)과 필묵을 가져오게 했다.
그리고 잠시 후.
“이것을 그들이 백암성으로 돌아가기 전에 들려서 보내도록 하게. 내일 아침 일찍 떠난다고 했으니 오늘은 이 장안성(평양성)에 있을 것이야.”
“예. 태왕 폐하.”
그렇게 영양 태왕은 동현에게 또 한번 조언을 구하기 위해 겸백을 보냈다.
며칠 뒤…….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온 조송에게 영양 태왕의 겸백을 받게 되었고 동현은 겸백을 받자마자 꼼꼼하게 읽어 보았다.
“역시 백제의 왕이군. 하긴… 한 나라를 이끌려면 이 정도는 돼야지.”
“저… 친정에 대한 방법이 있으십니까?”
“물론 있지.”
“오! 그것이 무엇입니까?”
조송이 묻자 동현이 바로 대답한다.
“바로 깃발과 위장일세.”
“예? 깃발과 위장 말입니까?”
“그래. 자네는 한 나라의 황제나 장수를 전쟁터에서 구분하려면 어찌 구분하는가?”
“그야 깃발로…….”
“아주 잘 아는군. 그럼 답이 나왔지 않은가?”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우리가 전쟁터에 나가게 되면 무기와 식량 못지않게 챙기는 것이 깃발일세. 그런데 전쟁터에서 그 깃발을 함부로 잃어버리면 어찌 되겠나?”
“그야 큰 문책을 받습니다. 최악의 경우에는 목도 베일 수 있고요.”
“바로 보았네. 헌데 그런 깃발의 수가 엄청나게 많다고 생각해 봐. 그럼 백제와 신라 놈들은 어찌 생각하겠나?”
동현의 말에 조송은 그제야 크게 깨달은 듯 동현에게 말한다.
“아… 과연… 어떤 전략과 전술을 쓰실지 알았습니다. 백제의 경우는 태왕 폐하께서 친정을 갔다고 생각할 것이고 그로 인해 신라의 시선을 완벽하게 돌렸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반면 신라는 갑자기 우리 고구려의 태왕 폐하께서 직접 친정에 나선다고 하니 기겁할 것이고 군사들을 그쪽으로 보내 방어토록 할 것입니다. 그럼 신라로서는 전선이 길어지고 병력을 한데 집중하지 못하니, 이 틈을 이용해 백제에게 더욱 강력한 공격을 하겠지요.”
“아주 잘 봤네. 그러니 태왕 폐하께 말해서 많은 깃발을 챙겨 달라고 해라. 그리고 군사들이 당항성으로 갈 때 태왕 폐하께서 직접 친정하는 모습처럼 보여야 하니, 군사들이 행군할 때도 마치 그곳에 태왕 폐하께서 있는 것처럼 행군을 하도록 해야 한다. 행군 방식을 그대로 옮겨오라는 뜻이지.”
“과연… 많은 깃발이 태왕 폐하가 그곳에 있다는 것을 보여 줄 것이고 우리 고구려의 국조인 삼족오 깃발까지 보여 주게 되면 백제나 신라 모두 믿지 않을 수 없겠군요.”
“그래. 설사 안다고 해도 그것은 이미 모든 상황이 끝난 뒤일 것이다. 아… 참. 태왕 폐하께 보낼 서찰도 준비해야지.”
그렇게 동현은 답신을 써서 영양 태왕에게 서찰을 보냈다.
서찰을 받은 영양 태왕은 내용들을 보더니 크게 웃으며 동현의 말대로 모든 것을 하려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조송과 수연을 백제에 사신으로 보내 동맹을 성사시켰다.
* * *
“용양장군이 자신이 당항성으로 직접 가겠다고 강력하게 요청을 했다고?”
“예. 태왕 폐하. 아직 당항성으로 가는 장수는 정해지지 않았다는 말을 용양장군이 듣고는 태왕 폐하께 이 서찰을 보이라고 했습니다.”
“음? 이 서찰이라면… 백제로 떠나기 전에 줬어도 되지 않은가?”
“그게… 용양장군이 꼭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태왕 폐하를 알현하라 말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서찰을 드리라 말하기에…….”
“으음… 아무튼 알았다. 이리 주거라.”
조송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공손하게 서찰을 영양 태왕에게 건넨다.
영양 태왕은 동현이 보낸 서찰 내용을 꼼꼼히 읽어 보는데…….
“신라를 우리 고구려가 차지하려 하면 백제가 바로 뒷통수를 칠 수 있으니 그에 대해 대비해야 한다. 그러려면 자신이 직접 군을 이끌어야 한다?”
“예. 태왕 폐하. 용양장군이 말하기를 우리가 백제와 동맹을 맺었다고는 하나 그건 어디까지나 신라에 한해서 만이라고 말했습니다.”
조송은 이게 다가 아니라는 듯, 한 마디 말을 덧붙였다.
“만약 신라가 우리 고구려에 모든 영토가 병합 당했다고 하면… 백제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바로 반격을 해올 것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렇겠지. 백제는 자신들이 이용당했다고 여길 테니깐… 헌데 바로 반격을 한다고? 나는 그래도 조금은 시간을 두고 지켜보다가 우리 뒤통수를 칠 것이라 생각했는데?”
“저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물어본 적이 있었으나… 용양장군이 말하기를 우리가 가장 기쁨에 취했을 때 적은 그것을 노리고 파고드는 경우가 많다고 했습니다.”
“기쁨에 취했을 때라… 그렇다는 건 우리가 신라를 완전히 병합하여 우리 영토로 만들었을 때 기쁨을 말하는 것이군.”
“그렇습니다. 태왕 폐하.”
“그래… 일리 있는 말이야. 하지만 이렇게 바로 결정할 수 없지. 내가 사흘(3일)안으로 답을 줄 테니, 자네는 일단 여기 머물러 있게.”
“예. 태왕 폐하. 그리하겠나이다.”
그렇게 조송이 편전을 나가자 영양 태왕은 근위장인 해론에게 말하여 모든 신하들을 대전으로 모이게 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모두 모였는가?”
“예. 태왕 폐하.”
“다름이 아니라 오늘 내가 대소 신료들을 모두 모은 것은 그대들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기에 불렀느나라. 이 일은 정말 중요한 일이라 그대들에게 의견을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영양 태왕의 말에 신하들은 영양 태왕이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한 표정으로 기다렸다.
“그대들도 알겠지만 우리는 얼마 전 백제와 동맹을 맺었다. 그리고 신라를 치기로 했지. 다들 들어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사옵니다. 태왕 폐하. 소신들 모두 그 말을 들었습니다.”
“다들 들었다니 그럼 이야기가 빠르겠군. 어떤 식으로 신라를 정복할 것인지 모든 계책이 세워졌다. 하지만 단 하나! 나오지 않은 것이 있다.”
“……?”
“바로 당항성을 칠 육군을 이끌 총사다. 그대들은 인물을 추천해 보라.”
영양 태왕의 말에 신하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웅성거리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