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4화 동현, 세 번째 혼인을 하고 백암성으로 돌아가려 하다.
동현은 허손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이놈아. 내가 언제 너랑 내 동생 간 혼인이 안 된다고 했느냐?”
“예?”
“해도 돼.”
“그… 그게 정말 이십니까?”
“당연하지. 남녀 간에 서로 사랑하는데 내가 막을 수 있겠느냐?”
“하… 하지만 장군의 가문은 이 고구려에서 워낙 유명하고 큰 가문인데 저는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
“허손. 너는 이제 수나라 사람이 아닌 고구려 사람이다. 아니냐?”
“마… 맞습니다. 장군.”
“그런데 왜 가문을 따지는 것이야? 그리고 네가 네 자신을 보잘 것 없다 말했는데, 내가 보기엔 그렇지 않아. 넌 실력이 있어. 특히 무예에 있어서 말이지.”
“장군…….”
“그리고 이제부터라도 네 가문을 크게 만들어 가면 되는 것이 아니냐? 너도 보아서 알겠지만 나는 사람을 쓰는데 있어서 신분을 가리지 않는다. 설령 개, 돼지를 잡는 백정이라도 능력이 있으면 등용하려 하지. 그러니 너도 남의 시선을 두려워말고 네 갈 길만 가면 된다. 알겠느냐?”
동현의 말에 허손이 매우 감동한 듯한 표정을 짓더니 동현에게 넙죽 절을 하며 말한다.
“앞으로… 더더욱 충성을 다하여 모시겠습니다.”
“자, 자… 내 매제가 될 사람인데 이러면 되나? 아니군. 나보다 나이가 있으니 매부라고 부르는 것이 맞을까?”
“어차피 저는 장군을 주인으로 모신 몸입니다. 절대 떠나지 않을 텐데 매제면 어떻고 매부면 어떻겠습니까? 편하게 불러 주십시오.”
“하하하하! 그래. 내가 이번 일을 잘 해결하고 나면 내 동생과 좋은 길일을 택해서 혼례를 치러 주도록 하마.”
“가… 감사합니다. 장군.”
동현은 그렇게 허손에게 자신감을 심어 주면서 자신의 가족으로 만들려고 했다.
며칠 뒤… 동현의 아내인 정희와 화연은 서찰을 받고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태왕 폐하께서 직접 황명으로 내리셨다니…….”
“저희가 거부를 하고 싶어도 못하겠습니다. 혼인 할 여자를 직접 보고 결론을 내리고 싶은데 그리하지 못하니…….”
“그러게 말일세. 태왕 폐하의 황명이니 거절도 하지 못할 것이고…….”
“그나저나 괜찮겠습니까? 수나라 공주면 오만하고 방자하게 굴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제대로 가르쳐야겠지. 우리 고구려의 법도를 말이야. 화연이 자네가 책임지고 가르쳐 보게.”
“알겠습니다. 형님. 그럼 이 서찰에 대한 답으로는…….”
“별 수 있겠는가? 허락을 할 수 밖에 없지…….”
“알겠습니다… 제가 그럼 답신을 써서 보내겠습니다.”
“그리하게.”
화연은 그렇게 정희의 허락을 맡아 답신을 써서 동현에게 보냈다.
며칠 뒤 그 답신을 받아 본 동현은 연태조와 을지문덕에게 소식을 전했고 둘은 매우 기뻐하며 영양태왕에게 바로 이를 전했다.
“그래? 그럼 망설일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하루라도 빨리 좋은 길일을 잡아서 혼례를 올리도록 해야지!”
“예. 안 그래도 소신이 사람을 불러 좋은 날에 혼인을 올릴 수 있도록 정했습니다.”
“오! 그래? 잘 되었구나! 언제인가?”
“예. 열흘 뒤입니다. 그 때가 가장 좋다고 해서 그 날로 정했습니다.”
“열흘이라… 알았다. 내가 직접 그 혼례를 살피도록 하지. 내 권유에 의해 혼인을 하는 것이니 말이야.”
“알겠습니다. 태왕 폐하. 용양장군에게 미리 말해 놓겠습니다.”
“그리고 용양장군의 가족이나 그 밑에 있는 가솔들도 전부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게. 열흘이면 이곳까지 올 수 있지 않겠는가? 빠르게 길을 재촉하면 말이야.”
“물론입니다. 안 그래도 좀 전에 미리 서찰을 보내 두었습니다. 특히 용양장군의 두 부인이 요동성과 백암성을 상단의 일 때문에 자주 왔다갔다 거린다고 해서 혹시 몰라 두 곳에 다 사람을 보냈습니다.”
“잘했네. 그럼 나도 준비를 해야겠군. 내관은 내가 가장 아끼는 신하가 혼인을 올리는 것이니 각별하게 신경 써서 챙겨 주게.”
“예. 태왕 폐하!”
그렇게 동현의 세 번째 혼인은 크게 환영을 받으며 진행되려 했다.
그때 궁 안에 마련된 거처에서 소식을 들은 수나라의 난릉공주는 궁금해 했다.
“그 자가 대체 어떤 자냐?”
“예. 소인이 알아본 바로는…….”
난릉공주를 곁에서 호위를 하는 무사로 보이는 자가 자신이 아는 바를 소상히 고한다.
“신동이라… 그렇다는 건 범상치 않은 인물임은 분명하다는 것이군.”
“그렇습니다. 하지만… 좀 전에도 말했듯이 공주님이 세 번째 부인이라는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그 집안에 들어가면 분명 위에 사람들이 공주님을…….”
“네가 무슨 걱정을 하는지 안다. 하지만 어쩌겠느냐? 이미 이 땅에 온 것을…….”
“공주님…….”
“그리고 만약 그렇게 핍박을 받게 되면 어마마마께 말했던 것처럼 결정을 내릴 것이다. 그러니 너도 그리 알고 준비를 하도록 해.”
“예. 공주님…….”
난릉공주는 동현의 존재에 대해 매우 궁금해 하면서도 자신을 핍박하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생각도 동시에 했다.
‘두고 봐라! 나에게 어떻게 대하는지… 그리고 그 인물이 얼마나 큰 인물인지에 따라 결정을 내릴 것이야! 나를 공격하는 사람들은… 가만 두지 않을 것이다!’
난릉공주는 그렇게 자신이 생각한 바를 굳게 마음을 먹었다.
열흘 뒤, 드디어 장안성(평양성) 안에 있는 동현의 집에서 혼례가 진행 되었다.
엄청난 인파가 모인 집.
거기다 영양태왕이 직접 혼례를 주관하니 동현은 더욱 큰 축하 속에 난릉공주와 혼인을 하게 되었다.
정희와 화연은 그 모습을 씁쓸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혼인을 하기 전날 장안성의 집에 도착하여 동현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에게 괜찮다며 애써 말했지만, 혼례를 또 하는 것을 보니 착잡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 감정을 겉으로는 드러내서는 안 되는 일.
그리고 이 또한 지나가면 나중에는 덤덤하게 받아들이게 되리라.
특히 정희는 이번이 두 번째 일이기에 그 감정을 더욱 빨리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동현의 세 번째 혼인은 많은 사람들의 환호와 두 부인의 착잡한 심정 속에 진행이 되었고 무사히 끝났다.
비로소 혼례를 올리고 신방 안에 들어가고 나서야 서로의 얼굴을 제대로 보게 된 두 사람.
동현과 난릉공주는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인사를 나누었다.
“본래 이 혼인은 예정에 없던 일이었고 태왕 폐하의 황명에 의해 하게 되었으나 공주가 내 부인이 된 이상 앞으로 존중하며 사랑으로 대해 주리다.”
동현이 부드러운 말투로 이야기하자 난릉공주의 경계심은 눈 녹듯이 사라졌다.
“소녀를 그렇게 봐주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서방님을… 앞으로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고맙소. 부인…….”
그렇게 동현은 난릉공주와 하룻밤을 신방에서 무사히 보냈다.
그리고 다음 날, 난릉공주는 자신의 위에 사람인 정희와 화연에게 절을 하며 인사를 올렸다.
“이번에 서방님의 셋째 부인이 된 양아오입니다. 수나라의 공주인 신분이나 이제 이 고구려에 와 서방님과 혼인한 이상 공주가 아니니 두 분께서는 스스럼없이 저를 대해 주십시오.”
난릉공주는 그렇게 말을 하며 정희와 화연에게 절을 했다.
두 사람은 난릉공주의 그런 모습을 보고 안심했다.
공주라 하여 거만하고 오만했다면 제대로 가르칠 생각이었는데, 예의가 있는 모습으로 보아 참으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 말해 주니 고맙네. 앞으로 우리 서방님을 잘 모시고 같이 살아가 보세.”
“예. 큰 형님.”
“나도 잘 부탁하네.”
그렇게 세 명의 부인은 잠시 동안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그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보던 동현도 얼마 후 그 속에 섞여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럼 수나라에 있는 상단이…….”
“그렇다네. 그 상단이 모두 서방님의 것이라네.”
“놀랍습니다. 그것이 서방님의 것이라니…….”
“그 상단을 오로지 서방님의 힘으로 그만큼 키웠네. 서방님께서는 워낙 겸손하셔서 주변 사람들이 많이 도와줬다고 하지만 나는 그리 생각하지 않아. 어디까지나 결정은 서방님께서 내리시는 것이니 말이야.”
“옳은 말씀이십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허허허… 부인들이 내 얼굴에 금칠을 해주는구려.”
동현은 부인들의 말에 민망해 하는데 그 때 정희가 옆에서 동현에게 말한다.
“서방님. 그럼 여기 셋째 부인에게 저희 가문의 모든 것을 알려 줘도 괜찮겠습니까?”
“물론이오. 부인. 이제 부인도 우리 가문의 사람이 된 만큼 다 알려 줘도 되오.”
“알겠습니다. 서방님. 그럼 우리 가문의 모든 것을 다 알려 주도록 하겠습니다.”
“그리하시오. 부탁하오.”
그렇게 난릉공주는 정희와 화연에게 며칠 동안 동현의 가문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해 듣게 되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동현과도 시간을 보내니 참으로 꿈만 같은 신혼 생활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으음… 이제 백암성으로 돌아가야겠군. 내 입궐하여 태왕 폐하께 고하고 올테니 부인들은 백암성으로 돌아갈 준비를 갖추어 주도록 하시오.”
“알겠습니다. 서방님.”
동현은 그렇게 부인들에게 말을 전하고는 입궐하여 영양태왕을 알현했다.
“그래? 백암성으로 돌아간다고?”
“예. 태왕 폐하. 너무 오랫동안 성을 비워 두어서 말입니다.”
“하긴… 그건 그렇군. 하지만 내가 너무 미안해. 이번 고수 전쟁에서 자네가 제일 큰 공을 세웠는데 변변치 않은 보상을 해서 말이지.”
“어찌 보상을 바라고 전쟁에 나서겠습니까? 오직 나라를 위해 싸울 뿐입니다.”
“하하하! 내가 이래서 자네를 좋아한다니깐! 으음… 모두가 자네 같으면 좋으련만…….”
“황공하옵니다. 태왕 폐하.”
“아무래도 자네에게 보답을 하고 싶은데 마땅히 보답할 것이 없어서 마땅치가 않아. 혹시 내게 부탁할 것이 있는가? 내가 반드시 들어주겠네.”
동현은 영양태왕의 말에 무언가 떠오른 듯 빠르게 생각을 정리하고는 말한다.
“소신… 부탁이라기보다 한 가지 건의할 것이 있습니다.”
“오! 그래! 말해 보게! 자네가 어떤 말을 할지 궁금하구만!”
“제가 지금 하는 말을 그대로 실행에 옮기시면… 태왕 폐하의 황권은 더욱 강화될 것이고 귀족들의 힘은 약화될 것입니다.”
“응? 그것이 무엇인가?”
“과거 제도를 실시하는 것입니다.”
“과거 제도?”
“예. 태왕 폐하. 현재 수나라의 황제 양견은 선거제라는 것을 실시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추천된 관리들에게 시험을 보게 하여 그 시험에 합격한 자들을 관리로 등용시키는 것이온데, 거기서 통과가 되지 못하면 관리가 되지 못한다고 합니다. 꽤 수준도 있어서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으면 등용되지 못한다 합니다.”
“허어… 본래 우리도 그렇고 수나라도 그렇고… 추천해서 벼슬에 들어가는 경우이지 않았는가? 우리 고구려 같은 경우에는 무과를 제외하고 문과는 그래왔고 말이야.”
“그렇습니다. 현재 제가 보았을 때 우리 고구려의 무과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 오로지 실력으로 실력들을 평가하여 장군이 될 사람들을 뽑으니, 그 사람들은 온전히 태왕 폐하의 힘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관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동현의 말에 영양태왕은 동감한다는 듯 격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자네 말이 맞아. 욕살들도 그렇고 여러 귀족들은 대부분이 문관들이지. 반면 나를 추종하는 세력 대부분은 무관들이다. 문관들은 별로 없어.”
“그렇습니다. 그러니 이제 그 문관들도 태왕 폐하께서 틀어 쥐셔야 합니다. 그러자면 이 과거 제도가 답입니다.”
“음… 대충 자네가 말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겠네. 문관들도 무관들처럼 시험을 봐서 실력으로 뽑자는 것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태왕 폐하.”
“하지만 그러려면 그 제도들이 시행되기 전에 어떤 식으로 시험을 볼 것인지 미리 준비를 해두었어야 하네. 하지만 우리는 현재 그 준비가 하나도 안 되어 있어.”
동현은 영양태왕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소신이 그 계획을 미리 다 짜놓았습니다.”
“뭐라? 그것이 정말인가?”
“그렇사옵니다. 태왕 폐하. 현재 마무리 단계에 있사오니 최종적으로 마무리가 되면 태왕 폐하께 서찰을 보내겠사옵니다. 그러면 그것을 막리지, 대모달과 의논해 보시고 바로 시험을 시행하십시오.”
동현의 말에 영양태왕은 동현의 손을 덥석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