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화 동현, 영양 태왕에게 엄청난 제안을 받다
사훈은 동현에게 다가와 인사를 하자 동현이 묻는다.
“그래. 물어보았는가?”
“예. 대인어른. 여자의 이름은 백수연이라고 하더군요. 나이는 15살이라 합니다.”
“백씨라면… 혹시 백제를 대표하는 귀족인 대성팔족 중 하나인가?”
“역시 대인어른께서는 잘 아시는군요. 맞습니다. 그 가문의 딸이라고 하더군요.”
“허어… 그 딸이 이 고구려에는 어떻게 온 것인가? 대성팔족 중 하나라면 정말 백제 귀족가문 중에서 엄청나게 큰 가문인데? 내가 알기로 그 권세가 우리가 잘 아는 위사좌평보다도 훨씬 크지 않은가? 대성팔족이 말이야.”
“그렇습니다. 위사좌평인 황우 같은 경우는 자신만의 실력과 빈틈을 잘 파고들어 급격하게 성장한 백제의 신흥귀족세력이라면 대성팔족은 예전부터 백제에 아주 큰 주축 귀족 중 하나이지요. 제가 아는 바에 의하면 백씨의 경우 백제의 24대 왕인 동성왕 시절부터 등용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으음… 지금 현재 백제의 왕이 27대인 것으로 알고 있으니… 3대 전이군.”
“그렇습니다. 물론 그 훨씬 전에 등용이 되었다는 말도 있긴 하나 그 때는 워낙 백씨의 세력이 미미해서 우리 고구려에서도 그 가문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본격적인 등장이 동성왕 때였으니…. 그 때부터 가문이 엄청나게 커진 것이지요.”
동현은 사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묻는다.
“그렇군. 대성팔족에 대해서는 그만 되었고… 백수연이라는 여자는 왜 고구려에 온 것이라고 하더냐?”
“그게… 참…….”
“……?”
“자신이 원하지 않는 사람과 혼인을 요구해서 그랬다고 하는군요.”
“원하지 않는 사람과 혼인?”
“예. 대인어른.”
“허어… 웬만하면 부모가 짝을 지어주려 하는 것도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도망까지 친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되는데?”
“대인어른의 말씀이 맞습니다. 수연 낭자가 말하기를 자신과 혼인을 할 사람은 대성팔족 중 하나인 국씨 가문의 자제였답니다. 그런데 그 국씨 가문의 아들이 워낙 망나니 같아서 자신은 절대 혼인을 원하지 않고 거부를 했다고 하는군요. 하지만 자신의 아버지가 워낙 강력하게 요구하며 강제로 혼인 기일까지 잡아버리자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합니다.”
“쯧쯧쯧…. 자신의 권력을 위해서 딸을 이용한 것이로군. 자신의 입지를 다지려고 딸을 시집보내려 했겠지.”
“소인의 눈에도 그렇게 보입니다.”
“헌데 도망을 쳤으니 그 가문에서는 저 낭자를 가문의 수치로 여기고 죽이려 했던 것이겠지.”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훈은 잠시 숨을 고르고는 계속 말을 이어간다.
“그리고 낭자가 우리 상단의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 많았는지 계속 상단 일을 시켜만 달라고 요구를 하더군요. 어떻게 할까요?”
“으음…….”
동현이 고민을 하는데 옆에 있던 조용이 말한다.
“대인어른. 그 낭자를 제게 붙여주십시오.”
“자네에게?”
“예. 제 딸인 조연이 있고 나이도 비슷하니 서로 이야기를 하며 의지가 될 것입니다. 조연이 제 일을 조금씩 도와가며 하고 있으니 그 일을 같이 하게끔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으음… 하기야… 자네가 조연에게 내주는 일 같은 경우에는 그리 큰 부담이 없는 일이긴 하지… 알겠네. 한 번 맡겨보지. 조용 자네가 가서 이 말을 전하고 내일부터 일을 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대인어른.”
“아… 그리고 이 말도 전하게. 내일 자네에게 일을 배우고 끝나면 나를 찾아오라고 말이야. 잠시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백제에 대한 정보를 더 알아내야겠어.”
“알겠습니다. 대인어른.”
그렇게 동현은 백제의 귀족 여식 중 한 명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동현은 그렇게 이 일을 처리하고 난 뒤 상단의 일을 보는데…….
“대인어른! 을지문덕 대모달께서 오셨습니다!”
“뭐라?! 대모달께서 직접 이곳에 발걸음을? 얼른 모시게!”
“예! 대인어른!”
동현이 말을 하자 문이 열리고 신체가 건장한 사람이 들어온다.
동현은 그 사람을 보자마자 고개를 숙이며 인사한다.
“을지문덕 대모달을 뵙게 되어 크나큰 영광입니다. 소인 평양성 김씨 가문의 김동현이라 합니다.”
“영광은 무슨… 나야말로 영광이구만. 이 나라의 신동을 이렇게 볼 수 있어서 말이야.”
동현이 공손하게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자 을지문덕 또한 부드러운 말로 동현에게 말을 했다.
“그나저나… 내가 왜 왔는지는 알겠지?”
“물론입니다. 태왕 폐하께서 찾으십니까?”
“그렇다네. 지금 나와 함께 가지.”
“예. 대모달. 아… 그 전에…….”
“……?”
“공주님도 모시고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 제자라고는 하지만 태왕 페하께는 사사로이 따님이시니 말입니다.”
“그도 그렇군. 좋아. 그럼 공주님을 모시고 같이 가도록 하지.”
“예. 대모달. 밖에 있느냐?”
“예! 대인어른!”
“소희와 의정이를 불러오너라!”
“예!”
동현의 말에 문 앞에 있는 호위무사가 움직인다.
그 모습을 보던 을지문덕 대모달이 말한다.
“호위무사들을 제법 잘 훈련을 시켰더군. 군기도 제법 엄정하고 말이야.”
“그렇다고 해도 관군에 비하겠습니까?”
“허허허… 그리 겸손하지 않아도 되네. 내가 자네 호위무사들을 봤을 때 상당한 수준이야. 군에 오래 있었던 사람들은 군사들의 상태를 한 눈에 보고 파악할 줄 안다네.”
“그렇군요.”
“그나저나… 공주님의 본명으로 아무렇게나 부르는 것은 자네가 처음이군.”
“제가 말입니까?”
“그렇다네. 궁에 있을 때 배정된 공주님의 스승들도 본명을 부르며 하대를 하지 못했지.”
“아마 예법 때문에 그렇겠지요?”
“물론일세. 궁에서는 예법과 법도를 잘 지켜야 하니깐…….”
“저도 그것을 알고 처음에는 받지 않으려고 일부러 조건을 달았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공주님께서 너무나도 쉽게 승낙을 하시더군요.”
동현의 말에 을지문덕은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말한다.
“하하하하! 그것이 진정한 공주님의 모습이지! 당찬 모습 말이야! 그 말은 나도 전해 들었네! 그리고 자네가 어떤 식으로 공주님을 교육하고 있는지도 말이야. 얼마 전에 자네에게 크게 혼이 난 것도 알고 있어!”
“그런… 죄송합니다. 확실하게 잘못된 것을 가르쳐야 했기에…….”
“나는 그게 잘못되었다고 자네에게 뭐라 하는 것이 아닐세. 오히려 칭찬해주고 싶군. 아마 공주님도 자네의 행동으로 인해 많이 깨달으셨을 것이야.”
“그리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동현이 이렇게 잠시 을지문덕과 이야기를 나누는 그 때…….
“대인어른! 소희님와 의정님을 데리고 왔습니다!”
“알았다! 대모달. 나가시죠.”
“그래. 그러지.”
동현의 말에 을지문덕은 같이 방을 나갔다.
방을 나가자 바로 앞에 있던 소희와 의정이 매우 놀라는데…….
“아니… 대모달!”
“하하하! 그 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공주님.”
“아… 예. 대모달. 오랜만입니다. 정말 반갑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공주님.”
“대모달. 여기는 궁이 아니고 여기 스승님의 제자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아가씨로 불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소희의 말에 을지문덕은 피식 웃으며 대답한다.
“그리하겠습니다. 아가씨. 다만 태왕 폐하 앞에 가서는 공주님으로 부르겠습니다.”
“예? 태왕 폐하요?”
“예. 태왕 폐하께서 여기 동현이를 찾는다고 하시더군요. 가는 김에 동현이가 아가씨를 같이 데리고 가자고 해서 말입니다. 오랜 기간 보지 않았으니 얼굴을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으음… 알겠습니다.”
그렇게 을지문덕은 영양 태왕이 있는 비사성 안으로 동현과 소희, 의정을 데리고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태왕 폐하! 동현이를 데리고 왔습니다!”
“그래! 들어오게 해라!”
“예! 공주님도 같이 들어가시지요.”
“알겠습니다.”
비사성의 처려근지가 영양 태왕의 거처를 마련해 놓은 방으로 동현과 소희, 의정이 들어간다.
그러자 영양 태왕의 얼굴이 확 밝아지더니 앉아 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희에게 다가가 말한다.
“청명아. 잘 지내느냐?! 안 그래도 아까 네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 의문이었다. 왜 여기 동현이와 같이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것이냐?”
“그것은 제가 그 때 공부를 하고 무예를 수련할 시간이라 그랬습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하하하! 그래! 열심히 하는구나. 내가 허락을 해주어서 밖으로 돌아다니니 어떻더냐? 네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겠더냐?”
“물론입니다. 태왕 폐하. 훌륭한 스승님과 함께 이곳저곳을 돌며 여러 곳을 보았는데 세상 공부도 많이 되었고 여러 가지로 얻는 것이 많습니다.”
“얻는 것이 많다니 다행이구나. 언제 궁에 돌아올 생각이냐?”
“스승님께 배울만한 것들은 모두 배우고 돌아가겠습니다. 늦어도… 3년 뒤에는 꼭 돌아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3년이라… 이 녀석… 내가 너의 편의를 얼마나 봐주고 있는지 알지?”
“그렇습니다. 태왕 폐하.”
“되도록이면 빨리 궁에 돌아오도록 해 보거라. 황후가 너에 대해서 매일 걱정이 끊이지 않는다. 알겠느냐?”
“예. 태왕 폐하. 그리하겠습니다.”
소희에게 이렇게 말을 한 영양 태왕은 그제야 시선을 동현에게 돌리며 말한다.
“미안하네. 내가 딸을 너무 오랜만에 만나서 이런 모습을 보였구만.”
“아닙니다. 당연한 것이지요. 개의치 마십시오.”
“그리 말해주니 고맙군. 자… 거기 앉게! 청명이도 거기 앉거라. 그리고 의정이도!”
“예. 태왕 폐하.”
그렇게 동현과 소희, 의정이 영양 태왕이 권하는 자리에 앉는다.
그러자 영양 태왕은 미리 준비해 놓은 술 한 잔을 동현에게 따라주며 말한다.
“자… 마시게. 술 한 잔 하면서 이야기를 하도록 하지.”
“예. 태왕 폐하.”
동현은 영양 태왕의 술을 쭉 들이켜자 영양 태왕이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오늘 비사성의 시찰도 정말 만족스러웠네. 물론 자네가 만든 염전에 비해서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말이야.”
“과찬이십니다.”
“과찬이 아닐세. 그렇게 소금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는 것이 어디 쉽나? 이건 오로지 자네의 공이야.”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그래서 말인데… 자네가 나에게 했던 말을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네. 자네 말 따라 이 비사성을 수나라 수군이 노리고 왔다가 비사성이 함락이라도 된다면 우리는 큰 염전을 잃는 것이야. 그렇지 않나?”
“맞습니다. 이곳이 수나라와 가까이 위치한 지역이기에 더할 것입니다.”
“맞아. 수군을 이용하면 금세 이곳에 공격을 올 수가 있지. 그래서 말인데… 나는 그것을 보완할 방법을 생각해 보았네.”
“……?”
“자네가 만든 이 염전… 동해 바다에도 만들 수 있겠나? 아니…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바다와 닿아 있는 포구들이 있는 성들에 염전을 많이 만들 수 있느냐를 묻는 것이 더 빠르겠군.”
동현은 영양 태왕의 말에 깜짝 놀라며 묻는다.
“예? 바다와 닿아 있는 포구들이 있는 성… 모두에 말입니까?”
“그렇다네. 만약 우리가 비사성을 잃게 되면 염전은 그들에게 내어줘야 해. 그러니 그러기 전에 염전을 파괴하고 퇴각을 해야 하지. 하지만 만약 그렇게 되면 이 염전을 만드는데 또 어느 정도 시간이 허비가 될 것이고 그것을 다시 만들고 오늘처럼 다시 생산을 해내는데도 시간이 걸릴 것이야.”
“…….”
“그것을 보완할 방법은… 다른 해안가 성들이 있는 포구에 이런 염전을 만드는 수밖에 없어. 염전을 많이 만든다면 그만큼 우리가 부를 더 빨리 쌓게 되고 우리 고구려도 부강해 질 수 있지. 아… 물론 자네의 가문도 말이야.”
“…….”
“다만 그 비율은 이 비사성과는 달리 5대5로 나누었으면 좋겠구만. 물론 포구 운영은 자네가 모두 하고 말이야. 어떤가?”
영양 태왕의 엄청난 제안에 동현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