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0화 대중상의 큰 그림
대중상은 천마석이 자신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고 치료 막사를 나가자 잠시 생각을 정리한다.
‘호천이라… 그 자를 천마석이라는 자와 떨어뜨려 놔야겠어. 책사라면 머리가 꽤 좋을 테니 말이야. 떨어뜨려놓지 못하더라도 천마석이 무조건적으로 내 말을 따르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것도 아니라면 호천이라는 자가 속도록 만드는 수밖에…그 전에 이 상처가 좀 빨리 나았으면 좋겠군.’
대중상은 자신이 일부러 낸 상처를 보며 자신이 너무 깊이 찔렀나 잠시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젓는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믿지 않고 의심을 할 수 있었을 거다. 그래… 이것이 맞아. 흐음… 그렇다면 내가 조금은 무리를 해서라도 빨리 움직이는 것이 낫겠어. 한 이틀에서 사흘 이후 상태를 보고 바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해야겠다.’
그렇게 대중상은 마음을 굳히고는 그 날 일찍 잠자리에 든다.
* * *
한편 감금에서 풀린 천설유는 또 다시 사냥을 나가고 장수들과 모여 있었다.
“공주님. 그만 마시십시오! 그러다 몸이 상하십니다.”
“히끅! 가… 가한께서… 그렇게까지 절 협박하며 말씀하시는데… 제가 무슨 후계 자리를 노립니까? 여러 장수 분들이… 히끅! 헛된 희망을 품고 있는 거예요.”
천설유는 이번 일로 아버지 가한인 천석우가 자신을 후계로 전혀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라 장담했다.
하지만 그런 천설유에게 장수들이 말한다.
“공주님! 희망을 버리지 마십시오! 그것은 혼인에 대한 문제일 뿐이지 후계에 관련된 문제와 별개입니다. 연관 지어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렇습니다. 공주님. 일단 후계를 차지하고 훗날… 공주님이 호실말갈의 소가한과 혼인을 해도 되는 일입니다. 오히려 성급하게 이런 계책을 고한 저희를 벌해주십시오.”
장수들의 말에 천설유는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히끅! 아… 아닙니다. 그게 어찌… 장수 분들의 잘못이겠습니까? 다만… 히끅! 이번의 일로 전 제가 후계로 거론되지 않았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좀 전에 말씀드렸듯이 후계 문제와 혼인 문제는 별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았으니… 방법을 바꾸어서 후계 문제에 집중하는 것이 옳을 듯합니다.”
“그렇습니다. 공주님. 일단 후계 자리부터 쟁취를 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천설유는 술을 진탕 마시며 장수들을 말에 대답하지 않고 듣고 있었다.
그렇게 한 동안 말이 없던 천설유… 그러다가 한숨을 쉬며 말한다.
“하아… 제가 그 후계 자리를… 히끅! 쟁취할 수 있을까요? 저… 저는… 히끅! 여자인데 말입니다…….”
“저번에도 말씀드렸듯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지금 소가한은… 절대로 믿을 수가 없는 존재입니다.”
“그렇습니다. 공주님. 힘을 내십시오.”
여라 장수들의 말에 천설유가 피식 웃으며 대답한다.
“여러 장수 분들이… 히끅… 그렇게 말씀하시니 제가 한 번 더 생각을 바꾸죠. 히끅! 그러니 여러 장수 분들이 저를 많이 좀 도와주십시오.”
“여부가 있겠습니까?”
“으음… 히끅! 이제 피곤하군요. 오늘은 이만 하십시다. 히끅! 너무 많이 마셨어요.”
“예. 공주님. 여봐라! 공주님이 무사히 막사에 돌아가실 수 있도록 부축해 드려라!”
“예!”
그렇게 천설유는 자신의 막사로 돌아갔다. 장수들은 그런 천설유를 보며 서로 말한다.
“큰일날 뻔 했군. 우리의 계획이 모두 수포로 돌아갈 뻔 했어.”
“그러게 말일세. 이 일로 계속 공주님이 뜻을 굽히지 않으셨다면… 우리 계획에 큰 차질이 생길 뻔 했어.”
“흐음… 그나저나 정말 공주님이 가한의 뒤를 이은 후계자가 될 수 있을까?”
“저번에도 말했듯이 충분히 가능성이 있네. 다만 이번 일로 인해… 시간이 조금은 더 걸릴 수도 있을 것이야.”
“쳇! 일이 이렇게까지 될 줄이야. 가한이 그렇게까지 과감하게 대응하실 줄은 꿈에도 몰랐네. 자기 자식이 아닌가? 그리고 평소에 그토록 끔찍이도 예뻐하시던 공주님이었고 말일세.”
“그것이 나라에 관련된 것이니 더욱 더 그런 것이겠지. 크흠… 아무튼 우리도 오늘은 이만 다들 해산하세. 계속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행여 다른 사람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하는 날에는… 우리 모두 즉참이야! 알지 않나?”
“그래. 자네 말이 맞아. 오늘은 모두들 다 지금 이 자리에서 해산하도록 하지!”
그렇게 장수들은 자신들의 말이 다른 사람에게 들어 갈까봐 두려워 평소보다 빨리 해산을 했다.
그리고 며칠 뒤.
“이제 움직일 수 있겠군. 하지만 아직 상처가 다 아문 것은 아니니 매일 약을 발라주고 붕대를 매일 갈아줘야 하오. 명심하시오. 그래야 상처가 덧나지 않고 계속 아물 것이오. 그리고 이 상처가 다 아물 때까지는 절대로 술은 금물이요. 알겠소?”
“알겠소이다. 정말 감사하오.”
대중상이 드디어 누워있던 치료 막사 병상을 털고 일어났고 그 모습에 천마석은 매우 기뻐했다.
옆에서 그 소식을 들은 천마석은 대호성이 일어난 것에 매우 기뻐하며 말한다.
“정말 다행일세! 이렇게 나아서 다행이야!”
“그 동안 심려를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무슨 소리? 자네는 내 생명의 은인이야! 아… 참! 마침 잘 됐군. 내 책사인 호천과 만나기로 했는데… 같이 가겠는가?”
천마석의 말에 대호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그리하겠습니다. 저도 호천 공을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하하하! 그래! 같이 가지!”
그렇게 천마석은 자신의 막사로 대중상을 데리고 간다.
“오! 호천이 왔는가?”
“예. 소가한. 어?”
“인사드리겠습니다. 저는 예전에 세작으로 있던 대호성이라 합니다.”
“아… 기억이 났군! 몸은 괜찮은가?”
“물론입니다. 호천 공.”
“하하하! 그래. 이렇게 보니 반갑구만.”
호천도 반가워하는 모습을 보이자 천마석이 웃으며 말한다.
“둘이 그렇게 반가워하는 모습을 보니 보기가 좋구만. 앞으로 잘 지내보게. 둘이 내 오른팔 왼팔이 될 테니 말이야.”
“물론입니다. 소가한. 그런데 저…….”
“응?”
“제가 본래 직책을 불러야 하는데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라 호천 공이라 부르는 무례를 범했습니다.”
대중상의 말에 호천이 웃으며 대답한다.
“하하하! 난 또 뭐라고… 그거야 모르고 그런 일이 아닌가? 괜찮네. 내 직책은 이 불열말갈에서 부군사 직책을 맡고 있네. 군사 직책은 호운이라는 내 형님께서 맡고 계시고 말이야.”
“호운님의 명성에 대해서는 익히 들었습니다. 대단하신 분이 아닙니까? 가한의 군사로 있으시면서 여러 일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자네도 아는구만? 그래. 그 분이 내 형님이자 군사고 내가 부군사를 맡고 있지. 그러면서 나는 소가한의 직속 군사를 맡고 있네. 그러니 나를 부를 때 군사라고 부르면 되네. 물론 형님과 같이 있을 때는 부군사라고 불러야 하고 말이야.”
“명심하겠습니다.”
“그나저나 호천. 내 생명의 은인에게 큰 자리를 하나 주어야 하는데… 마땅한 자리가 없을까?”
천마석의 제안에 호천은 잠시 고민하며 묻는다.
“자네가 잘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는가?”
“보잘 것 없지만 소인 상대가 어떤 정보를 숨기고 있는지 알아내는 능력은 최고라고 자부합니다. 제가 세작이었다 보니 웬만한 정보는 다 알아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습니다.”
“그렇군. 흐음… 소가한. 그럼 여기 대호성에게 주변 여러 나라의 정보들을 캐내는 첩보대장 자리를 신설하여 임명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첩보대장?”
“예. 저희 불열말갈은 주변 여러 나라들에 둘러싸여 있어서 많은 첩보가 필수적입니다. 그러니 여기 대호성에게 그 직책을 주면 잘 해낼 것이라 생각합니다.”
“나쁘진 않군. 호성아. 한 번 맡아보겠느냐?”
천마석의 제안에 대중상은 무릎을 꿇으며 대답한다.
“작은 공을 세운 저에게 이토록 제게 큰 직책을 주시려 하시니… 그 은혜가 참으로 크옵니다. 소인… 직책을 주신다면 한 번 맡아보겠습니다.”
“하하하! 그래. 일단 가한께 고하고 승인을 받아내겠다. 그리고 그 직책은… 군사와 부군사의 바로 밑에 직책으로 있게끔 말을 할 것이니 기대하고 있게.”
“감사합니다! 소가한!”
대중상은 감격한 척 표정을 연기하며 절까지 한다.
그런 대중상을 천마석이 일으키며 말한다.
“내가 말하지 않았나? 내가 이 은혜는 반드시 갚겠다고… 자네는 내 손과 발이나 마찬가지야! 앞으로도 어려운 일이 있거든 언제든지 말하게.”
“감사합니다. 소가한.”
“자… 이렇게 우리끼리 정하기만 할 수는 없지. 가한께 지금 당장 아뢰러 가야겠어.”
“지금 바로 말입니까?”
“그래. 일을 빨리 해결해야겠어. 난 대호성과 함께 빨리 모든 걸 같이 하고 싶군.”
“허허허. 호성이를 정말 끔찍하게 아끼십니다. 소가한.”
“당연하지! 내 생명의 은인인데! 호성이도 같이 가지! 내가 좀 전에 말한 직책에 대해 임명을 받으려면 가한께서 분명 자네 얼굴을 보고 싶어 하실 것이야.”
“예. 소가한.”
“호천이 자네도 같이 가세. 자네 형의 얼굴도 볼 수 있을 것이 아닌가?”
“형님의 얼굴은 거의 매일 보긴 하지만… 그래도 소가한의 명령이니 따르겠습니다.”
“하하하! 그래! 가지!”
그렇게 천마석은 호천과 대호성을 이끌고 가한 천석우가 있는 막사로 향한다.
그리고 잠시 후.
“그래? 이 녀석을 군사와 부군사 다음 직책 자리를 신설해서 임명해 달라고?”
“예. 가한. 저희가 지금 얻고 있는 첩보는 주먹구구식입니다. 그때 그때 세작을 보내 알아내는 것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여기 호성이에게 첩보대장 직책을 신설하여 맡기면 이제 저희 주변에 있는 각 나라에 대한 정보는 손쉽게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흐음… 그 정도로 이 자의 능력을 높게 평가하느냐?”
“예. 가한.”
“이 자가 단지 네 목숨을 구해줘서 그런 것이 아니고?”
“그건 아닙니다. 소인… 제 눈을 믿습니다. 이 호성이의 능력이 뛰어날 것이라고 말입니다.”
“흐음…….”
가한은 천마석의 말을 듣고는 호성을 쳐다본다. 그리고 호성에게 묻는다.
“이번에 고구려가 쳐들어 올 것이라는 정보도 자네가 알아냈다지?”
“그렇습니다. 가한.”
“저들이 무슨 속셈인지는 몰라도 우리 국경 근처에 와서는 현재 아무런 행동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 이유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있느냐?”
대중상은 천석우의 말에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대답한다.
“크게 2가지가 있습니다.”
“2가지나? 말해 보거라.”
“일단 첫 번째는 저희 옆에 붙어 있는 호실말갈의 존재입니다.”
“호실말갈이라…….”
“예. 호실말갈은 저희 불열말갈과 동맹국이니 저희를 치면 호실말갈이 구원을 올 것은 자명한 일이라고 고구려는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군사가 1만인 정예 군대라고는 하나 그 1만의 군대로 저희 불열말갈과 호실말갈까지 양쪽으로 맞이하기에는 고구려도 부담이 있을 것입니다.”
“좋아. 그럼 두 번째는?”
“두 번째는 고구려가 지금 저희를 친다 해서 큰 이득이 없다는 것입니다.”
“응? 그 말은 좀 이상하구나. 네가 예전에 정신이 돌아왔을 때 고하기를… 고구려가 우리를 칠 것이라고 했었다.”
천석우의 말에 대중상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맞습니다. 분명 그랬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때와 상황이 다릅니다.”
“상황이 다르다?”
“예. 그 때는 우리가 크게 지고 난 뒤라 우리의 뒤를 추격해 기세를 타고 들어올 생각이었습니다. 헌데… 그 때쯤 고구려의 지배 아래에 있던 속말 말갈의 한 부족이 말썽을 부렸다는 첩보를 입수했습니다.”
“속말말갈이라…….”
“예. 그들은 대부분 고구려를 상국으로 떠받들고 조공을 바치고 있으나 일부 부족은 아닙니다. 그 부족들이 고구려의 변방을 침입한다는 소식에 저희를 쫓지 못하고 이곳에 주둔을 하게 된 것이고 그 일부터 처리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는 사이 저희는 모든 방비를 갖추었으니 지금 고구려가 저희를 공격해도 큰 피해를 볼 것입니다. 이를 볼 때 고구려가 크게 이득을 취하는 것이 없으니 그게 두 번째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대중상의 논리적인 말에 가한인 천석우는 크게 웃음을 터뜨린다.
“으하하하! 시세를 읽는 눈과 첩보 능력이 참으로 뛰어난 자다! 마석이! 네가 참으로 뛰어난 자를 장수로 얻었구나!”
“망극하옵니다. 가한.”
“네 의견을 들어주겠다. 오늘부로 대호성은 우리 불열말갈에서 세 번째로 높은 첩보대장으로 임명한다!”
“망극하옵니다! 가한!”
그렇게 대중상은 불열말갈의 첩보대장 직책에 임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