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화 근혁과 의형제를 맺다
동현의 통큰 결정에 해론은 밖으로 나가 근혁에게 말하여 신라와 백제 포로들을 모두 결박에서 풀어주었다.
그리고는 동현의 지시에 따라 고기와 술을 베풀자 다들 정신없이 먹는다.
동현도 안에서 정신없이 술과 고기를 먹으며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동현은 이 시대에서 막 성인이 된 20살임에도 불구하고 술을 그렇게 마셨는데도 술이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해론을 비롯해 돌석비와 단석한이 잔뜩 취했고 셋은 탁상에 머리를 박고 잠이 들었다.
그 모습을 본 동현은 근혁을 부른다.
“근혁이!”
“예! 주인어른! 부르셨습니까?!”
“그래. 이 셋이 잔뜩 취한 모양이구나. 빈 방에 셋을 나누어서 놓거라.”
“알겠습니다. 막동아!”
근혁은 그렇게 밑에 있던 막동이를 불러 셋을 방에 부축하여 들어다 놓았다.
근혁은 그렇게 막동에게 지시를 하고 방을 나가려는데 동현이 재차 묻는다.
“아… 참! 내가 창고를 개조해서 저들을 수용할 수 있게 만들라는 건 어떻게 됐어?”
“예. 그건 미리 해놓았습니다. 주인어른으로부터 지시를 받은 지 꽤 되었지 않습니까? 막동이랑 저를 포함한 5명에서 다 했습니다.”
“허허… 정말 힘들었겠군.”
“괜찮습니다. 그리고 이제 밑에 수하들이 많이 생기지 않았습니까? 그걸로 만족합니다.”
“그래. 그것 참 다행이군.”
동현은 술 한 잔을 마시더니 계속 말을 이어간다.
“나랑 좀 더 이야기를 하지. 근혁이. 내 앞에 앉게나.”
“예. 주인어른.”
그렇게 동현은 근혁과 함께 술을 좀 더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다가 동현이 무언가 결심한 듯 말을 꺼낸다.
“이보게. 근혁이.”
“예. 주인어른.”
“알다시피 자네는 노비가 아니고 내 식구이며 형제나 다름없어.”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
“나와 의형제를 맺지 않겠나? 내가 형님으로 모시겠네.”
동현의 말에 근혁은 화들짝 놀란다.
“아니… 주… 주인어른! 저를 형님으로 모시겠다니요? 말씀을 거두어 주십시오!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이건 진심일세. 근혁이. 자네가 나보다 5살이나 많지 않나? 그러니 자네가 형이 되는 것이 맞아!”
“애… 애초에 저와 의형제를 생각하셨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됩니다! 제가 어떻게! 주인어른과 의형제가 된단 말입니까?”
그렇게 근혁은 완강하게 거부를 한다.
하지만 동현도 고집이 있어서 계속 고집을 부리자 근혁이 한숨을 쉬며 말한다.
“후우… 좋습니다. 그렇다면 단 한 가지 약조만 지켜주십시오.”
“그래! 그게 뭔가?”
“제가 동생이 되겠습니다. 그럼 받아들이겠습니다.”
“뭐? 그게 말이 되는가? 자네는 나보다 5살이 많아! 그런데 나보다 동생이라니?”
동현의 말에 근혁은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저는 애초에 주인어른을 모시고 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현재 받아들인 사람들은 주인어른 하나를 보고 충성을 다한 것이고요. 그런데 제가 의형제를 맺어 형이 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이 어떤 마음을 품겠습니까?”
“으음…….”
“거기다 기존에 저를 제외한 4명의 수하들에게도 혼란을 줄 것이며 명령체계에도 심각한 혼란을 초래할 겁니다. 그러니 제가 동생이 되는 것이 맞습니다.”
“…….”
“그리고 나이가 많거나 적은 것에 따라서 의형제 위아래를 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그 능력에 따라서 정해야 하는데 주인어른이 저의 능력보다 위이고 애초에 지위도 위이셨으니 제가 동생이 되는 것이 합당합니다.”
근혁의 논리적인 말에 동현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고 수긍한다.
“후우… 자네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좋아. 좋은 날을 잡아서! 우리 의형제를 맺도록 하지!”
동현의 말에 근혁은 갑자기 의자에서 내려와 넙죽 절을 하며 말한다.
“어리석은 소인을 의형제로써 받아주시니 참으로 감개가 무량합니다! 소인! 형님을 위해서라면 불구덩이라도 들어갈 것이며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근혁은 그렇게 말을 하며 몇 번의 절을 동현에게 더 한다.
그런 근혁을 보며 동현은 다가가 일으키며 말한다.
“그래. 아우. 우리 한 번 잘 지내보세! 자넨 이제 내 동생이야! 그리고 애초에 나도 그렇고 자네 가문도 그렇고… 노비 출신이 아닌 명문 가문이지 않았는가? 어쩔 수없이 노비가 돼서 우리 집안을 잠깐 받들었던 것뿐이고 말이야. 나는 본래 평양성 김씨! 자네는 국내성 이씨로 말이야!”
“형님!”
“우리 친 형제처럼 정말 잘 지내보세! 아! 내 친 동생들은 자네보다 동생으로 칠 것이야! 그러니 그건 절대 거절하지 말게! 알겠나?”
동현의 말에 근혁은 더욱 감격한다.
“예. 형님…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 내가 혹여 자리를 비웠을 때는 자네가 내 동생들을 잘 좀 챙겨줘. 부탁하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형님!”
“좋아! 이렇게 형과 아우가 된 기념인데! 동생한테 술 한 잔 받고 계속 더 마셔보도록 하지! 자! 한 잔 따라보게!”
“예! 형님!”
그렇게 둘은 밤이 새도록 술을 마시고 즐겼다. 그리고 다음 날.
“으으윽…….”
동현은 과음으로 인해 두통을 느끼며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다행히 자신은 필름이 끊기지 않고 근혁이 먼저 쓰러지자 수하를 시켜 다른 방으로 보내고는 잠이 들었는데 역시 숙취로 인한 두통은 어쩔 수 없는 듯 굉장했다.
그런데 그 때.
“형님! 기침하셨습니까?!”
“응? 아우! 벌써 일어났는가?”
“예. 형님! 세숫물이 준비 되었으니 아랫것들을 시켜 들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부탁하네!”
동현이 말하자 누군가 세숫물을 들고 들어오는데 동현은 그 사람을 보고 놀란다.
“아니. 아우! 이 사람은… 여인이지 않은가?”
“예. 형님.”
“우리 집안에 여인은 왜?”
“이제 저희 숫자도 늘어난 만큼 저희가 먹고 살려면 기존에 4명의 수하들만 가지고 음식이나 여러 가지 먹을 것들을 할 수가 없습니다.”
“…….”
“인원이 많이 없을 때라면 평소 형님께서 하시던 대로 하면 되지만 이제 100명이 넘는 사람들을 거느리게 된 만큼 음식을 할 줄 아는 사람들도 있어야 합니다.”
“흠.”
“그리고 형님 옆에서 시중을 드는 시녀나 시종들도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 노비 시장에 가서 급히 시종과 시녀들을 사서 왔습니다.”
“허허…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데…….”
“형님의 큰 뜻과 위엄을 위해서는 이런 것들은 반드시 갖춰져야 합니다.”
“신경써줘서 고맙네. 아우.”
동현이 그렇게 말하자 세숫물을 들고 있던 시녀가 종종 걸음으로 다가오더니 밑에 수건처럼 물이 튀지 않도록 천을 깐다.
그리고 기 위에 세숫물을 올려놓는 시녀. 그리고는 옆으로 물러나며 말한다.
“세숫물로 다 씻으시고 불러주시옵소서. 치우러 오겠사옵니다.”
“그래. 알았다.”
“형님. 그럼 저도 나가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동현은 근혁까지 나가자 세숫물로 깨끗이 씻을 수 있는 곳은 다 씻는다.
그리고 잠시 후.
“세숫물 가지고 가거라!”
“예! 주인어른!”
동현이 말하자 바로 앞에서 대기를 하고 있었던지 시녀가 세숫물을 가지러 들어온다.
그런데 동현이 자세히 보니 제법 미색이 뛰어나다.
“네 이름은 무엇이냐?”
동현의 말에 세숫물을 가져가려다가 황급히 엎드리며 말한다.
“예. 소녀의 이름은 우희라고 하옵니다.”
“우희라… 넌 어쩌다 노비가 되었느냐?”
“그… 그게…….”
“말하기 싫으면 말하지 않아도 좋다. 강요하지 않으마.”
동현의 말에 우희라는 여자 노비가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아… 아닙니다. 말씀 드리겠습니다. 소녀는 백제 사람이온데 웅진 지역에 살던 어부 집안의 사람이었사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사람들이 나타나 저희 아버지와 제가 탄 배에 있는 물고기들을 다 빼앗으려고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저희 아버지와 배에 탄 사람들은 저항을 했습니다.”
“…….”
“하지만… 그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이 아니었고 저희 아버지는 물론 모두 다 죽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저희 여자들과 어린 남자 아이들만이 남았는데 저희를 노비로 팔아넘기면 큰 이문을 보겠다면서 저희를 어디론가로 끌고 갔습니다.”
“쯧쯧… 노비 무역상단에 걸린 모양이구만. 애초에 어획한 물고기를 빼앗으려던 것이 아니라 여자 노비들을 얻으려고 했던 것이야. 미색이 뛰어난 노비들은 값을 두둑하게 받을 수도 있으니 말이야. 그리고 남자 아이들까지 살려둔 이유는 시종으로 써먹을 수 있으니 그것도 노비로 팔면 돈이 되니까 죽이지 않은 것이고…….”
동현의 말에 우희는 눈물을 흘리며 말을 계속 이어간다.
“그런데 끌려가던 중 또 다른 배에서 저희를 가지고 거래를 하더군요. 알고 보니 이곳 요동성에 있는 노비 상인이 저희를 돈을 주고 산 것이었습니다.”
“그래. 그래서 우리가 너희를 사서 우리 집에 오게 된 것이군.”
“그렇습니다…….”
“가족이 다 죽은 것이냐?”
“저희 어머니와 아버지는 배 위에서 돌아가셨고… 남동생이 있습니다.”
“그래?”
“예. 다행히 이곳에 팔려올 때 같이 왔습니다.”
동현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솔직히 말하마. 나를 충심으로 다해 모신다면 노비 문서는 불태우고 해방시켜주겠다.”
동현의 말에 여자는 깜짝 놀란다.
“그… 그게 정말이십니까?”
“그래. 아까 너희를 구입한 내 수하도 본래 노비였지. 그는 나를 곁에서 오랜 시간 함께 했고 내가 면천시켜 주었다. 그리고 그 밑에 4명의 수하들도 있는데 전부 면천 시켜줬지.”
동현의 말에 우희는 넙죽 절을 하며 말한다.
“추… 충심을 다해 모실 테니… 면천만… 면천만이라도 시켜주십시오! 면천이 되더라도 주인어른을 충심으로 모시겠습니다!”
“빠른 시일 내에 너를 면천시켜 줄 수는 없다. 너도 들어오면서 봤겠지만 현재 내가 말한 그 5명을 빼고는 현재 전부 다 노비 신분이야. 그런데 여자이면서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을 먼저 면천을 시켜봐라. 그럼 그들의 반응이 어떨 것 같나?”
“아…….”
“그리 알고 네 주어진 임무에 충실해라. 알겠느냐? 그러면 언젠가는 내가 꼭 면천시켜주마.”
“예. 주인어른.”
“세숫물 가지고 가거라.”
“예.”
우희가 세숫물을 가지고 나가자 근혁이 들어와 묻는다.
“형님.”
“응?”
“저 아이가 마음에 드십니까?”
“응? 왜 갑자기 그런 소리를 하느냐?”
“사실… 제가 시녀들을 골라올 때 일부러 미색이 뛰어낸 노비들 몇몇을 골랐습니다.”
“그건 왜?”
“이제 형님도 혼인을 하셔야 하는 나이입니다. 그러니…….”
동현은 그 말을 단칼에 자른다.
“아서라. 근혁아! 내 나이 이제 20살이야! 그런데 무슨 벌써부터 혼인이야?”
“후사를 빨리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노비여도 미색이 뛰어난 노비이면 괜찮지 않습니까?”
동현은 근혁의 말에 앞에 놓인 물 한 잔을 마시며 말한다.
“근혁아.”
“예. 형님.”
“나는 절대 여자를 둘 이상은 들이지 않을 생각이다.”
“예? 그럼… 여자 한 명으로 만족하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하지만 후사를 위해서는…….”
“그래. 후사를 위해서는 네 말이 맞다. 하지만 말이야. 내 말을 먼저 잘 들어 봐라. 보통 혼인을 한 여자는 가문의 진정한 안주인이라고 말하면서 혼인을 한 사내와 알콩달콩 잘 살기를 바라지. 오직 자신만 바라봐 주기를 바라면서 말이야.”
동현의 말에 근혁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 고구려에서는 부인을 둘 이상 두게 될 경우… 처음 들인 부인에게 형님이라고 말을 할 뿐 지위는 사실상 동등한 관계를 가진다. 너도 알고 있지?”
“물론입니다. 형님.”
“그런데 이렇게 동등하다보니 서로 투기를 하고 만약 아들을 서로 낳게 되면 후계를 차지하려고 암투를 벌이지.”
“아…….”
“나는 그것이 싫은 것이야! 솔직히 말일세. 나는 만약 내가 아들을 여러 명 낳는다면… 무조건 장자에게 가문을 물려주지 않을 거야.”
“예? 그… 그럼…….”
“아들들 중에 가장 능력 있는 녀석을 내가 집어서 후계로 지목할 거다.”
동현의 말에 근혁이 우려를 표한다.
“하지만 형님. 그렇게 되면… 다른 아들들이 들고 일어나서 서로 싸움이 벌어지지 않겠습니까?”
“후후. 그러니까 그러지 못하게 미리 조치를 취해놔야지! 그렇게 하면 오히려 가문은 대대손손 번창하고 오래가게 될 것이야.”
“음… 그것이 정녕 형님의 뜻이라면 따르겠습니다.”
“고맙다. 근혁이. 자… 그럼 이제 훈련하고 있는 곳으로 가볼까?”
“예. 형님. 제가 모시겠습니다.”
그렇게 동현은 근혁의 안내를 받아 방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