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9화 동현, 현재 시국을 수하들에게 가르치다
동현은 해론에게 충성을 다짐받는 절을 받은 뒤 그를 직접 일으켜주며 자리에 앉게 했다.
그리고 해론을 향해 자신이 생각한 것들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좀 전에 내가 자네에게 말했듯이 우리 고구려는 저 서토의 오랑캐로부터 백제와 신라의 방패막이가 되어주고 있어. 그건 자네도 부정하지 않을 걸세.”
“그렇습니다.”
“그런데 백제와 신라는 서로를 공격하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 고구려도 공격한다. 그것은 왜 인 것 같나?”
“일단… 저희 신라와 백제는 서로 간에 한강 유역을 가지고 다투었고 백제의 왕 목을 베었으니 백제는 저희를 원수처럼 생각하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저희를 공격하는 것이고 저희 신라는 그것을 막기 위해 싸우는 것이며 힘이 모자라니 고구려에 도움을 청했던 것이고요.”
“좋아. 아주 시국을 잘 보고 있군. 그런데 말이야. 내 질문에는 정확히 답을 하지는 않았군. 백제와 신라는 중원의 저 오랑캐들에게 조공을 바치면서 우리 고구려를 공격하라고 하고 있어. 우리가 방패막이가 되어주는 역할을 함에도 말이야. 그건 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나?”
해론은 동현의 말에 막힘없이 바로 대답이 나온다.
“음… 소인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저희 신라가 고구려에 청한 도움요청이 거절당한 후 고구려도 자신들의 우방이 될 수 없다고 여긴 것 같습니다.”
“음.”
“그래서 일단… 현재 고구려의 북쪽이 서토의 오랑캐들에게 공격을 받으면 군사를 북쪽으로 옮길 테니 남쪽 국방이 약해진 틈을 타 남쪽 국경을 공격하여 영토를 넓히고, 고구려에 저희 신라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는 겁니다.”
“…….”
“그리고 동시에 그곳에서 군사력을 키워 백제와의 싸움에서 우위를 가져가려는 계획이었던 것 같습니다.”
“후후. 좋아. 잘 알고 있어. 하지만 신라가 그러는 목적이 하나가 더 있네. 한 번 생각해 보게.”
“하나가 더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래.”
동현의 말에 해론은 생각에 잠기지만 고개를 젓는다.
“음… 잘 모르겠습니다. 가르침을 주십시오.”
“좋아. 알려주지. 일단 신라가 그렇게 행동하는 목적 두 번째는 우리 고구려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야.”
“예? 하지만 좀 전에는 거절을 당해서 북쪽이 공격을 받는 틈을 타 고구려의 영토를 노리는 것이라고…….”
“분명 그랬지. 그런데 잘 생각해 봐. 신라의 국력으로 우리 고구려를 공격해 영토를 넓혀봐야 얼마나 넓히겠나?”
“아…….”
“영토를 넓혀봤자 많은 영토를 넓히지도 못하는 국력일세.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고구려에 시위를 하는 것이지! 내가 너희들 땅 이 정도는 차지할 실력이 된다! 봐라! 돕지 않으면 더 큰 위험이 될 것이다! 백제가 만약 우리를 삼키거나 우리 신라가 백제를 삼키면 너희는 무사할 줄 아냐?! 백제와 신라간의 영토가 하나가 되는 순간! 다음 목표는 너희다! 라고 말이야.”
동현의 말에 해론은 감탄한다.
“그렇군요. 그럼… 아까 해결책이 있다고 하셨는데… 그것은 어떤 해결책입니까?”
“후후. 정말 듣고 싶나?”
“그렇습니다. 제가 그 말을 들으려고 이렇게 주인어른의 수하가 되지 않았습니까?”
동현은 해론의 말에 술 한 잔을 벌컥 마시며 말한다.
“좋아. 대신 충격을 받지 않았으면 좋겠군.”
“물론입니다. 웬만한 것에 충격은 안 받으니 걱정 마십시오.”
“후후. 좋아. 그럼 이야기를 하지. 내가 생각하는 해결 방법은 신라를 멸망시키는 것이네.”
“……!”
동현의 말에 단석한은 물론이고 돌석비도 놀란다.
“주인어른… 그게 무슨? 해가 되는 수준이 아니라 멸망이라고요?”
“그렇다네. 잘 생각해 봐. 현재 신라의 입장을 말이야. 신라는 현재 우리 고구려와 백제, 신라 삼국 중 가장 약한 나라야. 자네도 알지?”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한테 손을 벌렸지만 잘 안 됐어. 그래서 백제와 마찬가지로 저 서토의 오랑캐에게 손을 벌렸지. 여차하면 그들에게서 군사들도 빌려서 오겠다는 자세야.”
“그… 그건 과장 아닙니까? 백제도 부추기는 걸로 알고 있는데…….”
“백제와 신라는 상황이 엄연히 달라! 백제는 현재 왕 이전에 있던 왕의 죽음으로 왕권이 많이 약해진 상태야. 신라에게 백제의 왕이 목이 잘리고 많은 군사가 죽었으니 한 동안 왕권이 약해지면서 귀족들이 득세하고 있어.”
“……예.”
“하지만 그 귀족들 중에 명신들이 있어서 나라의 국력을 회복하는 데 힘을 쓰고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신라를 공격하는 것이지. 만만한 게 신라니까! 영토를 넓혀서 신라 사람들을 노비로 삼으면 국력이 신장되니까 말이야.”
동현의 말에 해론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경청한다.
동현은 그런 해론을 보며 계속 말을 이어간다.
“백제는 그렇게 국력을 크게 신장시킬 목적으로 전력으로 신라를 공격하는 동시에 저 서토의 문물을 받아들여서 다시 국력을 회복하고 키우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전략은 먹혀들어가고 있고.”
“…….”
“현재의 백제는 내가 봐도 국력이 많이 올라왔지. 다만 현재 왕권이 약하다는 것이 흠이긴 하지만 말이야. 그래도 훗날 강력한 왕이 나오게 되면 단숨에 귀족들을 잡을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그렇기에 백제는 충분히 희망이 있고 괜찮아. 그리고 뭐… 지금의 왕도 꽤 왕권을 강하게 만들고 있는 작업을 하고 있더군.”
“…….”
“하지만 신라는 달라. 아주 오래 전부터 골품제가 틀에 박혀있지. 너무 오랜 세월 그러는 바람에 귀족들의 세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나름대로 신라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강력한 왕인 진흥왕이 죽고 전대 왕인 진지왕이 폐위가 되면서 억눌려있던 귀족들이 다시 살아나게 됐다.”
“예.”
“진흥왕은 워낙 강력해서 귀족들을 억누르고 있었던 것뿐이야. 그들의 힘을 모두 제거하면신라의 힘을 모두 잃게 되니 제거를 못하고 억누르는 정책을 펼쳤던 것이지. 그러면서 나름 국력을 신장시키기 위해 서토의 문물도 받아들인 것이고 말이야.”
동현은 술 한 잔을 마시며 목을 축이고는 말을 이어간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는 그것도 다 무용지물이 되어가고 있다. 서토를 통해서 들어오는 것들을 모두 높은 신분의 귀족들만 차지하니… 어찌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겠는가?”
“음…….”
“현재의 왕이 행정조직을 정비하고 적극적인 외교정책을 시도함으로써 왕권을 강화하고 있지만… 이것도 내가 보기엔 임시방편일 뿐이야. 지금의 왕이 있는 동안 강력한 왕권이 유지되겠지만 지금의 신라왕이 죽고 나면 신라의 귀족들은 기회를 틈타 바로 또 다시 일어날 것이다.”
“…….”
“그러니 신라가 국력을 되찾고 힘 있는 나라가 되려면 골품제가 꼭 폐지되어야 한다. 아니… 폐지된다고 하더라도 국력을 키우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야. 그 뿌리가 너무 깊어서 말이야.”
“…….”
“어떤가? 내가 틀린 말을 했나?”
동현의 말에 해론이 한숨을 쉬며 대답한다.
“하아… 아닙니다. 전부 옳은 말씀입니다.”
“그래. 이해를 했다니 다행이군. 그래서 난 신라를 우리 고구려가 먼저 병합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배신을 밥 먹듯이 하고 언제 뒤통수를 때릴지 모르니 후방을 든든히 해야 하니 말이야.”
“하지만… 그것은 백제도 마찬가지이지 않겠습니까?”
“물론 그렇지. 하지만 백제는 좀 더 살려 둘 필요가 있어.”
“어째서 그렇습니까?”
“백제는 이용가치가 많거든. 첫째로 바다를 통해 위로는 서토의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교류를 하며 국력을 신장시키면서 밑으로는 왜와의 교역을 통해 저 서토의 오랑캐들이 말하는 것처럼 천자 노릇을 하고 있다.”
“예.”
“우리 고구려가 왜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백제의 힘이 어느 정도 필요하지. 아… 물론 우리 고구려도 왜에 아주 영향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야. 하지만 위치상 백제가 왜에 더 영향을 많이 끼치고 있으니 그걸 이용해야 해.”
“음.”
“그러니 우리는 백제를 종속국으로 삼으면서 이용하다가 이용가치가 없을 때 백제를 공격해야 한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위치!”
동현의 말에 해론이 궁금해 하며 묻는다.
“위치요?”
“그래. 백제는 저 서토와 가까워. 배만 타고 가면 서토의 강남 지방에 금방이고 거기서 교류를 할 수 있지.”
“그렇습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 고구려의 인구수와 국력에 백제를 먼저 멸망시킨다고 해봐라. 그럼 어떻게 되겠나?”
“아! 전선이 너무 넓어지고 직접적으로 타격을 받으니…….”
“과연 머리가 좋군. 맞아. 서토는 오랑캐 놈들이긴 하나 우리보다 국력이 배 이상이다. 우리 고구려보다도 말이야. 특히 인구수에서 엄청난 차이가 나지. 인구수가 국력이라는 말이 있지 않나?”
“옳은 말씀입니다.”
“이걸 보았을 때 우리는 전선을 넓게 해서는 안 돼. 오히려 좁힌 다음 우리가 유리한 지형을 활용해 승부를 봐야 한다.”
해론은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그러니까 주인어른 말씀은 일단 후방에 신라를 먼저 멸망시킨 다음 백제를 압박해 종속국 형태로 만들어서 저 서토의 오랑캐들과 승부를 봐야 한다는 것이군요.”
“그렇지. 그것이 유일한 해결책이야. 하지만 그 전에 수나라 오랑캐 놈들은 먼저 우리 고구려에 쳐들어 올 것이야.”
동현의 말에 모두 놀란다.
“수나라가 말입니까?”
“그래. 1년 전… 수나라가 저 중원을 모두 통일했다고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그다음 수나라가 제일 먼저 나선 것이 무엇이더냐? 잘 생각해 봐라.”
“주변 국가들을 모두 자신의 번국(제후국)으로 삼으려 한 것이지요.”
“아주 잘 아는군! 맞아! 현재 그래서 분열된 돌궐도 수나라에 조공을 바치며 신하국을 자청하고 있고 주변의 많은 나라들도 이미 그렇게 만들고 있다. 아직 내부가 안정되지 않았으니 내정을 다스리는 것이지. 내가 알기로 우리 고구려에도 사신이 왔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오만하기가 짝이 없었지.”
“대체 무슨 내용이었길래…….”
동현은 술 한 잔을 다시 한 번 벌컥 마시며 말을 이어갔다.
“고구려가 멸망한 진나라보다 인구가 많은가 영토가 큰가를 물으며, 고구려에게 번국으로서의 충성을 요구했다는군. 통일된 큰 국력을 바탕으로 우리 고구려보다 자신들이 더 우위에 있음을 말하는 것이지. 쉽게 말하자면 좋은 말 할 때 숙여라! 안 그러면 벌하리라!”
“그런?!”
“그리고 그것은 자네들의 말갈이나 돌궐도 자유로울 수 없네.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맞습니다. 사실 저희 돌궐이 분열하기 전까지는 오히려 수나라보다 우위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분열이 되면서…….”
“그래. 그렇겠지. 그래서 내가 이렇게 상행에 나서는 것이야. 상행만 제대로 하면 고구려의 내부를 우리와 같은 큰 포부를 지닌 북벌론으로 채울 수 있다.”
“상행으로 말입니까?”
“그래. 자세한 계획은 내가 차차 상행을 나갈 때 조금씩 설명해주도록 하지.”
동현은 그렇게 말을 하면서 해론에게 말한다.
“해론.”
“예. 주인어른.”
“자네가 봤을 때 신라와 백제의 군사 포로들의 무예 실력이 어느 정도 되는 것 같아?”
“솔직히 말해서 백제 군사들이 더 뛰어납니다.”
“그렇겠지. 나도 짐작하고 있었어. 그럼 이렇게 하지. 내가 보기에 여기 있는 둘보다 자네의 무예가 가장 뛰어나 보이는군. 그러니 자네가 모든 군사 포로들을 총괄해서 훈련을 시켜.”
“예!”
“그리고 단석한이랑 돌석비는 해론이 내리는 군사에 관련된 명령은 모두 따르도록 해라. 단! 해론은 명령을 이행하기 전 나한테 보고를 먼저 하도록 해. 그리고 실행하도록.”
“저에게 모든 걸 맡기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자네는 신라에 있던 장수라 무예도 뛰어나고 병법도 꽤 아는 것 같아 보여. 아닌가?”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럼 됐어. 난 자네를 믿네. 그러니 이번에 데려온 군사들을 제대로 된 정예로 만들어 봐. 그리고 나서 본격적인 상행에 나설 것이다.”
동현의 말에 해론이 의자에서 내려와 넙죽 절을 하며 큰 목소리로 외친다.
“소인! 반드시 강한 군사들로 만들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여기 단석한이나 돌석비 둘은 그 부족들의 대장이니 자네가 새운 군율이나 군령에 어긋나지만 않는다면 자유롭게 놓아둬. 무슨 말인지 알겠나?”
“예! 주인어른!”
“자네들도 해론의 명령을 따르도록 해. 군사에 관련해서는 나와 저기 밖에 있는 근혁이. 그리고 그 다음이 여기 해론이다. 알겠나?”
“알겠습니다!”
“자… 이런 이야기는 이쯤 하고 오늘 하루는 마음껏 즐기도록 하지. 아! 그리고 묶여있는 백제와 신라포로들도 결박을 풀어주고 고기와 술을 좀 주도록 해. 단석한과 돌석비 자네 밑에 있는 수하들한테도 말이야. 해론. 자네는 직접 나가서 신라와 백제 포로들의 포박을 풀어주도록 하게. 그래야 그들이 믿을 것이니 말이야.”
“예! 주인어른!”
그렇게 해론은 동현의 명령을 받고 잠시 방을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