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화 양광, 양량을 설득해 군을 퇴각시키다.
한나라 양량이 요택에서 크게 고초를 치르고 있을 때, 조의들을 이끄는 검수 또한 요택 근처에 있었다.
“그래?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어?”
“예. 국선어른. 지금 전염병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고 합니다.”
“모든 것이 용양장군의 계책대로 되어 가는구만. 잘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이 퇴각할 때 기습 공격을 하여 그들을 더욱 더 지치고 혼비백산하게 만들 것이다.”
“그들이 금방 퇴각을 할까요?”
“전염병이 번지고 군사가 계속해서 죽어나가는데 퇴각을 하지 않는 건 말이 안 되지.”
“그 양량이 고집이 쎈 자라고 들었습니다만…….”
“물론 그렇지. 하지만 그 후방에 양광이 있다. 수나라의 통일 전쟁 때, 진나라를 멸망시키는데 큰 공을 세운 자로 꽤 명망이 높지. 그자가 이제 본격적으로 나설 것이야. 그렇게 되면 우린 퇴각을 할 것이다.”
“그것도 용양장군께서 알려 주신 계책입니까?”
“그렇다. 정말 신기하군. 모든 것이 용양장군의 의도대로 움직이고 있어.”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이토록 완벽한 계책과 전략, 전술은 처음 봅니다.”
“그렇겠지. 하지만 나는 두 번째로 본다.”
“예? 용양장군과 같은 인물이 또 있습니까?”
“그래.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 내가 말하지 않았었나? 용양장군의 아버지에 대해 말이야.”
검수의 말에 곁에 있던 조의가 놀라며 대답한다.
“용양장군의 아버지라고 하시면… 국선어른의 스승님을 말씀하십니까?”
“그래. 정말 대단하신 분이었지. 만약 살아계셨다면 지금도 난 그분의 무예를 따를 수가 없었을 것이야.”
“그 정도입니까?”
“그래. 거기다 그분께서는 무예뿐만 아니라 모든 것에 있어서 뛰어나셨어. 특히 군사적인 측면에서는 천재적이었지. 아마도 용양장군이 그 피를 이어받은 것이 아닌가 싶구나.”
“우리 고구려로서는 큰 복입니다. 국선어른.”
“그렇지. 다만 걱정이 되는군. 권력에 아첨하는 자들이 아직까지 많이 남아 있으니, 그들이 고개를 쳐드는 순간 용양장군도 위험해 질 수 있으니 말이야.”
“그래도 이번에 욕살들이 갈려나가서 훨씬 낫지 않겠습니까?”
“물론 그렇지. 가장 큰 세력들이었으니 말이야. 하지만 그들의 보호를 받고 있던 많은 귀족 세력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네. 그들이 힘을 합친다면… 크게 곤란해질 수 있어.”
“그 일에 대해서는 용양장군께서도 다 알고 계실 겁니다. 국선어른께서 말씀하신대로 워낙 뛰어나신 분이 아니십니까?”
“그래. 그렇지… 그래도 그런 걸 생각하면 마음이 좀 불안하구나.”
검수는 과거 자신의 스승뿐만 아니라 동현에 대해서도 걱정하며 염려하고 있었다.
‘돌아가신 스승님의 아드님이 이제 우리 고구려에 큰 힘이 되실 정도로 장성하고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이것은 돌아가신 스승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보호해 달라고 하늘에서 계시를 내려주신 것일 터… 내 반드시 내 몸이 찢어지더라도 스승님의 아드님만큼은 목숨 걸고 지킬 것이다!’
검수는 그렇게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만큼은 동현을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그 시기 요동성에서는…
“하하하하!! 양량 이놈이 아직도 요택을 못 빠져나왔다고?!”
“예! 대장군! 그렇다 합니다!”
“동현이의 계책이 딱딱 맞아 떨어지는구나! 이제 곧 저들이 퇴각을 하겠지… 수나라 군이 회군할 때 저들을 추격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도록 해라!”
“예! 대장군! 헌데…….”
“뭐냐?”
“저들이 퇴각할 때 저희들도 요택을 지나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럼 저희도 곤경에 빠질 수 있습니다만…….”
강이식 대장군은 그 말에 고개를 저으며 대답한다.
“이제 비가 점점 잦아들기 시작했네. 그리고 해가 떠서 더워지기 시작했어.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겠는가?”
“음… 아!! 날씨가 더워짐으로써 늪지대의 땅도 굳기 시작하겠군요!”
“맞네. 그럼 우리도 움직이기가 편해지지. 아직 그들이 요택 안에 갇혀 있으니 그들이 퇴각하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천천히 움직이면 돼. 그럼 땅도 말랐을 것이고 이동하기에 용이해지겠지. 그럼 그 때 개마무사들로 그들의 뒤를 추격하여 섬멸하면 된다.”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대장군. 송구합니다.”
“아니다. 그럴 수 있지. 하지만 명심하도록 해라. 적군을 상대하는데 있어서 주변의 환경을 모두 고려해야한다는 것 말이야. 알겠나?”
“예! 대장군!”
“자… 그럼 빨리 준비를 하도록 해! 언제든지 군을 출동시킬 수 있도록 말이야.”
“예! 대장군!”
그렇게 수나라의 고구려 1차 침입이 천재지변과 동현의 계획이 잘 어우러지며 엉망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지금 즉시 퇴각해야 한다!”
“형님!!”
“이 바보 같은 놈! 아직도 모르겠느냐?! 네 놈의 독단적인 선택으로 인해 군이 이 꼴이 된 것이야! 네가 좌복야인 고경의 조언만 제대로 들었더라도 이런 일을 없었을 것이다!”
“왜 자꾸 그 늙은이의 이름을 들먹이는 것입니까?!”
“하아… 아우야. 잘 듣거라. 그들은 아바마마와 함께 우리 수 제국을 창업한 공신이야! 네가 그 공신을 홀대한다는 것은 아바마마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것이야! 어는 것이냐?!”
“……!”
훗날 수양제가 되는 양광은 최후방에서 군량과 식수를 보급해 주는 곳에 있다가 상황을 듣고 양량이 있는 본군으로 빠르게 왔다.
그리고 당장 군을 퇴각시킬 것을 양량에게 명령했다.
하지만 양량은 그런 형의 말도 들으려 하지 않고 고집을 부렸다.
그런 양량을 향해 양광이 다시 한번 호통을 쳤다.
그제야 양량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이를 보며 양광이 말한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절대로 고구려를 이길 수 없어! 고구려는 기회가 되면 언제든지 다시 칠 수 있다! 그러니 군을 퇴각시켜라! 알겠느냐?!”
“…….”
“왜 대답이 없는 것이야?! 네가 정녕 아바마마께 목이 달아나야 정신을 차리겠느냐!”
“모… 목이 달아나다니요? 형님!”
“사사로이 아바마마와 우리는 부자간이지만 일을 맡았을 때는 군신 관계가 된다. 네 녀석은 그것을 모르는 것이냐?!”
“…….”
“퇴각할 준비를 시켜라. 알겠느냐?!”
“예. 형님…….”
그렇게 양광의 요구로 양량은 어쩔 수 없이 수나라 군을 퇴각시키기로 결정을 했다.
모든 결정이 떨어지자 양광은 양량의 막사를 나와 자신의 있던 최후방 보급 부대로 돌아가려 했다.
양광이 그렇게 막사를 나가자 양량은 눈물을 흘리고는 막사 안에 있던 탁상을 내리치며 분노한다.
“아아악! 어찌… 어찌 이렇게 끝난단 말인가?! 어찌!! 꺼이! 꺼이!”
“한왕 전하! 고정하시옵소서! 상황이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양량의 밑에 있던 수하가 양량에게 고정하라며 말을 하지만 그런 말을 듣지 못했는지 그저 울고 땅을 치며 통곡할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퇴각 준비는…….”
“반나절 정도면 모두 끝날 듯합니다. 그리고 저…….”
“말해라…….”
“황제 폐하께서 칙사를 보내셨는데 그게…….”
“……?”
“황제 폐하께서 한왕 전하가 좌복야 어른의 조언도 제대로 듣지 않은 채로 군을 전진시키고 곤경에 빠뜨렸다며… 진노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 당장 군을 퇴각시키지 않고 무엇을 하는 것이냐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
“본래 한왕 전하를 직접 뵙고 말씀을 드려야하나… 한왕 전하께서 너무나도 슬프게 우시길래 제게 황제 폐하의 말씀을 대신 전해달라고 말했습니다.”
“돌아가게 되면… 형님의 말씀대로 내 목이 달아날 수도 있는 것인가?”
“설마 그러겠습니까? 부자지간인데 말입니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황후마마께서 막으실 것이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수하의 말에 양량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반나절 후…….
“퇴각한다. 전염병에 걸려 죽은 군사들은 다 화장을 했겠지?”
“물론입니다. 한왕 전하.”
“그래. 가자.”
“예. 다들 회군한다!”
양량의 수하가 소리치자 수나라 군사들의 표정이 확 밝아지더니 환호한다.
“와! 와! 와!”
“드디어 돌아가는 거야?!”
“그래!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요택에서 빠져나갈 수 있겠구만! 이곳을 빨리 나갔으면 좋겠어!”
수나라 군사들은 요택을 나가 자신들이 살던 곳으로 돌아간다는 소식에 시끌시끌해졌다.
그 모습을 보던 왕세적이 호통을 친다.
“네 이놈들! 우리는 전투에 패해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기쁜 표정이라니?! 계속해서 그런 모습을 보여 주면 목을 전부 베어버릴 것이다!”
왕세적의 단호한 말에 군사들은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
그런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던 양량.
속으로는 분노가 치밀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한숨을 크게 내쉬며 퇴각을 하기 시작했다.
* * *
그 무렵 북평성에서 나와 왕인공의 군대를 격파한 허손은 왕인공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왕인공 수하 장수들의 필사적인 방어에 아쉽게도 놓치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장군. 왕인공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괜찮아. 이번 전투에서 이긴 것이 중요하다. 그나저나 사훈!”
“예! 장군!”
“가동에게는 서찰을 보냈는가?”
“예! 가동에게 이 북평성 주변뿐만 아니라 임유관에서 북평성까지 오는 길 주변의 성들을 모조리 장악하라고 했습니다.”
“잘했다. 지금쯤 그럼 임유관으로 향하고 있겠군.”
“그렇습니다. 장군.”
“그럼 이곳을 빠르게 정리하고 우리도 가동을 뒤따라 빠르게 임유관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군사를 합친 후 영주성으로 향할 것이다.”
“가슴이 벅찹니다. 저희가 서토의 오랑캐 놈들과 싸워 영토를 얻다니 말입니다.”
“이런 상황이 앞으로 자주 나와야 한다. 그래야 저 놈들이 우리를 얕보지 못해.”
“맞는 말씀입니다. 그나저나 장군. 저희가 이곳을 전부 비우고 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누군가에게 성을 맡기셔야 합니다.”
“그 자라면 적임자가 있네.”
동현은 그렇게 대답하더니 뒤를 돌아 누군가를 부른다.
“고흘중!”
“예?! 예! 장군!”
“내가 영주성으로 출진하는 동안 자네가 이 성을 맡도록 하게.”
“예? 제… 제가 말입니까?”
“그래. 자네는 내가 인정하는 사람 중 하나야. 내가 자리를 비울 동안 충분히 이곳을 지킬 수 있을 것일세.”
동현의 말에 허손이 걱정한다.
“하지만 장군. 고흘중은 나이가 어리고 이번 전쟁이 처음입니다. 괜찮겠습니까?”
“뭐든 처음이 있는 법이지. 그리고 나도 어릴 때부터 전쟁터를 돌아다녔다. 충분 할 것이야.”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알겠습니다.”
“고흘중. 이곳에 대한 방비를 네게 맡긴다. 해낼 수 있겠느냐?”
동현의 말에 고흘중은 군례를 올리며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한다.
“소인… 장군께서 믿어 주신 믿음에 반드시 보답하겠습니다! 부족한 점이 많지만 주변의 의견도 잘 경청하고 가려서 들어서 수나라 군사가 오면 막아내고 이곳을 다스리겠습니다.”
“좋아. 아주 패기가 좋군! 그 자세다! 단 한 가지 조언을 해주자면 주변의 의견을 잘 새겨듣는 것과 동시에 네가 생각한 것에 대한 소신이 있어야 한다.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예! 장군!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이거…….”
“……?”
“이건 내 군사인 사훈이 쓴 것이다. 그것은 네가 잘 싸울 때는 필요 없고 위기에 몰리거나 할 때 그 서찰을 보면 된다. 그 서찰에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은지 쓰여 있으니 말이다.”
“요긴하게 쓰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우리는 널 믿고 간다. 군사는 우리가 이곳에서 데리고 온 군사뿐만 아니라 투항한 군사까지 합해서 3만, 그중 절반을 남겨 두고 가마. 1만 5천이면 수나라 군사들이 이 북평성을 단기간에 공략할 수 없을 것이야.”
“예! 장군! 이곳을 결코 내주지 않겠습니다!”
“그래. 믿는다. 자… 우리는 빨리 군을 정비하고 움직인다! 사훈! 신속하게 군을 정비하라!”
“예! 장군!”
고구려는 동현의 계책대로 모든 것이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