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9화 동현과 허손, 산적들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신분을 위장하여 영채에 들어가다.
동현과 사훈, 허손은 산적들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본격적으로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일단 나와 허손이 누군가에게 쫒기는 듯한 모습으로 놈들 근처로 가서 그들에게 수하가 되기를 청할 것이야.”
“그들 중 장군의 얼굴이라도 아는 사람이 있다면 낭패를 당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진 않을 것이다. 나도 가끔씩 그 주변을 자주 왔다갔다 거렸는데, 날 보고도 가만히 있었어. 그 말은 나를 전혀 모른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의도적으로 잡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전령도 지켜보기만 하고 잡으려고 하지도 않았으니 말입니다.”
“물론 그렇지. 하지만 그렇게 되면 오히려 잘 된 것이 아닌가?”
“……?”
“그들이 나를 모른 척하고 허손과 함께 영채 안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은 호랑이 두 마리를 받아들인 셈이니 말이야. 우리 둘이서 산적들의 우두머리를 생포하거나 잡는다면 우리가 원하는 걸 의외로 쉽게 얻을 수 있지 않겠는가?”
“그 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우두머리를 잡아서 정체를 밝혀낼 생각이십니까?”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것 같으면 그리 해야지.”
“엄청나게 많은 수입니다. 만약 일이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하하하! 왜 자꾸 잘못되는 경우만 생각하는가? 사훈!”
동현의 말에 사훈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런 사훈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듯 동현은 그의 어깨를 두들기며 말한다.
“너무 걱정 말게. 우린 정말 자신 있어. 반드시 성공할 수 있을 것이야.”
“맞습니다. 군사.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으음… 알겠습니다. 그럼 성공한다는 전제 하에 일단 제 계획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오! 벌써 모든 계획이 자네 머리 속에서 그려진 것인가?”
“일단 그렇습니다.”
“그래. 어떻게 하면 되겠는가?”
“간단합니다. 장군께서 산적들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침투를 할 동안, 저는 군사들을 이끌고 그 주변을 포위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장군께서 그들에게 정체를 들켜도 놈들이 함부로 해하려 들지 못할 겁니다.”
“으음… 그렇다면 내가 혼자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 사람들에게 미리 말을 해주는 것이 좋겠군. 물론 우리 정체가 들켰을 때 말이야.”
“그렇습니다. 그래야 저들도 자신들에게 가해지는 위협을 느끼고 장군을 함부로 해하지 못할 테니 말입니다.”
“옳은 말일세. 그럼 그 다음에는 사훈 자네가 있는 곳으로 내려와 합류를 하면 되겠군.”
“그렇습니다. 다만 장군. 기한을 정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사훈의 말에 동현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묻는다.
“기한을 정하다니?”
“그곳에 필요 이상으로 오래 머물게 된다는 것은 장군의 신변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혹시 모르니 장군께서 며칠 동안 그곳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소식이 없으면 제가 포위를 하였다가 그곳을 들이치겠습니다.”
“내 신변을 우려하여 기간을 정해 놓고 그 기간이 지나면 그들을 공격해 모조리 일망타진하겠다는 생각이구만.”
“그렇습니다. 장군.”
“좋아. 그렇게 하지. 기한은 나흘이 좋을 것 같군.”
“너무 길지 않겠습니까? 저는 사흘이 좋을 것 같습니다만…….”
“사흘은 그곳의 정보를 알아내기엔 너무 짧아. 그러니 나흘은 있어야 하네.”
“으음…….”
“사훈.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와 허손에 대한 걱정은 너무 하지 말게. 우리는 절대 죽지 않고 그곳을 잘 빠져나올 것이니 말이야.”
동현의 말에 사훈은 크게 한숨을 쉬며 대답한다.
“후우… 알겠습니다. 제가 졌습니다. 나흘로 하시지요.”
“하하하! 고맙네. 군사는 얼마나 이끌고 움직이는 것이 좋겠는가?”
“그 사람들은 전부 합해서 약 1천여 명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 우리도 최소 그 정도는 데리고 가야하지 않겠습니까?”
“좋아. 그렇게 하지. 내가 자네와 중간 지점까지 군사들과 함께 그곳으로 갔다가 나와 허손은 중간에 빠져 그들에게 가면 되겠군. 그리고 군사들이 자네의 지휘를 받도록 하면 문제가 없을 것이야.”
“그럼 이로써 산적들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한 계획은 얼추 다 짜여진 셈이군요.”
“그렇군. 그럼 내일 아침 날이 밝자마자 바로 움직이지.”
“알겠습니다. 장군.”
그렇게 동현은 백암성 근처에 있는 산적들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한 작전을 시작했다.
다음 날 아침.
동현은 날이 밝자마자 1천여 명의 군사들을 이끌고 산적들로 위장한 것으로 보인다는 산으로 향했다.
“여기부터가 산에 도착하기 전의 중간 지점이구만. 그럼 나와 허손은 누군가에게 쫒기는 척하며 산적들에게 살려달라는 것처럼 위장하여 그들의 수하가 되겠네. 그러니 자네는 천천히 산 쪽으로 와 그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산을 포위하도록 해. 산 밑에까지 경계를 서는 군사가 없었다고 하니 포위하는 건 매우 쉬울 것이야.”
“예. 장군. 조심하십시오.”
“그래. 걱정 말게. 자, 허손! 가자!”
“예!”
그렇게 동현은 허손과 누군가에게 쫒기는 듯한 모습으로 산적들로 위장한 사람들이 있는 산으로 향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저기군. 아직 우리를 발견하지 못했지?”
“그렇게 보입니다.”
“좋아. 현재 우리의 행색도 일부러 초라한 모습으로 위장도 하였으니 저들도 분명 우리가 쫒기는 듯한 모습을 보면 분명 모른 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 준비는 되었는가? 매제.”
“물론입니다. 형님.”
“좋아. 가자!”
동현은 그렇게 영채 근처의 숲 속에서 산적들로 위장한 자들의 동태를 살피다가 소리를 지르며 영채 쪽으로 달려가며 외친다.
“살려 주시오! 살려 주시오!”
“응? 이게 무슨 소리야?”
“그러게. 어디서 나는 소리지?”
“저기다! 두 사람이 우리 쪽으로 오면서 살려달라고 외치는 것 같지 않아?”
“그러게 말이야. 일단 저들이 어떤 자들인지 물어봐야 한다. 그러니 저들이 가까이 오면 화살과 검만 꺼내 저들에게 겨누고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한 뒤 물어보는 것이 좋겠어.”
“나도 같은 생각이야. 우리 쪽으로 오는군. 모두 전투 준비를 갖추어라!”
영채에 있던 한 장수가 외치자 영채 문을 지키던 군사들이 화살을 일제히 동현과 허손이 있는 쪽으로 겨누었다.
그리고 검을 가진 자들 또한 동현과 허손이 다가올 것을 경계하며 전방을 주시하는데…….
“멈춰라! 대체 그대들은 누구기에 이곳까지 오는 것인가?”
“사… 살려 주시오! 우리는 지금 말갈 놈들에게 쫒기고 있소!”
“뭐라? 지금 말갈이라 하였느냐?”
“그… 그렇소이다. 우리는 얼마 전 어제 사냥을 위해 이 백암성 주변을 돌아다녔던 사람이오! 본래 백암성을 지키는 군인이나 어제 하루 휴가를 내서 사냥을 했지. 헌데 사냥을 하던 도중 웬 말갈족 놈들이 나타나 우리가 사냥한 짐승들을 모두 빼앗고 공격을 하지 않소? 그래서 우리는 그곳을 탈출 해야만 했고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오! 나머지 동료들은 다 죽고… 우리 둘만 남았소이다. 흐흐흑…….”
“저런… 조금만 기다리시오. 우리 영채를 지키는 두목께 말씀드려 보고 받아들이든지 말든지 하겠소이다.”
“빠… 빨리 좀 알아봐 주시오. 내가 너무 불안해서 말이오.”
“알겠소. 잠시만 기다리시오.”
그렇게 영채 문 앞을 지키는 군사 한 명이 잠시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군사가 영채 쪽으로 나오더니 말한다.
“우리 두목께서 자네 둘을 보기를 원하시네. 나를 따라오게.”
“오! 감사합니다!”
그렇게 동현의 뛰어난 연기 덕분인지 동현과 허손은 영채를 지키는 군사에 의해 영채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한 군사를 따라 얼마나 갔을까.
“여기가 우리 두목이 있는 막사이니 들어가 보게.”
“가… 감사합니다.”
동현과 허손은 막사 앞에 데려다 준 군사에게 감사해 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정리되지 않은 듯한 수염을 한 남자가 앉아 있었고 동현은 그 사람을 보자마자 바로 무릎을 꿇으며 말한다.
“소인들이 장군을 뵙습니다.”
“허어… 장군이라?”
“예. 이런 큰 영채를 이끄시는 분이시니 장군이라 함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네 말이 듣기 싫지는 않구나. 그나저나… 말갈이 너희가 사냥하는 도중에 공격했다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와 함께 사냥을 나왔던 군사들이 대부분 죽었고 저와 여기 이 녀석 둘만 살아남았습니다. 흐흐흑…….”
동현이 다시 눈물을 흘리자 두목으로 보이는 자가 안타까워한다.
“그랬군. 쯧쯧… 어찌 그런 참담한 일이… 헌데 이상한 일이군. 백암성 주변에 말갈 놈들은 모두 소탕된 것으로 아는데 말갈 놈들이라니?”
“말갈 부족들이 우리가 늘상 아는 흑수말갈이나 불열말갈 뿐이겠습니까? 말갈 놈들도 여러 부족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마… 그놈들에게 습격을 받은 것 같습니다.”
“으음… 뜻하지 않게 그들의 기습을 받은 것이로구만.”
“그렇습니다. 장군.”
“허허허. 나를 계속해서 장군으로 불러 주니 고맙군. 하지만 여기 있을 때 내게는 두령이라고 불러주게. 나는 한낱 산적이니 말이야.”
동현은 자신을 두령으로 불러 달라는 말에 순간 눈이 반짝이며 묻는다.
“알겠습니다. 두령님. 헌데… 존함이 어찌 되십니까? 제가 훗날 저 백암성으로 돌아가게 되면 반드시 위에 고하여서 은혜를 갚겠습니다.”
“우리는 산적일세. 고하면 우리는 토벌 당해. 그러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우리를 도와주는 것일세.”
“아… 미처 그 생각을 못했군요. 죄송합니다. 그럼 존함만이라도 알려 주십시오. 제가 언젠가 꼭 은혜를 갚겠습니다.”
“하하하! 자네 같은 군사가 내 이름은 알아서 뭐하려고?”
“저는 백암성의 용양장군을 직속으로 모시는 군사입니다. 도움이 될 일이 있지 않겠습니까?”
동현의 말에 두령은 깜짝 놀란다.
“뭐라? 그것이 참인가?”
“그렇습니다. 헌데… 왜 그리 놀라십니까?”
“자네가 용양장군을 직속으로 모시는 군사라고 해서 놀란 것일세.”
“아… 그렇군요. 그 분은 정말 대단하신 분이지요. 짧은 기간 안에 백암성의 모든 것을 안정시켜놓았으니 말입니다.”
“그… 그래. 그렇지.”
“저희 용양장군은 융통성이 있는 분으로 오늘 같은 일을 제가 고하면 그 죄를 면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존함을 꼭 좀 알려 주십시오.”
“내가 원체 관리들에게 당한게 많아서 말이야. 솔직히 그 말을 믿지 못하겠구만.”
“지금 용양장군의 행보를 보십시오. 모든 것은 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하고 있으며 수나라 군을 물리치고 임유관과 북평성을 차지하는데 일조했습니다. 그런 훌륭한 분인데 오늘 일에 대해 어찌 용서가 없으시겠습니까? 분명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정말 그럴까?”
“물론입니다. 저를 믿으십시오. 두령님.”
동현의 회유에 두령은 잠시 고민하고는 대답한다.
“으음… 나 혼자서 결정하지는 못 하겠군. 내 밑에 심복이 몇 있는데 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보고 결정을 하겠네.”
“알겠습니다. 두령님.”
“지금은 밤이 깊었으니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게. 막사를 마련해 줄 테니 말이야.”
“감사합니다. 두령님.”
그렇게 동현은 두령에게서 막사를 안내받아서 하루 동안 묵게 되었다.
동현은 막사 안에서 허손과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형님. 이곳 사람들이 산적이 아닌 것처럼 보이긴 하는데 두령의 말을 들어보면 그건 또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 나도 그래서 그 자를 떠 본 것이야. 그리고 이곳의 두령이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아 보이는군.”
“그렇습니다. 보통 산적이라 하면 이 영채의 사람들을 어떻게든 먹여 살리기 위해 무엇이든지 닥치는 대로 뺏는 것이 습성입니다. 헌데 여기 있는 사람들은 그것이 없습니다.”
“내 생각도 같네. 으음… 내일 날이 밝으면 두령과 좀 더 이야기를 나누어봐야겠어. 내일 모든 것이 결정될 테니 말이야.”
“저도 동감입니다. 그나저나 정말 놀랐습니다. 형님께서 직접 소속을 밝히시다니 말입니다.”
“두령의 태도가 제법 진중해 보이고 괜찮아 보여서 한번 속을 떠보았던 것이다. 자… 일단 오늘은 푹 자도록 하지. 자네도 얼른 배정된 막사로 가서 일찍 자게.”
“예. 형님. 안녕히 주무십시오.”
그렇게 동현과 허손은 산적들의 영채에서 하룻밤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