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9화 동현, 영양태왕에게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상주하다.
고경은 연태조의 말에 적잖은 영향을 받은 듯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진왕 전하께서 태자가 됐다는 말이오?”
“그렇소이다. 우리도 얼마 전 소식을 전달 받았소.”
“…….”
“내가 알기로 그대는 수 황제에게 태자가 첫째이고 부족한 점은 많으나 워낙 천성이 착한 사람이라 했소. 그래서 주변에서 보좌를 잘 하면 문제없을 것이라고 계속 말을 한 것으로 아는데?”
“…….”
“거기다 폐위된 태자에게는 모든 언행에 있어서 많은 조언을 해주었던 사람이고 말이야. 그리고 양광을 조심하라고 말까지 해줬다지?”
연태조의 말에 고경은 한숨을 쉬며 대답한다.
“하아… 그래서? 고작 그걸로 나보고 수나라를 배반하고 고구려로 들어오라?”
“선택은 그대의 자유요. 단… 이것만 알아 두시오. 수나라에 있는 그대의 가족은 아제 안전하지 못할 것이오.”
“그건 무슨 말이오?”
“내가 알기로 양광이 온갖 권모술수를 다 부려서 제 형 자리를 빼앗은 것으로 세작들에게 보고를 받았소. 그럼 이제 그 양광에게는 무엇이 남았겠소?”
“…….”
“그대도 알거라고 보오. 분명 나라를 운영하는 실권에 대해 조금이라도 가져오려고 작업을 할 것이오. 거기다 현재 수 황제 양견은 나이가 워낙 많으니 그 아들 양광에게 조금씩 실권을 주어 가며 국정을 운영하게 할 것이고.”
연태조는 고경의 반응을 보며 말을 이어 나갔다.
“그 아내인 독고가라 또한 양견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아들을 철썩 같이 믿고 있으니, 그 뜻을 더욱 더 밀어줄 것이 분명하오. 그렇게 되면 다음은 어떻게 되겠소? 앞으로 자신이 황제가 되기 전 자신에게 걸림돌이 되는 것은 모두 처리하고자 할 것이 아니오?”
연태조의 말에 고경은 애써 부정한다,
“진왕 전하가… 그렇게 까지 하지는 않을 것이오.”
“그대가 수나라에 있었던 만큼 양광의 성품을 잘 알 것이오. 그대는 예전부터 양광의 검은 속을 꿰뚫어 보고 있지 않소?”
“그걸… 어찌 알았소?”
“그대가 수 황제 양견의 충복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오. 그리고 그대와 같은 재상은 양소와는 서로 다른 계책을 세우기로 유명하지. 거기다 당신의 지금까지의 행보를 보면 진정한 충신의 길을 걷고 있지 않소?”
“…….”
“그리고 항상 조언을 하는 것마다 나라에 도움이 되는 말이었고 정도에서 벗어나지 않았소. 그렇게 경험이 많고 지략이 뛰어난 당신인데, 양광의 행동이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것을 눈치를 못 챘다는 것이 이상한 것 아니겠소?”
연태조의 말에 고경은 크게 한숨을 쉬며 대답한다.
“하아… 고구려에는 뛰어난 사람들이 많구려. 이토록 주변 정세에 밝고 거기다 내 속을 다 들여다 보는 것 같으니 말이오. 후우… 당신 말이 맞소. 나는 오래 전부터 진왕 전하의 속내를 오랜 경험을 통해 좋지 않은 느낌을 받았고 그 이후 진왕 전하의 행보를 보기 위해 그들 속으로 세작을 위장시켜 은밀히 정보를 캐내려고 했었소이다. 하지만 쉽게 되지는 않았지…….”
“아마 양광 쪽에서도 그대가 자신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일치감치 알았을 것이오. 그리고 황제가 되면…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것이라고 생각하겠지요.”
“…….”
“오늘 확답을 하기가 어렵소?”
“…솔직히 말하리다. 나는 오래 전부터 지금의 수 황제 폐하를 모셔왔던 사람이오. 많은 계책을 말씀드려서 혼란한 중원을 모두 통일했지요.”
“으음… 자신을 알아 준 황제를 배반하기가 어렵다고 말을 하는 것 같구려.”
“솔직히 그렇소이다. 지금의 수 황제 폐하께서는 나를 높게 끌어올려 주고 발탁해 준 사람이오. 그런 분을 배반한다는 것은 쉽지가 않구려.”
연태조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그대의 충심을 내가 어찌 모르겠소. 만약 나도 수나라의 볼모로 끌려갔다면 나 역시 그대처럼 행동했을 것이오.”
“이해해 주어서 고맙소…….”
“그럼 이건 어떻소.”
“……?”
“내가 우리 고구려에서 천문을 제대로 보는 자에게 물어 보니… 수 황제 양견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구려.”
고경은 그 말에 화들짝 놀라며 묻는다.
“그…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오?!”
“정말이오. 얼마 전 역관이 내게 와서 말을 해 주었소. 길어야 5~6년이고… 짧으면 5년 안에 그 명이 다한다고 하는구려.”
“…….”
“만약 수 황제 양견이 죽는다면… 그때는 우리 고구려로 임관할 수 있겠소? 그대를 발탁해 준 주인이 세상을 떴으니 말이오.”
“…….”
“많이 혼란스러운 모양이구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만 말하겠소. 그대의 답은 천천히 듣도록 하겠소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종종 오겠소. 나도 일하고 난 뒤에 말동무를 해 줄 사람이 필요했는데 말이오.”
연태조는 그렇게 고경에게 말을 하고는 고경이 있는 방을 나갔다.
연태조가 나가자 고경은 더욱 생각이 복잡했다.
‘이게 무슨 해괴한 말인가? 황제 폐하께서 수가 몇 년 남지 않았다니? 저 말을 믿어야 한다는 말인가…….’
고경은 연태조의 말에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연태조가 고경을 처음으로 만나던 날 이후 며칠 뒤.
동현은 장안성(평양성)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내들과 자식들.
그리고 몇몇 수하들과 약간의 군사들만 거느리고 이동하는 상황이었다.
“장군. 이제 안 이틀에서 사흘 정도면 도착할 듯합니다.”
“그래. 오늘은 여기서 숙영을 하도록 하자.”
“예. 장군. 모두 오늘 여기서 숙영한다! 준비하라!”
“예!”
동현은 수하들이 천막을 칠 동안 군사들을 살펴봤다.
그러고는 자신의 가족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데. 어디선가 전령으로 보이는 자가 나는 듯이 달려와 동현 앞에 군례를 올린다.
“장군! 보고 드립니다!”
“전령인가? 세작인가?”
“수나라 국경 일대를 살펴보던 세작입니다!”
“그래? 무슨 일이냐?”
“장군께서 말씀하신… 이간정이라는 자를 찾았습니다!”
“그래? 그 자는 지금 어디 있다더냐?”
“예. 요동성으로 향하고 있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요동성이라… 그렇다면 나를 찾는 것일 수도 있겠군. 그곳에서 거란족과 거래를 했으니 말이야. 으음… 잠시만 기다리거라. 강이식 대장군께 서찰을 보내야겠다. 그때까지만 잠시 휴식하면서 기다리고 있거라.”
“예! 장군!”
동현은 세작에게 그렇게 명령을 내린 후 수하에게 말하여 지필묵을 가져오게 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동현은 바르게 강이식 대장군에게 보낼 서찰을 썼다.
먹물이 마르자마자 그것을 고이 접어서 세작에게 전해 주며 말한다.
“이것을 강이식 대장군께 전하거라. 지금 바로 가거라.”
“예!! 장군!”
동현은 서찰을 세작에게 주자 세작은 그 서찰을 받자마자 말을 타고 요동성으로 떠났다.
그 모습을 옆에 있던 사훈이 보고 묻는다.
“무슨 서찰을 써서 보내신 것인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별 거 없네. 이간정이라는 자와 그 수하들이 있으면 받아들여 달라고 부탁을 하는 서찰일 뿐이야.”
“그들을 받아들인다라… 하긴 그들을 받아들이면 좋긴 할 겁니다. 후에 그 지역을 우리가 점령하거나 교류할 때 그들이 있으면 훨씬 수월하니까요.”
“그래. 그것을 생각해서 대장군께 부탁을 한 것이다.”
“대장군께서 받아들일까요? 그들을 그저 그런 오랑캐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너도 알겠지만 대장군은 오로지 이 고구려에 충성 밖에 모르시는 분이시다. 그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고구려를 위한 것이라면 무조건 받아들이실 것이야.”
“음…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이번에 태왕 폐하를 뵈면 과거 제도에 대한 정리와 한글에 대해 반포를 상주하실 생각이십니까?”
“맞다. 그와 더불어서 가도를 정비하는 것도 상주할 생각이다.”
“가도 정비까지 말입니까?”
“그래. 이건 무리해서라도 반드시 해야 한다. 고구려 내에서만이라도 해 놓아야 훗날 수나라가 또 다시 우리 고구려로 왔을 때 잘 막을 수 있어.”
“그럼 그에 대한 비용도 우리 상단에서 많이 대야겠군요.”
동현은 사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맞아. 대신 태왕 폐하께 아주 중요한 것을 하나 요구할 생각이네.”
“중요한 것이라면…….”
“신무기 개발.”
“……!”
“그것을 정식으로 우리가 만들도록 상주할 생각이야.”
“그게 되겠습니까? 우리가 무기 개발을 하다가 신무기를 만들면 그 군사력이 급격하게 커져서 중앙을 공격할까 생각할 텐데 말입니다. 특히 귀족들이 엄청나게 반대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무기 개발에 대해서는 막리지나 대모달께서도 동의할지 의문이고 말입니다.”
“사훈아.”
“예. 장군.”
“내가 백암성에서 이곳으로 오기 전… 깊숙한 계곡을 알아보라고 한 것 기억나느냐?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말이다.”
“물론입니다. 아… 혹시?!”
“그래. 그곳은 신무기를 개발한 무기들을 놓을 장소이면서 무기 개발까지 동시에 할 장소다. 사람들이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곳이지.”
“그럼 공개된 장소와 함께 그곳을 동시에 알아보라고 말씀하신 건…….”
“네 예상이 맞다. 공개된 장소는 우리가 대놓고 무기 개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중앙에 보여 주는 것이다. 관리를 보내어 감시를 해도 된다는 말까지 내가 꺼낼 것이야.”
동현의 말에 사훈은 턱을 쓰다듬으며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 후 묻는다.
“그렇다는 건… 실질적인 무기 개발은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하고 그곳에서 무기 개발이 성과를 보였을 때 공개된 장소에서 보여 주겠다는 것이로군요. 무기 개발에 성공했다고 말을 하면서 말입니다.”
“그래. 우리가 공개적으로 무기를 개발하는 것은 태왕 폐하의 신임을 얻는 동시에 그 힘을 우리가 가지지 않고 중앙에도 나누어 준다는 것을 보여 주는 의미이니, 우리의 충성심도 증명이 되는 셈이다. 그렇게 되면 귀족들도 우리에게 어쩌지 못할 것이다.”
“음… 제가 보기엔 한 가지가 더 있는 듯 보입니다.”
“……?”
“은밀한 곳에서 개발한 뒤… 우리에게 무기가 될 것은 숨겨두고 공개할 만한 것은 공개할 생각이시지 않습니까? 우리가 역으로 당할 때도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말입니다.”
“하하하! 역시 사훈 너는 내가 속일 수가 없구나. 맞다. 우리도 무기는 가지고 있어야지! 그래야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다. 만약 그들에게 우리의 충성심을 보여 줬는데 우리를 못 살게 군다면… 그땐 나도 가만 있지 않을 것이다.”
동현의 비장한 표정에 사훈은 말없이 웃기만 할 뿐이었다.
며칠 뒤, 동현은 드디어 장안성에 도착하여 영양태왕을 알현했다.
동현은 영양태왕을 알현하자마자 과거 제도와 한글 배포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과거 제도는 참으로 이상적이었네! 자네가 말한 대로 시행하기로 했어!”
“소신의 의견을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태왕 폐하.”
“무슨 소리? 자네가 그토록 연구를 열심히 하여 만든 것인데… 내가 시행하지 않을 수가 있겠나? 내가 오히려 그대의 노고에 고마우이.”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여기 이것이 제가 최종적으로 정비한 과거 제도에 대한 내용입니다.”
동현이 자신이 가지고 온 것을 내밀자 영양태왕은 그것을 펼쳐 읽어 본다.
“과연… 얼마 전 서찰로 내게 보낸 것보다 더 세세하게 정비가 되었구만?”
“그렇습니다. 태왕 폐하. 그것만으로도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껴서 좀 더 정비를 했사옵니다.”
“아주 좋네. 이대로 시행하면 될 것 같군. 이보게. 막리지.”
“예. 태왕 폐하.”
“이 내용들을 자네도 자세히 한번 보고 용양장군이 장안성을 떠나기 전에 과거 제도에 대해 둘이 이야기를 나누어 보도록 하게. 그렇게 해서 정비를 한 후 시행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예. 태왕 폐하. 그리하겠습니다.”
“좋아. 과거 제도는 이것으로 됐고… 또 따로 고할 것이 있다고?”
“예. 태왕 폐하. 여기… 이걸 보십시오.”
동현은 드디어 책으로 만든 한글을 영양태왕에게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