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화 동현, 고승을 살리기 위한 설득에 나서다.
동현은 사훈의 조언을 듣고는 고승이 갇혀 있는 옥으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후.
“고승 장군…….”
“응? 이게 누군가? 용양장군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장군.”
“허허허… 나는 죄인인데 아직까지도 내게 장군이라고 부르는군.”
“소인은 진심으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대체… 왜 그러신 겁니까? 태제 전하를 말리는 것이 마땅한 일이었을 텐데요.”
“자네도 알겠지만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태제 전하 덕분이네. 헌데 내가 그 분의 뜻을 거역할 수 있겠는가?”
“…지금 도성에는 난리가 났습니다. 태제 전하께서 태왕 폐하의 황명에 의해 잡아 들여졌고… 그와 동조한 귀족들도 모조리 잡혀 들어갔습니다.”
“정해진 수순이군…….”
“태왕 폐하께서는 아마… 태제 전하의 목을 벨 것입니다.”
동현의 말에 고승은 잠시 몸을 움찔하더니 묻는다.
“그래도 형제일세. 죽이기야 할까?”
“무조건 죽일 수밖에 없을 겁니다…….”
“어째서?”
“고승 장군께서도 아시지 않습니까? 태제 전하께서 많은 귀족들의 구심점이라는 것 말입니다. 그 세력들을 와해시키려면… 구심점인 태제 전하의 목을 베어야만 합니다.”
“…태후 마마께서 계시는데 쉽게 벨 수 있을까? 태왕 폐하께서는 효성이 지극하신 분이라 그 분의 뜻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일세.”
“이번만큼은 다를 겁니다. 만약 태제 전하의 거사가 성공했다면 태왕 폐하 자신의 목숨은 물론이고 나라까지 위태로워질 수도 있는 것인데 가만히 계시겠습니까?”
“…….”
“설사 태왕 폐하께서 태제 전하를 살려 주고 싶어도 그 밑에 신하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그들의 속성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자신들이 불리하다 싶을 땐 뒤로 빠지거나 본래 있던 곳에서 박쥐처럼 갈아타는 것 말입니다.”
“…….”
“그러니 이제 고승 장군께서도 결정하셔야 합니다.”
동현의 말에 고승은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묻는다.
“무엇을 결정하라는 것인가?”
“고승 장군께서는 태제 전하께 충성을 다할 만큼 있는 도리를 다 하셨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그 충성을… 태왕 폐하께 하십시오.”
“나보고 태제 전하를 버리라는 것인가?”
“이제 그 충성의 대상이 사라집니다. 그런데 따라 죽어서 무엇 합니까? 제가 알기로 고승 장군의 꿈은 부강한 고구려를 만드는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방법은 달랐으나 태제 전하께서도 나름 생각은 있으셨겠지요.”
“…….”
“하지만 그 방법은 결론적으로 이 고구려의 발전에 방해가 되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리고 뜻대로 안 되자 무리하게 거사를 하려다 오늘날과 같은 결과가 나타났고 말입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것인가?”
“좀 전에 말했다시피 이제 장군께서 충성을 바치던 주인은 곧 형장의 이슬로 사라집니다. 충성을 하는 대상이 사라진다는 뜻이지요. 이 말은 태왕 폐하께서 이제 확실히 귀족들을 누르고 절대적인 황권을 쥐셨다는 말이 됩니다.”
“…….”
“그리고 황권을 확실하게 쥔 역대 태왕 폐하들을 보았을 때 절대 권력을 행사하면서 우리 고구려의 전성기를 이끈 태왕들이 많습니다.”
동현의 말에 고승은 피식 웃으며 묻는다.
“그러니깐 자네 말은 이번 태왕 폐하께서 확실하게 황권을 쥐셨으니, 역대 전성기를 구가했던 태왕 폐하들과 같이 다시 한번 우리 고구려가 전성기를 누릴 수 있다… 이 말을 하고 싶은 것인가?”
“바로 보셨습니다. 매우 가슴 뛰는 일이 아닙니까? 영토를 넓혀서 우리의 힘을 과시하는 동시에… 내실도 확실하게 다져서 백성들을 평안케 하는… 그런 나라 말입니다. 아니… 과거 광개토태왕 폐하와 장수태왕 폐하처럼 말입니다.”
“광개토태왕 폐하와 장수태왕 폐하라…….”
“그렇습니다. 그러니 장군… 이제부터라도 마음을 고쳐먹고 저와 함께 이 고구려를 부강하게 만들어 보도록 하십시다. 현재 장군의 처분을 태왕 폐하께서 제게 맡겼으니 제가 장군을 죽이지 않고 살리겠다고 말하면 태왕 폐하께서도 이해해 주실 겁니다.”
동현의 말에 고승은 잠시 생각을 하는 듯 눈을 감고 말이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음… 자네 말은 잘 들었네. 우리 고구려를 부강하게 만들기 위해 일을 하자라…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싶네. 하지만… 그러려면 나도 몇 가지 조건이 있네.”
“말씀하십시오. 그 조건을 들어보겠습니다.”
“일단 첫째… 나는 충성의 대상을 바꾼 것이 아닌 오로지 이 고구려에 충성을 다할 것이라는 것을 알아 주었으면 좋겠네. 내가 태제 전하께 충성을 했단 것은 사실이나 고구려를 부강하게 만들겠다는 마음은 여전했으니 말이야.”
“그야 물론입니다. 그 충성심은 저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좋아. 그럼 둘째… 태제 전하께서 죽게 되면… 내가 그 태제 전하의 시신을 거둬 직접 장사지내게 해 주게. 그래도 내가 충성을 바쳤던 분이 아닌가?”
“으음… 그 이야기는 태왕 폐하께 한번 상주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뜻대로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만약 뜻대로 하고 싶으시다면 상을 치를 때 장군께서 도성으로 직접 가시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그런가? 좋아… 그 일은 그럼 그 정도로 해두지… 그럼 마지막 셋째… 태제 전하께서 죽게 되면 그와 관계된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노비가 될 것이네. 죽는 사람은 어쩔 수가 없으나… 노비가 되는 사람들은 되도록 많이 내가 거둘 수 있도록 해주었으면 좋겠네.”
고승의 말에 동현은 조금 난감해 한다.
“장군께서도 아시겠지만 일단 이 일이 터진 만큼 장군께서 약간의 처벌이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그것은 어려울 것 같군요.”
“그런가? 그럼 이렇게 하지.”
“……?”
“자네가 그 사람들을 거두어 주게.”
“예? 제가요?”
“그래. 어차피 나는 태제 전하와 같은 행동을 한 사람으로서 처벌을 받아야하네. 그렇다면 최소 삭탈관직은 기본이지 않겠는가?”
“…….”
“그리고 내가… 자네가 있는 상단으로 들어가지.”
동현은 고승의 말에 매우 놀란다.
“그 말… 진심이십니까? 제 밑에서 일하게 되는 것입니다. 잘 생각해 보시고…….”
“아니. 이미 결심했네. 이미 난 내가 모시는 주군도 잃고 다 잃은 몸일세. 그리고 주인을 바꾸려는 염치없는 사람이기도 하고 말이야. 헌데 자네 밑으로 들어가는 것이 대수겠는가?”
“…….”
“부탁하네. 내가 자네의 말 따라 고구려를 부강하게 만들기 위해 내가 모시는 주인을 태왕 폐하로 바꾸지만… 그래도 그들과 만났던 것도 인연인데, 그 인연들을 함부로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니 이들을 살릴 수 있게… 태왕 폐하께 상주해 주게.”
“만약… 태왕 폐하께서 들어 주시지 않으신다면 어찌 하실 것입니까?”
“그때는… 내가 살아있을 자격도 없으니 자결하려 하네.”
동현은 고승의 말에 한숨을 쉬며 대답한다.
“하아… 장군. 그건 무책임한 회피일 뿐입니다.”
“더 이상 그들을 구할 방법이 없는데 회피라니?”
“장군께서는 이 일이 터지기 전까지는 이런 사람이 아니셨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어떻게든 방도를 찾아내려 노력하셨던 분이셨죠. 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회피는 물론이고 자신의 책임을 다 하지 않으려 하는 모습이네요.”
동현의 말에 고승은 벌컥 화를 낸다.
“내가 책임을 다하지 못하다니?! 나는 지금까지 맡은 바 소임을 다하기 위해 무엇이든지 태제 전하의 명령이 떨어지면 다 실행에 옮겼다! 좀 전에 너도 말했듯이 말이야!”
“그렇다면 이번 일에 대해서도 저와 함께 그들을 살리는 방도를 찾아보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방도가 있겠느냐? 그리고 태왕 폐하의 황명 하나면 다 죽는 목숨인데 말이야.”
“그러니 찾아봐야지요. 장군. 일을 시작하기 전부터 약한 마음을 가지지 마십시오. 그 마음이 커지면 모든 것을 놔 버리게 되니 말입니다.”
“…….”
“저는 진심으로 장군을 존경해 왔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장군의 목을 치기도 싫으며 그 시신은 제 스스로 치우기도 싫습니다. 그러니 더 이상 약한 모습 보이지 말고 본래의 장군의 모습으로 돌아가십시오.”
동현의 말에 고승은 피식 웃으며 말한다.
“이런 말을 내게 해주는 사람은 네가 처음이구나. 그리고 왜 태왕 폐하께서 너를 높게 평가하고 태제 전하께서 너를 경계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
“내 너를 믿어 보마. 좀 전에 했던 말은 취소하지.”
“그럼……?”
“네가 주는 합당한 처벌을 받고 상단에서 일을 하도록 하지.”
“진심이십니까?”
“내가 언제 한 입으로 두 말 하는 것 봤느냐? 진심이다.”
“그리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네게 충성하겠다는 말은 아니다. 난 충성을 함부로 맹세하지 않아. 앞으로 네 곁에서 널 지켜보면서 충성을 해야 할지 말아야할지 정하겠다는 말이다. 알겠느냐?”
동현은 고승의 말에 감사해 하더니 갑자기 무릎을 꿇고 절을 한다.
그런 동현의 행동에 고승이 갑자기 당황하는데 동현은 그런 고승을 보며 말한다.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소인이 비록 주변에 수하들이 많고 조언해주는 사람들이 많다고는 하나 아직 경험이 많이 부족한 사람들뿐입니다. 하지만 고승 장군께서는 관직에 오래 계셨던 분인 만큼 많은 조언을 해주실 수 있으시겠지요. 앞으로 많은 지도를 부탁드립니다.”
동현의 행동에 고승은 감동했다.
자신은 동현에게 어떻게 보면 걸림돌이 아니었겠는가.
그런데 그런 자신을 상대로 오히려 많은 조언을 해달라고 말하는 동현을 보며 감동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는… 네가 물어보면 조언을 하도록 하마.”
“감사합니다. 장군. 헌데… 한 가지 더 죄송한 일이 있습니다.”
“……?”
“좀 전에 제가 장군에 대한 약간의 처벌은 어쩔 수 없다 했는데… 그것이 삭탈관직만으로 해결이 된다면 분명 주변에서 말이 나올 것이 분명합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군. 물리적인 처벌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한다는 말인 것 같은데?”
“그렇습니다… 죄송합니다. 장군…….”
“아니네. 이미 각오하고 있었네. 본래 역적으로 취급받아야 하는데 자네 덕분에 목숨을 건지게 되었으니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그래서 내게 삭탈관직과 함께 어떤 처벌을 내릴 것인가?”
“태형 30대입니다.”
“태형 30대라… 채찍으로 등을 치려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장군.”
“아니네. 그 정도면 괜찮아. 대신… 내가 맞고 난 뒤 치료를 확실히 해주게. 으하하하!”
그렇게 동현은 옥에서 고승과 한 동안 이야기를 나눈 후 옥을 나왔다.
그리고 다음 날.
“죄인 고승을 태왕 폐하의 황명을 대신해! 삭탈관직하고! 태형 30대에 처한다! 지금 당장 형을 집행해라!”
“예! 장군!”
쫘악!!!
“한 대요!!”
쫘악!!
“두 대요!!”
“으윽…….”
찰진 채찍 소리와 함께 고승의 등이 붉게 물들어 갔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모든 형 집행이 끝나자 고승의 등에는 피가 흘러내렸고 동현은 단호하게 소리친다.
“형 집행이 끝났다! 죄인을 내 앞에서 치워라!”
“예! 장군!”
동현의 말에 고승은 군사들이 의해 어디론가로 사라졌다.
고승이 눈앞에서 사라지자 동현이 주변의 군사들에게 외친다.
“모두들 듣거라! 이번 처벌의 경우는 태왕 폐하의 지엄한 황명에 의해 이루어 진 바!! 더 이상 오늘의 처벌을 가지고 말을 하지 말라! 알겠는가?!”
“예! 장군!”
“오늘 처벌에 대해 추후에 누구라도 말을 꺼낸다면! 그 자의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목을 벨 것이니 그리들 알아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렇게 동현은 고승에 대한 처벌을 순조롭게 처리하고 자신의 업무를 모두 본 뒤 고승이 치료를 받는 곳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