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0화
나는 심호흡을 한 채로 호텔 주차장 앞에서 기다렸다.
꼭 1년 전에, 날 닮은 이와 만났던 바로 그곳이었다.
날 닮은 이는 같은 곳에서 반복해서 만나는 걸 참 좋아했다.
당시에는 배영웅 실장이 사용하는 볼보 차량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면, 이제는 내 자차인 붉은색 포르쉐 차량에 타고 있다는 차이는 있었지만, 그 외에는 1년 전과 똑같은 상황이었다.
“꿈만 같은 1년이었는데… 그게 이렇게 끝나나?”
나는 주머니에서 MP3를 꺼내 화면을 다시 확인해봤다.
메시지가 하나 왔다.
‘준비가 모두 끝났다. 1년 전의 그 호텔 주차장으로 와라.’
무슨 준비가 끝났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게 거절할 수 없는 초대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저녁 공연도 취소한 채로 호텔 주차장에 올 수밖에 없었다.
약속 시각인 저녁 8시 정각이 되자마자 쑥색 마티즈가 호텔 주차장에 들어왔다.
‘정말 시간 하나는 기가 막히게 지키는 녀석이네.’
마티즈에 타고 있던 날 닮은 이는 어설픈 정면 주차로 내 옆의 자리에 차를 댔다.
운전석의 창문이 내려왔고, 날 닮은 자가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내려.”
“뭐?”
“내리라고.”
“그, 그래.”
나는 무심결에 차에서 내렸다.
“어?”
나는 반복해서 눈을 떴다 감았다 했다.
내가 보고 있는 풍경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주변을 살펴봤다.
이곳은 호텔 주차장이 아니었다.
어느새 나는, 내가 처음 죽었던 그 가로등 뒤 골목길로 돌아와 있었다.
내가 방금 내렸던 포르쉐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내 앞에 서 있는 쑥색 마티즈만 그대로였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날 닮은 이가 나를 탐색하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너는 왜 네 목숨을 걸었지?”
“뭐?”
“우승한 다음에, 왜 네 목숨을 버렸냐고.”
“시간을 뒤바꾸고 싶다면. 모두 리셋하고 싶다면 목숨을 걸라며? 그래서 목숨을 걸었지. 혹시나 그렇게 되면 회귀할 수 있을까 싶어서.”
날 닮은 자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냥 죽기만 하고 끝나면 어쩌려고?”
“어차피 동생은 무조건 살리려고 했었어. 무엇보다 그 정도면 해볼 만한 도박이라 생각했어.”
“왜지?”
“그야 나는 회귀를 한 번 경험해 봤잖아?”
“……!”
날 닮은 이의 눈빛이 심하게 흔들렸다.
나는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내가 목숨을 건다면. 한 번 했던 회귀 뭐 그까짓 거 두 번 못 하겠어? 그런 생각을 했지. 오히려 내가 묻고 싶은데.”
“…뭐를?”
“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 아무것도 걸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네가 직접 말했잖아? 왜 나는 아무것도 잃지 않고 모든 걸 얻은 거야?”
내 물음에 날 닮은 이가 헛웃음을 지었다.
“모든 걸 얻어? 뭐야, 너 몰랐던 거야?”
“뭘?”
“어쩐지 너무 표정이 좋아 보이더라.”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 그러니까 뭘?”
“누가 네가 살았데? 넌 죽었어.”
“뭐라고?”
나는 고개를 내려 내 몸을 바라봤다.
내 몸이 분명 보였다.
“난 지금 살아 있잖아?”
날 닮은 이가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몰랐구나. 이건 꿈이야. 죽기 전에 네가 바랬던 것들이 계속해서 뇌에서 재생되고 있는 뭐 그런 상태야.”
이게 꿈이라고?
지난 1년간 내게 일어났던 모든 일들이?
그러고 보니, 좀 이상하긴 했다.
지난 1년간은 유독 모든 일이 너무 매끄럽게 해결됐다.
큰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맘 편하게 가수 활동만 할 수 있었다.
영어로 more money more problem이라는 말이 있다.
성공하면 문제도 많아진다는 것.
하지만 나는 세계 최고의 가수가 되었는데도 문제 하나 없이 너무 순탄했다.
‘하지만 이게 모두 개꿈이었다면… 말이 되지. 굳이 꿈에서까지 문제를 상상할 필요는 없으니까.’
저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나는 나를 한심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는 날 닮은 이에게 고개를 돌려 질문했다.
“그럼, 나는 어느 시점에 죽었던 거야?”
“우승한 바로 그때. 사인은 심장마비였어. 네 반응을 보니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아주 고통 없이 한 번에 간 모양이네.”
‘그때, 심장이 덜컥했던 그 느낌이 심장마비였던 건가. 그 이후의 모든 일은 꿈이고?’
일단 내가 죽었다고 생각하니 되려 머릿속이 가벼워졌다.
이미 죽었다는데, 더 이상 잃을 게 뭐가 있을까 싶었으니까.
“그럼 이제 어떻게 되지? 지옥이나 천국에 떨어지나? 아니면 그 전에 재판이라도 벌어지는 거야?”
내 예상이 틀렸다는 듯 날 닮은 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그런 거 없어.”
“그럼 뭐지? 이 꿈속에서 영원히 사는 건가? 그것도 나쁘지 않은데?”
이 삶이 거짓이라고 해도, 이 꿈속에서 나는 내가 원하는 모든 걸 이뤘다.
거짓 속에서 파묻혀 사는 것도 의외로 나쁘지 않아 보였다.
날 닮은 이가 내게 말로 쏘아붙였다.
“멍청아. 당연히 다시 시작하는 거지.”
“뭐?”
“상태바 못 봤어? 준비가 끝났잖아. 그래서 널 부른 거고.”
회귀 준비가 끝났다고?
이제 다시 처음부터 하면 된다고?
“그러면….”
“축하해. 네가 이겼어. 권노을. 이제 돌려보내 줄게. 자, 눈 감어.”
일단 나는 내 목적을 이뤘다.
하지만 아직, 내게는 풀리지 않았던 의문이 있었다.
“잠깐, 뭔가 이상한데?”
“뭐가?”
“나는 이미 한 번 회귀했잖아? 그때는 대체 누가 희생했던 거야? 이상하잖아. 그때 나는 아무것도 잃은 게 없어. 첫 번째 회귀 때는 대체 누가 목숨을 걸었던 거지?”
“질문이 잘못됐어 권노을.”
“뭐?”
날 닮은 이가 내게 손짓했다.
“해야 할 질문은 ‘누가 나 대신 죽었느냐’가 아냐. 진짜 질문은 ‘네 앞에 있는 인물은 누구냐’지.”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래. 너는 누구지?”
그러고 보니, 날 닮은 이의 모습이 어딘가 낯이 익었다.
주름 하나 없는 젊은 모습이라서 몰라봤다.
상상 속에 주름을 추가해 보면, 그리고 약간 머리를 길렀다고 치고, 화장을 했다고 생각하면 내게 매우 익숙한 사람의 모습이 되었다.
“…엄마?”
고생만 하다 간 엄마의 젊은 시절과 똑 닮았다.
늘 가수로 성공하면서, 성공한 내 모습을 꼭 엄마가 봤으면 했는데, 그 엄마가 지금껏 바로 앞에 있었다니.
“…고맙다 권노을. 동생 대신 희생하기를 택해 줘서.”
* * *
나는 엄마 덕분에 회귀했다.
엄마는 죽기 직전, 자신의 목숨을 걸어서라도 아들에게 한 번 더 기회를 달라 빌었다고 했다.
당연히 말도 안 되는 미신이었다.
하지만 기적이 일어났다.
정말로 나는 회귀해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2년 뒤, 나는 내 목숨을 희생해서 또 한 번 회귀하기를 택했다.
심지어 이번에는 회귀한 시점이 달라졌다.
엄마가 죽지 않았던, 바로 그 시점으로 돌아가게 될 거라고 날 닮은 이는 말했다.
“네가 날 살린 거야 권노을. 예슬이만이 아니라.”
눈물을 참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왜 그런 소원을 빌었어? 차라리 한 번만 살려달라고 빌지. 굳이 그럴 필요 없었는데.”
“나는 노을이 너를 믿었으니까. 기회가 있다면, 너는 가능성을 펼칠 수 있을 것 같았어.”
“…….”
“네가 살찐 거, 내 탓이야. 내가 억지로 너 싫다는 데도 보약을 먹인 다음 갑자기 살이 찌기 시작했잖아? 기억나? 한약 부작용으로 이상한 희귀병이 걸리는 바람에.”
잊고 있던 기억이었다.
“엄마가 정말 미안해. 심지어 살 잘 찌는 체질을 물려준 거도 미안해.”
“아니야. 미안해하지 마.”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엄마가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도 엄마는 기뻐. 네가 동생을 위해 목숨을 걸어 줘서. 그것만으로도 회귀할 가치가 있었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아픈 동생을 떠올리며 슬퍼할 때마다 엄마가 기뻐했던 거구나.’
아마 엄마는 내가 목숨을 걸지 않았어도 뭔가 ‘해답’을 준비했을 것이다.
그게 여지껏 엄마가 해왔던 일이니까.
하지만 나는 그렇게 두지 않을 것이었다.
이번에는, 내가 가족을 위해 희생할 거니까.
“자, 이제 돌아가자. 내가 죽기 전으로.”
“…고마워.”
“됐어.”
“아니, 진심이야.”
회귀하지 않았으면 대체 나는 어떻게 됐을까?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닌 형편없는 존재로 영원히 남지 않았을까?
나는 나도 모르는 새에, 누군가의 희생을 통해 다시 날아오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다음 생에서나 나한테 잘해줘. 알았지?”
“그래.”
엄마가 눈을 감았다.
상당히 밝은 빛이 나를 감쌌다.
“윽!”
이전 회귀 때처럼 뭔가 온몸이 불타는 느낌이 들었다.
* * *
그렇게 나는 두 번째 회귀를 했다.
엄마가 죽지 않았던, 초등학교 6학년 시점으로 돌아왔다.
다만, MP3는 없었다.
엄마 또한 확인해보니 회귀 전 기억이 없었다.
정말 그런 건지, 내가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거짓말을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이제는 오로지 나 혼자서 내 힘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했다.
이전 생보다 더 빨리 두각을 나타낼 수도 있었지만,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다이어트하는 정도로 만족하고, 슈퍼스타 T 시작 시점을 기다렸다.
이후에는 이전 생과 똑같은 절차로 모든 일을 밟아 나갔다.
이번에는 놀랍게도, 이전 생과 모든 일이 똑같이 착착 진행되었다.
나는 슈퍼스타 T에서 우승했고, 멤버를 모아 비원더를 결성했다.
비원더는 이전 생과 마찬가지로 글로벌 비전에 참여하고, 또 우승했다.
그리고 우승 후 다시 1년이 지났다.
* * *
그래미 어워즈 시상식.
비원더 3인이 긴장되는 표정으로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상 발표자는 무려 우리의 목표이자 우상인 스티비 원더였다.
‘우리가 가장 유력한 후보긴 하지만, 그래도 안심할 순 없어.’
특히 최근에 컴백한 바로네스 메이어스가 위협적인 경쟁자였다.
스티비 원더가 결과가 담긴 봉투를 뜯었다.
재호가 내게 속삭였다.
‘누가 이길 것 같냐?’
‘글쎄?’
‘너는 무슨 점쟁이처럼 다 척척 맞히잖냐.’
이번 생에서 재호와 환희는 나를 무슨 족집게 점쟁이처럼 대했다.
그야 그럴 만도 했다.
이번 생에서는 내 예상은 아예 백발백중이었으니까.
두 번째 회귀니만큼 더 좋은 선택을 위해 노력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의도적으로 그런 선택을 배제했다.
오로지 첫 번째 회귀 때와 똑같은 삶을 사는 데 집중했다.
최대한 변수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이전 생에서 나는 과거를 마구 바꾸었다.
어디에서 문제가 생겼는지는 모르지만, 그 나비효과로 인해 나는 동생을 잃을 뻔했다.
이번 생에는 그런 변수를 줄이기 위해 아무런 변화를 주지 않았다.
그저 동생과 엄마의 건강검진 스케줄만 철저하게 지킬 뿐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의 마지막 1년은 이전과는 달랐다.
현실은 확실히 꿈처럼 아름답지 않았다.
최고의 가수가 된 이후에도, 하루가 멀다 하고 사고가 터졌다.
주환희는 열애설이 터졌다.
열애설 상대는 앙숙이던 외국인 연예인 젤다였다.
다행히 둘은 정말로 사귀지 않았기에, 간신히 잘 무마할 수 있었다.
하지만 쉽게 커버가 안 되는 문제도 터져 나왔다.
재호의 형은 도박으로 큰 빚을 졌다.
미도리는 기업 총수였던 아버지가 급사하고, 집안 분쟁에 휘말렸다.
현실은 꿈과는 달리 문제투성이였다.
하지만 그렇기에 문제를 해결하는 재미도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역시나 달콤했다.
스티비 원더가 마이크를 잡았다.
“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레코드 수상자는! 비! 원! 더의 Let's Sing!”
“아!!!”
나를 포함해 멤버들 모두가 탄성을 질렀다.
심지어, 빌보드 차트 1위를 했을 때도 쿨한 표정을 유지했던 천채왕마저 힘이 쭉 빠진 듯 다리를 휘청거리며 일어났다.
올해의 레코즈는 가수가 아니라, 프로듀서가 대상이었다.
천채왕 대표가 수상자로 나섰다.
그는 수상 소감에서 모든 공을 우리에게 돌렸다.
“이 모든 영광을 내 보물덩이! 비원더에 바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는 큰 박수와 미소로 화답했다.
* * *
수상이 끝나자마자 나는 대기실로 향했다.
누구보다 소중한, 내 가족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빠!!! 대박! 올해의 레코즈라고??? 이러다 3개 부분 다 받는 거 아냐?”
호들갑 떠는 동생에게 나는 손사래를 쳤다.
“아직 몰라. 올해의 앨범은 바로네스 메이어스가 더 유력해.”
“에이~ 참.”
가만히 지켜보던 엄마가 툭 입을 열었다.
“옷이 왜 그래?”
“옷이요?”
“손님들이 이렇게 많이 보고 있는데. 단정하게 옷 입어야지! 찢어진 바지가 뭐냐?”
“아니 스타일리스트가 골라준 거라고!”
…회귀 전이나 후나 엄마는 다를 바 없었다.
늘 내 패션을 트집 잡는 거 하며, 어떻게든 복 달아난다며 나한테 음식을 먹이려는 거 하며.
내가 알던 엄마였다.
‘…게다가 그렇게 살 좀 빼라고 해도 살도 안 빼고 말이야.’
나도 모르게 잔소리가 나왔다.
“그러는 엄마는. 건강 챙겨. 어째 그래미 상 수상하는 것보다 엄마 다이어트하라 설득하는 게 더 어려운 거 같은데?”
“뭐 인마? 내가 어쩌다 이렇게 쪘는데! 니들 뒷바라지하다가 이렇게 된 거 아냐! 내가 힘들게 다 키워 놨더니만 이제 와서 어쩌고 어째?”
“그게 다이어트 안 하는 거랑 무슨 상관이… 으악!”
엄마에게 등짝 스매싱을 당했다.
하지만 왠지 내 입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평생 나는 세상을 원망했다.
가진 것이 없어서, 그리고 주변 환경이 나를 도와주지 않아서 내 꿈을 펼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적처럼 내게 또 한 번의 기회가 주어졌다.
누군가의 희생을 통해서, 회귀를 하게 된 것이다.
덕분에 나는 내 꿈을 펼칠 수 있었다.
그렇다고 고생이 끝난 건 아니다.
배영웅 실장이 굳은 표정으로 내게 다가왔다.
“저희, 뮤직비디오 문제가 터졌어요.”
“무슨 이슈인데요?”
“주요 장면을 표절했다고 유럽 뮤직비디오 감독이 항의했는데요. 실상은….”
나는 배영웅 실장의 브리핑을 듣다 말고 짧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내, 미소를 지었다.
회귀 전 내가 알던 인생은 이제 끝났다.
앞으로 펼쳐질 미래를 나는 모른다.
하지만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 보면 반드시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은 경험을 통해서 알았다.
설사 세계 최고의 가수, 가왕이 됐다고 해도 문제는 계속해서 일어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게 해피엔딩이 아니란 것은 아니다.
이번에는 내가 희생해서 주변의 삶을 지킬 테니까.
내가 받았던 것처럼.
“…실장님.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요?”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