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동현, 아버지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동현은 검수를 배웅하기 위해 같이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검수는 막사 밖으로 나가려다 우연히 동현의 자리 옆에 놓인 칼자루를 보게 되었다.
“응? 자네 칼인가?”
“그렇습니다. 국선 어른.”
“내가 칼에 관심이 좀 많아서 말이야. 좀 봐도 되겠나?”
“물론입니다. 제가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동현은 자신이 앉아 있던 자리 근처에 있는 칼을 검수에게 기꺼이 가져다준다. 그런데……
“아니?!”
“왜… 그러십니까?”
“이 검은 조의검이 아닌가?”
“맞습니다. 제 아버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입니다.”
“물려받았다고?”
“그렇습니다.”
“자네 아버지의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
“저희 아버지 성함 말입니까?”
“그래! 얼른 말해보게!”
“예. 제 아버지의 성함은 김경열이라고 합니다만…….”
동현의 대답에 검수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재차 묻는다.
“정말… 정말 자네의 아버님 성함이 김경열 이라는 분이시란 말인가?”
“그렇습니다. 왜 그러십니까?”
“허어… 이럴 수가……. 자제 분이었다니…….”
“제 아버지를 아십니까?”
“알다마다! 과거 그 분께 무예를 배웠었는데 말이야!”
“예? 제 아버지한테요?”
“그래. 너는 네 아버지가 조의들의 국선이었던 것을 모르느냐?”
동현은 그 말에 깜짝 놀라는데 그 모습을 보며 검수가 말한다.
“몰랐던 모양이군.”
“그… 그렇습니다.”
“으음…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면 보이지 않는 국선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지.”
“보이지 않는 국선이라고요?”
“그래. 나처럼 이렇게 우리 고구려 내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다니는 국선과 드러내고 다니지 않는 국선이 있다. 드러내고 다니지 않는 국선이 더욱 더 무력이 강하고 조의를 책임지는 총 책임자라고 봐야 하는 것이지.”
“그… 그럼 지금도 그런 분이 있는 것입니까?”
“아니. 없어. 너의 아버지 대가 마지막이었다. 내가 이 국선 자리에 오르기 전… 전임 국선 어른께서 너희 아버지를 불렀었는데 너희 아버지께서는 국선 자리를 거부하셨다.”
“왜 그러신 겁니까? 혹시 이유를 아십니까?”
“이제 조용히 살고 싶다고 말씀하시더군. 그 말을 듣고 전임 국선 어른께서는 국선 자리에 올라도 백두에서 가족들과 조용히 살 수 있다고 말하니 그렇게 하면 자신과 가족들의 움직임이 제한되고 다양한 경험을 시켜주지 못한다면서 거부하셨지.”
“…….”
“여러 지역을 돌며 세상을 구경시켜주고 싶었던 모양이야. 너를 포함한 가족들에게 말이야.”
동현은 검수의 말을 듣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그 말씀은 맞습니다. 돌아가시기 전… 아버지께서 제게 항상 말씀하시기를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형편을 살펴보고 보는 눈을 길러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지금까지 간직해오고 있었죠.”
“그랬군… 아무튼 자네 아버지가 그렇게 거부하자 전임 국선 어른께서는 자네 아버지를 보이지 않는 비국선 자리를 만들어 임명했고 나를 국선으로 임명하셨다. 당시 몸이 좋지 않으셨던 전임 국선 어른께서는 하루라도 빨리 국선 자리를 물려주고 싶어 하셨거든.”
“…….”
“그 제의도 너의 아버지께서 거부하려고 하셨지만 전임 국선 어른의 간곡한 부탁과 여러 곳을 옮겨가며 살아가도 된다고 말씀하셔서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 검은… 그 때 받은 검 중 하나이지.”
“그렇군요…….”
“그나저나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은 모양이군. 날이 상한 것을 보니…….”
“아… 예. 지속적으로 수하들과 대련을 통해 수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무를 가지고도 수련을 하고 있어서…….”
“역시 피는 어디 가서 속일 수가 없지. 허어… 아무튼 정말 반갑군. 내 바로 위의 직속 스승의 아들을 만나게 되다니 말이야.”
“저도 정말 놀랍습니다. 아버지가 조의출신이었다니 말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생전에 그런 말씀을 전혀 하지 않으셔서 말입니다.”
동현의 말에 검수가 바로 대답한다.
“스승님께서는 너에게 그런 사실이 알려지기를 원하시지 않으셨겠지. 그저 니가 잘 살기를 바라면서도 오랫동안 살기를 바라셨을 것이다. 너도 알다시피 과거 네 가문은 높은 관직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네 아버지도 네가 태어나기 전에 아주 잠깐 높은 자리에 있었던 적이 있었지.”
“그렇습니까?”
“그래. 하지만 그 자리에서 불과 3년 만에 그만두고 다시 본래 위치로 돌아왔다. 나에게 말하기를 사람들끼리 서로 헐뜯는 모습을 보는 것이 정말 보기가 싫었다고 하더구나.”
“그 말씀은 저에게도 말씀하셨습니다. 다만 윗대부터 그런 움직임이 있어서 낙향을 하신 것이라고만 말씀하셔서 아버지께서는 아예 관직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렇겠지. 하지만 잠시 관직에 계시긴 하셨다. 내가 그것을 본 당사자이니 말이야. 그건 그렇고… 좀 전에도 말했지만 스승님의 아들을 이렇게 만나게 되어 정말 반갑구나. 앞으로도 비사성에 있을 것이냐?”
“훗날 요동성으로 돌아가긴 할 것이지만 당분간은 비사성에서 지낼 듯 합니다.”
“그래? 알았다. 그럼 내가 기회가 될 때마다 자주 찾아오마. 아… 그리고 이 검은 내가 수리를 해주지. 내 수하 중에 수리를 잘하는 녀석이 있거든. 그 녀석도 오늘 밤에 이곳에 도착하기로 했으니 금방 고칠 수 있을 거야.”
동현은 검수의 말에 감사해한다.
“수리를 해주신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스승님의 검이었던 만큼 내가 각별히 신경을 더 써서 수리를 해주겠네. 그럼 오늘은 이만 돌아가지.”
“조심히 가십시오.”
동현은 검수가 영채 밖으로 나갈 때까지 배웅한다.
검수가 곁에서 사라지자 기다렸다는 듯 동현의 옆으로 조용이 다가가며 말한다.
“가셨군요.”
“그래. 마침 할 이야기도 있으니 들어가지.”
“예. 대인어른.”
동현은 조용이 다가오자 같이 막사로 들어갔고 좀 전에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허어… 그런 일이…….”
“그래. 내 아버지에 대한 것을 대부분 다 알고 계시더군.”
“그런 분이라면 대인어른의 편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최소 대인어른의 수하가 되지 않더라도 대인어른께서 꿈을 이루는데 힘이 되어준다면 대인어른이 뜻을 이루는데 큰 힘이 될 것입니다.”
“나도 그런 생각을 했다.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내 아버지가 국선 어른의 스승님이셨다니 내게 큰 힘이 되지 않을까 싶구나. 아마 내 편을 전적으로 들어주지 않을까 싶다.”
“그렇습니까?”
“그래. 하지만 정확히 그 의중을 알아봐야겠지. 북쪽에 관련된 이야기를 술 한 잔을 하면서 하면 진심이 나오지 않겠는가?”
“저도 대인어른과 같은 생각입니다. 남자들끼리 서로의 마음을 터놓는 것에는 술이 아주 그만이지요.”
“나도 같은 생각이다. 일단 내 검을 수리해주기 위해 가지고 갔으니 내일 나에게 검을 돌려주고 이 고구려 전국을 돌 생각이신 것 같다. 그 때 한 번 날을 잡아봐야겠어.”
“좋은 생각이십니다. 꼭 그렇게 하십시오.”
“그나저나 백제로 간 일행들을 잘 해내고 있는지 모르겠군. 걱정이야. 이제 우리 상단의 이름과 함께 어느 나라 상단이라는 것도 알려졌을 텐데 말이야.”
동현의 말에 조용이 대답한다.
“그 점을 사훈 대행수에게도 알려줬으니 알아서 잘 할 것입니다. 사훈은 대인어른께서 인정한 지략가이면서 달변가가 아닙니까?”
“그렇긴 하지. 하지만 그래도 걱정이 돼. 상대는 백제의 고위관직에 있는 위사좌평이야. 얕잡아 보아서는 안 돼.”
“물론 그렇습니다만 사훈 대행수를 믿으십시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대인어른의 기대에 부응을 하지 않은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래. 그래야지. 암… 반드시 해낼 것이야.”
동현은 그렇게 사훈을 굳게 믿고 있었다.
동현이 이렇게 걱정하고 있을 때 사훈과 일행들은 백제의 수도 사비성에 도착해 있었다.
“이제 다 왔군. 자… 여기부터는 황훈 자네가 잘 알 테니 앞장을 서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대행수님.”
사훈의 말에 황훈이 앞장서서 집으로 향한다.
몇몇 사람들은 황훈의 모습을 알아보고는 저마다 혀를 찬다.
“저 망나니 같은 놈 또 왔네… 한 동안 안 보여서 좋아했는데…….”
“그러게 말이야. 어휴… 또 어떤 미친 짓을 저지르려나…….”
예전 황훈의 행동을 아는 사람들은 황훈을 보며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내면서도 화가 난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황훈은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로지 자신의 집을 향하고 있었다.
쾅! 쾅!
“안에 있느냐?”
“누구십니까?”
“나 황훈이다!”
“예? 황훈이요?!”
“내 목소리도 잊은 것이냐? 위사좌평 황우님의 아들 황훈이라고!”
“아…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하인은 황훈의 말에 기겁을 하며 빠르게 대문을 연다. 대문을 열자 정말 황훈의 모습이 보였고 모습이 보이자마자 하인은 고개를 숙이며 말한다.
“오셨습니까? 도련님!”
“그래. 아버님께서는?”
“예. 좀 전에 퇴청하신 후 목욕을 하러 잠시 가셨습니다.”
“그래?”
“예. 그런데 뒤에 분들은…….”
“예전에 그 분의 밑에서 함께 하던 분들이네.”
“아… 예. 그렇군요. 일단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도련님의 방이 일단 비어 있으니 그곳에 계시면 주인어른께서 목욕을 하고 나오셨을 때 알려드리겠습니다.”
“알았다. 대행수님. 가시죠.”
“그래.”
그렇게 황훈은 자신이 동현을 따라 가기 전까지 썼던 자신의 방에 돌아왔고 사훈과 단석한, 돌석비와 함께 황우가 목욕을 마치고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도련님! 주인어른께서 나오셨습니다! 이제 방으로 가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알았다. 대행수님. 가시지요.”
“그래. 알았다.”
황훈의 말에 사훈도 같이 일어나 황우가 있는 방으로 향한다.
“주인어른! 도련님과 그 일행 분들이 오셨습니다!”
“들이거라!”
“예!”
문이 열리자 황훈은 바로 황우의 앞으로 가 절을 하며 말한다.
“아버지! 제가 돌아왔습니다.”
“그래. 오랜만이구나. 옆에는…….”
“예. 저는 상단의 주인 김동현 어른을 모시는 사훈이라고 합니다.”
“사훈이라… 그 아이가 대리로 보낸 것이로군.”
“그렇습니다.”
“음… 이렇게 같이 왔다는 건 분명 나에게 할 말이 있어서 이겠구만.”
“물론입니다.”
“자네들이 떠나고 몇 달 후에 자네들의 상단 이름이 이 백제에까지 들리더군. 고구려 상단인데 수나라까지 진출하여 거상이 되었다고 하던데…….”
“맞습니다. 좌평 어른.”
“허어… 순순히 고구려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는군?”
“이미 다 알고 계시니 못 할 것도 없지요.”
“내가 자네들을 세작으로 말하며 가둘 수도 있는데? 최악의 경우에는 목을 벨 수도 있겠지.”
황우의 말에 옆에 있던 단석한과 돌석비가 욱하며 나서려 하지만 사훈은 그들을 말리며 여유로운 표정으로 받아친다.
“그렇게 하시려면 하십시오.”
“그렇게 하려면 해라?”
“예. 다만 이제부터 고구려와 백제의 전쟁을 각오하셔야 할 것입니다.”
“전쟁을 각오해야 한다라…….”
“예. 현재 저희 주인어른께서는 태왕 폐하의 신임을 받고 계시며 비사성의 포구 운영권까지 얻으셨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시는지 아시겠지요?”
사훈의 말에 황우의 표정이 급격히 굳으며 대답한다.
“…우리 백제 상단까지 전부 다 움켜쥐겠다는 것이군.”
“이미 이 백제에는 우리 상단이 넓게 퍼져 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백제의 경제를 흔들 수도 있지요.”
“…….”
“그렇게 흔든 뒤 우리 고구려가 전쟁을 백제와 일으킨다면 어떨까요? 백제가 버틸 수 있겠습니까? 그것도 작은 소국이 말입니다.”
“…….”
“그리고 그렇게 되면 가장 좋아할 나라가 있는데도 말이죠.”
“신라를 말하는 것이군.”
“그렇습니다. 그러니 전쟁을 일으켜서 되겠습니까?”
사훈의 말에 위사좌평 황우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