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화 동현, 운두산성 처려근지 정산을 만나다
동현이 그렇게 수하들을 걱정하며 운두산성으로 향하고 있을 때… 동현은 또 무언가 떠오른 듯 조용에게 묻는다.
“아… 참. 조용.”
“예. 대인어른.”
“우리가 만들던 판옥선은 어떻게 됐나?”
“예. 대인어른의 말씀대로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계획대로라면 다음 달부터 판옥선을 제대로 된 상선으로 쓸 수 있을 듯 합니다.”
“으음… 좋아. 지금 배 몇 척이 만들어진 것은 시험 운행을 하고 있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별 문제가 없었으니 만들어지는 대로 일단 상선으로 운영을 할 계획입니다.”
“그래. 그렇게 하도록 하게. 태왕 폐하께서도 얼마 전에 비사성에 오셨을 때 판옥선을 보고 흥미로운 눈빛이셨어. 저게 훗날… 전선으로 쓰인다면 더욱 더 놀라시겠지.”
“그렇습니다. 대인어른. 그런데 대인어른.”
“응?”
“저번에 제가 말했던 것 있지 않습니까? 판옥선 좌우에 왜 그렇게 구멍을 넣어두었는지 말입니다. 언제 답을 주실 것입니까?”
동현은 조용의 말에 피식 웃으며 대답한다.
“자네도 그게 정말 궁금했나보군. 사훈도 나에게 물었었는데…….”
“그렇습니다. 너무 궁금합니다. 대체 그 구멍의 용도가 무엇인지…….”
“그것은 내가 이 운두산성에서 임무를 모두 마치고 요동성으로 돌아가게 되면 말을 해주겠네. 요동성에 내 답이 그대로 있거든.”
“그렇습니까?”
“그래. 그러니 궁금해도 그때까지만 참아주게나. 이렇게 부탁하네.”
“대인어른께서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야… 알겠습니다. 그 때까지 참겠습니다. 단… 요동성에 돌아가게 되면 사훈과 제게 바로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하하하하! 당연히 그래야지! 그토록 궁금해 하는데 알려줘야지! 자… 얼른 가세! 시간이 많이 지체된 것 같아!”
“예. 대인어른. 모두 행군 속도를 높여라!”
그렇게 동현은 조용과 이야기를 나누며 운두산성으로 향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동현과 일행들은 운두산성 근처에 다다르고 있었다.
“대인어른! 저기 운두산성입니다!”
“으음… 정말 대단한 산성이다. 적군을 침입을 막기에 말이야. 거기다 주변에 고려강(두만강)도 흐르고 있고 동해와 연결이 되니 이곳에 상단이 있기에는 최적의 조건이야.”
“소인의 생각에도 그렇습니다.”
그렇게 동현이 운두산성 앞으로 가 성문 앞에 다다르자 문지기 군사가 동현을 막으며 말한다.
“어디서 오는 것이오? 그리고 신원도 밝히시오!”
“우리는 비사성에서 태왕 폐하의 황명을 받고 운두산성에 있는 포구로 왔습니다. 여기 태왕 폐하의 칙서가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 우리의 신원을 증명하는 통행증도 혹시 몰라 가지고 왔습니다.”
동현이 칙서까지 보여주자 문지기 군사는 깜짝 놀라더니 잠시 기다리라고 말을 한다.
그리고는 운두산성 안으로 빠르게 들어가는데…….
“처려근지! 처려근지 어른!”
“응? 무슨 일이냐? 왜 이리 소란이야?”
“헉… 헉! 그… 급히 전할 소식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무엇이 그리 급하다고 그렇게 뛰어와?”
“그게…….”
운두산성 앞을 지키던 군사가 급히 처려근지에게 소식을 전하러 간 것.
그 군사는 좀 전의 상항을 모두 처려근지에게 털어놓았다.
“칙서를 받은 김동현이라는 사람?”
“예! 처려근지 어른! 이 운두산성의 포구에 잠시 정착을 한답니다! 그리고 이 포구를 이용해서 우리 동해안에 있는 성들에 많은 염전을 만들어 소금을 대량으로 생산한다는군요.”
“으음… 도성에 있는 사람에게서 소식이 얼마 전에 왔었다. 그 모든 것이 사실이었군…….”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하긴… 태왕 폐하의 황명을 받은 자를 내가 어찌 할 수 있겠느냐? 받아들여야지.”
“하지만 처려근지 어른. 지금 저희 운두산성의 형편이 좋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 저 사람을 안으로 들여서 보게 된다면… 분명 윗선에 좋지 않게 말을 하지 않겠습니까?”
군사의 말에 운두산성의 처려근지는 피식 웃으며 대답한다.
“나는 이곳에서 처려근지로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이제 불과 100일이 지났을 뿐이지. 차라리 나는 모든 사실을 저 자에게 말해주고 도움을 받을 생각이다. 진정으로 우리 고구려를 생각한다면 저 김동현이라는 자가 군량을 아끼지 않고 풀겠지.”
“좋은 생각이시나… 뜻대로 되겠습니까? 본래 상인들에게 하나를 받게 되면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 대가는 태왕 폐하께서 이미 주셨다. 포구 운영권 말이야. 굳이 우리가 그들에게 대가를 준다고 한다면 그 자가 포구를 운영하는데 있어서 관여를 하지 않는 것이겠지.”
“그건 그렇습니다만…….”
“아무튼 그 자가 계속 밖에만 있으면 안 돼. 일단 안으로 들여라.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하도록 하마.”
“예. 처려근지 어른.”
“으음… 아니다. 내가 직접 나가지. 직접 나가서 운두산성의 상황을 있는 사실 그대로 설명을 해야겠어. 내 말을 준비해라.”
“예! 처려근지!”
그렇게 운두산성의 처려근지는 군사가 준비해주는 말을 타고 급히 성문 밖으로 나가 동현을 맞이했다.
“만나서 반갑소이다. 나 운두산성의 처려근지 정산이라고 하오.”
“김동현이라 합니다. 운두산성의 처려근지 어른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별 말씀을… 자… 그럼 안으로 같이 들어갑시다.”
“예. 처려근지.”
정산은 동현과 같이 말을 나란히 하여 운두산성 안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동현은 운두산성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표정이 급격하게 굳어진다.
“아니… 백성들이 왜 이럽니까? 사는 꼴이…….”
“하아… 그렇다오. 그나마 이것도 내가 가지고 있던 구휼미로 인해 조금 나아진 상황이라오. 사실… 내가 이 운두산성에 처려근지로 부임한 지는 불과 100일이 조금 지났을 뿐인데 이곳에 오고난 뒤 운두산성의 상태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오.”
“…….”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이곳에 부임을 하게 된 이유가 본래 이 운두산성의 처려근지가 백성들에게 수탈을 일삼았는데 그것이 후에 조정에서 알게 되었고 그 자를 파면한 뒤에 이곳에 나를 부임시킨 것이라고 하오.”
“음.”
“나는 그 전까지 한 성의 처려근지가 아닌 작은 성을 다스리는 누초에 불과하였으나 그 작은 성에서의 성과를 조정에서 괜찮게 봤는지 나의 직급을 처려근지로 올려 이곳을 맡게 하였소이다. 이곳에 부임하기 직전 내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매우 기뻐하면서 이곳에 왔는데… 막상 오고 나서 이런 상황을 보니 한숨만 나왔소.”
“…….”
“이제 구휼미는 떨어질 대로 다 떨어졌고 운두산성에 있는 재물과 내 약간의 사비를 얹어서 다른 지역에 구휼미를 사와 백성들에게 풀었는데 지금의 양가지고는 턱없이 부족하다오.”
“…….”
“그래서 말인데… 대인.”
“말씀하십시오. 처려근지 어른.”
정산은 잠시 뜸을 들이고는 어렵게 말을 꺼낸다.
“대인께서는 수나라의 거부인 왕빈과 쌍벽을 이루는 상단이고 우리 고구려와 백제, 신라에서 가장 큰 상단이라고 들었소. 그래서 말인데… 우리 운두산성 백성들을 도와줄 수 있겠소?”
동현은 그 말을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며 대답한다.
“물론입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오늘 운두산성 백성들을 위해 저희가 가지고 다니는 쌀을 베풀도록 하겠습니다.”
“오! 정말 고맙소! 대인이 포구를 운영할 때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하시오! 내가 적극적으로 협조를 하겠소이다!”
“그리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으음… 이왕 이렇게 된 거… 저도 처려근지께 하나 부탁하나를 하려 하는데… 해도 되겠습니까?”
“말만 하시오! 도울 수 있는 것이라면 적극적으로 돕겠소이다!”
“제가 비사성에서 태왕 폐하를 알현하였을 때… 태왕 폐하께서 말씀하시기를 동해에는 서해에 비해 우리 고구려 군의 수군이 제대로 양성 되지도 않고 힘이 미치지 않아서 왜적들이 설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정산은 동현의 말에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맞소. 특히 그 왜적들은 신라를 집중적으로 공격하고 있지. 그나마 우리 고구려의 해안 같은 경우에는 육지와 가까운 곳에 우리 고구려 군의 궁병들이 배치가 되어 있고 해서 왜적들이 이 땅에 상륙하지 못한다오.”
“예.”
“그래서 그들은 우리의 상선들이 바다로 나갔을 때만 노리고 있지. 이곳 동해의 고구려 수군들은 부끄럽지만… 저 왜적들에 비해 많이 서툴고 전력이 떨어진다오. 후우… 마음 같아서는 저 놈들을 싹 쓸어버리고 싶지만 그러지 못해서 한이오.”
“그 일에 관해서 태왕 폐하께서 제게 말씀을 하신 것이 있습니다.”
“태왕 폐하께서 말이오?”
“그렇습니다. 태왕 폐하께서도 이 동해 쪽의 상황을 아주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제게 말씀하셨지요. 우리 고구려가 더욱 더 커지고 국력이 강해지기 위해서는 일단 첫째로 주변에 적들을 없애야 하며, 둘째로는 나라 안의 농업과 상업을 크게 키워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바다를 그 누구보다도 크게 생각을 하고 계셨습니다. 아니… 바다라기보다는 수군이라고 하는 것이 옳겠군요.”
“으음…….”
“그래서 제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만약 그곳에 형편이 어렵다면 저보고 재물을 통해 도와주라고 말입니다. 그에 따른 보상은 제게 또 따로 해주시겠다는 말씀까지 하셨지요.”
동현의 말에 정산이 놀란다.
“그렇다면… 대인이 나를 도와주는 것은 태왕 폐하의 황명에 의해서…….”
“그렇습니다. 본래 도와드리려고 하였으나 거기에 태왕 폐하의 황명까지 더해졌으니 무조건 이곳을 도와드려야겠지요.”
“…….”
“그와 더불어 한 마디를 더 하셨습니다.”
“……?”
“이 동해에서도 왜적들을 소탕해 우리 고구려의 바다가 평안한 것을 원하시니 수군을 이끌 수 있는 인재가 있으면 그 자를 추천해 동해에 수군을 양성하라고 말입니다.”
“수군을? 이곳에서 말이오?”
“그렇습니다. 태왕 폐하께서는 서해와 동해 양쪽에 수군이 다 있기를 바라십니다.”
“으음…….”
“무엇보다도 수군을 이끌만한 인재를 찾기를 가장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 황명을 받들어서 저희 상단에 수군을 이끌만한 적임자를 다 찾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니 처려근지 어른께서도 그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 주셨으면 합니다. 인재를 찾는다면 제가 태왕 폐하께 장계를 띄워 소식을 알리겠습니다.”
동현의 말에 정산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알겠소이다. 나도 이 일대 근처를 위주로 시작해서 수군을 이끌 인재가 있는지 한 번 알아보겠소이다.”
“감사합니다. 처려근지 어른. 그럴만한 인물을 찾으면 먼저 꼭 말씀해주십시오.”
“알겠소이다.”
“그리고… 저는 한낱 상인이니 제게 말을 높이실 필요가 없으십니다. 말씀을 낮춰주십시오.”
동현의 말에 정산은 씩 웃으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정산을 향해 동현이 묻는다.
“그럼 일단 백성들에게 구휼미부터 베풀겠습니다. 조용!”
“예! 대인어른!”
“지금 백성들에게 구휼미를 베풀 것이다! 우리가 항상 베풀던 양대로 베풀도록 해!”
“명을 받들겠습니다!”
동현의 말에 조용은 명을 받들어 백성들에게 구휼미를 풀기 시작했다.
엄청난 양. 정산은 구휼미로 베푸는 쌀 양을 보고는 혀를 내두른다.
“허어… 이렇게나 많은 쌀을 베풀어도 되는 건가? 이렇게나 많이 베풀면 자네 상단에도 남는 것이 없을 텐데?”
“제 상단은 현재 계속 커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 정도는 문제없습니다.”
“대단하구만.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선뜻 내놓는 것은 어려울 텐데…….”
“저는 이런 백성들을 볼 때면 항상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것이 장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였기도 했고 말입니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 덕분에 제 상단도 이리 커졌으니 베풀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산은 동현의 대답에 속으로 감탄하며 한 동안 동현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