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동현, 강이식 대장군에게 조언하다
소희와 의정은 동현의 명령을 받자마자 요동성에 있는 백성들 중 생활이 고된 사람들 위주로 살펴보았다.
요동성 안과 외곽에 나가 동현의 명령을 수행하는 둘… 그렇게 둘은 하루 동안 백성들을 살펴보며 시간을 보냈고 돌아오는 길에 주막에 들러 국밥 한 그릇을 먹으며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근데 왜 대체 스승님께서는 생활이 어려운 백성들을 위주로 살펴보라고 말씀하신 거지?”
“혹시… 상단의 식량을 베풀 생각이 아니었을까요?”
“그건 아닐 거야. 이제 요동성에도 많은 식량이 쌓여있다고 했어. 저번에 스승님께서 도와 준 덕분에 요동성의 창고가 든든해졌었다고 했었지. 너도 들었잖아?”
“그건 그렇습니다만…….”
“으음… 생활이 얼마나 어려운지 파악해보라고 하셨는데 그 수도 되도록이면 파악해오라고 하셔서 기록까지 했어. 대체 이 많은 수를 왜…….”
“일단 스승님께 가보면 알 수 있겠죠. 저희가 기록한 수와 그들이 어느 곳에 많이 몰려있는지 책에 쓴 이 기록들을 스승님께 드리고 이유를 물어봐요. 우리…….”
“그래. 그러는 수밖에 없겠다. 얼른 먹고 가서 물어보자.”
그렇게 소희와 의정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국밥을 먹는데 집중한다.
그 무렵 동현은 동생 동우와 함께 창고가 지어진 곳과 황무지를 개간한 곳을 둘러보고 있었다.
동현은 창고와 황무지를 둘러보더니 동우에게 말한다.
“우리 상단에 있는 노비들에게 말은 했느냐? 소작을 할 수 있게 해준다고 말이다.”
“물론입니다. 형님. 형님의 말씀대로 소작을 하게 한 후 첫 추수 때는 저희에게 소작료를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으며 그 다음 추수 때는 1할씩만 소작료로 내라고 했습니다. 그 이후는 3할 정도 내라고 했고 말입니다.”
“아주 잘 했다. 이들이 첫 추수 때는 가진 것이 없으니 추수한 것을 모두 그들이 가지게 하는 것이 맞아. 거기다 분명 농사도 처음 지어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니 그런 사람들이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도록 해줘야지. 내가 말한 책은 모두 주었지?”
“물론입니다. 형님. 저도 그 책을 보았는데 정말 감탄만 절로 나왔습니다. 어찌 그런 농사법을 다 연구하신 겁니까?”
“저 수나라의 중원은 물론이고 중원으로 떠나기 전… 많은 농사꾼들을 보며 생각을 했다. 수확량을 더 늘릴 수는 없는 걸까 하고 말이야. 거기다 흉년이 들 때도 있으니 그 흉년이 들게 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많이 생각해 봤다.”
“그것을 형님께서는 알아내신 것이군요.”
“그래. 명심해라. 동우야. 일반 평민이든 노비이든 우리 땅에 있고 우리 상단 밑에 있는 이상… 모두가 같은 식구다. 그들의 신분이 천하다고 하여 소중히 여기지 않고 함부로 한다면 그 화가 우리에게까지 미칠 수 있다. 꼭 명심해라.”
동우는 동현의 말에 고개를 숙이며 명심하겠다고 대답한다. 그런데 그 때…
“형님!”
“응? 근혁이구나. 무슨 일이냐?”
“소식 들으셨습니까?”
“소식? 무슨 소식?”
“흐… 흑수말갈의 예선정기가 우리 고구려를 상국으로 모신다며 강이식 대장군에게 사신을 보냈습니다!”
“뭐라? 예선정기가?”
“그렇습니다. 형님!”
“으음…….”
“대체 무슨 꿍꿍이 일까요?”
동현은 근혁의 말에 잠시 생각을 하더니 대답한다.
“일단 강이식 대장군을 만나봐야겠군.”
“직접 어떤 말을 했는지 들어보실 생각이십니까? 대장군께 말입니다.”
“그래. 굽힐 녀석들이 아닌데…….”
“하지만 형님. 그들은 불열말갈을 공격하다고 우리 고구려와 불열말갈의 협공을 받고 많은 영토를 잃었습니다. 그리고 엄청난 피해도 입었고 말입니다. 그럼 저렇게 저 자세로 나올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물론 그럴 수 있지. 하지만 분명 내가 아는 흑수말갈의 예선정기라면 분명 조건을 걸었을 것이야.”
“조건이요?”
“그래. 내가 짐작한 것이 있긴한대… 일단 대장군과 이야기를 나누어봐야겠어.”
동현이 이렇게 말하는 그 때 멀리서 동생 지현이 오며 외친다.
“오라버니!”
“무슨 일이냐?”
“강이식 대장군께서 사람을 보내셨습니다! 지금 군부로 들어오시랍니다!”
“그래? 알았다. 허손! 나랑 같이 가자.”
“예! 대인어른!”
“아무래도 좀 전에 말한 그 일 때문인 것 같다. 근혁이 너는 내가 잠시 없는 동안 이곳을 살피고 있거라.”
“예. 형님!”
동현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자신을 호위하는 허손과 함께 군부로 들어갔다.
강이식 대장군은 동현이 군부로 들어가자마자 동현에게 묻는다.
“예선정기가 사신을 보냈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써서 보냈더군. 한 번 봐.”
동현은 예선정기가 보낸 글을 꼼꼼하게 읽어보았다.
그리고는 크게 웃음을 터뜨린다.
“하하하하! 이 자가 제 무덤을 파는군요.”
“응? 그것이 무슨 말인가?”
“제가 듣자하니 흑수말갈이 요즘 수나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뭐라? 그것이 참인가?”
“그렇습니다. 스승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제 상단은 수나라 전역에 퍼져 있으며 수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상단입니다. 그리고 다른 이민족들과도 많은 교류를 하면서 여러 곳에서 다양한 정보를 받고 있는데 이틀 전에 이런 정보를 거란족으로부터 입수했습니다. 그것도 거란족들 중 흑수말갈과 사이가 가장 좋지 않은 이굴가라는 족장에게서 말입니다.”
“그 말은 방금 네가 말한 정보가 거의 확실하다는 것이군.”
“맞습니다. 스승님. 과거 흑수말갈이 거란족들을 제멋대로 이용하였고 거란족은 그런 그들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많은 몸부림을 쳤습니다. 그것을 스승님께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물론이지. 으음… 내가 한 정보가 확실하다면 이것은 이제 가장 믿고 의지했던 수나라가 자신들을 버리니 우리에게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겠다는 것 같은데…….”
동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맞습니다. 스승님. 하지만 그 서찰에 쓰여 있는 요구를 들어주시면 안 됩니다.”
“응? 우리를 의지하기 위해서 온 흑수말갈인데? 그건 왜?”
“현재 흑수말갈이 힘을 잃은 이유는 우리 고구려와 불열말갈의 협공으로 인해 영토는 물론이고 많은 군사와 병력, 거기다 백성들까지 잃은 상황입니다. 언젠가 우리에게 복수를 하려고 이를 갈고 있는 상황이겠죠. 그런데 그런 상황에 우리에게 복속을 청한 겁니다. 그것도 신하국으로 말입니다. 스승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예선정기의 성정은 결코 남에게 고개를 숙일 사람이 아닙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으음… 그래. 그 말은 맞다. 딱 한 번 나도 본 적이 있지. 흑수말갈 오랑캐 놈 치고 무예도 꽤 뛰어난 놈이었고 말이야.”
“맞습니다. 그런 그가 우리에게 고개를 숙이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 대신 자신들이 신하국이 될 테니 우리가 잡아간 백성들 포로를 일부 돌려달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 뜻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십니까?”
“조금이나마 현재 흑수말갈의 인구수를 늘려서 빨리 국력을 회복시키겠다는 생각이군.”
“역시 스승님 이십니다. 맞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에게 맞서겠다는 것이지요. 국력만 되찾으면 말입니다. 이것은 우리를 안심시키면서 그들은 국력을 키우고 언젠가는 뒷통수를 칠 생각으로 짠 계략입니다.”
동현의 말에 강이식 대장군은 고개를 끄덕이며 묻는다.
“네 말을 들으니 막혔던 것이 풀리는구나. 그렇다면 사신을 보내 우리에게 청한 이 글에 대한 답장을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저들이 우리에게 청한 신하국 요청은 받아들이되 요구한 백성들을 돌려주는 것은 거절하십시오.”
“그렇다면 저들이 반발할 텐데?”
“반발하면 오히려 강하게 말씀하십시오. 우리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면 흑수말갈을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계속 적국으로 인식하겠다고 말입니다.”
“으음…….”
“그리고 또 하나! 저들은 분명 수나라가 자신들의 나라를 버렸다는 사실을 우리가 모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것을 알려주십시오. 그렇다면 저들은 현실을 직시하고 꼬리를 내릴 것입니다.”
“과연…….”
“만약 그렇게 해도 반발한다면 조금 전에 제가 말한 것들을 모두 사신에게 분노하듯 소리치며 이야기를 해버리십시오. 그렇다면 저들은 우리를 더욱 더 무서워하고 두려워 할 것이며 우리가 내분이 일어나거나 나라가 약해지지 않는 이상 우리 고구려를 공격하지 못할 것입니다.”
동현의 말에 강이식 대장군은 크게 웃으며 대답한다.
“하하하하! 역시… 네 머리는 참으로 대단하다! 술술 다 답이 나오는군! 안 그런가? 대중상!”
“그렇습니다. 대장군. 역시… 고구려의 신동답습니다. 하하하하!”
“과찬이십니다.”
“네 뜻대로 하겠다. 고맙다! 내일 사신을 만나는 조회 때 그 사신으로 온 자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구만. 으하하하!”
동현은 호탕하게 웃는 강이식 대장군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수나라를 제외한 북방에 관련된 일에 대한 전권을 강이식 대장군이 맞게 된 것에 말이다.
강이식 대장군이 없었다면 고구려의 북방은 불안했으리라… 동현은 그렇게 강이식 대장군에게 조언을 해주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 날.
“형님. 좀 전 조회 때 소식을 들으셨습니까?”
“조회 때?”
“예. 조회가 끝나고 나서 대중상 모달께서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조회 때 이야기를 해주시면서 형님께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 일이 잘 풀린 모양이구나.”
“예. 형님이 한 대로 말을 하자 흑수말갈의 사신은 그저 우리 고구려의 신하국이라는 것만 확인 받고 요구 사항은 묵살당한 채로 돌아갔답니다.”
동현은 근혁의 말에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그런 동현을 보고 근혁이 밝은 표정으로 계속 말을 이어간다.
“그나저나 형님. 그 농사직설이라는 책 말입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우리 땅의 풍토에 맞게 형님께서 쓰신 것인데… 그것이 맞아 들어가는지 모든 것이 잘 되고 있습니다.”
“다행이군.”
“그런 책을 보고 부족한 점을 찾으라니… 형님께서는 너무 꼼꼼하십니다.”
“내가 보는 것과 네가 보는 것은 다를 수 있지 않겠느냐?”
“하지만 형님. 형님이 만든 그 책은 다른 수하들도 보고 감탄했습니다. 특히 사훈이나 조용, 조송 등 농사법에 대해 그렇게 풍토에 맞는 농사법으로 자세히 기술한 책은 없다며 극찬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들은 내 수하라 그렇겠지. 나도 부족한 점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책에서 부족한 것을 찾으라는 것은 형님의 기준이 너무 높기 때문입니다. 아랫 것들 좀 살려주십시오. 형님.”
동현은 근혁의 말에 피식 웃으며 대답한다.
“바로 고하라는 것이 아니다. 혹시나 내가 생각하지 못한 내용이 있으면 어떤 것을 넣으면 좋겠는지… 여유를 두고 생각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알겠습니다.”
동현과 근혁이 그렇게 상단의 일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그 때… 누군가 동현에게 달려오며 외친다.
“동현아!”
“응? 우식이 아냐?”
“허억! 헉!”
“무슨 급한 일이기에 그렇게 뛰어와?”
“저… 정말 급한 일이라서 그래!”
“급한 일이라고?”
“그래!”
“무슨 일인데?”
“그건 비밀이야.”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아주 중요한 말이라서 여기서 말하기는 곤란하다는 말이야! 얼른 아버지께 가야해!”
“스승님한테 말이야?”
“응! 아버지가 널 데려오라고 말씀하셨어!”
“대체 무슨 일이지? 대장군께서 부르시니 다녀와야겠다. 그 동안 상단을 좀 부탁한다. 근혁아.”
“염려 마십시오. 형님.”
“허손! 가자!”
동현은 자신을 호위하는 허손과 함께 우식을 따라 군부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후… 군부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방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