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왕-279화 (279/280)

제279화

승리의 그 순간, 권노을은 결단을 내렸다.

지금이 선택을 해야 할 시점이었다.

바로 나는 가차 없이 주머니 속의 MP3에 손을 뻗어 1번과 3번을 동시에 눌렀다.

그리고 잽싸게 MP3를 주머니에 다시 넣었다.

내 목숨을 버리고, 그 목숨을 담보로 2년 전으로 돌아가겠다는 선택지였다.

‘시간을 돌리는 데 목숨값이 필요해? 그럼 그 목숨을 내가 걸면 되잖아!’

‘목숨값 정도는 있어야 한다.’라는 말은 거꾸로 말하면 목숨을 걸면 시간을 돌리는 일도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눈을 감은 채로 크게 심호흡했다.

2년 전 나는 어떤 모습이었더라?

회귀한 후, 눈을 떠보니 방송국 화장실 안이었다.

그리고 내 인생을 바꿨던 오디션, ‘슈퍼스타 T’를 다시 참여해 우승했었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다면, 또 그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예전 경험을 살려 더 좋은 선택을 하게 될까?

아니면 다시 예전의 실수를 반복할까?

‘아니, 근데 뭐 이리 시끄러워?’

소리에 깜짝 놀라 심장이 덜컥했다.

주변의 웅성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뭐해 노엘! 승리 소감 한마디 해줘!”

말론의 마이크가 나를 향하고 있었다.

시간의 흐름은… 바뀌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나는 말을 더듬으며 우승 소감을 말했다.

“우선… 팬 분들께 감사합니다. 그리고 함께 무대를 준비했던 모든 분들과….”

혹시나 사람을 빼먹을까 봐 조심스레 인터뷰로 수상 소감을 말하면서도 내 머릿속은 다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아무 대가도 치르지 않았어. 그렇다는 건, 혹시 동생이 이미 죽은 건 아닌가?’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스쳤다.

나는 수상 소감을 간신히 마무리했다.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말론이 유쾌한 미소를 지으며 마이크를 재호에게 넘겼다.

“좋아 좋아! 미스터 원! 언제나처럼 멋진 편곡이었어. 어때 기분이?”

재호와 말론이 인터뷰하는 동안, 박찬용 드러머가 내 어깨를 꽉 붙잡았다.

“해냈네! 해냈어! 글로벌 비전 우승이라니!”

다른 밴드 멤버들도 나를 얼싸안으며 축하했다.

너무나 고마운 일이었지만 나는 한시라도 빨리 문루아 선배에게 통화해서 내 동생의 상태를 알아보고 싶었다.

나는 분명 MP3 버튼을 눌러 ‘선택’을 했다.

그리고 ‘날 닮은 이’의 말에 따르면 내 선택 데드라인은 오늘 밤이었다.

아직 시간에는 여유가 있었다.

그런데도 점점 나는 불안해졌다.

그사이, 말론은 이번에는 환희를 인터뷰 중이었다.

“미스터 주! 3천일의 연습생 기간을 거쳤다고 알고 있는데. 불과 데뷔 700일 만에 세계 정상에 섰어. 어때?”

환희가 오열했다.

“우와아아아앙!”

아무래도 말론이 말한 ‘3천일의 연습생 기간’이란 말에 온갖 감정이 스친 듯했다.

“괜찮아 괜찮아 미스터 주!”

말론이 환희를 위로했다.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야 니는 3천일이냐? 나는 40년의 인생이 연습이었다!’

게다가, 40년을 연습이 끝도 아니었다.

기껏 회귀해서 겨우 2년간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았더니, 다시 회귀해야 할 판이었다.

왠지 이번에는 회귀가 제대로 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수상 소감을 말한 이후, 클로징과 함께 우승자 포토 타임이 이어졌다.

계속해서 주머니 안의 핸드폰이 울리는 것이 느껴졌다.

‘왜 이렇게 전화가 오지? 설마… 그만큼 다급한 소식이라면….”

나는 고개를 저었다.

굳이 최악의 경우를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빨리 통화해서 동생 소식을 확인하고 싶었다.

결승 인터뷰가 빨리 끝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을 텐데. 이렇게 빨리 끝내기를 바라게 되다니 참.’

나는 방송이 끝나자마자 대기실에서 서둘러 문루아 선배에게 전화했다.

뚜뚜~ 뚜뚜~

문루아 선배가 다행히 늦지 않게 전화를 받았다.

-노을 군!

“선배, 무슨 일이에요? 전화 주셨죠? 설마….”

-그 설마예요.

설마?

내가 늦었단 말인가?

-예슬이가… 완치됐데요.

“네?”

-암세포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요. 기적이래요. 마침 암세포 검사를 다시 해봤는데요. 아무리 찾아봐도 암세포가 몸 어디에도 없데요. 의사 선생님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고 당혹스러워하는 중이세요. 하긴, 애초에 암 발병도 너무 기적처럼 빠르게 일어났으니까요. 회복 또한 기적 같아도 이상하진 않죠. 애초에 암 판정이 실수였나 확인해보고 있는 판이에요.

“…완치요? 살았다고요?”

-그렇다니까요! 그냥 솔직하게 좋아해도 돼요. 아, 그리고 우승 축하해요. 정말 멋졌어요.

나는 잠시 핸드폰에서 입을 땐 채로, 크게 포효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

-푸하하하! 뭐예요 정말!

문루아 선배의 웃음소리가 핸드폰 너머로 들렸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지금 나는 세상을 모두 얻은 기분이었으니까.

행복한 기분으로 문루아 선배와 통화를 마무리했다.

동생은 이제 혹시 모를 검사만 마무리하면 바로 퇴원 수속을 받을 수 있었다.

또 나는 세계 최대의 음악 대회 ‘글로벌 비전’의 우승자가 되었다.

이제부터는 탄탄대로를 걷기만 하면 됐다.

“하하… 하하… 이게… 되네? 근데 왜 됐지?”

분명 나는 아무것도 잃지 않았다.

‘날 닮은 이’는 아무것도 잃지 않고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다고 경고했었다.

그런데 정작 나는,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지 않나?

의문에 빠져 있을 즈음, MP3 화면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너무 눈이 부셔서 MP3를 쳐다보기가 힘들 정도였다.

‘뭐야?’

MP3 화면에는 ‘로딩 중’이라는 말이 덜렁 떠 있었다.

그 아래에는 상태 바가 보였다.

상태 바 위에는 0%라는 숫자가 표시되어 있었다.

‘0%…? 이게 100%가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난다는 거지?’

* * *

이후 1년간, 나는 꿈만 같은 나날을 보냈다.

12월. 5%.

글로벌 비전에서 우승하자마자 비원더의 소속사 TYB는 회사의 모든 역량을 총집결해서 12월에 미국 1집 음반을 냈다.

팝 시장은 12월이 가장 큰 특수였기 때문이었다.

말도 안 되는 일정이었지만, 대회를 진행하며 모은 곡을 전부 소진해서 간신히 들을 만한 앨범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1월. 10%.

비원더 미국 데뷔 앨범은 순식간에 빌보드 메인차트 1위를 석권했다.

물론 한국인 최초였다.

심지어 우리의 앨범 타이틀곡 ‘Let's Sing’은 무려 3개월간 빌보드 차트 1위에 장기 집권했다.

이스트 웨이브가 이렇게 장난스레 항의할 정도였다.

[오 노! 노엘! 너 때문에 내 곡은 3개월째 2위잖아? 이것도 네가 부른 노래라고. 좀 봐줘!]

내가 피처링했던 이스트 웨이브의 신곡은 비원더의 데뷔 싱글 덕에 3개월 넘게 2위만 찍다가 4월에야 간신히 빌보드 1위에 안착했다.

나는 두 곡을 합쳐, 무려 4개월간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한 가수가 되었다.

물론 동양인 최초 기록이었다.

‘엄마도 살아 있어서 이렇게 성공한 내 모습을 봤으면 좋았을 텐데.’

5월. 40%.

비원더와 하우스 밴드는 함께 월드 투어를 시작했다.

미국 5개 주요 도시는 물론 호주, 캐나다, 일본, 구룡도, 싱가포르, 유럽, 두바이까지 방문해서 콘서트를 소화했다.

놀랍게도 가는 곳마다 매진 열풍이었다.

너무 암표가 많아 어쩔 수 없이 1일로 계획한 콘서트를 2~3일 늘리는 경우도 왕왕 발생할 정도의 인기였다.

8월. 65%

월드투어의 마지막은 우리의 뿌리인 한국에서 진행했다.

잠실올림픽주경기장에서 단독 콘서트를 진행한 것이다.

한국 팬들을 보는 것은 1년 만이었다.

나는 감격에 차서 팬들에게 말했다.

“무려 1년 만에 한국에 왔습니다! 그동안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정말 목이 터져라 노래하겠습니다!”

비원더 팬덤은 뜨겁게 1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우리에게 화답했다.

그리고 12월, 95%.

조금씩 내 MP3 화면의 로딩 화면이 100%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 * *

서울 TYB 본사에 위치한 천채왕 프로듀서의 회의실.

천채왕 프로듀서의 업무량이 갑자기 두 배로 늘었다.

물론 갑자기 월드 스타가 된 비원더 덕분이었다.

눈앞의 서류를 확인한 천채왕 프로듀서의 눈이 툭 튀어나왔다.

“코카콜라, 벤츠, 애플. 이런 회사들에게서 광고 제의가 다 들어오네?”

김나리 사원이 건조하게 말했다.

“지금 세계에서 가장 구글 트렌드 순위가 높은 가수입니다. 어디서 광고 제의가 와도 이상하지 않죠.”

“한국 가수가 코카콜라 광고? 진짜 이런 날이 오긴 오는구나.”

배영웅 매니저도 무심하게 봉투를 꺼내 천채왕 대표의 집무실 책상 위에 두었다.

“저도 하나 서류 받았습니다.”

천채왕이 봉투를 집어 들더니 내용을 확인했다.

“이건 또 뭐야? 미국… 대통령 초청장이라고? 뭐야?”

배영웅 매니저가 피식 웃어 보였다.

“대통령께서 한번 보자고 하시네요. 환경 운동 관련해서 비원더의 도움이 필요하시다면서요”

“…미쳤다 진짜.”

천채왕이 눈을 굴렸다.

월드 스타, 월드 스타 했는데 비원더는 진짜 제대로 월드 스타가 됐다.

빌보드 차트 1위 곡을 만든 것은 물론, 10위권에 무려 4개의 곡을 올렸다.

미국 에이전트를 고용해서 전 세계 일정을 조율했지만, 그럼에도 큰 결정은 소속사에서 해주어야 했다.

하지만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미국 대통령과 만나 볼까?’ 같은 고민을 대체 어떤 한국 가수가 해봤단 말인가.

할리우드 영화 출연 제의부터 리얼리티쇼 촬영 요청, 광고 문의까지, 쏟아지는 비원더 관련 문의와 제안에 소속사 대표인 천채왕마저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천채왕은 문득, 처음 권노을을 발견했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 자신의 소속 가수인 베이비는 권노을을 이렇게 소개했다.

[권노을, 그 참가자는 넘버원이 될 겁니다.]

설마, 그 넘버원이 세계 넘버원이란 뜻일 줄이야.

고개를 가로저은 천채왕은 소파에 쓰러지듯 앉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고작 소속사 대표인 나도 이렇게 즐거운데, 대체 권노을은 얼마나 꿈만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을까?’

* * *

글로벌 비전 결승이 끝나고 1년이 지났을 즈음에야 나는 다시 뉴욕으로 돌아왔다.

미국 활동이 너무 많아져서, 미국에서도 아파트를 하나 구하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동생도 방학을 맞아 함께 잠시 뉴욕의 아파트로 이사했다.

동생이 아파트 거실 창문으로 보이는 뉴욕 야경을 바라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엄청~ 전망 좋네. 펜트하우스다워. 쩐다 진짜!”

동생을 보며 나는 피식 웃었다.

‘정말 다행이다. 다행이야.’

동생은 순식간에 건강을 되찾았다.

지금은 마치 언제 아팠냐는 듯, 평소와 같은 모습이었다.

내가 동생에게 말했다.

“너도 이번에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공연한다며?”

“내가 하는 게 아니라 팀 전체가 하는 거지이~. 근데 맞아!”

“그때는 여기서 묵으면 되겠네 그럼.”

“알았어~. 친구 불러도 돼?”

“남자냐?”

내 장난스러운 말을 들은 동생의 이마에 핏발이 섰다.

“아니거든? 루아 언니! 루아 언니!”

“루아 선배? 루아 선배야 호텔값은 일도 아닐 텐데….”

“언니도 이 집 와보고 싶어 해.”

“왜? 내 집이기도 하니까 불편하잖아.”

“…으이구 이 화상아! 그러니까 와보고 싶은 거지. 됐어! 그건 그렇고, 오늘 저녁은 어디 갈 거야?”

“오늘 재즈바 가자고 했잖아. ‘더 재즈 갤러리’에서 오늘 소닉 독하고 미도리 공연 있어.”

“아! 맞어!”

비원더의 성공을 계기로, 하우스 밴드 멤버들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미도리는 솔로 재즈 기타 앨범을 내며 위세를 떨쳤다.

소닉 독은 이전 생에서 내가 기억했던 것보다 조금 빨리 프로듀서로 활동을 시작했다.

박찬용 선배와 밴드 마스터 또한 팝 가수들과 작업을 시작했다고 들었다.

심지어 그중 소닉 독은 우리가 내일 참여할 예정인, 그래미 어워즈에서 우리와 함께 본상 후보에 올랐다.

우리 덕분에 음악계의 재능들이 자기 실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뿌듯했다.

동생이 허겁지겁 냉장고에서 채소를 꺼내 샐러드를 만들며 내게 말했다.

“재즈바 공연 전까지 가려면 빨리 먹어야겠다. 그래도 오늘은 너무 늦게까지 있지는 말자. 알지? 내일….”

“알지 알지.”

내일은 세계 최고의 음악 시상식인 그래미 어워즈가 있는 날이다.

비원더는 ‘올해의 신인’과 ‘올해의 노래’ 그리고 ‘올해의 앨범’ 무려 4개의 본상 중 3개 부분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사실상 프로듀서에게 시상하는 ‘올해의 레코즈’를 제외하고 모든 본상에 노미네이트 된 셈이었다.

‘다 받긴 어렵겠지만… 하나라도 받으면 정말 역사에 남지 않을까? 당연히 동양 가수 역대 최초일 거고.’

바깥에 나가려던 찰나, MP3 화면에 무언가가 보였다.

입술이 절로 꽉 다물어지는 내용이 보였다.

“…….”

동생이 나를 멀뚱멀뚱 쳐다봤다.

“오빠, 뭐 해?”

“…예슬아. 미안해. 재즈바는 배영웅 실장님이랑 둘이 가라. 내가 통화해줄게.”

“왜?”

“…잊고 있던 약속이 있었어.”

내 MP3 화면의 로딩 화면 수치가 드디어, 100%를 가리키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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