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화 동현과 을지문덕, 욕살들과 귀족들을 잡아들이다.
영양태왕은 자신을 호위 할 사람을 동현이 추천하자 그 청을 바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동현은 아직 할 말이 남았다는 듯 계속 말을 이어간다.
“헌데…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제가 말한 수하를 태왕 폐하께서 받아들이시려면… 이 문제도 태왕 폐하께서 감싸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응? 무슨 문제이길래?”
“그게… 해론이 사실 본래는 신라 출신입니다.”
“너도 알겠지만 나는 인재를 등용하는데 있어서 어느 나라 출신인가는 신경 쓰지 않는다. 너도 그건 잘 알 텐데?”
“물론입니다. 태왕 폐하. 헌데 이건 꼭 알아두셔야 할 겁니다.”
“……?”
“해론이라는 자가 신라의 찬덕이라는 자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찬덕? 찬덕이라하면… 우리 고구려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곳에 있는 꽤 높은 벼슬에 있는 사람이 아닌가? 그 자 때문에 한 동안 국경에 있던 우리 고구려 군사들이 고생 좀 했다지?”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제가 말을 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것이 반대편의 귀족들에게 제 수하의 출신에 대해 알아낸다면… 그것이 공격의 빌미가 될 수 있습니다.”
동현의 말에 영양태왕은 피식 웃으며 대답한다.
“그건 우리끼리의 비밀로 가져가면 되지 않나?”
“괜찮으시겠습니까?”
“물론이지. 우리만 입을 다물면 아무도 알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건 너와 나, 그리고 여기 있는 을지문덕 대모달과 막리지 연태조. 이렇게 넷 만의 비밀로 하고 아무에게나 말을 하지 않으면 된다. 그러니 그것은 신경 쓰지 말고 네가 말한 해론이라는 녀석을 내게 추천서를 써서 보내도록 해라.”
“예. 태왕 폐하.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헌데 태왕 폐하.”
“……?”
“대모달과 근위장이 그들을 잡아들인 공백은 어찌 메우실 생각이신지…….”
“일단 대모달이나 막리지, 또는 밑을 만한 다른 수하들로부터 잠시나마 공백을 메울 수 있도록 추천을 받아야겠지. 일단 그걸로 어느 정도 메우고 난 뒤에 조회 때 전 신하들에게 알려 추천을 받을 생각이네.”
동현은 영양태왕의 말에 바로 대답한다.
“좋은 생각이십니다. 다만 그렇게 하시면 남아 있던 반대파의 귀족들도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귀족을 추천할 것이니 잘 고르셔야 할 것입니다.”
“물론일세.”
“그리고 그 일과 관련해서 후에 또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일단 이 일이 끝나고 난 뒤 기회가 되었을 때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아… 참! 대모달이 자네보고 그들을 잡아들이는 것을 도와달라고 하지 않았는가? 얼른 나가보게!”
“예! 태왕 폐하!”
동현은 그렇게 편전을 나와 을지문덕이 비리를 저지른 귀족들을 잡아들이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편전을 나오자 근위장 또한 군사들을 준비해 기다리고 있었고 군부의 군사들과 함께 신속히 움직인다.
“근위장! 자네는 서부욕살과 그 주변의 귀족들을 잡으러 가게! 우리는 남부욕살을 잡고 그 주변에 비리를 저지른 귀족들을 모조리 잡을 것이니 말이야!”
“명을 받들겠습니다. 대모달! 이랴!”
을지문덕의 명령에 근위장은 서부욕살이 사는 집으로 향했다.
을지문덕은 근위장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자신도 동현과 함께 남부욕살의 집으로 군사를 움직였다.
그리고 잠시 후…….
“남부욕살인 사비용과 그 가족, 친인척을 모조리 잡아라! 빨리빨리 움직여! 저항하는 놈들은 모조리 베라!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는 놈들은 공격하지 말고!”
“예! 대모달! 모두 가자!”
콰아아앙!
을지문덕의 명령에 남부욕살의 사비용 집의 대문이 부서진다.
대문이 부서지자 그 안으로 군부의 군사들이 난입했는데 그 광경을 본 사비용의 사병들이 군부의 군사들을 공격한다.
하지만 을지문덕이 직접 키운 군사들을 어찌 사병 따위가 당해낼 수 있을까?
그들은 너무나도 쉽게 제압을 당했다.
사병들을 제압하며 가족들을 잡아들이려 눈에 불을 켜는데 가족들이 뒤쪽 문에서 산길로 몰래 빠져나가려는 것이 동현의 눈에 보였다.
“대모달! 저기 사비용과 가족들이 뒤쪽에 있는 산으로 달아나려는 것이 보입니다! 제가 가서 잡겠습니다!”
“좋아. 내가 군사를 몇 명 붙여주지! 조심하게!”
“예! 대모달! 가자!”
“예!”
동현은 을지문덕이 붙여준 군사들과 함께 산길로 달아나려는 사비용과 가족들을 막기 위해 달렸다.
그러자 그들의 주변을 지키던 사병들이 동현과 군사들에게 달려드는데 동현은 그 동안 갈고 닦았던 무예실력을 발휘하여 사병들을 상대한다.
깡! 까앙! 깡!
푸욱!
“커… 커억!”
촤아아악!
“끄아아악!”
상대 사병의 목을 찌르고 베자 여기저기 피가 튀는데 그 모습을 본 사비용과 가족들이 기겁을 한다.
하지만 동현은 아랑곳 하지 않고 사병들을 처리한 후 사비용의 목에 칼을 들이밀고는 말한다.
“네 이놈! 욕살이라는 놈이 어찌 그런 짓을 했느냐?!”
“그… 그것인 무슨 말인가?”
“요동성의 귀족들과 결탁은 물론이고! 이곳의 많은 재물을 빼돌리지 않았느냐?! 이미 다 알고 있다!”
“그… 그건!”
“뭣들 하느냐?! 당장 포박하라!”
“예!”
동현의 명령에 옆에 있던 군사들이 사비용과 가족들을 일제히 포박한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대모달. 사비용과 그 가족들을 모두 잡아들였습니다.”
“수고했네. 사비용의 친인척도 따로 군사들을 보내 모두 잡아들였어. 기습적으로 해서 그런지 일이 수월했군.”
“그렇습니다. 대모달.”
을지문덕은 그렇게 동현과 이야기를 나누더니 포박을 당해 무릎이 꿇려져 있는 남부욕살 사비용에게 다가간다.
“네 이놈! 어찌하여 그런 짓을 했느냐?! 네 놈이 빼돌린 재물을 보니 어마어마한 양이더군! 그 모든 것이 백성들의 피와 땀임을 모르는 것이야?!”
을지문덕은 이렇게 호통을 치더니 발로 사비용의 가슴팍을 강하게 차버린다.
퍼어억!
“커… 커어억!”
“여… 여보!”
“아버지!”
“쿨럭… 쿨럭!”
“네 놈 때문에 너와 가족들은 물론이고 친인척들이 모두 피해를 보고 있다. 아마 참형이 되거나 모두 노비가 되겠지! 자업자득인 줄 알거라!”
을지문덕이 이렇게 말을 하는데 사비용이 을지문덕에게 맞은 몸을 일으키며 말한다.
“나… 나와 가족들은 죽어도 상관없소. 우리 가족들이 노비만 되지 않게 해주시오.”
“죄인 주제에 내게 부탁을 한다?”
“대모달. 이… 이렇게 부탁드리오! 그…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잖소?”
“…….”
“노비가 얼마나 비참한 생활을 하는지 대모달도 잘 알 것이오. 특히… 나라에 큰 죄를 지은 노비들의 경우에는 더욱 비참해지지…….”
“그래도 죄는 인정하는군. 양심은 있나보지?”
“그… 그렇소. 솔직히 나도 이 짓을 하고 싶지 않았소. 하지만… 서부욕살이 모든 것을 주도하고 난 뒤 내게도 빼돌린 재물들이 들어오는데 아무도 눈치를 채지 못하니 나도 욕심이 나더이다. 그래서 지금에 이르렀소.”
“…….”
“나의 모든 죄를 시인하겠소이다. 그러니… 내 가족들만은 노비가 되는 것은 막아주시오. 깔끔하게 모두 죽여준다면 감사하겠소이다.”
사비용의 말에 을지문덕은 말없이 등을 돌린다.
그리고 사비용이 있는 근처를 뜨려는데 사비용이 다시 한 번 간청한다.
“대모달! 이… 이렇게 다시 한 번 부탁드리오! 대모달!”
을지문덕은 사비용의 말에 고개를 돌리며 말한다.
“그대의 말대로 해주고 싶으나 모든 것은 태왕 폐하의 결정에 모든 것이 달렸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태… 태왕 폐하께 한 마디만 해주시오! 그렇다면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겠소!”
을지문덕은 사비용의 절규와 같은 외침에 한숨을 쉬더니 말없이 고개만 끄덕인다.
그리고는 주변에 있는 군사들에게 명령한다.
“저 자들을 모두 압송하여 일단 옥에 가두거라. 친인척들도 말이야. 태왕 폐하의 황명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될 테니 그 결정을 기다려야 한다.”
“예! 대모달! 모두 저 놈들을 압송해!”
“예!”
그렇게 사비용과 가족, 친인척이 모두 장안성 안에 있는 옥에 압송이 되었다.
을지문덕은 그 광경을 보고 마음이 무거운 듯 한동안 제자리에 서서 아무 말이 없었다.
동현은 그런 을지문덕에게 다가가 묻는다.
“본래 친하셨던 분이셨습니까?”
“친했다라… 친했다기 보다는 어렸을 때 자주 어울렸던 사람이지.”
“…….”
“그 때까지만 해도 우리 둘은 이 고구려를 위해서 일하겠노라 다짐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저 사람이 변하기 시작하더군. 아마 주변 다른 귀족들이 저 사비용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갖은 수를 다 썼을 것이야. 그러지 않았다면 저 놈이 저렇게까지 변하지 않았을 리가 없어. 내가 아는 사비용은 그런 자였거든.”
“대모달의 생각이 맞으시다면… 아마도 그런 과정에서 약점을 잡힌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니 저렇게 사람이 달라진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 그렇겠지. 그래서 그것도 이번 기회에 조사를 해봐야 한다고 태왕 폐하께 주청을 드려볼 생각이네.”
“정이 많으시군요. 대모달. 큰 자리에 있으신 분이라 냉정하실 줄로만 알았는데 말입니다.”
“정이 많다라… 그래. 오늘 모습만 보면 자네가 그렇게 느낄 수 있겠군. 하지만 난 이것이 정이 많다고 생각하지 않네. 지금까지 내가 태왕 폐하께 올렸던 주청은 다 나랏일에 관련된 일이었지, 누구를 구명해달라고 한 일은 한 번도 없었거든. 내 오랜 친우의 가족이 오래 전 역모에 휘말려 죽었을 때도 말이야.”
동현은 그런 을지문덕의 말에 의아해 한다.
“그렇다면 오늘은 왜 그렇게 답을 주신 겁니까?”
“지금 사비용은 죄를 시인했지 않은가? 그러니 부탁을 들어준다고 한 것이지.”
“그렇다는 건… 과거 친우 분의 가족들은 역모 사건 때 자신들의 죄를 인정하지 않았군요.”
“그래. 죄를 인정하는 것은 고사하고 오히려 태왕 폐하의 어렸을 적 이름을 부르며 저주했었다. 그게 태왕 폐하께서 즉위하신지 얼마 안 된 후 일어난 일이었지.”
“…….”
“태왕 폐하께서 즉위하고 나신 뒤… 나는 바로 대모달이 되었고 그 녀석도 꽤 높은 자리에 등용될 수 있었는데 그 때 그 녀석이 역모 죄로 밑에 노비에게 고변을 당했다. 그 고변을 듣고 나는 물론이고 막리지 또한 그 말을 듣고 같이 조사를 했어.”
“…….”
“그런데… 조사를 하면 할수록 그 녀석이 역모를 계획했다는 사실이 더욱 크게 드러났지. 그래서 내가 그것이 너무나도 궁금하여 따로 옥에서 그를 만났네. 그리고 물었지. 왜 역모를 계획했냐고 말이야. 그랬는데… 그 녀석의 대답이 걸작이었어.”
“……?”
“자신들이 태왕 폐하로 인해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데 가만히 있으면 바보가 아니냐고 말하더군. 자신들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데 높은 벼슬이 무슨 소용이냐는 말까지 하면서 말이야.”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군요.”
“그래. 거기다 태왕 폐하를 면전에서 모욕까지 했으니 내가 나설 수 있었겠나?”
동현은 을지문덕의 말에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동현을 보고는 을지문덕이 한숨을 크게 쉬며 말한다.
“하아… 이제 이 이야기는 그만하지. 좋지 않은 옛 기억의 이야기를 지금해서 뭐하겠나? 이미 다 지나간 일인데…….”
“예. 대모달. 안 좋은 기억을 떠올리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아니야. 궁금했으면 물어볼 수도 있는 거지. 하지만 더는 말하고 싶지 않군. 자! 우리도 가지! 근위장에게서 보고도 받아야 할 것이 아닌가?”
“예. 대모달. 제대로 일만 처리가 되었다면 지금쯤 그쪽에서 전령을 보내고 있을 겁니다.”
“그래. 그럴 시간이지.”
동현과 을지문덕은 그렇게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들의 말 위에 오른다.
그런데 두 사람이 말 위에 올라앉기 무섭게 한 군사가 말을 타고 달려오는 모습이 보인다.
을지문덕은 그 전령이 자신에게 보고하러 오는 전령인 줄 알고 그 군사를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