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화 수 황제 양견, 고구려의 조약 내용을 받아들이다.
사훈이 영양태왕의 재가를 받았을 때, 수나라에서는 수 황제 양견과 독고황후가 배구가 진행하는 협상의 내용을 듣고는 매우 분노했다.
“이… 이것이 고구려에서 요구하는 내용이라고?”
“어찌 이렇게 불공평한……!”
“후우… 이래서 전쟁에서 이겼어야 하는데… 그리고 자식들을 보내는 것이 아니었어…….”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폐하.”
“일단 자식을 한 명이라도 살려야 하지 않겠소?”
“하지만 폐하. 이것을 모두 들어주게 되면 저희 딸도 고구려로 보내야 합니다. 또 다른 자식을 보내는 것이란 말입니다!”
“하아… 나도 어찌 그걸 모르겠소? 하지만 이 나라가 더 중요한 것 아니겠소? 황후. 현재의 태자는 황후도 알다시피 내 뒤를 이을 자가 못 되오. 황후께서 먼저 그리 말하지 않았소?”
“하지만… 이건 너무한 처사이지 않사옵니까?”
“본래 전쟁에서 진 나라는 그에 따른 큰 책임을 지는 법이라오. 이번에 우리가 크게 졌으니 고구려가 이렇게 나오는 것도 당연하겠지…….”
“그럼… 이 내용들을 전부 따를 생각이십니까?”
“어쩔 수가 없지 않소? 따라야지.”
“…….”
“하지만 내 반드시!! 저 고구려에 복수를 할 것이오! 두고 보시오! 그러니 그 때까지만 황후가 참아 주시구려.”
양견의 말에 독고황후가 가슴을 치며 눈물을 흘린다.
“이를 어찌 할꼬… 이를 어찌해… 내 피붙이가 적국에 끌려가는구나. 흐흐흑…….”
“황후… 미안하오… 아… 그나저나 황후.”
“훌쩍… 말씀하시지요.”
“이들의 요구를 들어주려면 세 번째 내용도 따라야 하는데 우리 딸 중 누구를 고구려로 시집을 보내는 것이 좋겠소?”
“다섯 째 딸인… 난릉공주를 보내는 것이 좋을 겁니다.”
“난릉공주를? 하지만 난릉공주는 유술과 혼인을 하기로 이미 약속을 하지 않았소?”
“어쩌겠사옵니까? 지금 시국이 시국인 것을요… 유술에게 양해를 구하고 공주를 보내는 것이 맞을 겁니다…….”
“으음… 다른 공주들은 안 되는 것이오?”
“저도 그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오나 제가 보았을 때 딸들 중 난릉공주만이 유일하게 자신의 신분을 과시하지 않고 겸손하며 황실에서 지켜야 할 법도를 잘 압니다.”
독고황후는 잠시 고민을 하고는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다른 공주들은 모두 거만하고 오만하니, 만약 그런 공주들을 고구려로 시집을 보냈다가 그것을 또 트집 잡아서 쳐들어오면 어찌합니까? 폐하께서 말씀하셨듯이 저희는 고구려를 치기 위해 힘을 길러야 하니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난릉공주를 보내야 합니다.”
“으음… 헌데 난릉공주는 이미 왕봉효에게 시집을 갔다가 그가 일찍 죽어서 개가를 시키려고 하는 공주요. 그것을 고구려에서 받아들이겠소, 황후?”
양견의 말에 독고황후가 굳은 표정으로 대답한다.
“그 때는 저희도 할 말을 해야지요.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것을 다 했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 내용에 개가를 하는 공주를 보내지 말라는 말도 없지 않사옵니까?”
“그건 그렇다만…….”
“그리고 우리가 입을 다물고 있으면 저들은 그것을 알아내지 못할 것이옵니다. 그러니 너무 심려치 마시옵소서.”
“하아… 알겠소… 헌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분노가 치미는군. 고구려로 시집을 보내는 것도 화가 나는데 그쪽 황실의 사람도 아니고 신하랑 혼인을 시킨다?! 대체 우리를 뭘로 보고 그러는 것인가?!”
“저희 수나라를 아래로 보겠다는 뜻이 아니겠사옵니까? 참으로 오만하옵니다!”
“맞소. 황후! 내 반드시… 반드시 이번 일을 잊지 않고 되갚을 것이오!”
“반드시 그리 하셔야지요! 폐하! 그렇게 해서… 눈에 넣지 않아도 아프지 않을 량이도 꼭 데리고 돌아와야 합니다!”
“암! 그래야지..! 후우… 일단 이번만큼은 이 굴욕을 모두 참아 줘야겠소! 고구려의 이 요구들을 모두 들어주고 광이를 이곳에 데리고 오는 것으로 말이오.”
“예. 폐하… 그럼 저는 난릉공주에게 가서 말을 전하겠습니다.”
“알겠소. 황후… 부탁하오. 그리고 유술에게도 내 말을 전해 주시오. 내가 그를 직접 보고 말할 면목이 없구려. 내가 말한 것을 지키지 못하니 말이오.”
“알겠습니다. 폐하. 제가 맡기십시오. 그럼 이만 나가 보겠습니다.”
독고황후는 그렇게 양견이 있는 편전을 나갔다.
독고황후는 편전을 나온 뒤 사람을 시켜 난릉공주를 불러오게 했다.
“부르셨습니까? 어마마마.”
“그래…….”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안색이…….”
“그게…….”
“무슨 고민이라도 있으십니까? 소녀에게 속 시원히 털어 놓아 보십시오.”
독고황후는 난릉공주의 대답에 한쪽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그런 독고황후를 보며 난릉공주가 매우 놀란다.
“어, 어마마마! 어찌 눈물을?!”
“하아… 아니다. 다름이 아니라… 네게 어려운 일을 말해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무슨 일이시옵니까? 얼른 말씀해 보시옵소서!”
독고황후는 망설이다가 양견과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을 난릉공주에게 털어 놓았다.
난릉공주는 그 말을 듣고는 한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 모습을 본 독고황후는 안타까워한다.
“미안하구나. 내 딸아…….”
“…….”
“나라를 위한 일이지만 너무 가혹하구나…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고구려가 가만히 있지를 않을 것이니 어쩌겠느냐?”
“고구려가… 그토록 강한 나라입니까?”
“그렇다. 솔직히 우리 수나라가 너무 얕잡아 본 것은 있지만 강한 나라임은 틀림없어. 네 오라비인 광이와 동생인 량이가 30만 대군을 이끌고 정벌을 하러 갔음에도 대부분이 전멸했으니 말이다.”
“전멸이라 하셨습니까?”
“그래. 날씨의 영향이 있었다고는 하나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우리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 그래서 상황이 이렇게 돼버린 것이야. 네 오라비인 광이와 동생인 량이 포로로까지 잡혔으니 어쩔 도리가 있겠느냐?”
난릉공주는 독고황후의 말에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는 말한다.
“만약… 제가 고구려에 가서 저와 혼인할 사람이 괜찮은 사람이면 이 나라를 위해서 소녀는 기꺼이 아바마마와 어마마마의 뜻을 받아들이겠습니다. 하지만 저와 혼인할 자가 망나니와 같은 자라면… 그 자를 찌르고 저도 자결하겠습니다.”
“공주야! 그리해서는 아니 된다! 네가 우리 가슴에 대못을 박으려는 것이냐?!”
“제 뜻을 들어주시지 않는다면 저도 아바마마의 뜻을 따르지 않을 겁니다. 본래 저는 유술이라는 분과 혼인을 하기로 되어 있었으니 말입니다.”
“말하지 않았느냐? 이것은…….”
“저도 압니다. 그랬기에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갑자기 그 분과의 혼인을 파한다고 말해 보십시오. 저희 황실의 권위뿐만이 아니라 그 분의 체면도 말이 아니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거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억지로 끌려가는 모습이라도 보여야 우리 황실이나 그 분의 체면도 다 서지 않겠습니까?”
“…….”
“제 뜻을 주변에 알리면 황실과 그분의 체면도 설 것입니다. 억지로 고구려에 가게 되는 것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좀 전에 제가 말한 뜻은 변하지 않을 겁니다. 정말 저랑 혼인할 자가 망나니 같고 마땅치 못한 자라면 그자를 찌르고 저도 자결할 것입니다. 그러니 그렇게 아십시오.”
난릉공주가 단호하게 말을 하자 천하의 독고황후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평소 행실도 바르고 자신의 말을 잘 따라던 난릉공주.
그랬기에 양견 또한 난릉공주를 매우 어여삐 여겼다.
그런 그녀가 타국으로 그것도 적국에 시집을 보내야 한다니… 독고황후도 속에서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양견의 후계를 생각하면 어찌할 수 없는 일.
그만큼 현재의 태자는 너무나도 어리석었다.
그랬기에 난릉공주의 청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후우… 그래… 알았다. 다만 그 결정을 섣불리 하지 않았으면 하는구나.”
“저도 그 선택을 하는데 있어서는 매우 신중하게 할 것입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알았다… 그리고 미안하구나…….”
독고황후는 그렇게 난릉공주에게 재차 사과를 하며 처소로 돌아가게 했다.
다음 날 아침… 수나라의 여러 대신들이 이것은 굴욕이라면서 재차 군사들을 일으켜 고구려를 쳐야 한다는 파와 황자들의 안위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파가 나뉘어서 격한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수 황제 양견은 그 모습을 보더니 크게 용상을 내리치며 호통을 친다.
“모두 그만! 그만하라!”
양견의 진노에 일제히 모두 말을 멈춘다.
모두가 말을 멈추자 양견은 말을 계속 이어 간다.
“모두의 의견은 잘 들었다. 그리고 결정을 내렸다… 바로 어제 말이지.”
“…….”
“황후와도 이미 이야기가 되었다. 나는… 광이를 돌려받고 난릉공주를 고구려로 보내기로 결정을 했다.”
“폐하! 이것은 너무나도 굴욕적입니다. 우리 같은 수 제국이 어찌 저 조그마한 땅을 가진 오랑캐에게 고개를 숙이시옵니까?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그렇사옵니다! 폐하!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옵니다!”
고구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말자는 신하들은 격한 반응을 보이며 양견에게 고했다.
그런 신하들을 보며 양견이 진중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난들 공주를 고구려로 보내고 그 요구들을 받아들이고 싶었겠는가? 하지만 현재 우리의 상황이 너무나도 좋지 않다. 내 자식이 2명이나 저들에게 붙들려 있는 것은 물론이고 이번을 기회로 돌궐이 우리 변방을 침공했다고 한다. 양쪽에 두 방면을 다 막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거기다 고구려의 기세가 자못 날카로우니 이렇게 해서라도 우리를 향한 기세를 누그러뜨려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빠르게 돌궐을 다시 정리하고 말이야.”
“폐하……!”
“나도 이런 결정을 내린 것에 있어서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 하지만 어찌 하리오.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하는 수밖에… 경들이 이해를 해주기를 바라오…….”
양견의 말에 수나라의 신하들은 침통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런 신하들을 보며 양견이 탄식한다.
“하아… 저 고구려를 손쉽게 정벌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일이 이렇게 꼬일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광이를 돌려받아도 문제구나. 막내도 데리고 와야 할 것인데…….”
“폐하. 이번에 이런 굴욕을 언젠가 되갚아 줄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러니 그날을 위해 더욱 더 군사 훈련에 박차를 가하고 군사를 양성해야 합니다. 최정예 군사들로 말입니다.”
“옳은 말이다. 단 그것으로 인해 백성들에게 피해가 가서는 아니 된다. 알겠느냐?!”
“예! 폐하!”
“결코… 결코 고구려 놈들을 용서치 않을 것이다! 내 이 치욕을… 반드시 갚을 것이야!”
그렇게 수 황제 양견은 고구려의 다섯 가지 조건을 들어주는 방향으로 결정을 했다.
[고수 전쟁 결과에 따른 장안(평양)조약
패전국인 수나라는 승전국인 고구려에 다음과 같은 조약을 이행한다.
첫째, 고구려가 지금까지 점령한 모든 영토를 인정해줄 것.
둘째, 고구려는 수나라의 번국(제후국)이 아닌 동등한 나라라는 것을 인정할 것.
셋째, 수나라 황실의 공주를 고구려의 신하 중 한 명과 혼인을 시킬 것.
넷째, 수나라는 고구려에 전쟁에 대한 보상을 위한 공물을 바칠 것.
다섯째, 수나라 황자 중 양광만 수나라로 돌아가고 양량은 고구려에 볼모로 계속 있게 할 것.
위 다섯 가지 조건을 수나라는 고구려에 반드시 이행할 것이며 이 조약의 내용들을 천하에 공표한다. 이 조약들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을 시 고구려가 수나라에 어떠한 조치를 해도 받아들인다.]
이렇게 고구려에서 내건 조약을 수나라가 받아들이면서 고구려는 수나라를 이긴 강국으로 떠올랐다.
이 조약의 내용이 이곳저곳으로 퍼지면서 천하에 고구려의 힘이 진동하니, 그 주변에 있는 국가들은 다시 한 번 고구려에 납작 엎드리며 조공을 바쳤다.
수나라와 고구려 사이에 저울질을 하던 국가들은 고구려를 상국으로 결정을 하며 번국이 되기를 청했다.
그리고 조약의 내용이 성사가 되면서 양광은 수나라로 돌아가게 되었고 난릉공주가 고구려로 오게 되었다.
영양태왕은 그런 난릉공주와 일행들을 용상 위에서 살펴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