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9화 청명 공주의 등장!
동현은 그 여자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 대신 저도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이요?”
“예. 저는 이 조건을 들어주지 않으면 당신이 모시는 주인인 아가씨를 제 제자로 거두지 않을 것입니다. 선택은 그 쪽 몫입니다.”
“음… 일단 조건을 들어보죠.”
동현은 여자의 잠시 생각을 정리하더니 천천히 말을 꺼낸다.
“일단 첫 번째! 스승과 제자 관계가 되면 아가씨의 신분이 높더라도 저는 존칭을 쓰지 않고 하대할 것입니다. 그래야 제가 가르치기가 더 편해지니까요. 그리고 두 번째! 저는 무예를 가르치는데 있어서 여자라고 봐주지 않습니다. 가르칠 때 심하게 가르친다고 해서 뭐라고 하지 마십시오.”
“어… 어느 정도로 심하길래…….”
“아까 그 남자들에게 한 것이 지속적으로 계속 된다고 보면 됩니다.”
“그… 그런!”
“무예를 가르치면서 대련을 통해 실전 교육도 하니까요. 아 물론! 대련 말고 다른 훈련도 따로 할 겁니다.”
“…….”
“세 번째는 저 말고 여기 제 부인은 물론이고 부인의 집 안 사람들에게 존칭을 써야 합니다. 그리고 네 번째는 제가 스승이 된 만큼 제가 하라는 것은 무조건 따라야 하고요. 만약 한 번이라도 어길 시 제자에서 바로 파면입니다.”
“…….”
“그리고 다섯 번째 … 저는 상행을 하러 이곳저곳 돌아다닐 겁니다. 이 조건들에 동의하셔야만 아가씨를 제자로 받아들이겠습니다.”
동현의 말에 여자는 여전히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다.
하지만 동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듯 잠시 숨을 고르고는 계속 말을 이어간다.
“마지막 여섯 번째… 제가 지정한 훈련 시간과 대련 시간을 잘 지켜줬으면 합니다. 저는 약속 시간을 어기는 것을 정말 싫어하거든요.”
“…….”
“만약 이 약속을 어길 시에는 전 그 쪽 아가씨에게 두 배의 훈련과 두 배의 대련 시간을 부여할 겁니다.”
“…….”
“이것을 받아들인다면 저도 그 쪽 아가씨의 신분에 대해 함구하고 제자로 받아들이도록 하죠.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동현의 말에 여자가 잠시 고민하더니 대답한다.
“으음… 솔직히 오늘 바로 답을 못 드리겠네요. 아가씨에게 물어보고 와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그렇게 하셔도 상관없습니다.”
“알겠습니다. 음… 정호 대인 어른의 집으로 찾아가면 되는 거죠?”
“예. 거기서 저를 찾으시면 됩니다. 아… 참! 그 전에… 낭자의 이름을 알고 싶군요. 그래야 대문을 지키는 하인들이 제가 일러둔 사람인 줄 알고 문을 열어줄 것이 아닙니까?”
“물론입니다. 제 이름은 의정이라고 합니다.”
“의정이라… 알겠습니다. 그럼 하인들한테 그렇게 말을 해두죠.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부인! 이만 갑시다!”
그렇게 동현은 정희와 손을 잡고 정호의 집으로 돌아한다.
그 뒷모습을 보던 의정은 표정이 좋지 않았다.
‘청명 공주님께서 이런 취급을 받다니…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설마… 공주님께서 이 조건을 수락하시지는 않겠지? 으음… 일단 가서 보고해야겠다.’
청명 공주. 그는 다름 아닌 영양태왕의 딸이었다.
영양태왕의 하나 밖에 없는 딸이었는데 이 청명 공주는 어려서부터 무예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고위직에 있는 강이식 대장군이나 을지문덕 대모달 등에게 무예도 물어가며 익히기도 했는데 강이식 대장군과 을지문덕 대모달은 공주의 신분도 신분이거니와 여자들에게 맞는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 우선시 되어야 했기에 자세히 가르쳐 주지 않고 아주 조금씩만 가르쳐 줄 뿐이었다.
청명 공주는 그것을 알게 되고 난 후 궐 안에만 있는 것이 매우 답답했다.
그래서 가끔씩 자신의 측근들과 함께 사냥을 나가기도 했는데 그 때마다 아버지 영양태왕에게 한 소리를 들어야 했다.
“청명아. 우리 고구려는 무예를 숭상하니 무예가 뛰어난 것은 좋다. 하지만 말이야. 너는 여자다. 무예를 익히기 전에 여자가 가지고 있는 몸가짐과 우리 황실 예법에 대해 잘 익혀야지!”
“아바마마.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 하지만 너무 답답한 걸 어쩝니까? 저는 이 궐 안에만 갇혀 있는 것이 너무 답답합니다.”
“허어! 그래도 이 녀석이?!”
“그리고 저도 아바마마께서 말씀하셨듯이 여자다운 몸가짐과 황실에 대한 예법은 확실히 익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 실제로 그것을 항상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하면서 제가 하고 싶은 무예를 익히는 것인데 왜 저한테 자꾸 뭐라고 하십니까?”
당돌한 청명 공주의 말에 영양태왕은 어이없어 한다.
“허허… 그토록 무예가 좋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아바마마. 이 안에만 갇혀 있는 울분을 무예를 통해서 떨쳐낼 수 있고… 거기다 더 큰 성취를 이룰 수 있으니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청명 공주의 말에 영양태왕이 잠시 고민하고는 말한다.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
“앞으로 1년간 너에게 아무것도 지시하지 않고 명령하지 않겠다. 네가 궐 밖에 나가서 무슨 일을 해도 말이다.”
그 말에 옆에 있던 황후가 놀라며 영양태왕에게 소리친다.
“태… 태왕 폐하!”
“어허! 가만히 있으시오! 황후!”
“하… 하지만!”
“황후! 이제 올해 청명이도 성인이오! 그러니 1년 정도는 청명이 스스로 어떻게 일을 헤쳐 나가는지 보고 싶구려.”
영양태왕의 말에 황후는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
그런 황후를 보던 영양태왕은 다시 청명 공주를 보고 말한다.
“내가 너에게 가끔씩 대련하라고 무예수련을 붙여주던 호석이를 기억하느냐?”
“어찌 잊겠습니까? 아바마마.”
“너는 잘 모르겠지만… 호석이가 내 친위대 사람 중 가장 무예가 약한 녀석이다.”
영양태왕의 말에 청명 공주가 깜짝 놀란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그래. 정말이다.”
“이럴수가…….”
“너의 무예는 여자들 중에서는 뛰어나다고 할 수 있으나 남자들을 포함하면 하수라는 이야기이지.”
“…….”
“그래서 너한테 1년의 시간을 주는 것이다.”
“……?”
“좀 전에 내가 말했듯이 1년간 너에게 아무런 지시나 명령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네가 궐 밖을 나간다고 해도 말이야.”
“…….”
“그 1년간… 무예를 갈고 닦아서 호석이를 넘어 보거라. 만약 호석이를 넘는다면… 내가 앞으로 네가 하는 일은 적극적으로 밀어주도록 할 것이다.”
영양태왕의 말에 청명 공주가 활짝 웃으며 대답한다.
“그… 그게 정말이십니까?”
“너는 내가 한 번 말해놓고 약속을 어기는 것을 보았느냐?!”
“아… 아닙니다. 아바마마.”
“그럼 너도 잘 알겠지. 내가 약속을 어기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말이야.”
“가… 감사합니다! 아바마마!”
“단! 조건이 있다! 네가 나중에 호석이를 이기더라도! 무리한 부탁은 들어줄 수가 없어! 그 무리한 부탁이라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상식선이다. 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지?”
“물론입니다! 아바마마!”
“허허허. 녀석… 그리도 좋으냐?”
“그렇습니다! 아바마마! 아바마마 말대로! 제 무예를 위해 고구려 전역을 돌면서 무예가 뛰어난 사람들을 한 번 찾아보며 가르침을 청해볼 생각입니다!”
“그래. 내일 바로 떠날 것이냐?!”
영양태왕의 말에 청명 공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그렇습니다! 아바마마!”
“그래. 그렇다면… 이것을 몸에 지니고 있거라.”
“이건?”
“평소에는 너의 신분을 밝히지는 말 되… 만약 너무 어려운 일이 있다면 그것을 보이거라. 그러면 다들 너의 명령에 따를 것이다.”
“아바마마…….”
“이제 내 할 말은 끝났다. 내일 떠난다하니 일찍 자고 떠나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아바마마.”
“떠나면 건강 잘 챙기고! 몸이 아프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알겠느냐?!”
“예. 아바마마. 그럼 소녀… 이만 물러가겠사옵니다.”
그렇게 청명 공주는 영양태왕에게 인사를 하고는 편전을 나왔다. 그러자 옆에 있던 황후가 걱정하며 묻는다.
“태왕 폐하. 신첩은 걱정이 되옵니다. 저것이 워낙 어렸을 때부터 거칠게 자라 사고를 치지 않을지…….”
“나도 그런 걱정은 되오. 하지만 나는 자신이 저렇게 원하는데 가두고 있는 것도 옳지 않다고 봅니다. 그래서 1년이라는 시간을 준 것이오.”
“…….”
“청명이의 측근에 좋은 사람들과 충성스러운 사람들이 많으니 너무 걱정 하지 마시오. 황후. 무사히 1년 뒤에 돌아올 것이오.”
영양태왕의 말에 황후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청명 공주에 대한 조치에 대해 승낙하고 말았다. 최고결정권자가 그렇게 하자는데 더 이상 토를 달 수 있겠는가?
며칠 뒤… 청명 공주는 그렇게 자신의 측근들 몇몇을 거느리고 우선 국내성 쪽으로 향했다.
그러다가 급히 돈을 쓸 일이 있었는데 돈이 모자라 주변에 돈을 빌리게 되었다.
그런데 그 돈이 꽤 큰돈이었다. 그것으로 인해 바로 동현이 있는 주막에서 싸움이 난 것.
당시 청명 공주는 주막에 있는 방 안에서 잠을 자고 있었고 의정이 수하들을 데리고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일을 동현이 처리했다는 소식을 나중에 잠에서 깨고 듣자 청명 공주는 호기심이 동해서 의정을 통해 동현을 찾아 나섰던 것이었다.
“공주님. 저 의정입니다!”
“들어오거라.”
좀 전에 동현과 이야기를 나눈 의정이 방에 들어오자 청명 공주가 묻는다.
“그래. 어떻게 됐어?”
“그게…….”
“왜? 잘 안 됐어?”
“그 자가 조건을 내걸어서요.”
“조건?”
“예…….”
“궁금하구나. 어떤 조건인지… 한 번 말해 보거라.”
청명 공주의 말에 의정은 좀 전에 동현에게 들었던 조건들을 모두 털어놓기 시작했다.
의정은 청명 공주가 분명 이 소리를 듣고 화를 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호호호호호!”
“응? 공주님! 지금 웃으십니까?”
“그래. 기쁘지 않니?”
“기쁘다고요?”
“응! 좀 전에 네가 내건 조건들은 나를 정말 제대로 가르치겠다는 거잖아. 그 의지가 팍팍 느껴지지 않아?”
“하지만 공주님. 제가 그 자가 싸우는 것을 봤습니다. 진짜 상대 남자들이 손도 못썼다고요! 공주님의 몸이 상하기라도 하면…….”
“본래 무예라는 게 그렇게 배우는 게 정석이야. 여러 장군들이 나에게 가르쳐 준 방식은 너무 물렀던 거지.”
“고… 공주님!”
“그 아바마마께서 붙여주신 호석이도 나를 무릎 꿇리게 할 때 목검으로 칼에 목을 대는 정도였잖아? 그렇게 무예를 배우면 그저 힘만 들 뿐 진짜 무예에 져서 패배하는 자들의 고통을 느낄 수는 없어.”
청명 공주의 말에 의정은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청명 공주는 그런 의정을 앞에 두고 아랑곳 하지 않고 말을 계속 이어갔다.
“나 정말 기대 돼!”
“고… 공주님!”
“아… 정말! 밖에서는 공주라고 부르면 안 된다고! 아가씨라고 해! 몇 번을 말하니?”
“아… 알겠습니다. 아가씨.”
“아무튼… 그 사람이 정호 상단 집에 있다고?”
“예. 그 집 딸과 혼인을 했다고 하는군요.”
“그래? 그래서 얼마 전에 그렇게 떠들썩했던 거구나.”
“그렇습니다. 공주… 아니 아가씨…….”
청명 공주는 정호의 딸 정희와 동현이 혼인을 했다는 말에 눈빛이 반짝거리며 빛난다.
“내가 알기로 그 정호라는 사람은 그 정희라는 아이를 친자식처럼 아꼈다고 하던데… 혼인을 허락해 준 것을 보면 네가 말한 그 남자가 그만큼 마음에 들었다는 뜻이 아니냐?”
“맞습니다. 자신이 오히려 권하기까지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그렇다는 건 정말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건데… 네가 본 그 남자가 어떤 인물인지 너무나도 궁금한 걸?”
청명 공주는 그렇게 동현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