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6화 동현, 정희와 혼인하다
동현이 방문을 열고 나가자 이미 마당에 자리를 잡고 앉은 혼인식의 손님들이 감탄을 자아낸다.
“허어… 신랑이 아주 훤칠하고 장부답구만 그래!”
“정말 그러하이!”
“정 대인! 집안 식구를 아주 잘 들이는 것 같소이다?!”
“하하하! 그렇게 생각하시오?!”
“그렇소! 댁의 가문이 저 신랑 덕분에 흥하고 있지 않소?”
정호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맞소이다. 정말 총명하기 이를 때 없는 조카사위지! 암!”
“다만 정희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 모습을 못 보고 간 것이 마음이 아프구려.”
“크흠…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합시다. 이런 혼인식에 어울리지 않는 말인 것 같소.”
“아… 알겠소. 미안하오.”
정호의 대답에 정희의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해 말을 한 사람이 입을 다문다.
그 때 정희도 한껏 치장한 의복을 한 채 옆에 시녀들의 부축을 받으며 나오는데…….
“오… 참으로 아름답다…….”
“그러게. 정희가 저토록 미색이 뛰어날 줄이야…….”
“저기 저 신랑을 보게! 벌써부터 신랑의 입가에서 웃음이 끊이지 않는구만?!”
“하하하! 그렇군. 이거… 금슬이 정말 좋겠어.”
“그러게 말일세! 혼인하게 되면 애를 몇 명이나 낳을까 모르겠네! 하하하하!”
“정희는 딱 봐도 건강해 보여서 분명 많이 낳을걸세! 암!”
정호와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은 정희의 미색을 칭찬하는 동시에 동현의 입가에 웃음이 끊이지 않자 계속 놀려댔다.
그런 사람들의 말을 들은 동현은 순간 헛기침을 했고 정희는 양쪽의 시녀들에게 부축된 상태에서 그 말을 들으며 잔뜩 부끄러워한다.
그렇게 동현과 정희가 부끄러워하는 가운데 드디어 혼인식이 진행되었다.
혼인식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들 동현과 정희의 혼인을 축하해주는데 강이식 대장군이 정호와 함께 같이 상석에 앉아 혼인식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 옆에는 아들인 우식이 자리를 잡았다.
우식은 동현이 먼저 장가를 가게 되자 매우 부러워했다.
“쩝… 부럽습니다…….”
“동현이가 혼인하는 것이 말이냐?”
“그렇습니다. 아버지. 이렇게 갑작스레 혼인을 하지만… 둘의 마음도 맞는 듯 하니 이만한 좋은 혼인이 어디 있겠습니까? 더구나 보통 가문을 위해서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들과 혼인을 올리는 경우도 정말 많은데 말입니다.”
“하하하! 그래. 네 말이 맞다. 서로 마음이 맞는 짝을 찾는다는 것은 정말 좋은 것이지. 하지만 혼인을 함으로 인해서 더욱 막중한 책임을 가지게 되었으니 그만큼 부담감도 클 것이야.”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자신에게 가족이 생긴다는 것이다. 혼인을 하기 전에는 자신의 가문과 자신의 몸만 잘 챙기면 됐지만… 이제는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으니 그 사람도 챙겨야 하며 또 그 사이에 아이라도 생기면 그 아들 또한 생각해야 한다.”
“아…….”
“거기다 이제 또 그 아이를 잘 길러서 어떻게 하면 자신의 가문을 더욱 크게 번성하게 할까하는 끊임없는 고민을 하게 되지. 그만큼 더욱 더 책임감이 막중해진다는 것이야.”
우식은 강이식 대장군의 말에 그제야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강이식 대장군은 아직 말이 다 끝나지 않은 듯 계속 말을 이어간다.
“너도 네 배필로 삼을 만한 여자가 있다면 내 앞으로 데리고 와도 좋다. 단…! 여자가 내 눈에 차야 한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예. 아버지.”
그렇게 강이식 대장군과 우식은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사이 혼인식은 마무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합근례(전통혼례에서 신랑과 신부가 술잔을 주고받으며 혼인 서약을 하는 절차.)를 통하여 여기 있는 두 사람이 부부가 되었음을 하늘에 고하였으니! 이 부부를 모두 축복해 주시오!”
혼인식을 주관하던 사람이 그렇게 소리를 치자 혼인식에 온 사람들은 전부 박수를 치며 동현과 정희를 축하해준다.
그런 박수에 동현과 정희는 어쩔 줄 모르는데 근처에 있던 의형제인 근혁이 큰 소리로 외친다.
“뭐하십니까? 형님! 신부와 함께 신방(결혼식을 끝낸 신랑, 신부가 첫날밤을 치르도록 새로 꾸민 방)으로 드셔야지요!”
“크흠… 아… 알겠네.”
동현이 이렇게 대답하는데 옆에 있던 한 사람이 짓궂게 말한다.
“평양성 김씨 가문의 새로운 주인께서는 얼른 신방으로 들어가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만드시오!”
“하하하하하! 누가 아니랍니까?! 신체도 건장하니! 분명 금방 소식이 들릴 겁니다!”
“푸하하하하하!”
그 말을 들은 동현과 정희는 순식간에 얼굴이 빨개지고 부끄러워하며 신방에 빠르게 들어가려다가 강이식 대장군과 정호가 상석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자 동현이 정희에게 말한다.
“부인… 처숙부님과 대장군께 인사를 드리고 들어가도록 합시다.”
“예. 서방님…….”
정희가 허락하자 동현은 정희와 함께 정호와 강이식 대장군에게 가까이 다가가 말한다.
“두 분께 인사를 드리고 들어가야 할 것 같아서 이리 왔습니다. 그리고 대장군. 먼 길에 직접 와주셔서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하하하! 아니다! 네 너의 혼인식인데 안 올 수 있겠느냐? 거기다 내 자식도 여기 있는데 말이야. 내 자식 얼굴도 보러 올겸 온 것이니 개의치 말거라.”
“감사합니다. 대장군.”
“이제 너는 비로소 어른이 된 것이다. 자식까지 낳으면 네가 책임져야 할 사람까지 늘어나겠지. 그 책임감과 함께 네 가문을 책임지면서 앞으로 고구려를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이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많은 생각을 하고 실천하도록 해라. 알겠느냐?”
“명심하겠습니다. 대장군.”
“정호 그대도 한 마디 하시게?”
“예. 대장군.”
강이식 대장군의 말에 정호도 한 마디를 한다.
“이제 말을 편하게 하겠네. 조카사위. 그래도 되겠는가?”
“물론입니다. 이제 혼인을 치렀으니 존칭을 제게 하시는 것은 잘못된 일이지요. 마땅히 그러셔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고맙군. 우리 정희를 잘 부탁하네. 상처가 많은 아이야…….”
“염려 마십시오. 처숙부님. 제 사람이 된 만큼… 많이 사랑해주겠습니다.”
“그래. 참으로 고마우이.”
“그리고 제 부인된 사람의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제 부인을 보살펴 주신 것이 처숙부님이셨으니 그 또한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처숙부님을 제 부인의 아버지로 모시겠습니다. 장인어른으로 모시고자 함이니 허락해주십시오.”
정희도 그 말을 옆에서 듣고는 잠시 놀라는데 이내 표정을 고치며 말한다.
“숙부… 이제 숙부가 아닌 아버지로 모시겠습니다… 아버지… 절 받으세요.”
정희의 말에 정호는 감동한 표정을 지으며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다. 그런 정호를 보며 동현과 정희는 절을 한다. 그 모습을 옆에서 보던 강이식 대장군이 크게 웃는다.
“하하하! 실로 아름다운 모습이로다! 모두들! 듣게! 오늘 이 혼인식으로 두 사람이 부부가 되었음은 물론이고! 새로운 모녀의 탄생을 축하해 줄 것이다!”
강이식 대장군의 우렁찬 외침에 모두들 박수를 치고 소리를 치며 두 사람과 정호를 축하해준다.
그렇게 절을 하고 난 뒤… 동현은 드디어 정희와 함께 신방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서로 자리를 정하고 앉는데 두 사람 간에 한 동안 아무 말이 없이 정적이 흐른다.
‘음… 고작 20살의 나이인데… 이게 가능한 거야? 아… 아냐… 옛날에는 이게 당연한 것이니 범죄는 아니겠지. 그… 그래도 이건 현대와 비교하면 너무 빠른데…….’
동현은 혼인식을 하기 전 결심을 했음에도 막상 상황이 닥치자 가슴이 두근거리며 긴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희에게 그 모습을 보일 수는 없기에 애써 마음을 진정시킨다.
‘후우… 그래. 이 시대는 이 시대만의 풍습과 법이 있는 거야. 난 그거에 그냥 따르면 돼. 그리고 악습처럼 보이는 건 내가 나중에 바꾸면 된다. 그래…….’
동현은 그렇게 애써 마음을 진정시킨 후 드디어 정적을 깬다.
“부인.”
“예, 서방님…….”
“부인이 예전에 우리 호위무사들에게 예기치 않게 붙잡혔을 때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것이 인연이 되어 이렇게 혼인까지 하게 되는구려.”
동현의 말에 정희가 부끄러워하며 대답한다.
“소첩이 그 때는 상공께 큰 무례를 범했습니다. 지금도 그 때 생각을 하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동현은 정희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대답한다.
“나는 지금 그 때 생각을 하면 오히려 그런 부인이 참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하오. 그런 용기는 여자에게는 결코 보이지 않는 법이며 사내에게도 그런 의협심을 찾기 힘드오. 그런 면에서 보았을 때… 나는 부인을 참으로 존경하오.”
“상공… 소첩을 그리 추켜세워 주시니 부끄럽습니다.”
“난 내가 느낀 것을 그대로 말한 것뿐이오.”
동현의 말에 정희는 여전히 부끄러워하는데 동현은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간다.
“앞으로 부인과 부부가 된 만큼… 내가 더욱 더 신경 쓰고 아껴주겠소.”
“감사합니다. 서방님.”
정희의 대답에 동현은 갑자기 음흉한 표정을 짓더니 의자에서 일어나 정희에게 다가간다.
정희는 갑작스러운 동현의 행동에 놀라는데 그런 정희의 모습을 본 동현은 아랑곳 하지 않고 정희를 번쩍 안아든다.
“서… 서방님!”
동현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매우 당황하는 정희.
동현은 그런 정희의 모습이 너무 귀여운 나머지 씨익 웃으며 미소를 보이고는 정희를 안아든 채 침상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날 밤… 둘은 정을 통하였다.
다음 날… 동현은 아침 일찍 일어나는데 정희는 아직 꿈나라에 빠져 있었다.
동현은 그런 정희의 얼굴을 쓰다듬어준 뒤 작은 목소리로 문 앞에 있는 시녀를 부른다.
“기침하셨습니까? 대인 어른.”
“그래. 하지만 부인은 아직이니 일단 내 세숫물과 갈아입을 옷만 가져다주었으면 좋겠구나.”
“알겠습니다. 금방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세숫물과 옷을 가지고 오면 내게 따로 고할 것 없이 그냥 안으로 들어오거라. 부인이 좀 더 자야 하니 깨서는 안 된다.”
“알겠습니다. 대인 어른.”
동현의 말에 시녀가 급히 세숫물과 옷을 가지러 간다.
그리고 잠시 후… 동현은 세숫물과 옷을 받은 후 비누로 세수를 하고 손 등을 씻고 난 뒤 옷까지 단정하게 입는데, 그 때 정희가 잠에서 깨었는지 부스스 침대에서 일어나 말한다.
“죄… 죄송합니다. 서방님. 제가 일찍 일어났어야 했는데…….”
“아니오. 부인. 내가 더 자라고 일부러 깨우지 않았소. 피곤하면 좀 더 자도 되오.”
“아닙니다. 서방님. 저도 세수를 하고 옷을 입겠습니다.”
동현은 정희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는 시녀를 시켜 정희의 세숫물과 옷을 가져오라고 한 번 더 명령하는 그 때…….
“형님! 저 근혁입니다! 기침하셨습니까?”
“음? 근혁이? 잠시만 기다리거라! 부인이 씻고 있어서 옷을 갈아입은 후 들어오게 하마.”
“알겠습니다. 다 되면 말씀해주십시오.”
동현의 말에 정희는 급히 세숫물로 얼굴과 손을 씻는데 동현은 그런 정희를 향해 급히 씻지 않아도 되니 꼼꼼하게 씻으라고 말한다.
그래도 정희는 근혁이 기다리는 것이 미안해 급히 씻는데 그런 정희를 보며 동현이 직접 다가가 비누를 손에 묻혀 정희의 얼굴을 문질러 준다.
동현의 그런 행동에 정희는 깜짝 놀랐으나 동현이 그렇게 얼굴과 손을 씻겨주며 사랑꾼 면모를 보이자 기분이 좋은 듯 배시시 미소를 짓는다.
“서방님. 이만하면 된 듯 합니다. 이제 물기를 닦고 옷을 갈아입고 아우님을 들이세요. 너무 기다리신 듯 합니다.”
“알겠소. 부인.”
동현도 그제야 정희의 말을 듣는다.
세숫물을 밖으로 내보내고 정희가 옷을 갈아입는 것을 본 동현은 정희가 옷을 갈아입자마자 근혁을 안으로 들인다.
“형님! 아침에 형님의 보니 신수가 더 훤해 보이십니다?”
“예끼! 그런 장난은 그만 둬. 우리 부인이 부끄러워하잖아.”
“하하하! 알겠습니다. 하지만 사실이지 않습니까?”
동현의 짓궂은 말에 정희는 옆에서 더욱 부끄러워한다.
그런 근혁을 보며 동현이 말한다.
“그런 장난은 그만치고… 아침부터 나를 찾아온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그렇습니다. 형님. 강이식 대장군께서 오늘 아침 일찍 요동성으로 떠나셨습니다.”
“뭐? 이렇게 일찍?”
“예. 요동성의 군무와 정무 때문에 오래 자리를 비울 수 없다고 하더군요.”
“그렇군…….”
“그 대신 저에게 서찰을 맡기셨습니다. 형님께 주라고 하시더군요.”
근혁은 그렇게 말을 하며 동현에게 강이식 대장군의 서찰을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