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5화 을지문덕, 영양 태왕에게 당항성 공격을 말하다.
동현은 그렇게 수하들에게 말을 한 후, 앞으로 백암성에 대한 방침과 상단에 대해 어떤 식으로 이끌지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한 후 회의를 파했다.
그런데 그때.
“형님.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 거기 앉거라.”
의형제 근혁이 갑자기 동현에게 할 말이 있다며 남았다.
근혁이 자리에 앉자 동현이 묻는다.
“그래. 무슨 할 말이 있는지 해 보거라.”
“그게…….”
“……?”
“오래전… 아니 10년이 좀 더 된 일이긴 합니다만… 조송의 딸인 조연 말입니다.”
“응? 조연?”
“예. 형님.”
“조연이 왜? 무슨 일이 있는 것이냐?”
“그것이 아니라… 이제 형님께서 조연과 혼인을 하시는 것이 어떠십니까?”
동현은 근혁의 말에 깜짝 놀란다.
“이 사람아! 나는 본의 아니게 부인이 세 명이 된 사람이야. 그런데 여기서 혼인을 더 하라고?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왜 말이 안 됩니까? 형님. 예전부터 영웅은 호색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니 받아드리셔도 무방하다봅니다. 그리고 오래 전부터 제가 말했다시피 자손을 많이 낳는 것이 좋은 일이고 말입니다.”
“후우… 근혁아. 나는 오래 전 본래 부인을 한 명만 얻으려고 했었다. 그 이유는 너도 잘 알지 않느냐?”
“물론입니다. 형님. 태어난 자식들 사이에서 분란이 일어날까 봐 이겠지요.”
“잘 아는구나. 하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그러지 못했다. 하지만 이미 세 명이 된 이상… 자식들을 잘 키워서 내 뒤를 잇게 만들려고 생각 중이었지. 한데 이런 상황에 한 명의 배필을 더 맞는다고? 난 받아들일 수 없다.”
“형님. 조연에게 지금도 다른 곳에서 혼인을 위해 많은 중매가 들어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때마다 조연이 거절을 한다고 하는군요. 헌데 거절하는 이유를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알고 계십니까?”
“설마…….”
“그 설마가 맞습니다. 자신은 이미 마음에 품은 사람이 있기에 그 사람과 혼인을 할 수 없다면 차라리 혼자 살다 죽겠다고 말했답니다.”
동현은 근혁의 말에 어이없어 하며 대답한다.
“그것이 나임을 어찌 확신하는가? 예전과 달리 마음이 변했을 수도 있잖은가?”
“조연이 형님께 중요한 날마다 선물을 하는 것을 보면 모르시겠습니까? 어떤 날은 형님께 옷을 지어서 선물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말도 선물로 주지 않았습니까? 거기다 형님께서 좋아할만한 음식도 만들어서 보내기도 했고 말입니다.”
“…….”
“이것만 봐도 형님께 마음이 아직 있다는 것인데 왜 자꾸 외면하려 하십니까? 형님. 현실을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
“만약 조연을 배필로 받아들이지 못 하시겠다면… 차라리 그녀를 불러서 단호하게 이야기를 하십시오. 네가 아무리 잘해도 난 너와 혼인할 생각이 없다고 말입니다. 그렇게 단정을 지어주어야 그녀가 마음을 돌리지 않겠습니까?”
“…….”
“조만간 조송이 형님께 분명 자신의 딸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그러니 그 때 형님의 뜻을 확실하게 전하십시오.”
근혁의 말에 동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런데 근혁은 아직 말이 끝나지 않았다는 듯 이어 간다.
“그리고 말씀드릴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무엇이냐?”
“형님의 아들 일에 제가 관여할 바는 아니나… 이제 본격적인 교육을 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특히 첫째인 경열이의 경우에는 이제 상단의 작은 일을 맡겨 봐도 될 것 같습니다.”
“으음… 이제 14살인데… 괜찮겠느냐?”
“형님께서도 어릴 때부터 집안일을 살피지 않았습니까? 조금씩 가르치면 괜찮을 겁니다. 제가 책임지고 가르치겠습니다.”
“좋아. 그럼 그렇게 해. 헌데… 너는 요즘 얼굴이 점점 좋아지는구나. 혼인한 지 얼마 되지 않고 신혼이라 그런가?”
“형님도 참…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근혁은 늦게 장가를 갔다.
이전에 근혁이 크게 몸이 아팠을 때 자신을 극진하게 돌봐 준 시녀가 있었는데, 그 여자를 보고 한눈에 반하여 면천을 시켜 주고 혼인을 한 것이다.
“아무튼 네 말을 잘 알았다. 조연에 관한 일은 내가 알아서 할 것이니 신경 쓰지 말거라.”
“예. 형님.”
그렇게 동현은 근혁에게 말을 하고는 조만간 조송과 조연을 따로 불러 의사를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며칠 뒤.
장안성(평양성)에는 영양 태왕이 동현의 서찰을 받아 읽어 보고 있었다.
그러고는 그 서찰을 을지문덕과 연태조에게 보여 준다.
“신라 정복 말입니까?”
“그렇다네. 정벌도 아니고 아예 정복이지. 신라 땅을 아예… 우리 고구려 땅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야. 그래야 수나라가 우리 고구려에 쳐들어 올 때 후방을 혼란스럽게 하지 못한다면서 말이야.”
“일리 있는 말입니다. 현재 백제와 신라 두 나라 모두 수나라에게 아첨하며 빌붙고 있으니 그중 한 나라라도 없애 놔야 후방이 편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 용양장군이 보낸 전술을 보니… 참으로 기가 막힌 전술이군요. 아마 이대로 한다면 큰 승산이 있을 겁니다.”
“육군으로 적들의 시선을 빼앗고 수군으로 신라의 수도인 서라벌을 타격한다라…….”
“예. 태왕 폐하. 지금 우리 군의 훈련 상태라면 믿을만합니다. 특히 수군은 더욱더 혹독한 훈련을 했다고 하니 용양장군의 요청을 받아들이시옵소서.”
“좋아! 자네들이 그리 말하니 한번 해보지! 그나저나… 육군으로 진격하게 되면 신라를 어떤 식으로 쳐야 할지도 정해야 하는데, 그건 어떻게 되고 있나.”
영양 태왕의 물음에 을지문덕이 바로 대답한다.
“지금 마침 딱 공격하기에 적기인 성이 있습니다.”
“그곳이 어딘가?”
“당항성입니다.”
“당항성?”
“예. 현재 백제가 신라를 누르며 영토를 조금씩 넓혀 가고는 있다고 하나 그곳만큼은 사정이 다른 듯합니다. 당항성은 본디 공격하기는 쉬우나 방어가 어려운 성이라 주인이 자주 바뀌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렇군.”
“그곳을 백제에서도 필사적으로 차지하려고 할 겁니다.”
“어째서?”
“그곳이 수나라와의 교역도 하기 쉽고 바깥으로 뻗어나가기가 쉽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일대가 신라 영토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긴… 백제가 지금의 왕이 되기 몇 해 전에 신라에게 다시 영토를 빼앗겼었지?”
“맞습니다. 그래서 현재 백제는 가장 작은 영토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다만 이제는 신라가 많이 약해진 터라 계속해서 백제에게 밀리는 형국이니 그것도 곧 시간문제일 것입니다.”
영양 태왕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지도를 펼친다. 그러더니 어딘가를 손으로 가리키며 묻는다.
“이곳 동해는 어떤가? 우리가 몇 년 간 내정을 정비하고 예전에 신라의 진흥왕에게 빼앗겼던 비열흘도 되찾고 상당부분 많은 영토를 되찾았는데 말이야.”
“저도 그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작전을 위해서는 그곳은 그냥 두는 것이 낫습니다. 동해의 수군이 서라벌로 향하니 말입니다.”
“음… 서쪽과 동쪽을 동시에 타격하자는 뜻인가?”
“그렇습니다. 당항성에서 육군이 그곳을 공격하며 신라를 압박하는 동안… 수군을 이용해서 한순간에 서라벌을 쳐야 합니다. 그래야 신라를 완전히 병합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수군 1만으로는 너무 수가 적은 것 같군.”
“그래서 용양장군도 육군을 1만 정도 더 포함시켜서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서찰에 남기지 않았습니까?”
“으음… 그렇다면 동해 수군 부총사가 있는 곳으로 육군 1만과 장수를 보내야하는데… 누가 좋겠는가?”
“우장군 이석을 보내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이석이라… 이석이라면 괜찮군. 현재 어디를 지키고 있는가?”
을지문덕은 영양 태왕이 이석에 대해 질문하자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바로 대답한다.
“현재 신성을 지키고 있습니다.”
“신성이라… 좋아. 지금 당장 이석이 있는 신성으로 전령을 띄워서 동해 수군 부총사가 있는 운두산성으로 1만의 군사를 이끌고 바로 가라고 하게. 자신이 자리를 비울 동안 신성을 맡을 대리자를 재량으로 정한 뒤에 말이야.”
“예. 태왕 폐하. 황명을 받들겠습니다.”
“그리고 육지에 상륙하기 전까지는 철저하게 동해 부총사 석우의 지시를 따르게 하도록 해. 서라벌에 가기까지 바다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부총사가 필요하니 말이야. 알겠는가?”
“예! 태왕 폐하! 황명을 받들겠습니다.”
이석.
동현이 20대 초반이던 시절 발탁이 되었단 자다.
그는 동현이 용양장군이 되자 바로 우장군으로 승차를 했고 신성을 지키게 되었다.
이석도 백성들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하는 자로 신성을 맡으면서 백성들의 일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살폈다.
그 덕분인지 신성에서도 동현만큼은 아니지만 백성들이 이석을 점점 따르게 되었다.
군사적인 면에서도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고 군을 양성했고 영양 태왕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하는 자이기도 한 이석.
그런 이석이 을지문덕의 추천을 받아 석우와 함께 신라 서라벌을 치라는 황명을 받았다.
그는 영양 태왕의 황명을 받들자마자 바로 군을 움직였다.
“우장군을 뵙습니다.”
“부총사를 뵈오. 수군을 보니 참으로 대단하구려.”
“우장군께서 이끄시는 군사들도 대단하십니다. 역시 용양장군께서 말한 대로군요.”
“용양장군이 말이오?”
“예. 용양장군께서 말하기를 우장군은 문무를 겸비하신 분이니 군사들도 강할 것이라고 제게 말을 한 적이 있으십니다.”
“허허허. 그랬구려. 이거 용양장군께서 내 얼굴에 너무 금칠을 해주는데?”
“아닙니다. 사실인 것을요. 자… 그럼 먼 길 오느라 힘이 드셨을 테니, 간단하게 약주를 하시면서 제 계획에 대해 들으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역시 계획을 모두 세워 놓으셨군. 좋소이다. 안내해 주시오.”
우장군은 자신의 벼슬이 더 높으나 매우 겸손한 자였다.
예전에 부당한 일을 당했던 것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자신보다 낮은 직급의 사람에게도 함부로 말을 하지 않았다.
밑에 사람이 그런 이석에게 불편하다며 하대를 해달라는 말을 하고 난 뒤에야 편하게 말할 정도로 남을 잘 배려해 주고 존중해 주는 장수였다.
그랬기에 석우에게도 완전히 하대를 하지 않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석우는 이를 보며 부탁을 한 뒤에야 비로소 이석이 하대를 하게 되었다.
“허어… 벌써 이렇게나 계획을 세워 놓았군. 참으로 대단해.”
“과찬이십니다. 사실 이 계획은… 용양장군이 대부분 틀을 마련한 것입니다.”
“용양장군이?”
“예. 저와 서찰을 통해 자주 소식을 주고받는데, 그때마다 하시는 말씀이 우리가 수나라에 집중하며 맞서기 위해서는 후방이 든든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백제와 신라 둘 중 하나를 먼저 병합을 시켜야 한다고 말씀하셨지요. 저는 그 의견에 동감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군을 훈련시켜 왔습니다.”
“그랬군… 아무튼 대단한 계획이야. 다만 관건은 당항성에서 우리 군이 신라군과 잘 싸웠을 때가 전제가 돼야 하는 것인데…….”
“맞습니다. 하지만 잘 될 것입니다. 우리 고구려가 지금까지 국력을 괜히 키워 온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맞아. 아… 참. 그나저나 백제에 사신을 보낸다는 것은 어찌 되었나? 내가 이곳에 오기 전에 사신을 보낸다고만 들었고 그 이후에는 들은 것이 없어서 말이야.”
“저도 그 소식을 방금 받았습니다. 태왕 폐하께서 용양장군이 추천한 분들을 사신으로 임명하여 백제로 보냈다고 합니다.”
“그렇군. 이제부터 본격적인 시작이야. 정신 바짝 차려야겠어.”
“저도 동감입니다. 그러니 우장군.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서라벌에 상륙하게 되면 육전에는 우장군께서 매우 능하시니 명하시고 싶으신 것이 있다면 언제든지 명해주십시오.”
석우의 말에 이석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사람이 참으로 겸손하구만. 그리 말해 주니 나도 고맙군. 우리 서라벌을 점령하고 임무를 다할 때까지 잘해 보세. 그리고 나도 잘 부탁하네. 난 수전에는 아무것도 몰라서 말이야.”
“맡겨주십시오! 우장군! 수전만큼은 누구한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그렇게 석우와 이석은 처음 만났지만 친분을 다졌고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