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화 영양태왕과 연태조, 고수 전쟁이 끝난 후 일을 논하다.
사훈이 이렇게 강이식 대장군에게 자신이 생각한 바를 거침없이 이야기를 할 때… 고구려의 수도 장안성(평양성)에서는 그 동안의 전투 결과에 대한 보고를 받고 있었다.
“하하하! 북평성 일대와 임유관을 모두 점령했다! 그리고 영주성 함락도 시간 문제다?!”
“예! 태왕 폐하! 용양장군이 낸 계책이 모두 맞아떨어졌다 합니다!”
“으하하하하! 역시… 역시 대단해! 그 녀석이 없었다면 오늘날과 같이 영토를 넓히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태왕 폐하께서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셨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건 그렇지. 그리고 모두의 꿈이 일치했기 때문이네.”
“다만 수군의 경우에는 운도 많이 따랐습니다. 그때 큰 비와 태풍으로 인해 거친 폭풍이 몰아쳐 수나라 군의 많은 배가 침몰했으니 말입니다.”
“그렇지. 이제야 말하는 것이지만… 만약 그 배들이 침몰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수나라 수군을 막느라 큰 고생을 했을지도 모른다.”
“옳은 말씀이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엄연한 승전국이야! 분명 이 결과가 우리 고구려나 수나라 전역뿐만 아니라 백제와 신라에도 전해졌을 것이란 말일세. 지금쯤 그들의 반응이 어떨지 궁금해지는구만.”
연태조는 영양태왕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백제의 부여장(무왕)은 아마 깜짝 놀랄 겁니다. 수나라가 이렇게 쉽게 질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을 테니까요. 아마도 그는… 우리가 이기더라도 큰 피해를 입고 이기길 바라자 않았겠습니까? 그래야 마음 놓고 신라를 칠 테니 말입니다.”
“그렇겠지. 그리고 그것은 신라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현재 신라의 국력으로는 우리와 백제를 동시에 상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야.”
“맞습니다. 제 생각도 그러합니다. 하지만 만약 그렇게 되었더라도 신라는 백제를 상대로 이기지 못할 겁니다.”
“음… 그 정도로 신라의 군사력이 약한가?”
“예. 태왕 폐하. 태왕 폐하께서도 아시겠지만 그들은 평민이 고위직으로 진출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고구려의 경우에는 무예대회를 열어 평민에게도 무예대회에 응시하게 하여 실력만 뛰어나면 고위직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하지 않습니까? 그 예로 을지문덕 대모달과 강이식 대장군도 있고 말입니다.”
“그렇지.”
“하지만 그들은 그것 자체가 안 됩니다. 귀족들 사이에도 계급을 두어 어느 벼슬까지 올라갈 수 있다라는 상한선을 정해 놓았기에 있을 수가 없는 일이라는 겁니다.”
영양태왕은 그 말을 듣고 어이없어 한다.
“참 바보 같은 놈들이야. 밑에 계급 중에서도 분명 실력이 뛰어난 자들이 있을텐데 말이야. 기회는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옳은 말씀이십니다. 태왕 폐하. 그들이 예전부터 그렇게 해 왔기에 지금의 신라가 저렇게 약해졌다고 생각하시면 될 거니다. 위에 사람들이 썩을대로 썩었으니까요.”
“그래. 막리지 자네 말이 맞네. 그나마 다행인 건은 신라왕은 나라를 잘 다스리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하던데?”
“맞습니다. 하지만 귀족들의 힘이 워낙 강해서 제 뜻을 제대로 펼치지 못할 것입니다. 저희 고구려도 귀족의 힘이 강한 것은 사실입니다만, 현재 태왕 폐하께서는 그들을 완벽하게 누르고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신라왕은 엄두도 못내고 있고 그저 귀족들의 의견과 자신의 의견을 합해 간신히 절충안을 내어 나라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연태조의 말에 영양태왕은 피식 웃으며 대답한다.
“귀족들을 눌러야 하는 건 여기나 거기나 다 똑같구만.”
“그렇습니다. 태왕 폐하. 하지만 그 세는 그곳이 더할 것입니다.”
“그런가?”
“예. 저희는 얼마 전 태왕 폐하께서 욕살들을 잡아들여 구심점을 없앴습니다. 그 밑에 온건파들이 힘을 모아 대응한다면 저희도 어느 정도 곤란해질 수는 있사오나 그래도 처리할 수 있는 정도이지요.”
연태조는 숨을 고르고 말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신라는 다릅니다. 신라왕의 의견에 사사건건 반대하는 귀족들의 구심점은 전부 다 살아 있는 것은 물론이고 이 고구려의 저나 강이식 대장군, 김동현 용양장군이나 대중상 모달과 같이 신라왕을 지지해 주는 세력이 보이지 않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렇군. 신라왕도 고생이겠어. 그런데 말이야.”
“……?”
“용양장군이 예전에 하던 말이 있지 않은가. 수나라와 전쟁이 끝나면 빠르게 수습하고 신라를 쳐야 한다고 했었지? 완전히 멸망시켜서 자국의 영토로 편입시켜야 한다고 말이야.”
“그렇습니다. 저도 그 의견에 공감합니다.”
“그래?”
“예. 언젠가 저 수나라와 또 붙게 될 것이 분명한 일입니다. 그 침입에 대비를 하자면 후방이 든든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백제와 신라가 걸립니다. 특히 신라 말입니다.”
영양태왕은 연태조의 말에 의아해 한다.
“지금 백제가 신라보다 훨씬 강한 나라인데 신라가 더 걸린다?”
“예. 태왕 폐하. 백제의 부여장은 태왕 폐하께서도 아시겠지만 매우 영민한 자입니다. 우리가 수나라를 물리치고 별 피해가 없다고 하면, 우리 고구려의 국경을 공격하여 위력 정찰을 하려던 일도 거두겠지요. 그리고 약한 신라로 화살을 돌릴 것입니다.”
“음… 신라를 본격적으로 쳐서 백제의 영토를 넓히겠다는 것인가?”
“바로 보셨습니다. 아마도… 저희 고구려에 먼저 사신을 보낼 수도 있습니다.”
“사신을 말인가?”
“예. 태왕 폐하. 좀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부여장은 매우 영약한 자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는 분명 이 정세를 알게 될테니 태왕 폐하께 사죄를 하며 저자세로 나올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저희에게 조공을 바친다고 말을 하면서 신라를 치겠지요.”
“음… 우리가 수나라와의 전쟁을 끝내고 정리를 하는 사이 신라를 확실하게 쳐서 영토를 넓히겠다는 속셈이군.”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는가?”
“일단 사신이 와서 그런 자세를 보이면 조건을 내거십시오.”
“조건? 무슨 조건?”
영양태왕이 묻자 연태조는 자신의 품에서 적은 것을 꺼내어 영양태왕에게 보여 준다.
그 내용을 읽어 본 영양태왕은 씩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대단하군. 하지만 이것을 백제가 모두 따라 줄까?”
“몇 가지는 조정하려고 하겠지요. 하지만 대부분은 따를 겁니다.”
“이 조건들은 백제에 많이 불리할 수도 있는 조건이야. 그런데도 따른다고?”
“예. 태왕 폐하. 백제가 국력이 예전에 비해 강해졌다고는 하나 그들도 신라처럼 양쪽에서 적군을 맞을 필요는 없는 상황입니다. 우리 고구려와 평화롭게 지내지 못하면, 분명 고구려가 신라와 손을 잡고 자신들을 칠 것이라고 생각할 테니까요.”
“음… 그 점을 확실하게 이용하자는 것이구만.”
“그렇습니다. 태왕 폐하. 그럼 이 조건을 대부분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좋아. 일단 방침은 그렇게 정하기로 하고 백제에서 사신이 오면, 그때 다시 한번 이 일에 대해 논의해 보도록 하세.”
“예. 태왕 폐하.”
영양태왕은 현재 모든 일이 자신의 의도대로 잘 풀려나가자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기뻐했다.
한편 그 시기 수나라의 수도 대흥성(장안)에서는.
“뭐라? 영주성에 갇혀?!”
“예. 폐하! 하루라도 빨리 지원군을 보내지 않으면 모두 고구려 군에 생포당할 것입니다!”
고구려군과 수나라의 전투에서 살아남은 세작들이 윗선에 보고를 올렸다.
그리고 장손성이 그 보고를 받아 수 황제 양견에게 보고를 올렸다.
그 소식에 수 황제 양견과 황후인 독고황후는 크게 놀랐다.
“그… 그럼 그 안에 우리 광이와 량이가 다 갇혀 있단 말이냐?!”
“예! 황후마마… 그렇다 합니다. 지금 그곳에는 먹을 것이 없어, 말까지 잡아먹고 있는 실정이라 합니다.”
“이럴 수가! 우리가 고구려에 정말 철저하게 패하였구나. 어찌…….”
“폐하! 지금 그러고 계실 때가 아니옵니다! 우리 아들들이 갇혀 있다하지 않습니까? 아들들을 구해야지요!”
“암… 그래야지요. 황후. 장손성은 듣거라!”
“예! 폐하!”
“즉시 움직일 수 있는 군사가 현재 얼마나 되느냐?”
“예! 기병 이 수도에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기병 2만 정도가 됩니다.”
“기병 2만 정도면 그 녀석들을 빼내는 데는 괜찮겠군. 자네가 직접 가서 그들을 구출해 주게. 이렇게 부탁함세.”
“예! 폐하! 그리하겠습니다! 다만 그 기병들도 준비하는데 잠시 시간이 필요하니, 지금부터 준비를 하게 해서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출발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리하라. 최대한 빨리 준비를 해서 출발하도록 해!”
“예! 폐하!”
양견의 명령에 장손성은 빠르게 대전을 나와 군사를 한데 모으고 출진할 준비를 한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날이 밝자마자 장손성은 군을 이끌고 출진하려는데…….
“급보입니다! 급보요!”
“급보?!”
“예! 폐… 폐하를 뵈어야 합니다!”
“지금 내가 폐하를 알현하고 군을 출진시키려 하니 나에게 말하 거라!”
“예! 장군! 크… 큰일 났습니다! 진왕 전하와 한왕 전하께서… 고구려 군에 생포되셨습니다!”
“뭐… 뭐라? 지금 뭐라 했느냐?!”
“진왕 전하… 한왕 전하께서 생포되셨습니다. 흐흐흑…….”
“그 말이… 참이더냐?!”
“예! 장군! 그 지역을 제가 정찰하다가 직접 확인한 사항입니다.”
“…알았다. 일단 너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거라. 폐하께 내가 말하고 오겠다.”
“예. 장군…….”
장손성은 두 황자가 생포되었다는 소식에 큰 충격을 받았지만 이내 정신을 다 잡고는 양견이 있는 편전으로 향한다.
그리고 보고를 올리자 양견은 물론이고 옆에 있던 독고황후 또한 휘청거리며 충격을 받는다.
“그럴 수가… 어찌하다 잡혔다더냐?”
“자세히는 듣지 못했습니다. 폐하. 그저 그곳에 있던 세작으로부터 보고를 받았을 뿐입니다.”
“…….”
“궁금하시면 그 자를 부르겠습니다.”
“되었다. 이미 벌어진 일… 알아서 무엇 하겠느냐? 하아… 이렇게 되면 고구려와 협상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패전국이고 고구려는 승전국으로 말이야.”
“그렇습니다. 폐하…….”
“두 황자들까지 인질로 있으니 분명 고구려는 우리에게 큰 요구를 해올 것이다. 최악의 경우에는… 황자 한 명만 내놓고 한 명은 붙잡아 두려고 하겠지. 자신들의 무기를 잃으면 안 되니 말이야.”
“…….”
“고구려로 사신을 보내야겠어. 내관은 지금 당장 황문시랑(황제를 곁에서 모시는 대신) 배구를 부르라!”
“예! 폐하!”
양견의 명령에 대전 내관이 잠시 밖을 나간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폐하. 황문시랑이 들었습니다.”
“들라하라!”
“예! 폐하! 들어가시지요.”
내관의 말에 편전의 문이 열리자 황문시랑 배구는 양견에게 절을 하며 말한다.
“소신을 부르셨습니까? 폐하.”
“그래. 소식은 들었겠지?”
“예. 폐하. 얼마나 가슴이 아프시옵니까? 소신이 두 황자마마가 무사히 이 수나라로 돌아올 수 있도록 가서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그래. 부탁한다. 협상이 잘 안 되면 둘 중 하나만이라도 이 수나라에 돌아오게 해다오.”
“예. 폐하. 소신 최선을 다해 일이 잘 되도록 하겠사옵니다.”
“그래. 지금 바로 떠나 보거라. 그리고 우리는 패전국인데다가 두 황자가 인질로 잡혀 있는 입장이니 막대한 재물도 같이 가지고 가는 것이 좋을 것이야. 다시 말해서… 모든 굴욕을 자네가 감당해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참고 인내하거라. 알겠느냐?”
“예. 폐하. 모든 굴욕은 제가 다 쓸 테니… 폐하께서는 심지를 굳건히 하시고 앞으로의 일에 대해 대비를 하십시오.”
“그래. 고맙구나. 얼른 가 보거라.”
“예. 폐하.”
그렇게 황문시랑 배구는 양견의 황명을 받고 고구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