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3화 영양태왕, 난릉공주를 동현에게 시집보내려 하다.
난릉공주는 고구려의 수도 장안성(평양성)에 도착하자마자 영양태왕을 알현했다.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예를 올렸다.
“으음… 네가 수나라의 공주인가?”
“그렇사옵니다. 폐하. 처음 뵙겠습니다. 절 받으시옵소서.”
“그래…….”
영양태왕은 난릉공주에게 절로서 인사를 받고는 묻는다.
“이름이 양아오라고 하던데? 맞나?”
“그렇사옵니다. 폐하.”
“우리 고구려에 온 것을 환영한다. 이곳에 강제적으로 혼인을 위해 끌려왔다고는 하나 사는 곳만 달라졌을 뿐이다. 그러니 이곳 고구려 사람들을 너무 두려워말고 법도를 지키면서 생활을 하면 별 탈이 없을 것이야.”
“예. 폐하. 명을 받들겠습니다.”
“일단 거처를 마련해 줄 터이니 그곳에 머물도록 해라. 네 혼처가 정해질 때까지 그곳에서 지내도록 하거라.”
“예. 폐하.”
난릉공주는 예를 정중하게 갖추어 인사를 하고는 대전을 나갔다.
그녀가 대전을 나가자 옆에 서 있던 막리지 연태조가 말한다.
“수 황제 양견이 제대로 된 딸을 보냈군요.”
“자신의 나라 위신이 있으니 그렇겠지. 이제 저 수나라의 공주가 왔으니 누군가와 짝지어 주어야 할 텐데… 누가 좋겠소?”
영양태왕의 묻자 이번에는 다른 쪽에 서 있던 을지문덕이 기다렸다는 듯 대답한다.
“강이식 대장군의 아들 우식이 어떻겠습니까?”
“우식이를?”
“예. 현재 신성에서 처려근지의 부장으로 있으면서 맡은 바 임무를 잘 해내고 있다고 합니다. 벼슬을 올려 줘도 무방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저 공주와 혼인을 시킨다면 강이식 대장군은 물론 우식이도 태왕 폐하의 은혜에 감격할 것이고 더더욱 충성을 다할 것입니다.”
“으음… 좋아. 하지만 그 전에 강이식 대장군에게 의중을 물어봐야지. 지필묵을 가져오게.”
“예. 태왕 폐하.”
영양태왕의 명령에 내관이 빠르게 지필묵을 가져온다.
그러고는 빠르게 먹을 갈아 바로 글을 쓸 수 있도록 준비를 하고는 붓을 영양태왕에게 내민다.
“여기 있습니다.”
“그래.”
영양태왕은 붓을 받자마자 강이식 대장군에게 보낼 글을 빠르게 써 내려갔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이 서찰을 강이식 대장군께 전하게. 바로 전령을 보내도록 해.”
“예. 태왕 폐하.”
“조금만 빨리 왔으면 좋았을 것을… 그럼 내가 직접 보고 말을 전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어쩔 수 없지 않겠습니까? 요동성을 오래 비워 둘 수는 없는 일이니 말입니다.”
“그건 그렇지. 그런데 말이야.”
“……?”
“만약… 강이식 대장군은 물론이고 우식이가 저 수나라의 공주를 맞아들이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어찌할 것인가?”
“그럴 리가 있겠사옵니까? 태왕 폐하의 황명인데 말입니다.”
“나는 강이식 대장군을 누구보다도 잘 아네. 막리지. 그는 개방적인 것 같지만 보수적인 면도 많은 사람이야. 그는 분명 자기 자식의 첫 혼인 상대가 수나라 사람이 아닌 고구려 사람이 되기를 원할 걸세.”
“음…….”
“그리고 그건 자네도 마찬가지 아니겠나? 자네 자식의 첫 며느리를 수나라 여자로 맞이하려고 한다면 자네는 받아들일 것인가?”
“처음엔 반대할 것이나…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만약 자식이 원한다면 혼인을 시켜야하지 않겠습니까?”
연태조의 말에 영양태왕은 피식 웃으며 대답한다.
“그것 보게. 자네도 처음에는 반대할 것이라고 말하지 않나? 자네만 봐도 알 수 있는데… 강이식 대장군은 분명 반대를 할 것이야.”
“그럼 대체 누구랑…….”
“자네 아들이 몇 살이었지??”
“이제 겨우 4살입니다.”
“으음… 어찌한다? 일단 이 문제에 대해서는 강이식 대장군의 답이 오면 그 때 다시 생각을 해보도록 하지.”
“예. 태왕 폐하.”
그렇게 영양태왕과 연태조, 을지문덕은 자리를 파했다.
그리고 며칠 뒤.
“역시 강이식 대장군은 반대하는구만.”
“그렇사옵니까?”
“그렇네. 서찰을 보게.”
영양태왕이 내민 서찰을 연태조와 을지문덕이 번갈아 가며 읽어 보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 모습을 본 영양태왕이 묻는다.
“강이식 대장군이 아들의 혼인에 대해 반대를 한다면 떠오르는 사람이 딱히 없군. 이를 어쩐다? 저대로 수나라의 공주를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인데…….”
영양태왕의 말에 을지문덕이 앞으로 나서며 말한다.
“태왕 폐하. 용양장군에게 시집을 보내면 어떻겠습니까?”
“뭐라? 용양장군에게? 하지만 그 아이는 벌써 부인이 둘이나 있다. 그런데 또 가려고 할까?”
“용양장군을 보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됩니다. 특히 용양장군의 경우에는 첫째 부인이 고구려 사람이고 둘째 부인이 왜국 사람이니 수나라 사람도 자신의 부인으로 받아들이는데 별 거부감이 없을 것이옵니다. 그만한 적임자는 없사옵니다.”
을지문덕의 말에 연태조가 걱정스러운 듯 대답한다.
“하지만 대모달. 용양장군은 이미 나라에 큰 공을 세웠고 지금까지 받은 것이 너무나도 많소. 그 공에 따라서 말이오. 그런데 우리가 그것을 더 얹어서 준다는 것은 너무 많은 것을 주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주변에서 그를 시기하는 자가 늘어날 것이고 태왕 폐하께서 그 자만 총애한다는 말이 나올 것이오. 그리고 결정적으로…….”
“……?”
“용양장군이 태왕 폐하의 보살핌 아래 세력이 너무나도 커질 수 있으니 경계해야 하오.”
“으음…….”
“나도 용양장군이 충성스러운 자인 것을 알고 있으나 만일 이라는 것이 있지 않소. 그러니 그 조치는 옳지 못한 것 같소.”
영양태왕은 을지문덕과 연태조의 말을 듣고는 탁상을 손으로 두들기며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둘 다 아주 일리 있는 말이오. 으음… 좋아. 지금 바로 결정을 내리겠소.”
영양태왕은 완전히 결정을 내린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갑자기 옆에 있던 칼을 잡는다.
그러고는 다시 자리에 앉아 칼을 꺼내더니 날을 살피는데, 그 모습을 본 연태조와 을지문덕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기다려 준다.
그런 둘을 아랑곳 하지 않고 칼날을 살피던 영양태왕. 칼을 다시 칼집에 집어넣고는 옆에 내려놓으며 말한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황권은 아무도 넘보지 못하오. 만약 용양장군이가 딴 마음을 품는 것 같다면 쳐내면 되지.”
“그 말씀은…….”
“용양장군에게 시집을 보내는 것이 좋을 것 같네. 힘을 실어줄 때 확실하게 실어 주고 키워 줘서 내 칼이 되게 만들 것이야! 그는 막리지와 대모달, 대장군보다도 나이도 훨씬 어리고 총명한 만큼 사리 판단도 분명하지. 내가 있는 한… 용양장군은 결코 딴 마음을 품지 않을 걸세. 아니… 딴 마음을 품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하네. 왜 그런지 아는가?”
“……?”
“그와 내가 원하는 것이 같기 때문이네. 자네들도 마찬가지이고…….”
“원하는 것이라면…….”
“북벌하여 영토를 넓히고 고구려를 부강하게 만든다. 아닌가?”
“아…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용양장군을 확실하게 키워 주면 내가 죽고 난 뒤에도 내 밑에 있던 사람들이 쉽게 다치는 일은 없을 것이야. 그러니 막리지와 대모달 두 사람도 용양장군을 적극적으로 밀어 주도록 해.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나?”
“예. 태왕 폐하!”
“동현이가 아직 백암성으로 떠나지 않았으니 바로 사람을 보내 소식을 알리면 되겠군.”
확신에 찬 말에 연태조와 을지문덕은 자신들이 직접 소식을 전하겠다고 말했고 영양태왕은 허락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영양태왕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장안성에 동현이 있는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
“예? 수나라 공주와 제가 혼인을요?”
“그렇다네.”
“전 이미 부인이 둘이나 있습니다.”
“나도 아네. 하지만 자네의 첫째 부인은 고구려 사람이며 둘째 부인은 왜의 사람이 아닌가? 그러니 셋째 부인은 수나라의 사람으로 받아도 무방할 것이네.”
“말도 안 됩니다. 막리지 어른.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공주가 동의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 공주는 어차피 우리 고구려에 볼모처럼 끌려온 사람이나 다름없어. 명령을 하면 따를 수밖에 없는 입장이지.”
“…….”
“이건 태왕 폐하의 황명이야.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네.”
“허어… 어떻게 이런… 제가 태왕 폐하께…….”
“태왕 폐하께서 말씀하시기를 공주와 혼인할 사람은 용양장군 밖에 없다고 했네. 다른 사람이랑 혼인시킬 바에야 베어 버리겠다고 까지 말씀하셨지.”
“……!”
“꼭 해야만 하네.”
동현은 연태조의 말에 한숨을 쉬며 대답한다.
“하아… 막리지 어른.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그저 태왕 폐하의 대업에 동참해 북벌을 하고 이 고구려를 부강하게 만들 생각뿐입니다. 헌데… 제게 수나라 공주와 혼인을 시키려는 의도는 무엇입니까? 이렇게 하면 제 입지만 더 강해질 뿐 태왕 폐하께 이로울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저를 시기하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고 말입니다.”
“나도 아네. 그 말씀에 대해서도 답이 있었다네.”
“……?”
“태왕 폐하께서는 붕어하셨을 때를 생각하시고 계셨네. 그리고 우리도 자네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만큼 그 뒷일을 자네에게 맡기려 하고 계신 것이야.”
“소인을 그렇게까지…….”
“태왕 폐하가 붕어하시게 되면 태왕 폐하 곁에 있는 세력은 약해지는 것은 자명한 일. 그것을 급속도로 약화되지 않도록 자네가 막음과 동시에 유지시키는 일을 자네에게 맡기겠다고 하셨네. 그리고 살아계실 때에는… 본인의 칼이 되어주시기를 바라셨네.”
“……!”
“어떤가? 이렇게 태왕 폐하께서 자네에게 말씀하시는데… 그 뜻을 저버릴 셈인가?”
연태조의 말에 동현은 잠시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한다.
그리고 잠시 후.
“알겠습니다. 하지만 두 부인들에게 동의를 구해야겠습니다.”
“자네 정말 애처가라더니… 그 말이 모두 사실이었군. 알았네. 두 부인들이 동의를 하면 자네도 태왕 폐하의 뜻을 받드는 것이네. 알겠는가?”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서찰을 써서 보내겠습니다.”
그렇게 연태조와 을지문덕은 동현에게 확답을 받고나서야 집을 나섰다.
동현은 두 사람이 나가자 한숨을 푹푹 쉰다.
그 모습에 곁에 있던 허손이 말한다.
“장군. 부인을 하나 더 얻으면 좋으신 것인데, 왜 그리 한숨을 쉬신 것입니까?”
“응? 들었느냐?”
“물론입니다. 장군. 제가 장군을 호위하는 사람인데 떠날 수 있겠습니까? 장군께서 특별히 명하시지 않으면 항상 문 앞을 지키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장군은 정말 희한하십니다. 보통 여자가 들어오게 되면 오히려 좋아하는데 장군께서는 오히려 그 반대이니 말입니다.”
“허손아.”
“예. 장군.”
“부인이 계속해서 늘어난다고 생각을 해 보거라. 그렇다면 똑같이 신경을 써주어야 하는데 정황상 그러지 못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리 되면 부인들 사이에서 좋지 못한 감정을 품고 투기를 하는 경우가 생기지.”
“그것을 우려하시고 계시는 것입니까?”
“그래. 그 투기로 인해 많은 집이 휘청이는 것을 많이 봤다. 특히 그 사이에서 많은 아들들이 태어난다고 생각해 보거라. 그럼 그 자식을 가문을 잇게 하기 위해서 투기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
“그건 그렇습니다만 이제 겨우 3명입니다. 장군. 3명은 괜찮지 않습니까?”
동현은 그 말에 고개를 저으며 대답한다.
“내가 둘째 부인을 맞이했을 때도 그런 말이 나왔었다. 그때 첫째 부인에게 너무나도 미안했지. 또 다른 혼인이 두 사람에게는 마음의 상처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장군께서는 정말 사려가 깊으십니다. 하지만 장군.”
“……?”
“지금 이 고구려는 백제와 신라, 그리고 크게는 수나라와 전쟁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대입니다. 이럴 때는 혼인이 자신의 기반을 단단하게 해주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가지게 해주죠. 너무 나쁘게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장군.”
허손의 말에 동현은 피식 웃으며 대답한다.
“그래. 네 말에도 충분이 일리가 있구나. 그나저나… 허손 너도 나이가 적지 않다. 나보다 나이도 많지 않으냐? 헌데 아직도 혼인을 안 하고 있어? 얼른 해야지.”
“아… 저는 아직 그럴만한 배필이…….”
“배필이 없기는… 내 다 안다. 내 여동생을 연모하지 않느냐?!”
“그… 그걸 어떻게…….”
“어떻게 알긴. 몇 년 전 우리 집에 들렀을 때 네가 유난히 신경을 쓰는 모습을 보았다. 내 동생에게서 말이야. 그리고 지금도 서로 연통을 하며 지내지 않느냐?”
“그것까지 알고 계셨습니까?”
“당연하지. 내 동생과 관련된 일인데 말이야.”
“송구합니다. 장군… 동생 분과 혼인은 안 된다고 하시면… 마음을 주지 않겠습니다.”
동현은 그런 허손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