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화 동현, 박출을 수하로 받아들이고 사훈의 조언을 듣다.
동현은 백암성에 오자마자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귀족들을 전부 잡아들일 생각으로 수하들에게 빠르게 명령을 내렸다.
그 소식을 들은 귀족들은…….
“뭐라? 성문이 봉쇄 되었다고?”
“예! 주인어른!”
“어째서?”
“수나라가 쳐들어오고 있다고 합니다!”
“뭐라? 수나라가?”
“예! 주인어른! 지금 저잣거리에 소문이 파다합니다!”
“제… 젠장! 안 되겠다. 얼른 귀중품이라도 먼저 챙겨놓거라! 전쟁이 일어나 불리해지면 바로 도망칠 수 있도록 말이야!”
“예! 주인어른!”
귀족들은 동현의 명령 하에 흘린 거짓 소문들에 보기 좋게 속아 넘어가기 시작했다.
도망갈 생각 밖에 하지 않는 귀족들… 그래서 그런지 자신들이 정예로 훈련을 시켰다는 사병들도 우왕좌왕 하며 움직일 뿐이었다.
“수나라가 쳐들어온다고?”
“그래. 좀 전에 들었어.”
“그 녀석들 수가 엄청 많다고 하던데?”
“현재 오는 수만 20만이래.”
“뭐? 2… 20만?”
“응. 그러니까 주인어른이 저러시지.”
“젠장… 이렇게 갑자기 오냐. 방비도 제대로 안 되어 있을 텐데…….”
“하지만 난 좀 다르게 생각해.”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 주인어른을 비롯한 여러 귀족들이 힘을 모아서 백암성에 쳐들어오는 수나라 군대에 맞선다면 충분히 상대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
“하지만 수가 20만이야. 모아도 막을 수가 있을까?”
“우리는 예전에도 저 중원의 나라들이랑 많이 싸웠어. 그리고 그것을 막아내고 오히려 영토를 넓힌 적도 많았지. 그런데 지금은 도망칠 생각만 하고 있으니…….”
“그 때 그 나라들이랑 지금 수나라랑 같냐? 지금 수나라는 통일 왕조고 국력도 어마어마하다고. 너도 알잖아?”
“그건 그렇지. 하지만 붙어보지 않고는 모르는 거잖아.”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우리는 주인어른 말만 따르면 돼. 얼른 움직이자.”
귀족의 사병들은 이런 이야기를 나누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때 동현은 백암성을 대리했던 박출과 함께 빠르게 움직여 주요 귀족들의 집을 기습 공격하여 잡아들이고 있었다.
“백성들의 고혈을 함부로 빨아먹는 귀족들이다! 귀족들을 모두 잡아들여라! 그리고 그들의 사병들 중 저항하는 놈들은 모두 죽여라! 단!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는 이들은 살려주고 포박만 해두도록! 계속 공격해라!”
동현의 명령에 동현이 키운 호위무사 출신 군사들이 제일 앞장을 섰고 그 뒤를 백암성 정예가 뒤를 따랐다.
그리고 정예는 아니지만 기습이 성공하여 기세를 탄 백암성의 군사들까지 합류하여 같이 기습 공격을 하자 귀족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다.
“이… 이것이 대체 무슨 일이냐?”
“큰일입니다! 오늘 부임한 신임 성주가 우리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뭐라? 대… 대체 왜?”
“그 원인은 잘 모르겠습니다.”
“제기랄… 일단 막아라! 막고 나서 생각하자!”
“피하셔야 합니다! 막을 수가 없습니다! 저들은 애초부터 작정하고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수도 너무 많고 말입니다!”
“이런…….”
“그리고 우리는 수나라가 쳐들어온다는 말을 듣고 빠르게 다른 곳으로 뜰 생각만 했지 방어에 대한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속수무책입니다!”
“크윽…….”
“제가 아는 비밀통로가 있으니 그곳으로… 커억!”
“……!”
“잡아라!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모든 귀족들을 잡아들여라!”
귀족들은 갑작스러운 기습공격에 도망치지도 못하고 계속해서 사로잡힌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장군. 모든 상황이 종료 되었습니다.”
“으음… 그래. 도망친 귀족들은?”
“예. 귀족들은 전부 다 잡아들였습니다. 다만…….”
“……?”
“귀족들 밑에 있던 사병들은 꽤 많이 도망을 쳤습니다.”
“그건 상관없다. 그들은 귀족들의 명령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움직였으니 그들의 죄를 용서한다는 방을 붙여두면 다시 돌아올 것이야.”
“현명하십니다. 장군. 그럼 그렇게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그래. 부탁한다. 사훈.”
“예. 장군.”
동현이 사훈에게 그렇게 일을 맡기는 그 때… 돌석비가 누군가의 목을 가지고 와 바치며 군례를 올린다.
“그 자는 박출의 심복이군.”
“예! 장군! 장군의 말씀이 맞았습니다. 이 자는 귀족들과 내통하고 있던 자였습니다.”
“그래?”
“예. 소인을 자꾸 떨어뜨려 놓으려 하기에 일부러 제가 그의 말을 듣는 척 하며 아주 잠깐 떨어졌었는데 역시나 그 자가 성문 쪽에 있는 군사들 쪽으로 가 재물을 건네며 문을 열게 하고 귀족들에게 소식을 알리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길로 저는 그들에게 달려들었고 모두 목을 베어 조치했습니다.”
“아주 잘했다. 돌석비. 큰 공을 세웠구나. 이보게 박출.”
“예? 예… 장군.”
“내가 뭐라고 했나? 의심을 해봐야 한다고 했었지?”
“그… 그렇습니다. 장군. 장군의 혜안이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대체… 어떻게 아신 것입니까? 그 자가 귀족들과 한 패라는 것 말입니다.”
“아주 쉬운 일이다. 보통 성을 다스리는데 있어 겪는 어려움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그 중 첫째가 흉년이나 홍수 등 자연 재해로 인한 것이고, 둘째는 바로 사람에 의한 것이지. 그 사람이 성을 얼마나 잘 살피느냐에 따라 백성들이 풍족하게 잘 먹고 잘 사는지 결정이 된다.”
“예.”
“내가 본 자네는 이 백암성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상황이야. 그런데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었어. 그렇다면 그 원인은 뻔한 것 아니겠나?”
박출은 동현의 말에 고개를 숙이며 대답한다.
“대단하십니다. 소인… 오늘 큰 것을 하나 배웠습니다.”
“자네가 누구보다도 백성들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아네. 물론 그 목적은 중앙으로 진출하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겠지만 말이야.”
동현의 말에 박출은 속으로 뜨끔했지만 이내 표정을 고치며 고개를 숙인다.
그런 박출을 보며 동현은 옅은 미소와 함께 말한다.
“자네가 무엇을 목적으로 했던 간에 나는 신경 쓰지 않네. 우리 고구려에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야. 그래도 이거 하나는 알려줘야겠군. 성을 다스리는데 있어서 꼭 지켜야 할 것 말이야.”
“그것이 무엇입니까?”
“백성. 백성이 있어야 이 나라가 유지될 수 있다는 것. 이것만 생각하게. 백성이 있어서 우리 고구려에 세금이 걷히는 것이고 군사들을 유지할 수 있으며 앞으로 더 큰 나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것일세. 이것만 지켜서 잘 행동한다면 자네는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을 것이야.”
“소인… 장군의 말씀을 명심하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또 하나 말해줄 것이 있어.”
“……?”
“자네는 스스로 움직여서 문제점을 알아내어 해결하려는 사람이지. 아주 좋아. 한 성을 다스리는 사람으로서 솔선수범하니 말이야.”
“과찬이십니다.”
“하지만 너무 자네 혼자만 움직인다는 느낌이 들어.”
“예? 그것이 무슨 말씀이신지…….”
박출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묻자 동현이 바로 대답한다.
“생각해보게. 이번 일에 대해서 말이야. 자네는 모든 것을 직접 알아내려 했으니 그것이 잘 되지 않아서 수하들에게 명령을 했어. 그런데 그 수하들은 귀족들과 한 패였지. 이것이 무엇을 뜻한다고 보나?”
“으음…….”
“자네가 모든 일을 잘 풀려면 자네 스스로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주변 사람들도 중요하다는 것일세. 다시 말해서… 여러 사람들과 교류를 해보고 능력을 파악해 활용하라는 말이야. 자네는 그게 부족해 보여.”
“아… 제가 다른 사람들과 종종 왕래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그렇군. 자네… 대게 업무 시간 이외에는 혼자 수련을 하거나 책만 읽지?”
“그… 그렇습니다.”
“역시… 그러니 주변 사람들 능력을 빨리 파악할 수가 있나?”
“그런 능력에 대해서는 보고서를 통해…….”
“보고서로는 한계가 있어. 그리고 그들의 겉으로 드러난 표면적인 모습만 올라오는 것이 대부분이지. 정말 세밀하게 관찰한 사람의 보고서가 아니라면 말이야.”
“…….”
“직접 부딪쳐보게. 그리고 자주 사람들이랑 만나. 자네도 언젠가 중앙으로 진출하여 일을 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러려면 수하들의 능력을 빨리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해. 그래야 적재적소에 배치를 하고 일을 차질 없이 진행할 수 있으니 말이야.”
박출은 동현의 말에 고개를 숙이며 연신 대답한다.
“말씀 감사합니다. 장군. 새겨듣겠습니다.”
“그래. 자네 태도가 아주 마음에 드는군. 그래서 말인데…….”
“……?”
“내가 태왕 폐하께 자네를 외평으로 추천 하도록 하겠네. 그러니 여기서 계속 나를 보좌하도록 해줘.”
“외평이라하면… 지방 관료들을 규찰하는 관직이 아닙니까?”
“잘 아는군. 일단 여기서 자네도 공을 쌓아야 일단 중앙으로 진출할 것이 아닌가?”
“시…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장군. 소인… 장군을 따르겠습니다.”
박출은 넙죽 절까지 하며 고마워한다. 동현은 그런 박출을 일으키며 말한다.
“내가 들으니 그대의 관직이 고작 가라달이라고 들었네. 가라달이라는 관직이 무엇인가? 그냥 작은 성을 다스리는 성주일 뿐이야. 그런 자네가 이런 큰 성을 잠시나마 대리이긴 하지만 맡았다는 것은 이 조정에서 그만큼 자네에게 거는 기대가 있기 때문일세.”
“예? 마땅한 인물이 없어서 제게 이 백암성을 대리로 맡긴 것이 아닙니까?”
“자네는 그렇게 느꼈나보군. 하지만 나는 다르다네. 나라에서 자네에게 대리로나마 이 성을 임시로 맡아달라고 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
“나는 사람은 저마다 쓸모가 있다고 여기는 사람 중 하나야. 아… 물론 그 능력을 악용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말이지. 앞으로 잘 부탁하네. 자네가 임시로 맡을 동안 일했던 것들을 내게 모두 알려주고 인수인계 해주면서 조언을 해주게. 나는 여러 사람의 말을 전부 경청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 말이야.”
“소인 박출… 성심을 다하여 장군을 보좌하겠습니다.”
“허허허. 그래. 그나저나 저 놈들을 어떻게 처리한다?”
“일단 저들의 죄상을 낱낱이 파헤치는 것이 우선 아니겠습니까? 백성들로부터 피해규모를 파악해보고 말입니다.”
“좋아. 그 일을 자네에게 맡기겠네. 해줄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장군! 맡겨주십시오!”
박출은 그렇게 명령을 받자마자 빠르게 움직인다.
그 모습을 옆에서 본 사훈이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장군께서 사람을 다루는 솜씨가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별 말을… 자네만 하겠는가? 아무튼 이제 이 백암성을 발전시키는데 별 문제가 없을 것 같군. 이제 모든 걸림돌이 사라졌다고 생각되는데?”
“그렇습니다. 다만 장군.”
“……?”
“이번 일에 대해 잡아들인 귀족들을 전부 다 죽이지는 마십시오.”
“음? 어째서?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먹은 이들인데 전부 죽여야지.”
“그 죄가 큰사람만 죽이고 죄가 적거나 협박에 의해 따른 사람들은 죄를 경감시켜주고 그 죄를 공으로 갚게 함이 옳습니다.”
“어째서?”
“이 백암성은 예로부터 귀족들이 꽤 오랜 기간 장악하고 있던 곳입니다. 그런데 그곳을 우리가 오늘 모두 잡아들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백암성 바깥에 거주하는 귀족들에게도 분명 소식이 흘러가겠지요. 그렇다면 그 귀족들의 반응이 어떻겠습니까?”
“이런… 내가 미처 생각을 못 했군. 성 밖에 거주하고 있는 귀족들을 간과하고 있었어.”
동현의 말에 사훈은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이제라도 아셨으니 괜찮습니다. 장군.”
“으음…….”
“이 소식이 전해지면 분명 백암성 밖에 있는 귀족들은 장군의 말을 따르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소문이 주변 성들에 퍼지겠지요. 이렇게 되면 훗날 전쟁을 할 때 귀족들이 큰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그들이 만약 수나라 놈들과 내통이라도 하는 날에는…….”
“그래. 아주 큰 일이 벌어지겠지.”
“맞습니다. 그러니 강경책과 유화책을 동시에 쓰셔야 합니다.”
“그래. 옳은 말이야…….”
“연회를 열어서 초대를 하십시오. 그리고 그들의 불안감을 해소시켜 주는 것이 옳습니다.”
“만약 연회를 열었는데 오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면?”
“직접 찾아가십시오.”
“직접 찾아가라…….”
“예. 이 백암성은 이제 장군의 것입니다. 그러려면 이 백암성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장군을 따르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 첫 걸음이 귀족들에게 강경책과 함께 유화책을 쓰는 것이지요.”
“…….”
“결코 굴욕적인 것이 아닙니다. 장군. 훗날을 생각하면 더욱 크게 돌아올 것이니 걱정 마십시오. 제가 장군을 그렇게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동현은 사훈의 말을 듣고 한 동안 말이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동현의 사훈의 말에 동의를 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