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6화 동현, 돌석비에게 가르침을 주다
동현은 돌석비의 말에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네 심정을 모르는 것 아니다. 나도 네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매우 불편했다. 하지만 돌석비. 이거 하나를 꼭 알아두거라.”
“……?”
“이번 이 신라에서 너의 행동으로 인해 몇 사람이 살아났는지를 말이야.”
“…….”
“만약 네가 그 자리에서 나섰다면 그 사람은 살릴 수 있을지는 몰라도 네 주변의 동료들은 다 죽었을 수도 있다. 아니… 최악의 경우에 내 목이 잘렸을지도 모를 일이지.”
“대… 대인어른! 너… 너무 극단적입니다.”
“극단적이라… 난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왜 인줄 아느냐?”
“……?”
“이 신라는 우리 고구려와 저 백제에 비해서 매우 폐쇄적인 나라다. 우리가 지금까지 돌아본 국가들 중 발전도 가장 늦지. 우리가 이 서라벌이 한 나라의 수도라 그것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지만… 이곳을 조금만 벗어나면 우리 고구려와 백제 지방의 성들과 비교하였을 때 많은 것들이 뒤떨어진다고 생각할 것이다.”
동현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듯 옆에 있는 차 한 잔을 마시고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간다.
“그리고 또 하나… 이 신라의 발전을 저해하는 이유에는 또 다른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너도 아까 그 사람들과 이야기에서 들었겠지만… 신분의 차이. 그것이 이 신라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골품제라고 해서 그 신분에 따라 오를 수 있는 벼슬의 한계도 정해져있지.”
“그게 정말입니까?”
“그래. 그리고 혼인도 같은 계급끼리만 할 수 있는 제도이기도 하다. 그런데 네가 아까 본 사람들은 그 계급 자치가 달랐어. 5두품에 있는 남자가 6두품에 있는 귀족의 여자를 사랑하는데 어찌 그 아비가 5두품의 남자를 그냥 두겠느냐?”
“…….”
“우리 고구려로써는 상상도 안 되는 일이지만 이 신라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서로 품계가 다른 남녀가 사랑하면 계급이 높은 쪽에서 낮은 쪽의 사람을 죽이는 일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지.”
돌석비는 동현의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신분 때문에 혼인을 못 한다니.
물론 자신이 동현에게 포로로 오기 전에 돌궐에서도 어느 정도 신분의 차이가 존재하긴 했다.
노비와 평민, 평민과 귀족.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이런 것은 고구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런 신분제 속에서도 귀족들 중에서 몰락한 귀족이든 잘 나가는 귀족이든 서로 좋으면 혼인을 시키는 모습을 종종 보아왔고, 평민이 노비를 사랑하여 혼인을 하는 모습도 종종 보아왔다.
그리고 귀족이 한 평민의 여자를 사랑하여 혼인을 하는 모습까지 보아왔는데 이 신라에서는 같은 귀족이나 평민이더라도 품계가 다르면 혼인을 못 한다는 것에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돌석비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 모습을 본 동현이 피식 웃으며 묻는다.
“꽤나 충격을 받은 얼굴이구나. 석비야.”
“그… 그렇습니다. 고구려나 백제에서는 절대 상상 할 수 없는 일들이…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니… 충격적입니다.”
“그래. 그럴 수 있지. 나도 예전에 사람을 통해서 듣지 않았다면 너처럼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야.”
“이 신라의 사람들이… 조금 안타깝게 여겨집니다.”
“그래서 예전에 내가 말한 것을 꼭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신라를 빨리 정복하는 길 말이다.”
동현의 말에 돌석비는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아직 동현은 말이 끝나지 않은 듯 계속 돌석비에게 말한다.
“우리가 이곳에서 해야 할 것은 이 신라의 성골이나 진골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상대로 많은 양의 비누와 두부를 파는 것이다.”
“예? 백성들을 상대로 한 것이 아니라요?”
“물론 백성들에게도 팔아야지. 하지만 이 신라의 성골과 진골들은 유독 허영심이 많다. 얼마 전에 비누와 두부를 다시 한 번 정성껏 만든 것을 기억하느냐? 백제에 있을 때 말이다.”
“아… 예. 물론 기억합니다.”
“그래. 그 비누와 두부가 어떻더냐?”
“으음… 기존의 것보다 좀 더 좋아보였습니다.”
동현은 돌석비의 말에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끄덕인다.
“네 말이 맞다. 내가 한 동안 두부와 비누를 또 다시 연구를 해서 만들어 낸 것이지.”
“정말… 대인어른께서는 대단하십니다.”
“그것은 조금만 노력하면 다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또 좋은 비누와 두부를 다시 만든 것은… 이것들을 성골과 진골에게 비싼 값에 팔기 위해서다.”
“그 말씀은… 좀 전에 만든 것들을 백성들에게 파는 것과 따로 팔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지. 두부와 비누가 품질이 더 올라갔다. 더 비싼 값을 책정해서 팔 것인데… 백성들에게 책정한 것보다 상상도 못할 정도로 많은 값을 책정할 것이다.”
“대체 얼마나…….”
“적어도 3배 이상 높게 값을 칠 것이야.”
“헉! 그… 그렇게 하면 사겠습니까?”
“이 신라의 성골과 진골 귀족들은 반드시 산다. 좀 전에도 내가 말했듯이 그 귀족들은 허영심이 많은 귀족들이 많으니 말이야. 우리 고구려와 백제 귀족들과는 달라. 우리 고구려나 백제 귀족들도 비싼 것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래도 합리적인 가격을 따져가면서 다른 물건과 조정을 해가면서 어떤 것이 자신에게 더 이득이 될지 생각하고 거래를 한다.”
“…….”
“하지만 신라 성골과 진골들은 그런 것이 없다. 비싼 것이 오직 자신의 품위라고 생각을 하지. 즉 다시 말해서 자신의 품위 유지를 위해서는 비싸게 값을 지불하더라도 무조건 산다는 것이다.”
동현의 말에 돌석비가 어이없어 한다.
“그게 사실이라면… 진짜 썩을대로 썩었군요.”
“맞아. 썩을대로 썩었지. 그런데 이 신라는 나라를 유지하고 있다. 그것은 한 무예수련 집단 때문이지.”
“저도 압니다. 화랑이라고 그러던데…….”
“너도 아는구나. 그래. 이 신라는 화랑 때문에 망하지 않는 것이다. 특히 그 화랑들에게 지켜야 할 다섯 가지 계율이 있는데 이를 세속오계(世俗五戒)라고 하지.”
“세속오계요?”
“그래. 사군이충(事君以忠), 사친이효(事親以孝), 교우이신(交友以信), 임전무퇴(臨戰無退), 살생유택(殺生有擇)! 이 다섯 가지가 있다.”
“흐음…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대인어른.”
돌석비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하자 동현은 친절하게 그 뜻을 이야기 해준다.
“첫 번째인 사군이충은 충성으로써 왕을 섬기어야 한다는 것이고 사친이효는 효로써 부모를 섬기며, 교우이신은 믿음으로 벗을 사귀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네 번째인 임전무퇴는 한 번 전장에 나갔을 때 절대 물러남이 없어야 한다는 말이며, 마지막 다섯 번째는 살아 있는 것을 죽일 때 가려서 죽이라는 뜻이다.”
“응? 다른 건 다 이해를 하겠는데… 살아 있는 것을 가려서 죽이라는 말은 도무지 이해를 못 하겠습니다. 전쟁에 나갔는데 살아 있는 걸 가려서 죽이라고요?”
동현은 돌석비의 말에 미소를 유지하며 대답한다.
“칼을 옳은 곳에 쓰라는 뜻이다. 화랑은 무예수련 집단이면서 심신 수련도 함께 하는 집단이지. 그곳에서 다양한 것들을 배우면서 심신 수련도 같이하는데 그러는 이유는 무예만 가르치다가는 그 칼이 어느 곳으로 향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속오계에도 살생유택이라는 말을 넣은 것이고 말이야.”
“아…….”
“그리고 이 화랑이라는 집단은 대체적으로 나이가 어린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니 더더욱 이런 가르침이 필요하지.”
“음… 이해했습니다. 오늘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예전에도 말했듯이 글공부도 조금씩 해야 한다. 돌석비.”
“아… 알겠습니다. 그래서 요즘 조금씩 하고 있긴 합니다. 하지만… 워낙 어려운 내용이 많아서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 그럼 모르는 것이 있을 때는 나를 찾아와라. 내가 가르쳐주마.”
“그래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지. 언제든지 모르는 것이 있을 때는 묻거라.”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럼 전 이만 나가서 이틀 뒤에 있을 장사 품목들을 준비해놓겠습니다.”
돌석비의 말에 동현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한다.
“오늘은 배를 타고 오느라 몸이 피곤할 것이야. 오늘하고 내일 이틀은 푹 쉬도록 해. 아무것도 하지 말고 말이야.”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돌석비가 다시 한 번 동현에게 인사를 하고는 방을 나간다.
그런데 그 때.
“당신이 날 쳤잖아?!”
“지나가다가 네가 부딪친 것이 잘못이지! 그게 왜 내 잘못이지?”
“뭐… 뭐라고?!”
“어이가 없군. 네가 여자가 아니었으면 넌 지금 나한테 죽었다. 내 앞에서 꺼져라.”
한 남자와 여자가 길을 가다기 서로 부딪쳤는지 말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여자는 남자가 걸어오면서 자신을 치고 갔다며 화를 내고 있었고 남자는 자기가 와서 부딪친 것을 왜 자신의 잘못이냐면서 여자에게 화를 내며 제 갈 길을 가려 했다.
하지만 그런 남자를 여자가 놓아주지 않고 계속 따지는데 결국 남자가 폭발하고 만다.
“진짜… 이… 이 년이! 너 진짜 죽어 볼래?!”
“뭐 이 년? 내가 이 년이면 넌 쌍 놈이다!”
“진짜… 이게!”
남자는 결국 화가나 손바닥으로 여자의 뺨을 치려 내려친다.
그 손을 보고 여자는 피하지는 못하고 순간 기겁을 하고 눈을 꼭 감는데…….
“뭐야? 당신?”
“여자를 때리면 되나?”
“이거 놓으쇼! 저 년이 나한테 하는 걸 못 봐서 그러시오?!”
“물론 봤소. 하지만 그렇다고 여자를 때리면 되겠소?”
“그게 무슨 상관이오?! 나한테 아무 죄도 없는 여자가 나한테 저렇게 따지는데… 때려서라도 다스려야지.”
“허어… 당신이 저 여자를 때리는 순간 자네는 큰일 나게 될 수 있소?”
“응? 그것이 무슨 말이오?”
“저 여자가 입은 옷을 보시오. 모르시겠소?”
“헉!”
“알았으면 그냥 가 보시오.”
“하아… 이런 젠장… 또 그 놈의 신분이 문제군. 아무튼… 고맙소. 나를 위험에서 구해주었구만.”
“별 말을… 얼른 가보시오.”
남자의 손을 막은 이는 다름 아닌 우식이었다.
우식은 동현과 함께 배에서 신라로 오는 길에 신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동현은 회귀 전 역사 교육을 통해 신라가 골품제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그 내용을 우식에게 말을 해주었다.
신분에 따라 관리들의 옷 색깔과 옷감의 종류 등도 훨씬 질 좋은 것을 쓰고 높은 신분일수록 화려하게 치장한다는 사실을 들은 우식은 여자가 다른 여자들에 비해 화려한 옷차림을 보고 남자를 말린 것이었다.
그러자 남자가 우식에게 오히려 고마워하며 현장을 벗어나는데 그런 남자를 보며 여자가 소리를 치며 화를 낸다.
그리고 다시 그 남자를 따라가려는 여자.
우식은 그런 여자에게 한 마디 한다.
“이보시오. 낭자. 낭자가 만약 저 남자와 단 둘이 있었으면 죽을 수도 있었소. 알고 계시오?”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내가 아까 남자를 보니 손에 잔뜩 굳은살이 박혀있고 검을 오랫동안 잡은 손이었소. 그리고 체격도 다부지고 말이오. 그런데 그런 자를 또 다시 따라 나가다가 큰일을 당하시려오?”
“…….”
“더 이상 무모한 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겠소. 그럼…….”
우식은 그렇게 여자에게 말을 하고는 주막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러자 여자는 그런 우식의 뒷모습을 관심 있게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