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화 동현, 사훈에게 허손의 진정한 면모를 말하다.
양량이 고경의 조언을 물리치고 계속해서 요택을 벗어나 요동성에 진군하려는 있을 때, 동현은 북평성에서 수나라 군대를 만났다.
“왔구만.”
“그렇습니다. 장군.”
“적이 도발을 시작하면 나에게 보고를 하도록 하게. 아… 참! 그 전에 가동은 미리 움직였나? 저들이 오기 전에 말이야.”
“물론입니다. 장군.”
“조의사범 용호와 조의들에게 소식은 전달이 됐고?”
“예. 장군.”
“좋아… 일단 이 성을 굳게 지키다가 적이 도발을 해오면 내가 하라는 대로 하게. 허손! 잘 할 수 있겠지?!”
“물론입니다. 장군! 맡겨 주십시오!”
“명심해라. 적이 어떤 도발을 해와도 약 사흘간은 꾹꾹 참다가 조의들이 수나라 진영을 기습적으로 공격했을 때, 우리도 문을 열고 나가는 것이다. 그 사흘 동안에 적들의 기세도 누그러질 것이고 저들은 본래 우리를 묶는 것이 1차 목적인만큼 우리가 이 성문 밖으로 나가 기습 공격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있을 것이니 말이야.”
“이미 모든 작전은 숙지했습니다! 염려 마십시오! 아무리 화가 나도 장군의 명령인 만큼 꼭 지키겠습니다! 대신… 이곳을 나가게 되면 저들을 모조리 도륙 낼 것입니다!”
“암! 그래야지! 그 때는 자네가 원하는 대로 하게!”
허손은 동현의 대답에 얼굴이 밝아진다.
그때 또 다른 곳에서 사훈이 다가와 말한다.
“장군. 일단 들어가 계시지요. 적이 도발을 해올 때 움직여도 상관없을 것입니다.”
“알겠네.”
그렇게 동현은 북평성에 대한 방비를 허손에게 맡기고 자신은 사훈과 함께 관청으로 향했다. 그리고 차 한 잔을 마시며 사훈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장군! 보고 드립니다!”
“음? 벌써 반응이 오는 건가? 무슨 일이냐?”
“예! 지금 적이 도발해오고 있습니다!”
“도발? 어떤 식으로 말이냐!”
“예! 저희가 자신들보다 군사도 많으면서 성 안에 박혀 있다고 조롱하며 온갖 욕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가서 허손에게 전하라! 우리 군을 함정으로 끌어내려는 것이니 무시하라고. 특히 군사들은 물론이고 허손 밑에 있는 장수들에게 주지시켜라! 알겠나?!”
“예! 장군!”
군사가 물러나자 동현이 사훈에게 말한다.
“자… 우리도 사흘 뒤 출격을 위해 준비를 해야겠군.”
“그렇습니다. 헌데…….”
“왜? 무언가 할 말이 있나?”
“그렇습니다.”
“말해 보게.”
“허손은 걱정되지 않으나… 그 밑의 장수들이 걱정 됩니다. 저들의 도발에 넘어가 수나라 군사들의 수가 적다며 얕보고 성문을 나가 치자고 할까 봐 말입니다.”
동현은 사훈의 말에 씩 웃더니 앞에 있던 차 한 잔을 마시며 대답한다.
“자네가 내는 계책은 참으로 뛰어난데 아직 사람 보는 눈은 길러야할 것 같군.”
“예?”
“내가 왜 허손에게 총사를 맡겼는지 아나?”
“그야 누구보다도 장군의 충복이시니 맡긴 것이 아니십니까? 가장 믿을만하고 말입니다. 무력도 장군을 제외하고 가장 강한 사람이니까요.”
“자네가 그것만 봤다면 자네는 허손의 진가를 제대로 보지 못 한 걸세.”
“…….”
“허손은 자네가 말했던 것처럼 나의 충복이네. 내가 명령을 내리면 불구덩이에 들어갈 정도로 아주 충성스러운 자지. 하지만 아무리 충성스럽고 무력이 강하다고 하여 전쟁의 경험이 거의 없는 자에게 이런 일을 맡기지 않아.”
“그 말씀은 허손에게 그것뿐만 아니라 또 다른 면이 있다고 보시는군요.”
“맞네. 허손은 다혈질이긴 하나 그것은 젊은 사람들은 다 그럴 거야.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지. 내가 만약… 아버지가 돌아가시지 않고 보호 아래 컸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일 때 나는 분명 저 도발을 이겨내지 못하고 나갔을 걸세.”
“…….”
“허손에게는 제대로 된 전쟁의 경험은 이번이 처음일세. 하지만 그가 지금까지 살아온 길을 보면 지금의 상황이 절대로 낯선 상황이 아니지.”
동현의 말에 사훈은 크게 놀라며 대답한다.
“혹시… 허도에서 살았을 시절을 염두에 두신 겁니까?”
“역시 자네야. 맞네. 허손은 허도에 살면서 그런 성격을 억눌러야만 했네. 그는 생계를 위해 호랑이를 잡으러 이곳저곳 돌아다녔고 그 가죽을 팔며 연명했다고 했어.”
동현은 잠시 기억을 되집어 보고는 말을 이어 나갔다.
“타 지역을 돌아다니며 가죽을 팔았는데 자신의 출신이 허도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신용이 없다며 그 가죽을 사주려는 사람이 많이 없었다고 하지. 특히 처음 호랑이를 잡고 가죽을 팔 때 정말 고생을 했다고 하더군.”
“이제 알겠습니다. 장군께서 허손을 왜 선택하셨는지 말입니다. 그만큼 인내심이 있고 또 결단력도 있는 자이니 맡기신 것이군요.”
“맞아. 허손은 참아야 할 때와 나서야 할 때를 정확하게 아는 녀석이야. 지략이 뛰어나거나 하지는 않지만 최소한 병법의 기본은 알지. 그걸 응용하는 건 내가 곁에 두면서 가르쳐 주면 된다. 그래서 내가 이번에 그에게 모든 걸 맡긴 것이야.”
“음… 알겠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이유가 더 있겠지요?”
“하하하! 역시… 알고 있었구만.”
“물론입니다. 수나라 전역에 장군의 상단이 있으니 장군의 정체가 함부로 들통이 나서는 안 되지요. 그래서 이 북평성을 칠 때 장군의 정체를 감추고자 가명을 썼던 것이 아닙니까.”
동현은 사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맞네. 역시 자네 눈은 속일 수 없군.”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는 못할 겁니다. 결정적으로… 이번에 이 북평성의 귀족들을 때려잡을 때 장군의 이름을 스스로 밝히지 않았습니까? 그 사람들을 잡을 때 새어 나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물론 그렇지. 하지만 나는 그것을 의도한 것이네.”
“예? 의도하셨다고요?”
“그렇다네. 수나라에서는 내가 고구려에 임관했을 것이라고는 아직 파악도 안 된 상황이야. 그만큼 우리 고구려를 얕보고 장수들에 관련된 첩보에 대해 게을리 하고 있었던 것이지. 이런 상황에 이런 내 이름을 흘리고 또 다른 소문까지 흘리면 저들은 또 다시 크게 혼란이 일어날 것이네.”
“또 다른 소문이라 하시면…….”
“사칭!”
“……!”
“누군가 내 이름을 사칭하여 장군 행세를 하고 있다고 소문을 내는 것이지. 처음엔 나를 의심하다가도 그 소문이 들리면 나에 대한 의심을 접을 것이다. 그리고 우문술과 우중문이 나를 철썩 같이 믿고 있으니 그들이 나를 도울 것이야.”
사훈은 동현의 대답에 혀를 내두른다.
“벌써 거기까지 손을 써두셨군요. 장군의 계책은 제가 감히 따를 수 없습니다.”
“별 말을… 나도 사람이야. 실수를 하지. 언제든지 자네의 의견을 말해 주게.”
“그리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래서… 한 마디만 더 여쭈어 보고자 합니다.”
“말해 보게.”
“장손성은 어떻게 하실 것입니까? 우리가 이 고구려로 넘어오면서 세작에 대한 감시가 없어졌다고는 하나 그의 영향력은 수나라에서 엄청납니다. 만약 장군의 소문이 들리면 그는 분명 국경을 넘어 장군에게 세작을 심을 것이 분명할 것이며 이 소문이 밝혀질 수도 있습니다.”
동현은 사훈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곤 말을 꺼냈다.
“음… 일리 있는 말이야. 사실 나도 그 생각을 하고 있었어. 일단 장손성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야겠지.”
“그럴만한 수가 있으십니까?”
“딱 한 가지가 있네.”
“그게 무엇입니까?”
“장손성을 황제인 양견이 다른 곳으로 보내는 것이지.”
“다른 곳이라면……?”
“그는 돌궐을 다루는데 있어서 정통했다고 들었다. 장손성 때문에 돌궐이 동돌궐과 서돌궐로 나누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사훈은 동현의 무슨 말을 할지 짐작한 듯 옅은 미소를 지으며 묻는다.
“혹시… 둘 중 한 나라가 수나라를 공격 할 생각이 있는 겁니까?”
“확실치 않지만 그럴 것 같다. 서돌궐의 가한인 달두가한이 수나라를 정말로 공격을 기세니 말이야.”
“하지만 제가 알기로 돌궐이 분열된 이후 서돌궐은 내부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군사를 일으킬까요?”
“둘로 나뉘어진 돌궐을 하나로 합하고자 하는 마음이 매우 강한 사람이야. 나는 지금까지 수나라는 물론이고 동동궐과 서돌궐에도 세작들을 보내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살펴보게 했지. 그것을 분석한 결과… 달두가한은 내부적인 불만을 어느 정도 눌러놓기만 하면 바로 움직일 것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동현은 잠시 숨을 고르고는 말을 이어 나갔다.
“그 자는 돌궐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야. 통일만 하면 내부의 불만도 금세 잠재울 수 있다는 생각도 있는 사람이지.”
“그렇군요. 그럼 서돌궐을 어떻게 움직이실 생각이십니까?”
“이미 움직였을 걸세. 수나라가 이렇게 우리와 전쟁이 터졌을 때 국력이 수나라에 부족한 우리는 돌궐이 꼭 필요한 존재다. 아마 막리지께서 읽고 계셨을 것이야.”
“그 말씀은… 막리지 어른께서 직접 움직이셨다는 겁니까?”
“그럴 가능성이 매우 크지.”
“그렇다면 막리지께서 나서신 그 일의 여부에 따라 우리의 움직임이 자유로워질지 결정이 되겠군요.”
동현은 사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맞네. 그것이 아주 중요한 일이지.”
“일단 그 일이 틀어질 때를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옳은 말일세. 하지만 그 일은 나중의 일이니 제쳐 두도록 하지. 지금은 이 일에 집중을 해야 해. 저들의 동태를 면밀하게 살피면서 밑에 사람들을 단속하도록 해.”
“예. 장군!”
동현과 사훈은 그렇게 다음 계획에 대해 어느 정도 계획을 세웠다.
그때 허손은 동현과 사훈의 예상대로 수하 장수들에게 시달리고 있었다.
“총사! 저들의 수가 우리들보다 더 적은데 그냥 성문을 열고 나가 치면 안 됩니까?”
“그렇습니다! 총사! 저 정도 병력쯤은 우리가 다 쓸어버릴 수 있습니다!”
수하 장수들의 말에 허손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한다.
“장군의 말씀을 잊었는가? 저들이 도발하는 것이니 대응하지 말라고 말이야. 만약 여기서 명령을 어기면 나는 물론이고 너희들 모두 가차 없이 즉결처분이 된다. 알고 있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명령을 어겨도 불문율이라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저희가 오히려 공을 세운다면 그 공은 저희들 것이 되는 것입니다!”
“배짱은 좋군. 하지만 절대 안 된다. 첫째는 장군께서 내린 명령 때문이며, 둘째는 내가 보아도 저들은 우리를 끌어들이기 위한 계책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의도적으로 저들은 우리에게 욕을 하고 있어!”
“저희도 그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
“성문 밖에 있는 군사들만 몰아내면 되지 않겠습니까? 저들을 추격해서 들어가자는 것이 아닙니다. 총사!”
“그렇습니다! 총사! 그러니 한 번만…….”
“어허! 아니 된다고 하였어! 얼른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게!! 얼른!!”
허손의 단호한 말에 부장들은 불만을 잔뜩 품은 표정으로 허손의 곁을 벗어났다.
그 부장들은 허손의 곁을 벗어나며 잠시 이야기를 나눈다.
“저 수나라 군사 1만은 별 것도 아닌 군대인데 장군은 물론이고 모두가 너무 수나라 군을 두려워하는 듯합니다! 이래서는 아니 되오!”
“나도 같은 생각이오. 오히려 지금이 쳐야 할 적기인데…….”
한 수하 장수가 이야기를 나누다 잠시 생각을 하더니 말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떻겠소?”
“……?”
“야밤을 틈타 우리 밑에 있는 군사들만 데리고 저 수나라 군을 기습적으로 공격하는 것이오. 내가 오늘 북평성의 성문을 담당하고 있으니 나가는건 문제가 되지 않소!”
“오! 그거 좋은 생각이구려! 그렇게 해서 우리가 공을 세우면 장군님이나 총사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할 것이오!”
그렇게 허손 밑에 있던 부장들은 명령을 어기고 수나라 군사들을 기습 할 생각을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