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화 동현, 을지문덕에게 판옥선과 사후선을 보이다.
동현은 그렇게 소희, 의정과 헤어지고 난 뒤 바로 등청하여 첫 업무를 보기 시작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소인은 앞으로 태대사자 어른을 보좌하게 될 내평 박산이라 합니다.”
“내평이라면… 중앙관리들을 규찰하는 업무를 맡은 관직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태대사자 어른.”
“그런데 이 태대사자 관부에서 일을 보고 있습니까?”
“예. 공석일 동안은 제가 태왕 폐하의 황명을 대부분 수행했습니다. 이 내평이라는 업무를 보면서 말입니다.”
“그랬군요. 고생이 많았겠습니다.”
“별 말씀을… 그리고 말씀을 낮추어 주십시오. 저보다 벼슬이 위이신데 존대를 하심은 옳지 않으십니다.”
“그래도 저보다 연배가 더 많아보이시는데…….”
“연배가 많다고 해도 벼슬이 위이시니 아랫사람에게 하대를 하는 것은 마땅한 것입니다.”
“으음… 물론 그렇지만 나는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벼슬은 내가 높으나 사는 경험으로 보았을 때 귀공이 많습니다. 그 속에 얻을 지혜도 있겠지요. 그러니 앞으로도 많은 조언 부탁드립니다. 내평.”
내평 박산은 동현의 말에 크게 감동하며 대답한다.
“그리 말씀해주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태대사자 어른. 앞으로 태대사자 어른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내평. 자… 그럼 그 동안 내평께서 보던 업무를 한 번 보여주시겠습니까? 본래 태대사자 자리에서 해야 할 일 말입니다.”
“아… 예. 제가 미리 다 분류를 해 놓았습니다. 여기…….”
박산은 어딘가에서 정리를 해 놓은 문서들을 동현 앞에 가져다 놓는다.
꽤 많은 양.
동현은 그 양을 보고 매우 놀란다.
“아니… 이렇게나 많습니까?”
“지금은 이 정도도 적은 겁니다. 보통 이거의 2배라고 보면 됩니다.”
“허어… 그 동안 이 많은 양을 가지고 혼자 어떻게 일을 하셨습니까?”
“하하하… 그래서 뜬 눈으로 밤을 지샌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그나마 근래 몇 달간은 큰일이 없어서 일찍 퇴청하고 있습니다. 황명에 대한 출납도 줄었고 크게 중요한 내용이 없어서 빨리 처리할 수 있었지요.”
“으음… 이제는 그러지 마십시오. 제가 이 일을 담당할 테니 말입니다. 내평께서는 본래 내평의 일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까지 같이하려니 더 그랬겠지요.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그것만 아니라면 제가 훨씬 수월했겠지요.”
“이제 이 태대사자 관직인 사람인 내가 왔으니 내평에 관련된 업무에만 집중하십시오. 중요한 내용은 빠르게 말해주시고 말입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태대사자 어른.”
“감사해 할 것 없습니다. 본래 내평은 앞서 말했듯이 중앙관리들을 규찰하는 것을 주 업무로 하며 태대사자가 황명에 대해 무언가 부당하다고 여기는 것에 대해 내평에게 말했을 때 내평이 그 명령을 듣고 조사를 해주는 것이 보조 업무가 아닙니까?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뿐이지요.”
동현의 말에 내평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옳은 말씀입니다. 그럼 이제… 그 동안 태대사자 관직 업무를 대리해 왔던 것 중 중요한 내용들을 먼저 말씀드릴까요?”
“예. 그렇게 해주십시오.”
동현이 대답하자 박산은 바로 자신의 앞에 놓인 것 중 하나를 짚고는 말한다.
“여기에 올려진 것들은 제가 전부 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가지고 온 것입니다. 제가 내용들을 읽어서 태왕 폐하께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황명을 내리셨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박산은 그렇게 말을 하며 내용들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 * *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후우… 중요한 내용이 꽤 많군요.”
“그렇습니다. 그 내용들은 태왕 폐하의 황명을 시행하기 전에 한 번 더 여쭈어 보고 시행해야 합니다. 이런 황명이 시행되었을 때 문제점이 커지니까요.”
“으음… 알겠습니다. 일단 이것들 중 가장 시급한 내용을 먼저 태왕 폐하께 고해보겠습니다. 제가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바로 이것이군요.”
“수군에 관련된 내용말씀입니까?”
“예. 안 그래도 조금 있다가 을지문덕 대모달게 사람을 보낼 겁니다. 잠시 배를 보러 패수(오늘날의 대동강)포구에 가기로 해서 말입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관부 앞을 지키는 군사들에게 미리 말을 해 준비를 시켜놓겠습니다.”
“예. 부탁합니다. 그곳에 다녀오고 나서 이 황명에 대해 제가 직접 태왕 폐하를 알현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예. 태대사자 어른.”
“앞으로 잘해보십시다. 내평.”
동현은 박산의 손을 잡고 흔들며 격려하자 박산도 고개를 숙이며 감사해한다.
그런데…….
“태대사자 어른!”
“무슨 일이냐?”
“대모달의 수하 한 분이 오셨습니다!”
“음? 그래? 내가 사람을 먼저 보내려 했었는데?”
“지금 대모달께서 대문 앞에서 기다리고 계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음… 알았다. 지금 말을 준비 하거라. 아… 내평도 같이 갈 것이니 두 필을 준비해.”
“예. 태대사자 어른!”
동현은 그렇게 내평 박산과 함께 태대사자 관부를 몇 명의 호위무사와 함께 나섰다.
대문을 나서자 바로 앞에서 을지문덕이 기다리고 있었다.
“왔는가?”
“예. 대모달. 제가 먼저 사람을 보내기로 했는데 먼저 사람을 보내셨더군요.”
“허허허. 그렇다네. 내가 상서를 빨리 보고 싶어서 말이야. 그나저나… 관복이 잘 어울리는구만. 어떤가? 오늘 일을 해보니 말이야.”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더군요. 역시 일은 직접해봐야 안다고 각오는 했지만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하하하! 나라 일이라는 것이 다 그런 거 아니겠나? 자… 일단 가면서 이야기 하지.”
“예. 대모달.”
동현과 을지문덕은 그렇게 말을 나란히 하며 패수 포구 쪽으로 향한다.
패수 포구로 향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럼 오늘 내가 자네가 만든 배에 대해서 괜찮다고 말을 하면 그 내용을 토대로 태왕 폐하를 알현해서 말할 생각이겠군.”
“그렇습니다.”
“그렇게 말하니 궁금해지는군. 포구에서 가끔씩 보기는 했지만 오늘처럼 가까이 다가가서 보는 건 처음이라서 말이야.”
“분명 만족해하실 것입니다. 사람도 많이 탈 수 있고 군량과 말도 많이 실을 수 있으니 말입니다. 속도가 일반 배에 비해 약간 느리긴 하지만 그것을 보완할 배도 미리 만들어놓아 장사를 하는데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궁금하군. 빨리 보고 싶어.”
“그럼 속도를 높일까요?”
“그러는 것이 좋겠어. 너무 궁금해서 말이야.”
“알겠습니다. 대모달. 다들 빠르게 패수 포구로 이동한다! 속도를 높여라! 이랴!”
동현과 을지문덕은 조금이라도 빨리 패수 포구로 가기 위해 이동 속도를 높였다.
“허어… 가까이서 보니 참으로 장관이로군. 배 안에 들어가 봐도 되겠나?”
“물론입니다. 대모달. 제가 모시겠습니다. 이쪽으로…….”
동현은 을지문덕과 그 수하, 그리고 박산과 함께 판옥선의 내부와 외부를 모두 구경시켜줬다.
을지문덕은 이곳저곳을 만져보기도 하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배를 둘러본다.
그리고 잠시 후…….
“이 배라면 수나라 놈들을 막아내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야. 자네가 만든 이 상선이 전투선으로 충분히 쓰일 수 있다고 생각하네.”
“그렇다면 대모달께서는 찬성이시군요.”
“물론일세. 모든 것이 완벽해. 속도가 느린 것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그 단점은 사후선이라는 배로 보완을 하고 있으니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야. 그들로 정찰을 철저하게 하게 한 다음 이 판옥선이라는 배로 승부를 보면 되는 것이 아닌가?”
“옳은 말씀입니다. 그럼 대모달께서는 이 배들에 대한 합격점을 주셨으니 있다가 태왕 폐하께 가서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게. 나도 옆에서 자네를 거들어 주지. 있다가 같이 태왕 폐하를 알현하세.”
“감사합니다. 대모달.”
“헌데 말이야.”
“……?”
“수나라와 전쟁을 치르고 난 뒤에는 이것이 자네에게는 큰 위협이 될 수 있어.”
“…….”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아는가보군. 아무 대답도 않는 것 보니 말이야.”
동현은 을지문덕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그렇습니다. 대모달께서는 전쟁이 끝나고 사후 정리를 할 때 제가 귀족들로부터 바로 공격을 받게 될까 그것을 우려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역시 잘 아는군. 지금은 수나라와의 대치 상황이라 이런 전투함들이 많이 필요하지. 언젠가는 전쟁을 치러야 하니 말이야. 그래서 저 귀족들은 자네의 행동에 불만을 품으면서도 득달같이 달려들지를 않는 것일세. 하지만 수나라를 물리치고 난 뒤에는 달라. 그들에게 외부의 위협은 사라졌으니 이제는 내부에만 신경 쓰면 되는 것이지. 그것이 뭐겠나?”
“그들이 권력을 되찾기 위해… 갖은 수를 다 쓰는 것이겠지요.”
“맞아. 자네는 그 점도 생각을 하고 있어야 돼. 분명 전쟁이 끝나고 나면 저 전투함을 상선으로 활용한 자네를 트집을 잡아서 귀족들이 적극적으로 자네를 공격할 것일세.”
“…….”
“지금의 태왕 폐하께서는 자네에게 워낙 호의적이라 보호는 해주시겠지만 계속해서 귀족들이 나서게 되면 태왕 폐하께서도 흔들릴 수 있음이야. 그러니 그에 대한 대비를 충분히 해두도록 하게.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나?”
“예. 대모달. 명심하겠습니다.”
“하기야 이미 자네가 알고 있으니 어련히 알아서 잘 하겠다만… 이런… 내가 괜한 이야기를 꺼냈군. 오늘 같은 기분 좋은 날에 말이야. 자… 그럼 이제 사후선을 한 번 보러 가볼까? 안내해주게. 동현이.”
“예. 대모달. 절 따라오십시오.”
동현은 을지문덕의 말에 사후선도 보여주었다.
“음… 확실히 속도가 빠르겠군.”
“예. 기존에 우리 고구려가 가지고 있던 빠른 속도의 배를 더 튼튼하게 만들면서 배가 뒤집힐 염려가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과거 우리 고구려의 정찰선들은 빠르기는 하나 파도가 조금만 강해도 배가 뒤집히는 경우가 많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하지만 이제는 그 점을 보완하였으니 웬만한 파도에도 정찰선이 뒤집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 나도 그리 보인다. 저기 사후선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보니 속도도 빠르고… 네가 아주 고생이 많았다.”
“과찬이십니다. 저는 그저 설계만 했지 만드는 것은 목수들입니다. 그들에 비해 제가 무슨 고생을 했겠습니까?”
“무슨 소리? 저런 배를 만들려면 항상 생각하고 시험을 해봐야 한다. 내가 들은 바로 너는 저런 배들을 작은 모형으로 만들어 직접 물에 띄워봤다고도 했었지. 그렇다면 그것을 수없이 생각하고 시험했을 것이 아니냐? 너의 그런 노력도 대단한 것이니 결코 낮게 생각하지는 말거라. 알겠느냐?”
“예. 대모달.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네가 만든 배들을 전쟁 때 쓰려면 배를 따로 분류해야 할 텐데… 그렇게 되면 네 장사에는 차질이 생기는 것이 아닌가?”
동현은 을지문덕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그럴 줄 알고 미리 배를 건조하게 했습니다. 현재 판옥선 15척과 사후선 10척 정도를 만들어 놓았으니 일단 그것으로 수군을 훈련시키면 될 것입니다.”
“그래? 알았다. 잘 되었군. 당장 군을 훈련시킬 수가 있겠어. 헌데…….”
“……?”
“저번에 태왕 폐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수군을 이끌 적임자가 없어. 동해 쪽은 네가 추천한 사람이 있어서 해결이 되었다만… 이제 서해 쪽이 문제야. 현재로서는 서해 쪽이 수나라와 가까운 곳이 더욱 중요해. 그런데 그 수군을 이끌 사람이 없다… 단 한 사람을 빼고 말이야.”
“태제 전하밖에 없다는 것이군요.”
“맞아. 그래서 고민이야. 으음… 하루라도 빨리 찾아야 할 텐데…….”
동현은 을지문덕의 말에 잠시 눈을 감고 고민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