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7화 덕만 공주의 등장!
우식의 뒷모습을 본 여자는 옆에 같이 다니는 하인으로 보이는 시녀에게 말한다.
“연희야.”
“예. 공주님.”
“쓰읍! 밖에 나왔을 땐 공주님이 아니라 아가씨라고…….”
“아… 알겠습니다. 아가씨.”
“후우… 그래. 좀 전에 말한 저 사람… 차림을 보아하니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것 같지?”
“예. 그런 듯합니다. 제 생각엔 아마 고구려나 백제에서 온 상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상인?”
“예. 제가 알기로 저 주막은 이 서라벌로 들어왔을 때 묵는 주막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그렇군. 헌데… 저 사람의 풍채로 보고 아까 그 남자의 한 손을 순식간에 막는 것을 보니 상인을 할 사람 같지는 않아보였단 말이지.”
“그렇습니까?”
“그래. 마치 무인 같아 보였다. 흐음… 연희 네가 저 사람에 대해 좀 알아보거라.”
“알겠습니다. 공주님.”
“마침 이 근처에 또 다른 주막이 저기 있구나. 나는 저기에서 국밥 한 그릇 시켜놓고 먹고 있을 테니까 알아내면 저 주막으로 와라.”
처음에 공주라고 불린 여자는 자신의 시녀 연희라는 여자에게 그렇게 말을 하고는 반대편 주막으로 향한다.
연희는 공주가 주막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동현과 상단이 있는 주막에 들어가 공주와 마찬가지로 국밥을 시키며 주변을 살핀다.
그러다가 주모와 이야기 할 기회가 생겨 잠시 주모를 붙잡고 이야기를 나눈다.
“주모. 여기가 평소 사람이 이렇게 많소? 내가 예전에 이곳을 지나갔을 때는 이렇게까지 많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아가씨의 말이 맞소! 평소에는 이렇게 많지 않지! 그런데 오늘 큰 규모의 상단 인원이 들어와서 이렇게 많은 것이라오.”
“대체 얼마나 크기에…….”
“지금 우리 주막이 평소보다도 북적이는 것을 보면 알 것 아니오?! 나야 좋지! 그리고 여기서 당분간 묵고 갈 건지 값도 미리 넉넉하게 치른 상태라오.”
“흐음… 그렇군요. 그런데 사람들이 다 저마다 칼을 쓸 줄 아나보죠? 다 옆구리에 칼을 차고 다니네요?”
“응. 내가 들으니까! 고구려와 백제, 우리 신라뿐만 아니라 곧 중원에도 상행을 멀리 나갈 거라고 하더라고! 무언가 움직일 때 산적이나 수적들이 나타날 수도 있으니 저렇게 많은 호위무사들이 있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겠어?”
“듣고 보니 그렇네요.”
“그런데 아가씨는 그런 걸 자꾸 왜 물어?”
주모의 말에 연희는 태연하게 대답한다.
“아니… 좀 전에 이 근처 지나가려는데 사람이 이렇게 많은 것에 놀란데다가 우리 신라에서는 보지 못한 복색을 하고 있으니 너무 신기해서요.”
“하긴… 그건 그래. 우리 신라에서 저런 복색을 상상할 수 있던가? 신분이 높은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이지.”
그렇게 주모가 말하는 그때, 연희 근처로 공주가 말하던 자가 지나가 어딘가에 자리를 잡더니 말한다.
“주모. 나도 국밥 하나만 말아주십시오! 그리고 여기 내 앞에 둘도요!”
“알겠습니다! 갑니다!”
우식이 주모에게 그렇게 외치자 주모는 빠르게 연희의 시야에서 사라진 후 국밥을 준비하러 간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국밥 나왔습니다!”
“고맙습니다. 주모.”
“고맙긴요. 제가 할 일인데… 맛있게 드세요!”
주모가 우식과 그 앞에 단석한과 돌석비에게 국밥을 전해준다.
그러자 세 명은 바로 맛있게 국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그래. 그래서 동현이가 비누랑 두부를 따로 팔겠다는 거지?”
“그렇습니다. 공자님.”
“음… 내가 무언가 도와주었으면 좋겠는데…….”
“주인어른께서 말씀하시기를 조만간 공자님께 무언가를 부탁한다고 했습니다.”
“그래? 동현이가 그랬어?”
“예. 공자님.”
“흐음… 그래. 그럼 기다려봐야겠지. 일단 오늘하고 내일은 푹 쉬어야겠군. 배를 타고 와서 그런지 몸이 찌뿌둥하다.”
“저희도 그렇습니다. 아직 확실하게 배는 적응이 안 됩니다. 진짜 그 놈의 멀미…….”
“그래서 동현이가 내일까지 휴식을 준 것이 아니냐? 내일까지 다들 푹 쉬고 나면 괜찮을 거야. 그나저나, 내일은 휴식이기도 하니 한 번 이 서라벌 저잣거리를 돌아봐야겠어. 동현이랑 이야기를 해서 말이야.”
“저잣거리를 말입니까?”
“그래. 고구려와 백제와는 어떻게 다른지 직접 거리를 나가보고 부딪쳐봐야 그 환경이 어떤지 알 수 있지 않겠어?”
우식의 말에 단석한과 돌석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한다.
그런 둘을 향해 우식은 계속 말을 이어간다.
“내가 동현이한테 한 번 이야기를 해봐야겠어. 저잣거리로 나가는 것 말이야.”
그렇게 우식이 말을 하는데 앞에 앉아 있던 단석한의 눈빛이 순간 날카로워지며 말한다.
“공자님. 저희 말을 누가 엿듣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응? 누가?”
“공자님 뒤에서 국밥 먹고 있는 아가씨가 말입니다.”
“뭐? 저 아가씨가?”
단석한의 말에 우식은 연희가 있는 쪽으로 돌아본다.
그때 연희는 아무것도 듣지 않고 있다는 듯 태연하고 국밥을 먹고 있었다.
“음… 그냥 국밥을 먹고 있을 뿐인데?”
“아닙니다. 분명 제 말을 들었기에 그랬을 겁니다. 좀 전까지 국밥을 먹는 것도 멈추고 있었거든요.”
“그렇습니다. 저도 봤습니다.”
“그래? 흐음…….”
단석한 뿐만 아니라 돌석비도 단석한의 말에 동조하자 우식은 다시 한 번 연희가 있는 쪽을 보았다.
그때 연희는 단석한과 돌석비의 말을 듣고 철저하게 연기 중이었고 아무것도 못 들은 척 국밥을 먹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후우… 들킬 뻔 했네. 감각이 꽤 날카로운 걸? 확실히 저렇게 반응하는 것 봐서 분명 저 세 명은 무예가 뛰어난 사람들이야. 그렇지 않다면 내가 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챌 리가 없어.’
그렇게 생각을 한 연희는 반대편에서 세 명이 여전히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계속해서 태연하게 국밥을 먹는데 집중한다.
그러다가 국밥을 다 먹자 주모를 부른다.
“주모! 여기 국밥 값이요!”
“예! 갑니다!”
연희는 품에서 동으로 된 동자 몇 닢을 꺼내어 주모에게 내민다.
그러자 주모가 조심히 가시라며 큰 목소리로 이야기 하는데 연희도 그런 주모를 향해 밝게 웃으며 인사를 하고는 주막을 나왔다.
연희는 주막을 나오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후우… 저들이 너무 날카로워서 여기까지 밖에 못 알아내겠군. 일단 이것만이라도 공주님께 보고를 해야겠다.’
그렇게 연희는 동현이 있는 주막을 나와 공주가 있는 주막으로 향한다.
공주도 때마침 국밥을 다 먹었는지 수저를 내려놓고 있었는데 그때에 맞추어 연희가 와서 보고를 했다.
“그래? 바로 눈치를 챘다고?”
“예. 그래서 더 자세히 알아보지는 못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냐. 그 정도면 됐어. 아무튼… 무예가 뛰어난 자들 같았단 말이지?”
“예. 좀 전에 말씀대로 계속 여러 나라를 돌면서 상행을 다닌다고 하더군요. 고구려, 백제, 신라를 다 돌면 중원으로 갈 계획도 있다는 것까지 들었습니다.”
“흐음… 거상이 되려 하나보구나.”
“그런 것 같습니다.”
“아무튼. 알았다.”
“이제 궁으로 돌아가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으음, 더 돌아보고 싶은데…….”
“덕만 아가씨! 너무 늦게 들어가면 폐하께서 크게 경을 치실 것입니다. 사실 지금 돌아간다고 해도…….”
“나도 안다. 하아… 어쩔 수 없지. 지금 들어가야겠어.”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렇게 덕만은 한숨을 쉬며 궁으로 돌아간다.
덕만.
후일 진평왕의 뒤를 이어 보위를 이어 받는 선덕여왕이다.
성은 김이고 이름은 덕만으로 궁을 나와 백성들을 구경하며 저잣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밖으로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덕만 때문에 그 아버지 진평왕은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궁으로 돌아온 후.
덕만이 궁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진평왕은 덕만을 부른다.
“덕만아. 그렇게 매일 같이 나가니 내 마음이 편치 않구나. 혹여 좋지 않은 일이라도 생길까봐 말이다. 오늘도 큰일을 치를 뻔 했다며?”
“아… 예. 그런데 별 일은 아니었습니다. 폐하.”
“별 일이 아니긴? 남자에게 크게 당할 뻔 했다고 하던데… 다른 남자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큰 일이 날 수 있었다고 말이다.”
“그 정도는 제가 알아서 잘 넘길 수 있습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폐하.”
덕만의 고집에 진평왕은 한숨을 쉬며 대답한다.
“하아… 덕만아. 적당히 좀 나가면 안 되겠느냐? 닷새에 한 번이든 이레에 한 번이든 그런 식으로 말이다. 매일 같이 나가는 너를 보면 좀 전에도 말했듯이 내가 너무 불안하다.”
“제가 나가서 놀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폐하. 백성들을 살펴보고 문제점이 있을 경우 궁으로 돌아와 폐하께 알리는 것 또한 제 임무로 생각하기에 자주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관리들이 해도 되는 일이다. 굳이 너까지 나설 필요가 없지 않느냐?”
“궁의 사람으로서 더 모범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폐하.”
“지금 신하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나가는 너를 보고 뭐라고 하는지 아느냐? 마치 남자같이 행동을 하면서 자중할 줄 모른다는 말이 나돌고 있다. 이를 어찌할 테냐?”
“그 사람들 마음대로 생각하라고 하십시오. 그냥 신경 쓰지만 않으면 될 것 아닙니까?”
덕만의 대답에 진평왕이 벌컥 화를 낸다.
“이 녀석아! 그렇게 간단히 대답해서 끝날 문제가 아니다! 너의 행동 하나로 인해 내가 있는 이 자리가 위험해 질 수 있다! 그리고 우리 황실의 모든 사람들의 입지도 말이다!”
“…….”
“너 하나의 행동으로 인해 모든 신하들이 다 들고 일어날 수 있음이야! 이 말을 명심해라!”
“…….”
“왜 대답이 없어?!”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당분간은 잠행을 나가지 말도록 해라.”
“폐… 폐하!”
“어허?! 내가 그렇게 말을 해도 모르겠느냐?!”
“하지만 그것은 너무 심한…….”
“내 말을 지금까지 뭘로 들은 것이야?! 너 하나의 행동으로 우리 황실 사람들의 입지가 흔들리고 내 자리가 흔들리고 있다! 그러니 자중하고 있어!”
“…….”
“네가 당분간 밖에 나가지 못하도록 날 호위하는 근위장의 수하 한 사람을 붙일 것이니 밖으로 나갈 생각은 버려라! 알겠느냐?!”
진평왕의 말에 덕만은 어쩔 수 없이 수긍할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편전에서 나와 자신의 처소로 돌아간다.
그리고는 연희에게 한숨을 쉬며 불평을 늘어놓는다.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니 연희야?”
“그러길래 제가 처음에 오늘 나가지 말자고 하지 않았습니까? 요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예! 제가 나가기 전에 말씀드렸잖아요? 그리고 폐하께서도 말씀하셨고 말이에요.”
“하아… 그게 말이 돼? 우리는 황실 사람이고 자기들은 신하인데? 왜 우리 입지가 불안해 지는 거야? 난 이해를 못 하겠어.”
덕만의 말에 연희가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공주님. 그게 바로 권력의 속성입니다.”
“권력의 속성?”
“예. 우리 신라는 귀족들의 힘이 강한 나라입니다. 그들이 등을 돌리면 아무리 지존이라도 힘을 쓰지 못하는 위치이죠.”
“…….”
“이번에 신하들이 공주님을 걸고넘어지는 것은 분명… 폐하의 힘을 약화시키려는 것에 있을 겁니다.”
“너는 어찌 그걸 그렇게 잘 알아?”
“제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눈치로만 봐도 다 알 수 있죠. 배운 건 없어도… 그런 걸 파악하는 눈치가 그래도 좀 됩니다.”
“…… 그럼 이제 난 어떻게 하면 돼?”
“일단 당분간은 폐하 말씀대로 쥐 죽은 듯이 조용히 계셔야 합니다. 그래야 신하들의 목소리가 제 풀에 지쳐서 나가떨어질 테니까요.”
“하아… 결국 그것 밖에 없는 건가?”
덕만은 시녀 연희의 말에 한숨을 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