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화 영양태왕, 동현이 관직에 들어온 후 첫 임무를 맡기다.
전령이 말을 타고 달려온 후 을지문덕에게 군례를 올리며 말한다.
“대모달! 보고 드립니다!”
“말하라.”
“근위장께서 대모달께서 명령하신 임무를 모두 완수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알았다. 지금 근위장은 어디 있나?”
“예. 태왕 폐하 곁을 오랫동안 비우면 안 된다고 해서 귀족들을 같이 압송한 뒤 다시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실 것 같습니다.”
“음… 근위장에게 가서 전하라. 우리도 빨리 합류할 테니 조금만 우리를 기다려 달라고 말이다. 지금 바로 가거라.”
“예! 대모달!”
을지문덕의 말에 전령은 다시 한 번 말을 타고 근위장에게로 달려간다.
전령의 모습을 확인한 을지문덕은 옆에 있던 동현에게 말한다.
“우리도 돌아가자. 조금은 빠르게 길을 재촉해야겠다. 근위장이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야 하니 말이다.”
“예. 대모달.”
을지문덕은 그렇게 동현과 함께 빠르게 근위장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근위장. 고생 많았네.”
“아닙니다. 그나저나 좀 전에 보았습니다. 남부욕살이 압송 되더군요.”
“그래…….”
“마음이 많이 안 좋으시겠습니다.”
“후우… 그 이야기는 그만하도록 하세. 동현이에게도 그 이야기를 해서 말이야.”
“알겠습니다. 대모달.”
“그나저나… 서부욕살은 자신의 죄를 뉘우치던가?”
“그럴리가요. 서부욕살과 남부욕살 간의 성격이 다르시다는 걸 잘 아시지 않습니까?”
“후후후… 그렇지. 내가 괜한 걸 물어봤군. 아마도 그 자는… 절대로 자신이 하지 않았다고 발뺌을 하면서 풀려나면 우리를 가만두려 하지 않을 테지. 그러고도 남을 자니 말이야.”
“그렇습니다. 오히려 잘 되었습니다. 우리 고구려에 해가 되는 사람들을 제거 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래. 그건 좋은 일이지. 하지만 너무 많이 죽지는 않았으면 하네…….”
“예? 그것이 무슨 말씀이십니까?”
“너무 귀족들을 누르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일세. 다시 말해서 다독거릴 줄도 알아야 한다는 말이지. 근래에 귀족들을 너무 누르기만 해서 말이야.”
을지문덕의 말에 동현도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하긴 그렇습니다. 너무 강하면 부러지는 법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일에 대해서는 주동자와 그 가족들을 제외한 친인척의 경우에는 참형이 아니라 노비로 강등시키는 방안으로 생각해 보아야 할 듯 합니다.”
“으음… 그래. 그렇겠지. 비리를 주도한 그 선에서 참형을 주는 것이 가장 좋아. 하지만…….”
“……?”
“노비로 사는 것이 그들 입장에서는 더욱 더 비참할 수 있네. 자네도 알지 않은가? 남부욕살이 하던 말 말이야.”
“아… 예. 잠시 그 말을 잊고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은 무슨… 그저 난 아까 남부욕살이 하던 말을 잊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뿐이네.”
“예. 대모달.”
“후우… 참형을 주든 노비로 강등을 시키든… 그들에게 있어서 이런 조치는 정말 가혹한 조치지. 자네가 말한 대로 한다고 해도 그들의 불만을 더욱 키울 뿐이야. 어쩐다? 누르기만 해서는 안 되는데…….”
을지문덕의 고민에 동현도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빠진다.
그러다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지 눈을 번쩍 뜨며 을지문덕에게 말한다.
“대모달.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응? 방법이 있다고?”
“예. 이 방법을 쓰면 모든 비난의 화살은 태왕 폐하가 아닌 그 자에게로 향할 것입니다. 태왕 폐하의 조치는 엄연히 국법에 의한 것이니 좀 전과 같은 조치를 내려도 별 문제가 없을 것이고 말입니다.”
“그… 그게 어떤 방법인가?”
“남부욕살 사비용의 노비를 이용하는 겁니다.”
“사비용의 노비?”
“예. 그들 중 머리가 그나마 똑똑하면서 재물 욕심이 많은 노비를 골라서 우리가 하는 말을 알려주고 제대로 대답을 한다면 그 자는 살려주고 오히려 포상을 줄 것이라는 말을 하면 됩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해결 됩니다.”
“대체 어떤 대답을 하게 하려고?”
“그 자가 자신의 주인에 대한 비리를 밀고했다고 하는 겁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해결 됩니다. 대모달.”
“……!”
“제가 드렸던 그 필사본 장부를 그 자가 밀고한 증거로 제출하게 하십시오.”
동현의 말에 을지문덕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지며 대답한다.
“그렇게 한다면… 모든 비난의 화살은 그 노비에게로 쏠리겠군. 아주 좋은 생각이야.”
“그렇습니다. 그렇게 증거를 제출하고 그 자를 풀어주고 난 뒤… 몰래 처리하면 됩니다.”
“뭐라? 그 자를 죽이라는 건가?”
“어쩔 수가 없습니다. 대모달. 그 자가 훗날 이 일에 대해 불게 되면 지금보다 더욱 큰 피바람을 몰고 올 수 있습니다.”
“으음…….”
“본래 사비용의 노비인데다가 죽을 수밖에 없었던 사람입니다. 거기다 본래 노비였던 자이니 만큼 이 선택은 어쩔 수 없는 선택입니다.”
“…….”
“저도 마음이 아픕니다. 하지만 이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냥 그 자를 먼 곳으로 보내 조용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나중에 그 자를 추적하는 귀족에게 잡혀서 붙어버리면 더 큰일이 벌어집니다. 대모달. 제가 좀 전에 말했다시피 말입니다.”
동현의 말에 을지문덕은 한 동안 말이 없었다.
그 모습을 보던 근위장이 옆에서 말한다.
“대모달. 제가 듣기에도 태대사자의 말이 옳은 듯 합니다. 저희가 요직에 앉아 있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오직 나라와 태왕 폐하를 위해서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작은 희생은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후우…….”
“더구나 그 자는 본래 죄인의 노비가 아닙니까? 그러니 마음을 굳게 먹으십시오.”
을지문덕은 무관으로서 가장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이었고 무예도 뛰어나며 지장인데다가 덕이 많은 사람이었다.
전쟁이 나면 가장 용감하게 나설 줄 아는 사람이었고 백성들은 물론이고 노비들에게도 인간적으로 대하며 존경을 받고 있는 장수였는데, 오늘 동현의 말을 들으니 그가 생각하던 것과는 정 반대가 되던 것이니 마음이 내키지가 않았다.
하지만 동현의 말대로만 한다면 분명 원하는 대로 모든 일이 풀릴 수 있었다.
을지문덕 본인도 동현에게 조언을 듣고 근위장에게 까지 말을 듣는 순간 이건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필수 사항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가 지금까지 행해왔던 것들을 생각하자니 마음이 불편한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 태대사자와 근위장의 말이 모두 맞다. 하지만 난 이런 일에는 익숙하지가 않아서 마음이 불편한 것은 어쩔 수가 없구나.”
“그럴 것입니다. 저도 솔직히 마음이 매우 불편합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 일을 저희가 직접 행하는 것이 아닌 태왕 폐하께서 황명을 내려 행하시는 것이니 조금은 낫습니다. 대모달. 좋게 생각 하시옵소서,”
“좋게 생각하라… 그래. 네가 말한 것으로 일이 잘 풀린다면 좋게 생각해야겠지. 아무튼 알았다. 이 일을 태왕 폐하께 일단 고하자. 그러면 결정을 내려주실 것이야.”
“예. 대모달.”
“자… 모두 태왕 폐하를 알현하러 가지. 저들을 모두 압송하고 말이야.”
“예. 대모달! 자! 이제 돌아간다!”
그렇게 동현과 을지문덕, 근위장은 비리에 연루된 서부욕살과 남부욕살, 그리고 둘과 함께 연루된 귀족들을 압송하여 옥에 가두게 한 뒤 영양태왕을 다시 한 번 알현하러 편전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앉자마자 여러 이야기를 나누는데 을지문덕은 어렵게 동현이 말한 것들을 영양태왕에게 전한다.
“으음… 노비를 이용해서 다른 귀족들의 비난의 화살을 돌린다라…….”
“예. 태왕 폐하. 그렇게 되면 귀족들의 불만은 그 노비에게 전부 갈 것이니 귀족들이 태왕 폐하를 적대감 있게 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본래 나와 반대파에 있는 귀족들 자체가 나에게 적대감이 있지 않나?”
“물론 그렇습니다만 이 일이 터지고 동현이가 말한 방식대로 일을 처리하지 않는다면 훗날 더 큰 일이 터질 것입니다.”
“으음… 그들이 결집해서 힘을 모아 대항할 것이란 말인가?”
“최악의 경우에는 그럴 수 있습니다.”
“…….”
“태왕 폐하. 귀족들의 힘을 만만하게 보지 마시옵소서. 분명 그들의 힘을 뺏을 필요가 있다는 것은 사실이오나 너무 급하게 뺏어버리면 반란이 일어나고 내분이 일어납니다. 그러니 천천히 순리대로 푸시옵소서.”
“지금으로서는 그 수밖에 없겠군. 참… 장부는 필사본이라고 했지?”
“예. 태왕 폐하.”
을지문덕의 대답에 영양태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필사본을 을지문덕에게 주며 말한다.
“노비 중에서 허영심이 많고 대답을 조리 있게 할 자를 찾거라.”
“예. 태왕 폐하.”
“동현이 네가 사람 보는 눈이 좋으니 노비를 직접 골라보도록 해. 아니다. 이 일을 차라리 네가 맡아 보거라.”
“제가 말입니까?”
“그래.”
“태왕 폐하. 하지만 이 일은…….”
“나도 아네. 노비를 처리해야 하는 거. 하지만 이런 일조차 해내지 못한다면 훗날 큰일을 할 수 없어. 그래서 동현이 네게 일을 맡기는 것이야.”
“알겠습니다. 태왕 폐하…….”
을지문덕이 영양태왕의 명령에 말리려 했지만 영양태왕은 이 일을 동현에게 맡기겠다고 아예 확언을 해버렸다.
그렇게 편전을 나오는 동현과 을지문덕. 을지문덕은 누구보다도 어두운 표정으로 편전을 나오더니 동현에게 갑자기 사과를 한다.
“미안하다. 동현아. 나는 당연히 태왕 폐하가 황명을 내려서 직접 근위장에게 명령하여 일을 처리하거나 그도 아니라면 내게 맡길 줄 알았는데… 네게 일이 가게 되었구나. 이런 일은 내가 해야 하는 건데…….”
“괜찮습니다. 대모달. 언젠가는 저도 이런 일을 태왕 폐하의 황명에 의해 숱하게 하지 않겠습니까? 남들보다 경험을 조금 더 일찍 하는 거라고 생각하겠습니다. 대모달. 그리고 이 일은 제가 직접 하는 것도 아니고 수하들이 하는 것이니까요.”
“그래도 말이야. 만약 이 일이 행여 잘못 되기라도 한다면… 그 책임은 네가 전부 뒤집어 쓸 수 있다. 나는 그것이 더욱 걱정이야.”
“제가 확실하게 처리하겠습니다. 염려 놓으십시오. 대모달.”
“하아… 그래. 알았다. 만약 어려운 일이 있다면 내게 언제든지 말하거라. 적극적으로 도와주도록 하마.”
“감사합니다. 대모달. 그럼 전 바로 태왕 폐하의 황명을 이행하러 가보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해.”
동현은 그렇게 대모달에게 먼저 인사를 한 후 속도를 높여 태대사자 관부로 돌아간다.
그리고 가동을 부르는데…….
“부르셨습니까? 장군.”
“그래. 호위부총관. 내가 명령을 내릴 것이 있어서 말이야.”
“하명하십시오. 장군.”
“그게… 좀 더러운 일인데… 괜찮겠나?”
“일단 한 번 들어보겠습니다.”
“고맙네. 거부감이 들면 하지 않아도 돼.”
동현은 그렇게 말을 하며 가동이 해야 할 일을 설명해주었다.
가동은 동현의 말을 듣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군요.”
“그런가? 나는 자네가 워낙 양심적이고 도덕적인 사람이라 이런 일에는 마음이 좋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말이야…….”
“물론 그렇습니다만… 저는 어디까지나 장군을 위해서 장군 밑에 든 사람입니다. 거기다 이 일이 장군의 나라인 고구려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장군을 위한 일이라면 저는 불구덩이라도 뛰어 들어갈 것입니다.”
“가동… 미안하네. 이런 명령을 내려서… 사실 허손을 보내려고 했었는데 허손이 이 일을 하자니 너무 거칠게 일을 처리하여 모든 것이 밖으로 드러날까봐 말이야. 그래서 자네를 부른 것이야.”
“호위총관께서 이런 일을 하기에는 칼이 아깝습니다. 제가 이 일을 처리할 테니 장군께서는 마음 놓고 계십시오.”
동현은 가동의 손을 잡고 흔들며 고마워한다.
“고맙네. 가동… 그리고 미안하네.”
“장군. 다시는 미안하다는 말씀을 하지 마십시오. 이런 일은 일도 아닙니다. 그리고 저를 믿어주셔서 부르신 것인데 저는 오히려 기쁩니다. 그러니 이 일에 너무 마음을 쓰지 마십시오.”
“알겠네. 고마워. 이제 국문이 벌어지고 그 자가 떠날 때가 되면 바로 따라붙어서 처리를 하도록 하게. 호위총관에게 말을 해둘 테니 태왕 폐하께서 주관하시는 국문장으로 둘 다 나를 호위하며 들어가도록 하는 것이 좋겠어.”
“예.”
“본래 둘이 번갈아가면서 나를 호위 했지만 이번 일은 아주 중요한 일인 만큼 그 자에 대한 심문이 끝나면 바로 따라가서 처리해야 하니 말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나?”
“예. 장군. 그렇게 하겠습니다.”
“좋아. 그럼 호위총관 허손을 불러다주게.”
“예. 장군.”
가동은 동현의 명령을 받고 바로 태대사자 관부를 나가 허손을 부르러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