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동현, 왕빈에게 자신의 뜻을 밝히다
동현은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한 동안 잠을 청한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늦은 시각이 되자 자신을 호위하는 허손과 함께 왕빈 대인 집으로 향한다.
“나 혼자 가도 되는데 손아.”
“아닙니다. 대인어른의 곁을 지키는데 제가 해야 할 일 아닙니까? 이곳에 오고 난 뒤 해론님이 저와 교대로 대인어른의 곁을 호위하게 되었으니 마땅히 지켜야죠.”
“고맙다. 자… 얼른 가자!”
“예. 대인어른.”
그렇게 같이 왕빈의 집으로 향했고 집에 도착하자 집사가 기다렸다는 듯 동현을 맞이한다.
“오셨습니까?”
“그래. 대인어른께서는 어떠신가?”
“예. 한결 좋아지셨습니다.”
“다행이군. 일단 들어가 봐야겠어. 아… 그리고 여기 허손이라는 자는 나를 호위하는 사람인데 이 자가 쉴 곳도 같이 마련해주게.”
“알겠습니다.”
“대인어른. 그래도 방에 들어가실 때 저도 같이…….”
“아니야. 왕 대인께서는 절대 안정을 취하셔야 하니 사람이 너무 많으면 안 돼. 그러니 같이 들어오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걱정 말거라. 이곳에서는 그럴 일이 없으니 말이다.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소리를 쳐 너를 부르도록 하마. 나를 믿거라.”
“으음… 알겠습니다. 대인어른.”
동현이 그렇게 허손에게 말을 하자 옆에 있던 집사가 대답한다.
“참으로 충성스러운 분이십니다.”
“허허허. 그렇다네. 내가 허도에 있으면서 내 밑으로 들어온 사람인데 무예가 뛰어나고 힘도 쎈 장사지.”
“그래 보입니다.”
“과찬이십니다. 집사어른.”
“사실이지 않은가? 호랑이도 때려잡은 사람이 말이야. 자… 그럼 나는 들어가 볼 테니 집사는 여기 내 호위인 허손이 잠시나마 머물 곳을 알려주도록 하게.”
“예. 대인어른!”
동현은 그렇게 왕 대인이 있는 방으로 들어간다.
방에 들어가자 하루 정도 지나 힘을 조금 회복했다고 왕빈은 벽에 몸을 기댄 채 앉아 동현을 맞이했다.
“왔는가?”
“예. 대인어른. 몸은 좀 어떠십니까?”
“훨씬 좋아졌네. 그것 참 신기하구만. 그 수술 한 번으로 사람의 몸이 이렇게 차도가 있다니 말일세.”
“다행입니다. 그리고 저를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실패를 할 수 있을 가능성도 매우 컸습니다.”
“나도 아네. 나도 그것을 알면서 받아들이지 않았는가? 그리고 그와 반대로 성공을 했어. 저번에도 말했지만 자네는 내 생명의 은인이야.”
왕빈은 그렇게 말을 하더니 동현의 손을 잡고는 말을 이어간다.
“나는 여자 없이 혼자 살아서 아들도 아내도 없네. 제일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는 저기 집사뿐이었지. 저 집사는 내가 처음 장사를 시작했을 때부터 동거동락을 함께 한 사람이기에 내가 가장 믿고 있어.”
“그렇게 보입니다. 참으로 충성심이 강해보였습니다.”
“암! 그렇고말고… 그런데 믿을 만한 사람을 한 사람 더 찾았어. 바로 자네야.”
“…….”
“자네를 처음 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자주 만나보았을 때… 나는 직감했네. 내가 운영하고 있는 상단을 내가 죽으면 자네에게 물려줘야겠다고 말이야.”
“대인어른. 대체 제 어디를 보고 그토록 저를 믿으십니까?”
“내가 저번에도 말하지 않았는가? 자네의 총명함과 현명함. 그리고 모든 능력을 믿는다고 말이야. 자네라면 내가 죽더라도 내가 이끌던 상단을 제대로 이끌 수 있겠지.”
“…….”
“저번에도 말했지만 나는 자네를 아들처럼 여기고 있네. 그러니 자네도 나에게 변함없이 믿음을 주게.”
“저도 그러고 있습니다. 다만… 대인어른께서 저를 대하시는 것이 너무 지나친 것 같아서…….”
동현의 말에 왕빈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한다.
“지나치다니! 결코 지나치지 않다네. 현명한 자에게 상단을 물려주기 위해 미리 이야기하는 것이 잘못된 것인가?”
“…….”
“내가 죽고 난 뒤 상단을 이끄는 것은 이제 자네 몫이야. 그러니 자네가 고구려로 돌아가고 나면 나와 지속적으로 교류를 하면서 내 상단에 대해서도 자세히 살펴야 할 것이야. 자네에게 물려주기 전 현재 내가 운영하고 있는 상단을 잘 알아야 나중에 큰 문제가 없지 않겠는가?”
“물론입니다.”
“나는 이제 내 할 말을 다 전해서 너무나도 홀가분하다네. 그리고 그 유언장의 내용은 조만간 내가 사람들을 모아 공표를 할 예정이야.”
“……!”
“그러니 그렇게 알아두도록 하게.”
“예. 대인어른. 그런데 대인어른.”
“……?”
“저… 중요한 사안으로 대인어른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왕빈은 동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무엇인가? 말해보게.”
“사실…….”
동현은 한 동안 자신의 수하들에게만 말을 했던 내용들을 왕빈에게 모두 털어놓았다.
왕빈이라면 모든 것을 털어놓아도 자신을 믿어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
“음… 고구려와 가문을 위해서 상행을 시작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재물이 필요했다. 그래서 중원까지 왔다는 것이구만?”
“그렇습니다. 대인어른.”
“하하하하!”
“……?”
“사실… 내가 고구려로 들어가서 자네를 처음보고 수나라에서 온 자네를 보고 난 뒤 이미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했네.”
“……!”
“고구려를 위해 재물을 모은다는 것은 잘 몰랐지만 적어도 자네 가문을 위해 많은 재물을 모으려 한다는 것은 알았지. 그런데 오늘 자네의 큰 포부를 듣고 보니 내가 사람을 아주 잘 봤다는 생각이 드는구만!”
왕빈은 옆에 있던 사발의 물 한잔을 벌컥거리며 마시고는 말을 이어간다.
“내가 죽고 난 뒤 자네가 그 재산을 가지고 자네의 가문과 나라에 뜻 있는 데 써서 자네가 높은 자리에 올라간다면 나도 죽어서 이름은 크게 남길 수 있겠지. 거기다 내 사람들도 높은 자리에 올라갈 수 있을 것이고 말이야. 안 그런가?”
“대인어른…….”
“그렇게 되면 내 이름이라도 세상에 알려지게 해주게! 죽어서 역사서에 이름 하나는 남기고 싶어서 그러니 말일세. 하하하하!”
왕빈이 그렇게 말을 하고는 크게 웃는 모습에 동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다니… 이 정도 부를 이룬 사람이라면 분명 더 큰 부를 이루게 위한 욕심이 생길 것인데 왕빈은 아니었다.
동현이 생각하던 기존의 인간에 대한 생각을 떠올리는 그 때 왕빈이 그런 동현의 생각을 짐작하기라도 한 듯 말한다.
“자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군. 어떻게 나처럼 행동을 할 수 있냐고 생각을 했겠지. 내 말이 맞나?”
“그… 그렇습니다. 어찌 그렇게 제 마음을 잘 아십니까?”
“간단하지. 내가 하는 말은 결코 가벼운 말이 아니었으니까 말이야.”
“…….”
“그리고 진심이었지.”
왕빈은 숨을 한 번 고른 후 계속 말을 이어간다.
“내 나이 올해 63살이야. 평생 장사를 하며 큰 부를 이루면서 하고 싶은 일은 모두 다 해보았지. 이제 더 이상 이룰 것은 없다. 이루지 못한 것 하나라 봐야 여자랑 혼인 한 번 못한 것? 그거 하나 꼽을 수 있겠군.”
“…….”
“내가 부를 이루고 모든 것을 다 해보아서 그런지 이제 이런 많은 재산도 다 부질없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여건만 된다면 기존에 가던 곳 말고 가보지 못한 곳으로 상행을 나가고 싶었지. 그리고 그곳에서 장사를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너무 늙었어.”
“…….”
“그리고 보다시피 건강도 좋지 않고 말이야. 그래서 걱정이 됐다. 나 하나만을 믿고 온 사람들이 말이야. 그래서 이 일을 어떻게든 해결해야 했지. 그런데 마침 자네가 나타났어. 저번에도 말했던 것 같지만 나는 자네를 한 동안 유심히 살펴보았네. 그리고 좀 전에 말했던 것처럼 판단을 내렸지.”
“…….”
“마음이 정말 홀가분하군. 마음속의 짐이 다 벗겨졌어.”
동현은 왕빈의 표정과 대답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대인어른께서 그토록 말씀하시니… 소인 대인어른의 뜻을 받들겠습니다.”
“고맙네. 내가 죽으면… 우리 상단을 잘 부탁하네.”
“예. 대인어른. 물론입니다.”
“그나저나… 자네 고구려로 언제 떠날 생각인가?”
“예. 본래 이곳에 하루만 머물다 가려 했습니만 대인어른이 중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나중에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이런… 나 때문에 모두 차질이 생겼군. 점말 미안하네.”
“아닙니다. 그럴 수 있죠. 고구려로 돌아가는 건 현재 상황에서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으니까요.”
동현의 말에 왕빈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한다.
“계획이라는 것은 한 번 세우면 그 계획을 함부로 바꾸어서는 안 되네. 그러니 기존에 계획을 세웠던 대로 조금 늦더라도 빨리 고구려에 돌아가도록 하게.”
“하지만 대인어른. 대인어른의 몸 상태를 좀 더 살펴드려야…….”
“이 정도면 빨리 회복할 수 있어.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고구려로 돌아가게.”
“음… 대인어른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이곳에서 이레(7일)뒤에 출발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것도 긴 것 같네만…….”
“그 정도 기간 동안에는 대인어른의 상태를 보고 가도록 해주십시오. 혹여 모를 변수로 인해 대인어른께 문제가 생기지는 않는지 확인을 해야 하니 말입니다.”
“…자네가 그렇게 결심했다니 더 이상 말리지 않겠네. 단 이레 뒤에는 반드시 떠나야 하네. 알겠는가?”
“예. 대인어른.”
동현은 그렇게 이레 동안 왕빈을 살피기로 약속을 하고는 한 동안 왕빈과 좀 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동현이 이레 동안 왕빈의 상태를 살피며 간호를 하고난 뒤… 동현은 고구려로 돌아가기 위해 모든 준비를 마쳤다.
동현은 고구려로 돌아가기 전 왕빈과 작별하기 위해 집에 잠시 들렀는데 왕빈은 동현을 배웅하기 위해 집사의 부축을 받고 대문 밖까지 나와 있었다.
“아니… 대인어른! 몸도 안 좋으신데… 그러다 갑자기 안 좋아지시면 어찌하시려고요? 아직 이렇게 움직이실 때가 아닙니다.”
“괜찮네. 너무 답답해서 자네를 배웅할 겸 나온 것이니 걱정하지 말아.”
“대인어른…….”
“조심히 가게. 그리고 소식을 종종 전하도록 하고…….”
“예. 대인어른.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보게 집사. 내가 말한 대로 처방을 그대로 해서 100일 동안 계속 먹으면 될 것일세. 그래야 대인어른의 몸도 원래대로 회복이 되고 다른 병이 침투하지 못 할 것이야.”
“예. 김 대인어른!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대인어른. 소인 가보겠습니다.”
“그래. 돌아가는 길이 험하니 조심히 가게.”
“예. 대인어른! 자… 모두 돌아가자! 이랴!”
그렇게 동현은 자신의 상단을 이끌고 업성을 나가 고구려로 향했다.
왕빈은 동현이 사라지는 뒷모습을 보며 말한다.
“이보게. 집사.”
“예. 대인어른.”
“내 몸이 예전처럼 거동하기가 가능해지고 어느 정도 회복이 되면 내가 수술하기 전 유언장에 썼던 말을 모두에게 말해야겠어. 그 때가 되면 상단총회를 소집할 것이니 언제든지 상단총회가 소집되어 일을 진행시킬 수 있도록 준비를 해주게.”
“예. 대인어른. 그렇게 하겠습니다.”
“후우… 이제 들어가지. 아직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서 그런가? 잠깐 서 있다고 다리가 아프구나.”
“제가 모시겠습니다. 대인어른. 제 팔을 잡으시지요.”
“그래.”
왕반은 그렇게 동현을 배웅하고 다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한다.
그 시기 동현은 읍성을 빠져 나와 상단을 이끌고 고구려로 분주하게 돌아가기 위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예전에 고구려에서 국경을 넘을 때 들렀던 북평성에 도착을 하게 되었다.
내호아는 엄청난 규모의 상단에 대해 보고를 받았고 그 상단이 동현이라는 말을 듣고는 직접 성문으로 나와 동현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