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소희와 의정을 교육하고, 새로운 집에 들어가다
사훈은 단석한과 돌석비에게 귓속말로 말한다.
“두 사람은 이 업성 안의 분위기를 자세히 알아보게.”
“분위기요?”
“그래. 대인어른께서 여기 왕빈 상단과 함께 이 나라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분과 거래를 한다고 했다. 둘이 아까 오전 회의 때 들었을 것이 아니냐?”
“물론이죠.”
“하지만 이 두 상단은 전적으로 비누와 두부에 대한 계약일 뿐 다른 품목들에 대한 거래가 아니다. 다른 품목들도 다른 상단들과 거래를 해야 우리가 큰 이문을 얻을 수 있어. 그러려면 이 업성에 있는 상권을 잘 파악해 놓는 것은 물론이고 이 업성의 백성들은 부유해 보이는지 등등… 많은 것들을 파악해야 한다.”
“예.”
“너희 둘이 그것을 해달라고 대인어른께서 말씀하셨다. 둘이 군사를 잘 다루어 보았으니 그 쪽으로 보는 눈은 뛰어날 것이 아니냐?”
사훈의 말에 단석한과 돌석비는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이 업성에 관련된 정보는 전부 다 알아보면 되는 것 아닙니까?”
“역시 이해들이 빠르군. 부탁함세. 대인어른께서 나에게 이 일 말고도 다른 일도 부탁한 것이 있어서 일을 동시에 하지 못할 것 같아 자네들에게 부탁을 하는 것이야.”
“맡겨주십시오. 대행수님. 기꺼이 도와드리겠습니다.”
“고맙네. 그럼 부탁하지.”
사훈의 말에 단석한과 돌석비는 바로 왕빈 상단의 집을 나가 업성의 거리로 나간다.
사훈은 그런 둘이 시야에서 사라진 뒤에서 시선을 돌리며 소희와 의정을 뒤에서 쳐다본다.
둘은 여전히 동현이 있던 방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는데 사훈은 그 모습에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살피더니 자신의 품 안에서 무언가를 소희에게 슬쩍 던져놓고는 사라진다.
소희는 눈물을 흘리다가 사훈이 던졌던 것이 자신의 앞에 떨어지자 무엇인가 해서 보는데…….
[시간의 중요성과 시기]
사훈이 던진 작은 쪽지를 본 소희는 쪽지에 시간의 중요성이라고 써 있는 것을 보고는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 그 모습을 같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던 의정도 보았는데…….
“시간의 중요성과 시기라… 대행수님이 왜 스승님께서 저희에게 화가 났는지 말을 해주는 단서인 것 같습니다.”
“그래. 맞아. 스승님께서 말씀하셨잖아. 그런데 그 뒤에 말인 시기라니… 이게 무슨 뜻이지?”
소희가 고민을 하자 의정은 곰곰이 생각한 후 대답한다.
“혹시…….”
“응?”
“무슨 일을 할 때에는 때가 있다는 것이 아닐까요?”
“때가 있다고?”
“그렇습니다. 아가씨. 왜 태왕 폐하께서도 그러시지 않았습니까? 모든 일에는 시기를 놓치면 일을 그르친다고 말입니다. 그 말과 일맥상통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 그래. 네 말이 맞는 것 같아! 예전에 스승님께서도 항상 말씀하셨지. 시간을 엄수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고 말이야. 일이 전부 꼬인다고 까지 말씀하신 적이 종종 있으셨어. 의정이 너도 들은 적이 있지?”
“그렇습니다. 저도 기억이 납니다.”
“그래. 네 말이 맞아. 분명 우리가 시간을 어김에 따라서 그 시기를 놓쳤기에 우리에게 그렇게 화를 낸 것일 거야. 그리고 우리 스스로 그것을 알게 하기 위해 이런 조치를 취하신 것이고 말이야.”
“…….”
“스승님이 문 앞으로 오시면 바로 말하자. 이제 깨달았다면서 말이야.”
“예. 아가씨.”
소희와 의정이 그렇게 말을 나눈 뒤 한 식경(약 30분 정도)가 지났을까?
동현은 근혁과 함께 장손성 계약에 관련하여 왕빈이 있는 방에 다녀와 자신의 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무릎을 꿇고 있는 소희와 의정을 본 척도 하지 않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려 한다.
그런 동현을 보며 소희가 급히 고한다.
“스승님. 저희가 어떤 잘못을 했는지 이제 알았습니다.”
“…….”
“시간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에 있어서 모든 일에 시기가 있는데 그 시기를 놓치면 일을 그르친다고 말입니다. 스승님께서 종종하시던 말씀이었는데… 이제야 기억이 났습니다. 죄송합니다.”
소희의 말에 동현은 방문 앞에서 발길을 멈추고 묻는다.
“조금은 깨달았군. 그럼 한 가지 더.”
“……?”
“내가 말한 죄와 너희가 말한 잘못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그게 무엇인지 아느냐?”
“그…. 그건…….”
“쯧쯧… 좀 전에 내가 말한 것을 잘 떠올린다면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것이 아니냐?”
“죄… 죄송합니다. 스승님. 제가 워낙 아둔하여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가르침을 주십시오.”
소희와 의정이 엎드리며 말하자 동현은 바로 대답한다.
“좋아. 너희가 일단 무엇을 잘못했는지 스스로 조금이나마 깨달았으니 알려주마. 내가 너희에게 처음 말한 세 가지 죄를 언급했다. 그 죄라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도 피해를 주어서 큰 잘못을 했다는 것이 죄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었다는 것이지. 너희가 만약 관직에 있었다면 이것은 큰 중죄이다!”
“…….”
“하지만 잘못은 다르지. 잘못이라는 것은 너희가 스스로 깨달으면서 고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쉽게 말해서 잘못이 커지면 큰 죄가 된다는 것이야. 잘못이 커져서 죄가 되면 다른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입는 것이고 대사를 그르치게 되는 것이지.”
“명심하겠습니다. 스승님.”
“이제 그만 일어나거라.”
동현의 말에 소희와 의정이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장시간 무릎을 꿇고 있어서 그런지 다리가 저려 다시 주저앉는다.
그런 둘을 보며 동현은 말을 이어간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가 정한 시간을 절대로 어기지 않도록 해라. 오늘 너희의 일은 잘못에서 끝났다. 다행히 다른 사람들이 너희가 하고자 하는 일을 메워주었으니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 죄가 되지 않았지. 다만 그 일을 대신한 사람들에게는 너희가 피해를 준 것이니 그 사람들을 찾아가 꼭 사과를 하도록 해라. 알겠느냐?”
“예…….”
“이런 사소한 잘못으로 인해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벌어질 수 있음이야. 둘이 명심하도록 해!”
“예. 스승님…….”
“반 시진 정도 쉬었다가 수련 준비해.”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지금 너희 수련할 시간이다. 모르고 있지는 않을 텐데?”
“아… 벌써 시간이…….”
“너희 때문에 이런 시간을 허비한 것이야! 시간은 금과 같은 법! 다음에도 이런 일이 있으면 그때는 정말 파문이다! 알았느냐?!”
“예. 스승님…….”
동현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근혁과 함께 방으로 들어간다.
동현과 근혁이 방으로 들어가자 소희와 의정은 그제야 긴 한숨을 내쉰다.
“후우… 그래도 다행입니다. 꼼짝없이 평양으로 돌아가야 하나 했는데 말입니다.”
“그러게. 정말 다행이야. 아무튼… 이제 오후 수련 준비하자.”
“예. 아가씨.”
그렇게 소희와 의정은 잠시 방으로 들어가 휴식을 취한다.
그리고 반 시진 뒤… 둘은 동현에게서 지옥을 경험했다.
“너희의 그 썩어빠진 정신을 오늘 확실하게 뜯어 고쳐주지! 물통 양 손에 똑 바로 안 들어?!”
“으으윽……!”
“무릎 90도로 안 굽혀?! 어? 머리에 있는 물 담은 그릇에서 물이 쏟아지면 처음부터 다시 반 시진이다!”
동현은 좀 전에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소희와 의정에게 썩어빠진 정신을 개조시켜 주겠다는 이야기를 하며 혹독하게 무예 수련을 시켰다.
그리고 그 날… 소희와 의정은 방 안에 돌아오자마자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다음 날… 동현과 상단은 왕빈과 인사를 하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대인어른. 대인어른 덕분에 이 업에 좋은 집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감사는 무슨… 당연히 해야 할 일이오. 오히려 본래 집 주인이 빨리 집을 비우지 못하여 김 대인을 이토록 기다리게 했으니 내가 미안하오.”
“그 무슨 말씀이십니까? 집을 대신 구해주셨는데요.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하하하! 이제 그런 인사는 그만하고… 이제 가 보시구려. 그리고 이 업성에 있을 동안 앞으로도 종종 왕래를 하도록 합시다.”
“예. 그리 하겠습니다. 제가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그리하시오. 아… 참! 그나저나… 장손성 장군과의 계약은 잘 되었소?”
“예. 저희가 내민 계약을 전부 다 받아들이셨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 장손성 장군 댁에 비누와 두부가 공급될 겁니다.”
“잘 되었구만. 이제 중원으로 첫 발을 순조롭게 내딛었구려. 하지만 김 대인은 이제 시작이오. 이 중원은 고구려보다 훨씬 큰 상단도 많고 보이지 않는 치졸한 수를 쓰는 상단도 많소. 그것을 잘 구분하면 김 대인의 상단은 더욱 큰 상단이 될 수 있을 것이오.”
“대인어른의 충고를 깊이 새기겠습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동현은 그렇게 왕빈에게 인사를 하고는 업성 안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동현은 자신의 모든 것을 챙겨주는 왕빈이 너무나도 고마웠다.
얼마 전 왕빈이 집을 구해주었는데 그 집의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커서 동현이 입을 쩍 벌릴 정도였다.
그 집을 자신의 돈으로 동현에게 집까지 사준 것.
자신이 중원으로 동현을 이끌었으니 당연히 자신이 집을 사줘야 된다며 집까지 마련해주는 왕빈을 보고 동현은 나중에 전쟁이 벌어졌을 때 왕빈만큼은 꼭 챙겨야겠다고 생각했다.
동현은 집 안으로 들어서면서 집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살피는데…….
“정말 엄청나게 큰 집입니다. 이런 큰 집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희에게 사주는 것을 보면 역시 수나라 제일의 거상답습니다.”
“그래. 내가 이 중원에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나를 세심하게 챙겨주었지. 언젠가 꼭 이 은혜는 꼭 갚아야 한다. 나중에 우리 고구려와 수나라가 전쟁이 일어났을 때 왕빈 대인만큼은 내가 꼭 챙길 것이야.”
“저도 그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형님께 고하려 했었는데… 다행입니다. 같은 생각이었다니 말입니다.”
“우린 의형제이니 생각이 통하는 것 같군. 그나저나 잘 되었어. 중원에 왕빈 상단과 계약을 한 이후 어떻게 상단을 이 중원에 자리 잡게 할까 걱정했는데… 장손성 그 자 덕분에 쉽게 자리를 잡게 되겠군.”
“그렇습니다. 다만 그가 우리를 주시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겠지요.”
“그래. 그 점은 각별히 조심할 필요가 있다. 장손성은 이 수나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장군이니 만큼 이 수나라 전역에 미치는 영향이 어마어마할 거다. 분명 여러 곳에 자신의 세작들을 심어놓았을 거야. 그러니 주의해야 해.”
“예. 형님 각별히 주의하겠습니다.”
동현은 장손성에 대해 근혁에게 계속해서 주의를 주며 말을 이어갔다.
“우리의 상단을 더 키우기 위해서는 사람들을 더 많이 받아들이게 되겠지. 그러는 과정에서 장손성의 세작이 섞여 들어오지 않는지 잘 확인하고 받아야 한다. 이것도 근혁이 네가 각별히 신경을 쓰도록 해.”
“알겠습니다. 형님.”
“그리고 아마도 우리가 왕빈 상단처럼 커지기 시작하면 분명 우리 상단에 대한 관심이 커질 것이다. 수나라의 고관대작 뿐 만이 아니라 주변의 큰 상단들 같은 경우 말이야. 그런 사람들이 우리의 정보를 빼내기 위해서 우리 상단에 잠입시킬 수 있으니 그 점도 잘 구분해서 사람들을 받아들이도록 해.”
“예. 형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시작이다. 우리 고구려와 수나라의 전쟁이 터지기 전까지… 빠르게 이곳에서 재물을 모은다. 그리고 고구려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니 정신 바짝 차리도록 해. 여기서 삐끗하면 돌이킬 수 없게 된다.”
동현의 말에 근혁은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