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화 고구려, 수나라 사이 감도는 전운
강이식 대장군이 수나라에 대한 각오를 다지고 있을 때 한나라의 양량은 자신의 형인 양광의 말을 전령으로부터 전해 듣고 있었다.
“형님이 그러셨다고?”
“예. 진왕 전하께서 경거망동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군량이 다 와서 움직여도 늦지 않으니 차근차근 준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형님께서는 왜 그리 말씀하신단 말인가? 빨리 저 고구려를 해치워야 하는데 말이야.”
“진왕 전하께서는 고구려를 결코 만만히 보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흥! 그깟 놈들을 만만하게 보지 말라고? 형님께서는 겁이 나신 것인가?”
양량이 형인 양광을 비웃자 옆에 있던 왕세적이 말한다.
“진왕 전하께서 그러실 리가 있겠습니까? 한왕 전하께서도 아시다시피 진왕 전하께서는 진나라를 무너뜨린 사람입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다만 지금 말을 들어보니 진나라보다 고구려를 조심하라는 것처럼 들리지 않느냐? 진나라에 비하면 고구려는 작은 나라야! 그런데 그런 나라를 조심하라니… 형님의 말씀을 이해 할 수가 없구나.”
“한왕 전하. 그래도 진왕 전하께서 하신 말씀이시니 조금은 듣는 척이라도 하시지요. 한왕 전하께서도 아시겠지만 진왕 전하에 대한 황제 폐하의 신임은 엄청납니다.”
“젠장… 어쩔 수 없군. 군을 정비한 후에 사흘 뒤 출발한다. 이 정도라면 형님의 말씀을 조금이라도 들은 척 한 것이니 이해해 주시겠지.”
“잘 생각하셨습니다. 전하.”
그렇게 양량은 양광의 말을 듣고 어쩔 수 없이 며칠간 영주성에서 대기를 하기로 했다.
북평성에 대한 보고와 양광에 대한 말로 인해 씩씩대고 있는 양량.
그런 양량을 옆에서 또 다른 누군가 걱정스럽다는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 인물은 바로 고경.
수나라 황제 양견에게는 절대적인 신임을 받으며 재상의 자리에 있고 신하로서도 가장 높은 벼슬인 좌복야 자리에 있다고 하지만 이번 전쟁에서는 완전히 찬밥 신세였다.
앞서 말했다시피 양량은 고경이 자신이 하는 일마다 태클을 걸기에 그를 좋아하지 않았고 그래서 그런지 그는 고경이 말하는 조언을 모두 거부하고 있었다.
고경은 그런 양량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큰일이다. 북평성이 점령되고 임유관이 그렇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후 군의 사기가 많이 떨어졌어. 이렇게 되면 우리가 요동성까지 가 고구려 군을 공격한다고 해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거기다 조정에서 보내는 군량도 요동성에 우리가 도착한 것보다 훨씬 뒤에 올 것이 아닌가?”
고경은 무심결에 혼잣말을 뱉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요동성을 빠르게 함락을 시켜야 한다는 것인데 그러기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차라리 조정에서 보내는 군량을 이 영주성에서 아예 기다렸다가 움직이는 것이 나아. 충분히 군사들을 먹이고 독려해서 군의 사기를 회복시킨 후에 말이야.’
생각을 깊이 하는 고경.
‘하지만… 한왕 전하께서는 성정이 불 같으신 분이다. 그렇게 하실 리가 없어. 하아… 이를 어찌한단 말인가?’
고경은 자신이 아무리 조언을 해줘도 듣지 않는 양량을 보며 연신 한숨을 쉬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양량은 고구려 때문에 화가 난다며 영주성에서 술을 퍼마시고 있었다.
사흘 뒤… 양량은 영주성에서 요동성으로 군을 출발시키려 했다.
그런 양량을 보며 고경은 다급하게 조언한다.
“한왕 전하. 차라리 요동성을 치시지 마시고 북평성을 쳐서 되찾으시옵소서. 그래야 우리가 요동성도 바로 칠 수 있습니다. 군량의 수급부터 원활하게 되야 하지 않습니까?”
“좌복야! 못 들었는가? 조정에서 북평성에 군사를 보낸다고 했어! 그곳의 고구려 군이 나오지 못하게 묶는다고 말이야! 그들을 묶어두면 군량의 수급에도 아무 문제가 없지 않겠나?! 걱정하지 말게!”
“하오나…….”
“어허! 왜 이리 말이 많아? 그리고 내가 말하지 않았나? 자네는 닥치고 있으라고!”
“…….”
“잔말 말고 출정 준비나 하게! 자네를 떼놓고 가고 싶지만 황제 폐하의 황명이 있으니 그럴 수는 없으니 말이야!”
“알겠습니다…….”
그렇게 고경의 의견은 또 한 번 묵살을 당했고 양량은 그런 고경을 비웃으며 군을 요동성으로 출발시켰다.
* * *
한편, 수나라 조정인 장안에서는 양견이 소식을 듣고는 분노하고 있었다.
“뭐라? 고구려가 북평성을 점령해?!”
“예! 거기다 임유관에 있는 많은 식량들이 불에 탔다고 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무기고도 불에 탔으며… 화살은 고구려 군이 약탈을 해갔다 합니다.”
“이 고구려 놈들… 대체! 고구려 놈들이 그렇게 올 동안 임유관과 북평성을 지키는 놈들은 무엇을 한 것이야?!”
“그것이… 임유관의 경우에는 한왕 전하께서 나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바로 기습을 당했다고 하옵고… 북평성의 경우에는 그 안에 고구려 군이 미리 잠입해 있다가 불을 질러 안과 밖으로 내응했다 합니다.”
“뭐라? 잠입이라 했느냐?”
“예. 폐하. 어떻게 잠입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잠입한 고구려 군으로 인해 북평성을 점령당했다 합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한왕 전하께 보내려던 군량도 모두 고구려 군에 빼앗겼다고 합니다.”
“뭐라? 이 고구려 놈들! 이놈들이 감히! 양량은 대체! 사태가 이렇게 될 때까지 무엇하고 있었던 것이야?! 그리고 그의 뒤를 봐주고 있는 광이는 무엇을 하고 있고?!”
“저… 그게…….”
황문시랑(수나라에서 황제를 보필하는 벼슬) 배구가 망설이자 수 황제 양견이 크게 소리치며 묻는다.
“또 무언가 말할 것이 있는가? 얼른 말하라!”
“예. 그것이… 한왕 전하께서 주변의 조언을 듣지 않는다고…….”
“뭐라? 그것이 무슨 소리야?!”
“좌복야 고경이 말하는 조언을 화를 내며 물리친다는 보고가 있었고… 거기다 진왕 전하의 조언도 한왕 전하께서 제대로 듣지를 않는다 합니다.”
“이… 이놈이! 이놈이 끝내 일을 망치는구나! 군사들을 다 죽일 셈인가?!”
수 황제 양견이 분노하자 곁에 있던 수군 총관 주라후가 말한다.
“폐하. 그래도 10만의 군사입니다. 그리고 아직 전군이 전쟁을 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뒤이어서 후속군인 20만의 군사도 탁군에서 출발하였으니 말입니다. 도합 30만 대군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설사 육군에서 고구려 군을 제대로 무찌르지 못하더라도 저 수군 총관 주라후가 반드시 고구려의 항복을 받아내겠나이다!”
“그래! 마땅히 그래야 할 것이다! 하지만… 북평성과 임유관의 일을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다! 그곳은 고구려가 우리 수나라로 오는 길목과 동시에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야. 양량의 군사들을 돌려서 북평성을 되찾는 것이 먼저 해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폐하. 이미 한왕 전하께서는 요동성으로 출진을 하기로 하셨습니다. 그러니 차라리 이 조정에서 군사들을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군사를 보낸다?”
“예. 폐하. 군사 수가 많지 않더라도 북평성을 일단 묶어 두시옵소서. 그리고 요동성을 점령하게 하는 것입니다. 요동성만 점령이 되면 북평성은 고립된 것이나 마찬가지니 그 때 저희가 북평성을 되찾으면 될 일입니다.”
“그래. 그것이 옳은 듯 싶구나. 하아… 대체 어쩌다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냐? 어쩌다… 지금 당장 북평성으로 출진시킬 군사를 준비하라!”
“예! 폐하! 일단 1만의 군사를 준비시키겠습니다.”
“그리하라!”
그렇게 모든 신하들이 대전을 나오는데 황문시랑 배구가 주라후에게 묻는다.
“최대한 빠르게 군사를 준비해야 할 것 같소. 장군.”
“걱정 마십시오. 이미 전선은 대부분 준비가 되었소. 아… 참! 그나저나 추가로 한왕 전하께 갈 육군을 누가 이끌고 갈지는 폐하께 여쭈어 보았습니까?”
“그렇소. 우문술 우위대장군께서 남은 육군을 이끌고 지원을 가실 것으로 황명을 내리셨소.”
“우문술 대장군께서 말입니까?”
“그렇소. 왜 그러시오? 문제가 있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육군의 속도와 수군의 속도가 맞아야 동시에 고구려로 갈 수 있고 고구려가 곤란을 겪을 테니 그것에 맞추어 같이 가려 했던 것 뿐입니다.”
“하긴… 그건 그렇소. 아무튼 수고해주시오. 장군.”
그렇게 주라후는 배구의 말을 듣고 헤어지고는 자신이 맡은 바 직무를 다하기 위해 배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배들을 꼼꼼히 둘러보았다.
“준비는 어떻게 되어 가느냐?”
“예! 빠르면 사흘 뒤에 출항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 생각보다 준비가 빠르군.”
“예전부터 준비를 해두라고 말씀하셔서 미리 준비를 해두었습니다.”
“잘했다. 황제 폐하께서 황명을 내리셨으니 속도를 높이는 것이 좋지. 사흘 뒤에 바로 출항할 수 있도록 차질 없이 준비하도록 해!”
“예! 장군!”
그렇게 수나라는 고구려를 본격적으로 치기 위해 착착 준비를 해나가고 있었다.
그 시기 동현은 북평성 안의 민심을 안정시키면서 북평성의 성벽을 보수토록 하고 있었다.
그리고 북평성 내에 있던 소와 말을 이용해 치즈를 생산해 식량을 비축하려 했다.
“성벽 보수는 어떻게 됐나?”
“예. 차질 없이 진행 중입니다.”
“되도록이면 속도를 빠르게 높여야 해. 백암성에서 이곳에 올 때 장인들을 데리고 왔으니 그들에게는 신속하게 거중기를 만들라고 해. 그래야 작업의 속도를 높일 수 있다.”
“걱정 마십시오. 이미 일러두었습니다.”
“성 내의 민심은 어떤가?”
“처음에는 우리를 두려워하였지만 유리걸식하는 백성들을 찾아 식량을 주고 문제가 있는 사항들을 들어주자 빠르게 안정되어 가고 있습니다.”
“다행이군. 다만 걱정인 것은 현재 비축된 식량이야. 우리 군사들도 먹여야 하니 말이야. 백성들에게 베풀고도 충분한가?”
“예. 장군. 10만의 군사가 무려 3달을 먹을 양이었습니다. 저희는 숫자가 적으니 훨씬 오랫동안 먹을 수 있을 것이며 그 식량으로 백성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그래. 그건 나도 안다. 하지만 언젠가는 모두 떨어지고 마는 것. 그러니 치즈를 만드는 속도를 더욱 높여야 한다. 그리고 토지가 괜찮을 땅을 찾아서 개간을 하도록 해. 최대한 땅을 늘려야 훗날 우리가 편해진다. 알겠나?”
“알겠습니다. 장군. 모두 제가 지시를 해두었으니 염려 마십시오.”
동현은 사훈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사훈은 여전히 할 말이 남았는지 동현에게 묻는다.
“그런데 장군.”
“응?”
“일전에 만들고 있던 것에 대해서는 말씀을 안 해주실 것입니까? 예전에 말씀하시기를 전쟁 때 때가 되면 그것을 공개한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정말 궁금해 미치겠습니다.”
“하하하! 그래. 그랬지. 하지만 아직 본격적인 전쟁이 아니지 않는가? 자네도 말했다시피 수나라는 꼭 대대적으로 쳐들어 올 것이야. 그 때 내가 말한 것을 꼭 써먹을 것이다. 그러니 사훈. 조금만 참아라.”
“음… 알겠습니다.”
동현이 그렇게 말을 하는 그 때… 한 전령이 와 군례를 올리고는 보고를 한다.
“양량이 요동성으로 출발했습니다!”
“뭐라? 수나라 조정에서 군량도 받지 않고?”
“그렇습니다! 장군!”
“그렇다는 건… 자기가 먼저 요동성을 건너서 공을 세우겠다는 속셈이로군.”
동현의 말에 사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장군의 말씀이 옳습니다. 장군께서 말씀하셨듯이 양량은 멧돼지와도 같은 자이니 하루라도 빨리 요동성으로 출발한 것입니다. 그저 자기 공을 세우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렇지. 그리고 양량이가 이 북평성으로 오지 않고 요동성으로 향했으니 이 북평성으로 올 리는 없군. 시간을 조금이나마 벌었어.”
“하지만 수나라 조정에서 군사를 보내지 않겠습니까?”
“맞아. 그러나 분명 얼마 보내지 못할 거야. 내 예상대로라면 군사 1~2만이겠지. 그리고 그1~2만을 이용해 우리 북평성으로 와서 군사가 많은 척 거짓 위세를 부릴 것이다.”
“과연… 그렇다면 바로 치실 생각이십니까?”
“아니야. 일단 지휘관이 누구인지부터 아는 것이 중요하지.”
“움직이더라도 지휘관이 누군지 완전히 파악한 후 움직이시겠다는 거군요.”
“맞네. 지휘관의 성향을 알아둬야 군사를 움직이기 쉬우니 말일세.”
“옳은 말씀입니다. 현재 저 수나라에 있는 우리 고구려 상인들이 많으니 그들을 통해서 정보를 캐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부탁하지.”
동현은 사훈 덕분에 북평성의 일을 더욱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지력도 높고 눈치도 빠른 사훈 덕분에 동현은 굉장히 만족감을 느꼈고 지력이 높아서 그런지 군사적인 문제에 관해서도 서로 이야기가 잘 통했다.
동현과 사훈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북평성 주변의 산에서 검은색 옷을 입은 남자들이 북평성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산에 서 있었다.
“이제 다 왔군. 들어가자.”
“예!”
그렇게 남자들은 북평성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