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6화 동현, 국내성으로 돌아가 근혁과 재회하다
동현의 말에 황훈은 소스라치게 놀란다.
“지…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고… 고구려 분이시라고요?”
“그래.”
“아… 아버지께 말씀하실 때는… 백제의 변방 귀족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분명 그랬지.”
“그럼… 거짓을 말하신 것입니까?”
동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순순히 인정한다.
“그래. 그 상황에서 내가 고구려 사람이라고 밝혔으면 위사좌평인 네 아버지가 나를 어떻게 했을지 모른다.”
“그, 그런…….”
“하지만 난 위사좌평과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킬 거다. 그러니 그 걱정은 하지 말고 돌아가.”
“…….”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저번처럼 맞기 싫으면 말이야.”
동현은 협박도 섞어가며 황훈을 설득했다.
“넌 애가 아니다. 그러니 어리광 부릴 생각하지 말고 일 제대로 배워. 내가 저번에도 말했듯이 네 적성을 찾으면 그에 맞는 일을 꼭 맡길 것이고 거기서도 잘하면 너를 한 단계씩 위로 올릴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 열심히 해라.”
동현은 그렇게 일방적으로 통보를 하고는 방문을 닫고 들어가 버린다.
황훈은 그런 동현을 붙잡으려 하지만 좀 전에 동현이 한 말로 인해 또 다시 흠씬 맞을까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잠시 생각에 잠긴다.
‘아우… 정말… 온 몸이 다 쑤신다. 오늘 그렇게 물건을 날랐더니 죽을 것 같아. 이런 생활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거야? 제기랄… 지금 다 자고 있는데 도망칠까? 아냐… 호위무사들이 돌아가면서 경계까지 서잖아. 도망칠 기회도 없어. 어쩐다?’
항훈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겨우 잠자리에 들었다.
그때 동현의 방에서는…….
“황훈입니까?”
“그렇소. 부인.”
“역시… 나약한 티가 나네요.”
“어쩌겠소? 적응해야지.”
“서방님께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본의 아니게 서방님과 황훈과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습니다.”
“지금 같은 시각에 있을 수 있는 일이지. 괜찮소. 부인. 이곳에는 우리 밖에 없으니 말이오.”
“음… 알겠습니다. 다만 걱정인 것은… 서방님께서 황훈에게 고구려 사람이라는 것을 너무 쉽게 알려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동현은 정희의 말에 빙그레 웃으며 대답한다.
“오히려 황훈한테는 밝히는 것이 좋았을 거요. 부인.”
“응? 어째서 그렇습니까?”
“어제 황훈 그 녀석이 왜 나에게 왔다고 보오?”
“그야… 지금 하는 일이 고되고 힘드니까 백제로 언제 돌려보내줄지 말한 것이 아닙니까?”
“물론 그렇소. 하지만 한 가지가 더 있다오.”
“……?”
“그는 나를 백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같은 동향이라는 정리를 통해서 그런 말을 한 것이오.”
“아… 그런데 서방님이 고구려 사람이라고 밝힘으로써 그런 정리는 없다고 단칼에 선을 그으신 것이군요?”
“맞소. 부인. 그렇게 되면 그 녀석은 나에게 더욱 더 함부로 할 수 없게 되지. 같은 백제 사람이라는 정리를 이용해 나를 설득하여 백제로 돌아갈 생각을 가졌는데… 내가 고구려 사람이라고 밝히니 앞으로는 그런 정리를 이용해 나에게 말을 하지 못 할 것이오.”
“대단하십니다. 그런 일까지 생각하시다니… 소첩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별 말을… 자, 일찍 잡시다.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하려면 고될 것이오.”
“예. 서방님.”
동현은 그렇게 황훈과의 일을 간단하게 해결하고 정희와 함께 한 침대에서 잠을 청했다.
그리고 다음 날, 동현은 아침 일찍 상단을 이끌고 국내성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뒤를 영양 태왕의 명령으로 시킨 상선의 수하들이 쫓아가고 있었다.
“국내성으로 향하는 것 같지?”
“그런 것 같아.”
“내가 알기로 예전에도 이런 식으로 왔었어. 요동성에서 출발해서 국내성을 거친 다음 평양성으로 들어왔었지. 그리고 백제로 향했고 말이야.”
“그래. 나도 들어서 알고 있어. 헌데 이제 20살 막 성인이 되었는데 왜 일거수투일족을 살펴보라는 거지?”
“내가 상선 어른께 듣기로는 저 상단의 주인이 이제 막 성인이 되어 어리기는 하나 머리가 워낙 비상해서 신동이라고 불리고 있다더라. 태왕 폐하께서 정말 큰 관심을 두고 보고 계셔서 우리가 본 것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상선 어른께서 태왕 폐하께 다 보고를 해야 한대.”
“그렇군… 그나저나 국내성으로 향하고 있다고 상선 어른께 알려드려야 하는데?”
“내가 다녀올게. 평양성을 떠난 지 얼마 안 됐으니 말을 타면 금방 갈 거야.”
“그래. 부탁한다.”
동현의 뒤를 밟은 상선의 수하들은 그렇게 동현과 동현의 상단을 살피며 그 뒤를 따라 같이 국내성으로 향했다.
그렇게 며칠 뒤, 동현은 국내성 근처에 이르게 되었다.
동현의 상단이 온다는 정보를 어디서 들었는지 국내성에 있는 북부욕살(욕살: 고구려는 지방으로 중앙관리를 파견하였는데 대성과 성, 소성으로 나누었다. 그 중 대성을 관리하는 사람을 욕살이라 한다. 욕살은 행정은 물론이고 군사적으로도 책임을 가지고 있는데 중국과 비교하였을 때 도독과 같은 위치라고 알면 되겠다) 고연후가 문 앞에 나와 동현과 상단을 맞이하고 있었다.
“아니… 욕살 어른! 왜 이렇게 나와 계십니까?”
“허허허… 자네가 온다는데 내가 당연히 나와야지?”
“저는 일개 상단의 주인일 뿐입니다. 이렇게까지 하시다니… 과하십니다.”
“과하다니?! 과하지가 않아! 자네 덕분에 이 국내성이 더욱 더 활기를 띄고 경제적으로도 더욱 더 풍족해졌네. 그러니 내가 어찌 자네를 이렇게 나와 맞이하지 않을 수 있겠나?”
“음… 뜻은 감사합니다만… 다음부터는 이러지 마십시오. 욕살 어른께서 제게 이런 호의를 베푸시는 것이 위에 사람들이 본다면 어떤 뜻으로 전해질지 두렵습니다.”
동현의 말에 고연후는 크게 웃으며 대답한다.
“하하하하! 역시! 자네야! 암! 그러겠네! 오늘만 이리하도록 하지! 자… 일단 들어가지! 내가 연회자리도 마련해 놨으니 말이야!”
“예? 연회까지요?”
“그래! 이것마저 앞으로 거절하려 하면 안 되네? 자! 얼른 가세!”
고연후는 잔뜩 신이 난 표정을 지으며 동현을 국내성 안으로 이끌었다.
그런 고연후를 본 동현은 못말리겠다는 표정과 한숨을 쉬며 뒤를 따라 들어갔다.
그런데 그때.
“형님!”
“오! 근혁아! 잘 지냈느냐?!”
“예! 형님! 으하하하! 형님께서 이리 돌아오셔서 기쁩니다!”
“나도 그렇다! 하하하!”
동현은 의형제를 맺은 근혁과 만나자 말에서 바로 내리며 격하게 껴안는다.
그런 동현과 근혁을 보며 고연후가 말한다.
“둘의 우애가 참으로 대단하군. 의형제이긴 하나 마치 친형제와 같아 보여.”
“그렇습니다. 제가 가장 아끼는 동생입니다.”
“그래. 그렇게 보이네. 이보게. 근혁이.”
“예! 욕살 어른!”
“자네도 같이 연회장으로 가지! 같이 즐기세!”
“예! 욕살 어른! 말씀 안 해주셨으면 많이 서운했을 것입니다! 오늘 같은 날에 말입니다.”
“뭐라? 으하하하하!”
근혁의 말에 고연후는 크게 웃으며 다 같이 국내성 안에 마련된 연회장으로 향했다.
고연후는 상단 사람들까지 생각하여 술과 음식을 푸짐하게 준비하였다.
연회장에 들어가자 엄청난 음식들로 탁상 위가 가득 채워져 있었고 그 모습에 상단 사람들은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모습에 고연후가 잔뜩 신난 표정으로 말한다.
“다들 왜 그런 표정으로 있나? 자! 다들 각자 자리에 가서 앉지!”
“예? 예! 알겠습니다!”
고연후의 말에 주변에 있던 한 호위무사가 얼떨결에 대답을 했다.
그리고는 고연후의 말대로 자리를 잡고 앉자 그제야 다른 호위무사들과 수하들도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모두 자리에 앉자 고연후가 술잔을 높이 위로 들며 외친다.
“우리 고구려의 큰 번영과! 여기 있는 동현이의 상단이! 크게 번창하길 바라면서! 다 같이 건배합시다! 건배!”
고연후의 말에 일제히 건배라고 외치며 호위무사들은 술로 목부터 축인다.
그러자 다들 크으! 하는 소리와 함께 앞에 있는 안주들과 음식들을 같이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러고 있는 사이 악공들이 들어와 연주까지 하면서 연회를 즐겼다.
동현도 그렇게 연회를 즐기며 고연후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그래. 백제와 신라에도 판로를 제대로 열었나?”
“예. 욕살 어른. 백제에 도착해서 사람을 보내어 판로를 열었고… 신라에도 마찬가지로 각지에 판로를 열었습니다. 이제 배를 통해 백제, 신라의 상단들과 무역을 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렇군. 하지만 무역을 하기에는 평양성이 가장 좋지 않나? 자네가 있는 요동성 보다 말이야.”
“그 말씀대로입니다. 그래서 평양성에도 사람을 남겨두어 제 상단 이름으로 된 분점을 하나 열었습니다.”
“그래?”
“예. 그 분점의 사람들이 평양성에서 물건이 들어오면 제가 있는 요동성이나 이 국내성으로 물건을 가지고 올 것입니다.”
“그렇군. 자네의 동생인 근혁이가 국내성에서 분점을 만들고 상단을 잘 운영하여 많은 이문을 남기고 있었는데… 이제 백제와 신라에서도 새로운 판로를 개척했으니 더욱 큰 부를 쌓겠구만. 허허허…….”
“이게 다 욕살 어른께서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국내성에 있을 때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정말 힘들었을 겁니다.”
동현의 말에 고연후가 씩 웃으며 대답한다.
“별말을… 순전히 네 힘인데… 내가 한 게 뭐가 있나?”
고연후는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작은 목소리로 동현에게 속삭이듯 말한다.
“헌데… 그 염초 대량 생산에 대한 것은 어떻게 됐나?”
“아… 예. 안 그래도 조금 있다가 근혁이에게 물어보려 합니다.”
“그래?”
“예. 시일이 꽤 지났으니 한 번 물어보고 나중에 따로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알겠네. 자네도 알겠지만 그 염초에 관련된 건 막리지와 대모달, 그리고 태왕 폐하께서도 알고 계시는 일이야. 절대로 그 일에 대해서는 허투루 해서는 안 돼.”
“예. 명심하겠습니다.”
“특히 자네가 만들어 놓은 것들은 다른 귀족들에게 절대 들키면 안 된다. 누군가 그것을 보게 되면… 목을 반드시 쳐서 죽여야 해. 알겠나?”
고연후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하자 동현도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예. 저도 그만큼 이 일에 대한 중요성을 숙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래. 난 자네를 믿네. 자, 이제 이 이야기는 그만 하고… 남은 시간을 즐기도록 하세.”
“예. 욕살 어른.”
그렇게 동현은 고연후와의 대화를 끝내고 한동안 연회를 즐겼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후우… 이제 좀 쉴 수 있겠군. 고생하셨소. 부인.”
“아닙니다. 서방님.”
“많이 피곤할 것이오. 그러니 얼른 자시오.”
“예. 서방님. 헌데… 서방님은?”
“아… 나는 잠시 볼 일이 있어서 말이오. 근혁이와 잠시 이야기를 나눌 것이 있어서 건너가 봐야 하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저도 자지 않고 기다리겠습니다.”
“무슨 소리오? 부인. 피곤하니 먼저 자시오. 이 일은 오래 걸리지 않으니 괜찮소.”
“그래도…….”
“부인의 몸이 상할까 두려우니 얼른 자시오. 오늘 이곳에 도착할 때까지 말 위에서 졸기까지 했지 않소?”
동현의 말에 정희는 부끄러워하며 대답한다.
“아… 알겠습니다. 서방님. 대신… 금방 다녀오셔야 합니다?”
“물론이오. 오래 걸리지 않을 테니 먼저 자시오.”
“예. 서방님.”
동현은 그렇게 정희에게 말을 한 후 방에서 나와 근혁이 있는 방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