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2화 천설유와 천석한, 볼모신세를 면하려 일을 꾸미다.
양용이 째려봄에도 장형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간다.
“태자마마께서 황자마마가 폐태자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많은 애를 쓰셨습니다. 하지만 이유야 어찌되었든 간에 지금은 태자 자리의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지금 태자마마의 주인은 둘째 황자마마라는 것입니다.”
“네… 네 이놈……!”
“황제 폐하께서도 지금 황자마마의 이런 태도를 주시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목이 달아나지 않으시려면 자중하고 계십시오.”
“이익……!”
장형은 그렇게 경고를 하고는 이궁을 나왔다.
그리고 양광에게 돌아가 자신이 한 이야기를 그대로 전했다.
“하하하하! 그래? 그랬더니 형님께서 아무 말도 못했다고?”
“예. 태자마마. 이제 조용할 것이니 심려 놓으십시오.”
“그래. 근위장. 고맙네!”
그렇게 양광은 수나라에서 자신의 세력을 점점 크게 넓혀가기 시작했다.
* * *
그 무렵 고구려의 수도 장안성(평양성)에서는…….
“또 무예 수련을 하고 있느냐?”
“예. 숙부님.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습니다.”
“후우… 그래.”
“헌데…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내가 무슨 일이 있어야 너를 보러 오느냐? 나도 이곳에서 마음 편히 이야기 할 곳이 이곳 밖에 없으니 오는 것이지.”
“아…….”
“그나저나 소식 들었느냐?”
“고구려가 수나라의 30만 대군을 물리쳤다는 소식 말입니까?”
“그래. 그와 더불어서 수나라의 북평성과 임유관을 점령했다는구나.”
“솔직히 수나라는 이기기 힘들다고 봤는데… 정말 대단합니다.”
“그래… 당분간은 고구려의 시대이지 싶다. 단… 곧 수나라와 또 붙을 것 같구나.”
“30만이 당했는데 수나라가 또 오려고 하겠습니까?”
“너는 저 중원 놈들의 습성을 잘 모르는구나. 저 중원 놈들은 자신에게 호적수가 생기면 어떻게 해서든지 상대를 눌러놓으려고 하는 성향이 강하다. 고구려가 이번에 이겼다고는 해도 수나라는 아주 큰 나라야. 국력은 고구려의 배 이상이지. 언젠가는 또 다시 충돌할 것이다.”
천설유와 천석한.
고구려와 전쟁에 지고 볼모로 잡혀와 있는 두 사람이었다.
두 사람이 고구려에 볼모로 잡혀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는 영양태왕이 그들을 철저히 감시하라는 명령이 있었다.
고구려 군사들을 명령 하에 거처에까지 교대 근무를 하며 그들을 감시했다.
그리고 행동반경도 그들이 거주하고 있는 거처를 벗어나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서 영양태왕은 그들을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생각에 군사들의 감시는 그대로 받되 행동 반경을 장안성의 저잣거리까지만 갈 수 있도록 허용을 해주었다.
그 덕분에 천설유와 천석한은 고구려 군사들을 받으며 종종 장안성의 저잣거리를 살필 수 있었고 주막에서 가끔 술 한 잔을 하며 귀동냥으로 여러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럼 저희는 그때를 노려야 합니까?”
“그때를 노린다고 해도 고구려가 계속해서지지 않으면 어렵다.”
“그런…….”
“그리고 우선적으로 저 고구려 군의 감시 군사들을 떼어 내야겠지.”
“그럴 방법이 있겠습니까? 본래 거처도 벗어나지 못했다가 근래 들어 이 저잣거리만 돌아다니며 구경할 수 있도록 허용이 된 것인데 말입니다.”
“그래. 지금으로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단… 수나라와 고구려가 전쟁이 다시 벌어지고 고구려 군이 밀린다는 소리가 들리면 그때는 무언가 수가 생길 수도 있지.”
“수나라가 고구려를 또 다시 쳐들어올 것이라는 것을 단정적으로 말씀하시는군요.”
“내가 앞서 말하지 않았느냐? 그리고 그들은 결론적으로 고구려에 의해 영토를 잃었다. 영토를 잃고도 그들이 가만히 있으리라 생각하느냐?”
“그건 그렇습니다만……”
“우리는 그때가 되기 전에 준비를 해 놓아야 한다. 어떻게 하면 이 고구려를 빠져나갈 수 있을지 말이야.”
천석한의 말에 천설유는 여전히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묻는다.
“대체 어떤 준비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이 장안성 안에… 우리와 동조해 줄 세력을 찾아야지.”
“세력이요?”
“그래. 세력.”
“현재의 고구려의 왕은 이곳의 백성들에게 성군이라고 불리는 사람입니다. 그런 세력이 있겠습니까?”
“당연히 있지.”
“……?”
“백성들이 평안을 누린다는 것은 귀족들의 세력이 그만큼 눌려 있다는 것을 뜻한다. 무슨 뜻인지 알겠느냐?”
“아…….”
“설사 귀족들이 고구려 왕이 하는 모든 일을 동조한다고 하더라도… 한 가지 더 방법이 있긴 하지.”
“그것이 무엇입니까?”
“수나라에서도 이 고구려로 황자가 볼모로 잡혀 있는 것으로 안다. 양량이라고 했던가?”
“아… 양량이라면 저도 들었습니다. 수나라 황제의 막내 황자가 아닙니까?”
“그래. 그 자와 어떻게든 접촉해서 수나라를 우리 쪽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천석한의 말에 천설유는 걱정한다.
“하지만 숙부. 현재 우리 불열말갈은 친 고구려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헌데…….”
“나도 안다. 하지만 여러 가지 길을 만들어 놓으면 좋지 않겠느냐?”
“여러 가지 길이요?”
“그래. 우리가 볼모로 있는 이 고구려가 지는 것이 장안성에 있는 우리로서는 가장 좋은 이야기이긴 하지. 하지만 그렇게 되면 우리 불열말갈도 순식간에 위기에 처할 수 있다. 너도 알지 않느냐?”
“아…….”
“그러니 대비를 해야 한다. 고구려가 이기면 현재 우리 불열말갈의 정책을 유지하면 되는 것이고… 수나라가 이기면 어떻게든 양량과 이야기를 해서 수나라에 선을 대도록 해야겠지.”
“하지만… 고구려가 이기면 우리는 계속 이곳에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래… 그때는 이것이 우리의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
“그래도 우리 희망을 가져 보자. 그나저나 저 고구려 군사들의 감시를 떼어 낼 방법이 문제인데 말이야…….”
천설유는 천석한의 말에 한 동안 아무 말이 없이 고민했다.
하지만.
“하아…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보이질 않습니다. 숙부.”
“나도 그렇다. 으음… 어쩐다?”
천석한이 그렇게 말하는 그 때 저잣거리에 지나다니는 어떤 사람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 사람… 정말 오랜만이군!”
“그러게 말일세! 이게 얼마 만인가? 하하하! 한 5년은 된 것 같은데?”
“5년이 뭔가? 6~7년은 된 것 같으이!”
“그랬던가? 하하하! 아무튼 이렇게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구만. 이렇게 오랜만에 만났는데 쉽게 헤어질 수는 없지. 우리 집에 가서 술 한 잔이라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세!”
“그럴까?”
그렇게 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며 사라졌다.
그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던 천석한.
갑자기 무릎을 탁 치며 말한다.
“그래. 그 방법이 있어.”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숙부?”
“저 사람들을 보니 희망이 생겼다는 말이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일단 돌아가자. 거기서 이야기를 해 주마.”
“아… 예.”
그렇게 천석한은 저잣거리에서 천설유가 있는 거처로 돌아갔다.
둘은 거처로 돌아가 차 한 잔을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아까 두 사람이 만나는 걸 보니 한 가지 방법이 생각나서 말이야.”
“그렇습니까? 어떤 방법입니까?”
“고구려 왕에게 고하는 것이지.”
“예? 고하다니요?”
“네가 이곳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를 제외하고 문제를 우리가 일으킨 적이 있었나?”
“아… 아닙니다. 오히려 고구려 왕이 하는 말을 충실하게 따랐지요.”
“맞아. 그러니 이제 우리가 할 말을 주장하자는 거야.”
“우리가 할 말을 주장하자고요?”
“그래. 우리는 거의 이곳에 갇혀 있는 셈이야. 그래서 네가 초반에 많이 힘들어 했고 사고도 쳤지. 나도 사고만 치지 않았다 뿐이지 너무 힘들었고 말이야.”
“…….”
“그리고 애초에 볼모라는 것은 약소국이 강대국에 바치는 것인데, 그 약조 또한 볼모가 건강했을 때 이야기지.”
“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천석한은 천설유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계속 말을 이어 간다.
“생각해 봐라. 설유야. 만약 볼모로 끌려간 사람이 갑자기 건강이 악화되고 죽으면 어떻게 될 것 같아?”
“그야…. 그냥 죽었나 보다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설유야. 볼모는 국가와 국가 간의 약속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잘 생각해 봐.”
“음… 전 잘 모르겠습니다.”
“…잘 모른다니 설명해 주마. 약소국에서 강대국에 힘에 의해서 볼모를 보내게 되었을 때 약소국은 강대국에 충성한다는 의미나 마찬가지다. 헌데 이 볼모가 매우 건강했던 사람인데 갑자기 죽어 버린다면? 약소국 입장에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아…! 이제 알겠습니다. 숙부. 만약 그렇게 된다면 무슨 음모에 의해서 볼모가 죽었다고 생각할 것 같습니다.”
“맞아. 그러니 지금 그걸 이용해 보자는 것이다.”
“어떻게요?”
“어떻게 하긴… 너나 나 둘 중 한명이 서서히 죽어 가는 것처럼 아픈 모습을 보이며 연기를 해야지.”
“그 다음에는요?”
“그렇게 된다면 분명 고구려 왕이 너나 나 둘 중 하나를 호출할 것이 분명해. 그럼 그 때 우리는 요구를 하면 된다.”
천설유는 천석한의 말에 확연히 밝아진 모습으로 묻는다.
“그럼 고구려 왕에게 어떤 식으로 말하는 것이 좋을까요?”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면 된다. 이 고구려에 있으면서 예전에는 거처에만 묶여 있다가 근래 들어 저잣거리까지만 허용이 되었는데, 다른 사람들과 교류는 하지 못하게 하니 너무 답답해서 화병이 난 것 같다고 말이다.”
“아…….”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 고구려 왕이 분명히 우리에 대한 조치를 완화해 주려 할 것이다. 우리가 볼모인 만큼 함부로 대했다가 죽기라도 하는 경우 우리 불열말갈을 예전처럼 적으로 돌릴 수 있으니 말이다.”
“아주 좋은 생각이신 것 같습니다. 헌데…….”
“……?”
“환자 행세는 누가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으음… 아무래도 네가 하는 것이 좋겠다.”
“예? 제… 제가요?”
“그래. 너는 이곳에 오고 초반에 큰 사고를 치지 않았느냐? 그리고 나로 인해 잠잠해졌고 말이다.”
“왜 또 그 이야기를 하십니까?”
“사실이지 않느냐? 아무튼 뭐… 그것 때문에 일이 수월하게 풀릴 수 있을 것이다.”
천석한의 말에 천설유는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묻는다.
“일이 수월하게 풀린다고요?”
“그래. 초반에 네가 사고를 종종 치고 다니는 통에 네가 화병이라고 말을 하면 고구려 신하들과 왕은 분명 바로 이해를 해 줄 것이다. 네가 워낙 불 같은 성격을 지닌 여자라는 것을 모두에게 보여 주지 않았느냐?”
“크흠… 수… 숙부님도 참… 갑자기 왜 제 성격 이야기를 하십니까?”
“사실인 것을 왜?”
“수… 숙부님!”
“알았다. 알았어… 진정 해라. 아무튼… 방법은 이것 밖에 없다.”
“하아… 알겠습니다. 숙부님. 헌데…….”
“……?”
“환자 행세를 한다면 한 동안은 침상에서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하는 척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지.”
“와… 그건 너무 어려운 것 아닙니까? 저는 본래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데 말입니다. 저 진짜 답답해서 미칠 겁니다.”
“설유야. 우리가 하는 행동에 따라 우리의 운명이 결정될 수도 있다. 크게는 우리 불열 말갈의 운명도 결정될 수 있어. 그래도 지금과 같은 말을 할 수 있겠느냐?”
천석한의 말에 천설유는 한 동안 말이 없었다.
그런 천설유의 답을 천석한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기다려 주었다.
그리고 잠시 후…….
“후우… 우리 운명을 가를 수도 있다는데… 알겠습니다. 해보겠습니다.”
“정말이냐?!”
“예! 우리 운명과 불열 말갈을 위해 무엇이든지 참아 볼게요!”
“잘 생각했다. 하지만 바로 몸이 안 좋아져 버리면 저들이 크게 의심할 테니, 서서히 네 몸이 안 좋아지는 것으로 하자.”
“알겠습니다. 숙부!”
그렇게 고구려의 볼모로 끌려온 천석한과 천설유는 어떻게든 이 신세를 면하기 위해 일을 꾸미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