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화 영양태왕, 온건파를 숙청하고 수 사신을 망신주다.
자객은 천천히 자신들에게 사주한 사람들에 대해 털어놓기 시작했다.
연태조는 그 말을 들은 뒤 씩 미소를 지으며 다시 물었다.
“좋아. 단… 그만한 증거도 있어야 한다. 네 놈들이 의뢰를 받은 것이라면 재물도 받았을 것이니 기록을 해 놓았을 것이 아닌가?”
“무, 물론이오… 우리가 은밀하게 숨어 있던 곳에 가면… 장부 하나가 있을 거요. 우리 대장이 가지고 있던 것인데 거기에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지. 그것을 확인해보면 될 거요.”
“좋아. 처음부터 그렇게 말을 했으면 이 꼴을 당하지 않았을 거 아니냐. 크흠! 여봐라! 이 자가 실토를 했다! 하지만 이 말이 사실인지 확인을 해야 하니 일단 옥에 가두어 두어라!”
“예!”
그렇게 자객은 멍석말이로 계속해서 맞다가 결국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모든 것을 실토했다.
연태조는 자객의 증언을 토대로 숨어 있던 집을 샅샅이 뒤졌다.
잠시 후… 친히 군사를 이끌고 가 방 안을 뒤진 연태조는 곧 장부를 찾을 수 있었다.
장부의 내용을 본 연태조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막리지 관부로 돌아왔다.
그렇게 연태조가 자객들을 배후를 밝혀 낼 때… 온건파의 귀족들은 한데 모여서 안절부절 하지 못하고 있었다.
“대체… 대체 이 일을 어찌한단 말이오?! 분명히 저 김동현이라는 자를 죽일 수 있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하지 않았소? 죽이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그 자가 일어나지 못하게 만들겠다고 말을 해서 우리도 그에 가담하며 일을 도왔던 것이고 말이오! 그런데… 듣자하니 그 자를 건드리지도 못했다는군! 이를 어찌할 것이오?!”
“그… 그게… 이 근처에 있던 자객의 일을 제일 전문적으로 한다기에 자객들의 실력을 어느 정도 확인을 하고 맡겼던 것입니다. 일이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습니다.”
“어디 이게 몰랐다고 해서 끝날 일이오? 잘못하면 여기 있는 모든 가문의 사람들이 멸족을 당할 수 있는 일이오! 하아…….”
온건파 귀족들은 크게 두려움을 떨었다.
이번 상황에 자신들이 배후에 있음을 발각될 것이라는 것이 시간문제라고 여기는 온건파 귀족들이었다.
그들은 이번 일에 대해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금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소! 지금 빨리 가문의 재산을 정리하고 이곳을 떠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아직 우리라는 것이 밝혀지지 않았으면 그것만으로도 큰 행운이니 얼른 움직입시다! 아… 뭐합니까? 지금 그렇게 가만히 있으면 죽는다니까요? 얼른 움직여야 합니다! 어서요!!”
한 귀족의 말에 그제야 다른 귀족들도 정신을 차리며 다 같이 모인 방을 나와 자신들의 집으로 빠르게 돌아가려 한다.
그런데 그때.
“저기 온건파 놈들이 다 모여 있다고 한다! 도망가는 자는 바로 생포를 하고 저항하는 자만 죽이도록 해라! 가라!”
“와! 와! 와!”
달아나려는 귀족들보다 막리지 연태조의 움직임이 한 발짝 빨랐다.
연태조는 자객이 자백을 함으로써 얻게 된 책을 보곤 그 안에 적힌 인물들에 대해 전부 다 잡아들이려 했다.
하지만 꽤 많은 규모의 온건파 귀족들이 있었기에 고민도 되었다.
병력을 나누어 기습적으로 집을 공격하여 잡는 것을 생각했던 연태조였는데, 그가 이렇게 망설이는 이유는 그들에게도 사병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나라의 군사들이 진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만큼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 분명했다.
그 사이 귀족들이 달아날 수 있기에 집으로 들이치는 것은 좋지 않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쉽게 모두를 잡을 수 있을지 고민하는데, 그때 마침 온건파 귀족들이 모두 한 자리에 있다는 첩보가 입수가 되었다.
연태조는 이때를 노려 빠르게 막리지 관부에 있는 군을 움직여서 온건파 귀족들을 모두 잡으려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빠르게 군을 움직인 결과 확실히 효과를 보았고 이번 자객들을 보낸 온건파 귀족들을 모두 다 잡아들이게 되었다.
“태왕 폐하. 장부에 있는 자들을 모두 잡아들였습니다.”
“잘했네. 잡아들인 자들의 삼족을 멸하고 그밖에 관련된 자들은 모두 노비로 강등을 시키도록 하게.”
“태왕 폐하. 모두 죽이는 것은 생각해 볼 일입니다.”
“어째서?”
“만약 이 일이 태왕 폐하를 노린 것이었다면 삼족을 멸하는 조치가 마땅하옵니다. 하지만 이 일은 용양장군을 해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연태조는 잠시 망설이고는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태왕 폐하께서 말씀하신대로 조치를 취한다면… 분명 반발이 클 것이옵니다.”
“하지만 그들을 지금 뿌리 뽑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이 기회야.”
“으음… 그럼 이렇게 하심이 어떠하십니까.”
“어떻게?”
“이 일을 빌미로 예전에 비리를 저질렀던 것을 모두 들춰내는 것이옵니다. 한동안 그 자들에 대해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으나 아직 때가 아니라 하여 기회만 엿보고 있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이번에 있었던 죄와 함께 그들이 저질렀던 많은 비리들을 씌운다면 모두가 납득을 할 것입니다.”
“아주 좋은 생각이다. 그럼 그렇게 하라.”
“예! 태왕 폐하!”
영양 태왕의 재가가 떨어지자 연태조는 빠르게 움직였다.
영양 태왕과 이야기 한 대로 이번에 동현에게 자객을 보낸 죄와 함께 예전에 많은 비리를 저지를 죄까지 씌워서 온건파 귀족들을 모조리 죽였다.
그 모습을 보며 좌불안석인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고건무였다.
이전의 일로 인해 안 그래도 자신을 지지해 주던 욕살들이 무너져 강경파 쪽으로 승세가 기울어가는 판에 온건파 귀족들까지 모두 잡혀 처형을 당하자 고건무의 입지는 더욱 더 좁아지게 되었다.
“그러 길래… 내가 자중하자고 하지 않았나?!”
“저희도 이리 될 줄은 몰랐습니다. 물론 저희야 그 일에 가담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있긴 했습니다만…….”
“후우… 너희들이라도 가담을 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리고 명심해라. 지금의 태왕 폐하께서는 절대로 자비가 없으시다. 그러니 다들 경거망동 하지 말고 행동하도록 알겠나?”
“예. 태제 전하. 그나저나…….”
“……?”
“태왕 폐하께서 태제 전하를 부르시지 않겠습니까? 태왕 폐하께서도 저희가 태제 전하께 붙어 있다는 것을 알 테니 말입니다.”
“하아… 그렇겠지. 일단 이 문제는 나중에 이야기 하도록 하지. 이 일에 대해서만큼은 내가 태왕 폐하와 잘 이야기를 해서 풀어야 해.”
“예. 태제 전하. 조심하십시오. 지금의 태왕 폐하께서는 오늘 일로 인해 더욱 더 강한 황권을 지니신 만큼 화가 닥칠 수도 있으니까요.”
“나도 알고 있다.”
그렇게 고건무는 이제 자신에게 모든 형세가 불리하게 돌아가는 것을 알고는 영양태왕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몸을 사렸다.
며칠 뒤… 수나라의 황문시랑(황제를 곁에서 모시는 대신) 배구가 고구려로 와 대전에서 영양태왕을 보고 있었다.
“무슨 일로 왔는가?”
“태왕 폐하께서도 잘 아시리라 생각 됩니다.”
배구의 말에 곁에 같이 서 있던 을지문덕이 크게 노하며 호통을 친다.
“건방진 놈! 감히 태왕 폐하께 그런 말투로 이야기를 하다니… 여기서 목을 베어 보내 줄까?!”
“소인은 그저 있는 사실을 말씀드렸던 것뿐입니다.”
“뭐라? 그래도 이놈이!”
을지문덕이 크게 노해서 배구에게 달려들려고 하는데 그런 을지문덕을 영양태왕이 말린다.
“대모달은 참으라. 일단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보고 화를 내도 늦지 않겠는가?”
“후우… 예. 태왕 폐하. 소신의 무례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무례라니! 그것은 무례가 아니니 신경 쓸 것 없다.”
영양태왕은 을지문덕을 진정시킨 뒤 다시 시선을 돌려 배구에게 천역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묻는다.
“그래 무엇 때문에 왔는가?”
“태왕 폐하께서도 아시다시피 저희 수나라의 두 황자 전하 때문에 왔습니다.”
“황자 때문이라…….”
“예. 태왕 폐하. 그러니 저희와 협상을 하여…….”
“협상은 무슨 협상!!”
영양태왕은 자신의 옥좌의 팔걸이를 강하게 내리치더니 호통을 친다.
“너희는 엄연히 패전국이며 우리는 승전국이다! 그러니 너희는 협상이 아닌 우리 고구려를 승전국으로 대우하며 요구를 들어야 하는 입장인 것이지! 그게 맞는 것이 아니겠나?!”
영양태왕의 호통에 배구는 움찔했으나 금방 평정심을 찾으며 대답한다.
“저희가 이번 전쟁에서 비록 졌다고는 하나 아직도 고구려보다 훨씬 영토도 넓고 인구수도 많습니다. 또 한 번 붙게 되면 그 때는 결과가 다를 수도 있습니다만…….”
“하하하하! 너희는 항상 그랬지. 예전부터 말이야. 하지만 결과는 같았다. 항상 너희는 우리에게 졌지. 우리의 19대 태왕 폐하였던 광개토태왕 폐하께 철저히 눌렸고 장수태왕 폐하 때는 물론이고 한나라 시절에 우리의 조상인 고조선 시기에도 우리에게 졌었다.”
“하지만 그 시기 때 마지막에 결국 우리 중원이 이겼습니다.”
“그것이 너희의 순수 힘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건 우리 안에서 내분이 일어났기 때문에 너희가 우리를 치기 수월해진 것이다.”
“…….”
“이 말은… 너희가 아무리 많은 군사를 동원해서 우리를 친다고 해도 힘 대 힘으로는 우리를 절대 이기지 못한다는 것이다. 수나라 개국 이래 우리 고구려와 붙었던 크고 작은 전쟁에서 너희는 단 한 번도 못 이기지 않았느냐?”
배구는 영양태왕의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런 배구를 보며 영양태왕은 피식 웃으며 말한다.
“이제야 현실을 직시하는가보군. 그래도 뭐… 자네가 먼 길까지 왔으니 어떤 조건을 내걸 생각이었는지 들어보기는 해야겠지. 헌데 나는 더 이상 자네를 보기 싫어서 말이야?”
“그게 무슨…….”
“내 신하 중 한 명이랑 이야기를 해보라고. 자네에게 보낼 테니 말이야. 나는 그 사람을 통해서 자네 이야기가 무엇인지 들어보겠다. 그럼 오늘은 이만 하지.”
영양태왕은 노골적으로 배구를 무시하며 대전을 바로 떴다.
영양태왕이 자리를 뜨자 신하들도 하나둘씩 자리를 뜨는데 그런 모습을 본 배구는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하자 속에서 분노고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이곳에 오기 전 이런 모욕을 당할 것은 이미 예상 했던 바였다.
거기다 수 황제 양견의 충고도 있었기에 배구는 분노를 가라앉히려 노력했다.
그런데 그때.
뒤에서 누군가 배구를 부른다.
“그대가 황문시랑 배구요?”
“그렇소만… 당신은 누구요?”
“나는 우리 고구려에서 외교와 그 사절을 담당하여 장사 관직에 있는 사훈이라 하오. 태왕 폐하께서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보라더군.”
“음… 태왕이 나에게 보낸 것인가?”
“태왕이라니! 말조심하시오! 한 번만 더 우리 태왕 폐하께 존칭을 쓰지 않으면 바로 목을 베어 버리겠소!”
사훈의 말에 호위로 같이 따라온 가동이 허리춤에 칼을 잡는다.
여차하면 뽑을 기세.
그런 사훈을 보며 배구가 사과한다.
“미안하게 됐소. 내가 오늘 일이 잘 안 풀려서 말이 헛 나온 모양이오.”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으나 이번 한 번은 넘어가 주겠소. 그리고 지금부터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겠소. 일단 여기 대전에서 나갑시다.”
“알겠소이다.”
그렇게 사훈은 수나라 황문시랑 배구를 대전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그러고는 영양태왕이 배구와 이야기를 나눌 장소로 사용하라며 내준 집으로 향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사훈과 배구는 서로의 자리에 앉았다.
사훈은 자리에 앉자마자 배구에게 묻는다.
“일단 우리와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지 한번 들어나 봅시다.”
사훈이 일부러 오만한 표정을 지으며 배구에게 깔보듯이 이야기 한다.
그 모습을 본 배구는 다시 한번 화가 끓어올랐지만, 인내하고는 힘겹게 말을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