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2화 대중상, 천설유가 자신을 믿게 만들다
천설유는 대중상의 말에 특유의 눈빛으로 쏘아보며 묻는다.
“나를 후계 자리에 올려주겠다라… 무슨 수로?”
“그 전에… 주변을 물려주시지 않겠습니까?”
“내 주변의 여군들은 내 심복들이다.”
“본래 가까이에 있는 심복들을 더 조심해야 하는 법입니다. 물러갈 때까지 저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대중상의 당찬 행동에 천설유는 대중상을 잠시 빤히 보더니 피식 웃으며 말한다.
“후후후… 그래. 그런 배짱은 있어야지. 초희야!”
“예! 공주님!”
“잠시 여기 첩보대장과 중요하게 할 일이 있으니 내 말이 있을 때까지 막사에서 떨어져 있거라.”
“예? 하… 하지만…….”
“이건 명령이다. 초희야.”
“으음… 알겠습니다. 하지만 만약 위험에 처하면 바로 소리를 지르십시오.”
“그래. 알았다.”
그렇게 초희라는 심복과 나머지 여군들이 잠시 막사에서 떨어진다.
그러자 천설유가 다시 말한다.
“네 말대로 다 물렸다. 이제 말해 보거라.”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하나뿐이라?”
“예.”
“그게 무엇인가?”
“이미 공주님 주변에서 부추기고 있지 않습니까?”
“설마…….”
“예. 그 설마입니다.”
대중상의 말에 천설유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말한다.
“이 놈! 어찌 자식 된 자로 아버지를 치라고 말하는 것이냐?!”
“그럼 후계 자리를 차지할 자신이 있으십니까?”
“그거야 이제부터라도 잘 보이면…….”
“그건 불가능합니다. 이번 공주님의 일이 있기 전에는 그래도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공주님의 대형 사고로 인해 그 후계 가능성은 사라졌습니다.”
“…….”
“분명 공주님 주변의 사람들은 둘 중 하나로 갈릴 겁니다. 공주님처럼 좀 더 가한의 눈에 만족하는 행동을 보여주면 다시 후계 자리를 가져올 수 있을 거다 라는 것과 좀 전에 제가 말한 급진적인 그런 계책을 고하는 사람이 있겠죠. 처음엔 그 의견에 힘을 받지 않다가 이번 일로 인해 그 의견이 많아졌을 겁니다.”
대중상의 말에 천설유는 깜짝 놀란다.
“그걸 어찌 알았느냐?”
“당연한 것이지 않습니까? 지금으로썬 후계 자리를 차지할 가능성이 공주님에게 아예 없어졌으니까요.”
대중상의 말에 천설유의 표정은 심각해진다.
“정말… 그토록 가능성이 없다고 보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그런 말을 고하는 공주님의 장수들은 제법 시국을 읽을 줄 아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지금의 가능성을 알기에 공주님께 그런 계책을 고한 것이죠.”
대중상의 말에 천설유는 잠시 생각을 하고는 묻는다.
“좋아. 자네의 의견은 잘 알겠어. 그런데 난 아직도 의문이야.”
“어떤 것이 말입니까?”
“자네가 왜 소가한이 아니라 내 편을 들겠다 하는지 말이야.”
“그것은 앞서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내 생각엔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만으로는 납득이 안 돼서 말이야. 그런 애국심만 가지고는 내 편을 들 수 없다. 모름지기 사람에게는 욕심이라는 것이 있어. 그런데 너는 그런 욕심이 없으며 오직 애국심만 가지고 나를 설득하려고 하고 있다. 그러니 내가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야.”
대중상은 천설유의 말에 피식 웃으며 대답한다.
“그것은 제가 자라온 환경을 아시면 그렇게 말씀을 하시지 못 할 겁니다.”
“자라온 환경?”
“예. 저와 저희 가족들은 과거 이곳저곳을 떠돌며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겨우 한 곳에 정착을 하였는데 정말 인적이 드문 숲 속이었죠. 저희 가족은 겨우 그곳에 자리를 잡아서 약간의 땅을 일구며 먹고 살면서 농사를 지은 것들을 저잣거리로 나와 팔며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큰 사고가 터졌습니다.”
“사고?”
“예. 저희 가족에게는 아주 큰 사고였죠. 저와 가족들은 저잣거리로 농사를 지은 것들을 팔러 나왔는데… 그곳에 흑수말갈 놈들이 쳐들어 왔었습니다. 그리고 그 흑수말갈 놈들에게 저를 제외하고 어머니와 아버지 둘 다 죽임을 당했죠.”
“…….”
“아버지께서는 저를 어떻게든 살리려고 혼란한 와중에 어느 부잣집의 처마 밑에 저를 숨기셨습니다. 몸이 작았던 저는 그곳에 숨었고 모든 상황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죠. 그리고 모든 상황이 끝나고 제가 처마 밑에서 나와 저희 집 쪽으로 향했을 때… 어머니와 아버지의 시신이 제 앞에 있었습니다.”
대중상은 잠시 숨을 고르고는 계속 말을 이어간다.
“저는 이런 일이 있은 후… 운이 좋게도 이곳에 좋은 사람을 만나 정착을 하게 되었고 그 이후 세작으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니 먹고 사는 것에도 문제가 없어지고 그것만 되어도 만족하니 크게 욕심이 없어지더군요.”
“…….”
“그리고 이번 일로 첩보대장으로 출세까지 하니 제가 더 욕심을 부릴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근래 들어 제가 상황을 지켜보니 제게 기회를 준 이 불열말갈이 무너지는 것 같은 모습을 볼 수 없었고 그래서 소가한을 구했습니다.”
“…음.”
“제가 있는 이 터전을 누군가에게 절대 빼앗기면 안 되지 않습니까? 그렇게 되면 또 예전처럼 비참해질 테니 말입니다.”
“…….”
“이제 제 이유 모두가 설명이 되었습니까? 제가 왜 공주님의 편을 들어 이 불열말갈을 뒤집으려 하는지 말입니다.”
대중상의 말에 천설유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 네 말을 받아들이지.”
“감사합니다.”
“나도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지 못해서 가한께 정말 화가 많이 났거든.”
“공주님의 의도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혼인을 해서 공주님의 세력을 더욱 공고히 하려는 것이 아닙니까? 상대적으로 공주님의 세력이 가한보다 약하니 말입니다.”
“그것까지 알다니… 대단하군.”
“돌아가는 판을 보면 알죠.”
대중상의 말에 천설유가 묻는다.
“그럼 자네에게 묻지. 내가 이 일을 성공시키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일단 공주님의 밑에 장수들을 힘을 모아서 군사적 행동을 할 때 한 번에 밀고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단… 정말 믿을만한 자들이어야 합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라. 다들 충성스러운 자들이니…….”
“그건 모르는 겁니다. 공주님께서 만약 그 말을 장수들에게 꺼내신다면 그 이후 모든 장수들에게 은밀히 사람을 보내 감시하게 하십시오. 혹여 가한께 고변이라도 한다면 이 일은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이 큽니다.”
“흐음… 알았다. 네 말을 듣지.”
“그리고 두 번째는… 제가 해야 할입니다.”
“니가?”
“예. 소가한은 현재 제가 소가한의 편인 줄 알고 있습니다. 저를 완전히 믿는 눈치죠. 제가 그들 속에 섞여 들어가서 공주님께 도움이 될만한 정보를 바로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러니 그 정보를 이용해서 저희끼리 계획을 짜 거사 일을 정하는 겁니다.”
대중상의 말에 천설유는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잡으며 말한다.
“그렇게만 되면… 내가 자네를 반드시 높은 자리로 쓰겠네.”
“제가 아까도 말했듯이 저는 자리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그리 큰 욕심이 없죠. 저는 단지 공주님이 불열말갈을 이끄는 가한이 된다면 이 부족을 잘 이끌어나가시는데 도움을 드릴 뿐입니다.”
천설유는 대중상의 이런 말에 고마워한다.
“고맙네. 고마워. 이 일이 성공만 한다면 나는 절대로 자네 은혜를 잊지 않을 것이야.”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전 이제 가봐야겠습니다. 제가 공주님 막사로 들어갔다는 것이 어느 사람에게 전해졌을지 모르니 너무 오래 있는 것도 좋지 않으니까요.”
“그래. 그러게. 그런데… 둘러댈 말은 있는가?”
“염려 마십시오. 잠시 이 근처 순찰을 돌다가 우연히 공주님을 마주쳐 차 한 잔 했다고 하면 됩니다.”
“으음… 알았네. 조심하게.”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그렇게 대중상은 천설유에게도 순조롭게 접촉을 끝내고 자신의 막사로 돌아온다.
자신의 막사에는 여전히 천마석과 호천이 떠나지 않고 있었는데 대중상이 무사히 돌아온 모습을 보며 매우 기뻐한다.
“오오.! 살아 돌아왔구만! 잘 되었는가?!”
“예. 소가한. 위기도 있었으나 다행히 세치 혀를 놀려 위기를 벗어나 제 말을 믿게 만들었습니다.”
“잘했네! 잘했어! 으하하하!”
“다행이야. 자네의 언변에 이토록 재능이 있는 줄은 몰랐구만! 어떻게 천설유를 믿게 만들었는지 궁금하군. 말을 해주지 않겠는가?”
호천의 말에 대중상은 천설유에게 했던 말 중 일부를 그대로 말을 해주었다. 물론 거사에 관련된 일은 빼고 말이다.
“허어… 그렇게 설득을?”
“자네의 언변에 놀라면서도 마음이 아프구만. 어렸을 적에 그런 일이 있었다니 말이야.”
“이미 다 지난 일입니다. 그저 소가한을 위해 일하는 것이니 만큼 이런 것쯤 무엇이 대수입니까?”
대중상의 말에 천마석과 호천 둘 다 감탄한다.
“자네의 충심에 정말 감탄스럽군…….”
“그렇습니다. 소가한. 충성심이 정말 대단합니다.”
“허허허. 과찬이십니다. 당연한 일인데요. 그나저나… 이제 일이 잘 풀리게 되었으니 제가 정보를 듣는 대로 족족 다 보고를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정보에 대한 것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래. 자네만 믿네!”
그렇게 대중상은 또 한 번 천마석과 호천의 신임을 얻었고, 거기다 천설유에게도 신임을 얻음으로써 완벽하게 이간책을 위한 준비를 했다.
‘후후후. 지금까지는 모두 순조롭군. 아주 좋아… 이제부터는 양 쪽에 절대 걸리지 않고 내 이간책을 실행하는 것이다!’
그렇게 대중상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것도 모르고 천마석과 호천은 대중상과 좀 더 이야기를 나눈 후 자신의 막사로 돌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소가한의 책사 호천은 자신의 형인 호운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 그 자의 이름이 대호성이라고 했나?”
“맞습니다. 형님.”
“흐음…….”
“왜 그러십니까?”
“네 말대로 그 녀석은 충성스러운 자다. 하지만 그것이 만약… 연기라면 어찌할 것이냐?”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그것이 모두 그 자가 계획한 것이라면 말이야.”
호천은 그 말에 고개를 저으며 대답한다.
“에이.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훗날은 모르는 것이지 않는가? 대비는 해두어야 한다.”
“형님. 그런 자가 어찌 소가한을 위해 대신 나서서 고구려 군의 공격을 막으러 나섰으며 화살까지 맞습니까? 형님의 의심은 말이 안 됩니다.”
“니가 직접 그 자가 활에 맞는 것을 보았느냐?”
“예?”
“활에 맞는 것을 보았느냔 말이다.”
“그건 아닙니다만…….”
“그것 봐라. 그런데 그 자를 그렇게 믿는다고?”
“하지만 형님. 그 자가 활에 맞은 것 사실입니다. 저희 군사들에게 발견 되었을 때 화살촉이 다리에 박혀있었을 정도였고 상처도 깊어서 피를 많이 흘렸습니다. 조금만 늦었으면 목숨이 위험할 수 있었다는 소리를 의원이 했고 말입니다.”
“…….”
“의심하는 것도 좋지만 너무 의심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형님. 그렇게 충성심을 보이는 자에게 말입니다.”
호천의 말에 호운은 여전히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나는 그래도 그 자가 의심이 가는구나…….”
“원 형님도… 괜한 걱정이십니다.”
그렇게 둘은 술 한 잔을 마시며 대중상에 관련된 이야기를 한 동안 나누었다.
동생 호천에게서 대중상에 관련된 이야기를 들은 호운은 의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호천과 이야기를 나눈 후 자신의 막사로 돌아와 수하 중 한 명을 불러 말한다.
“너는 지금부터 대호성이라는 자의 일거수투일족을 감시하고 나에게 보고해라. 알겠느냐?!”
“예! 알겠습니다. 군사!”
그렇게 호운은 대중상에게 은밀히 감시를 붙여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