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8화
연습실에 들어가 보니 하우스 밴드와 멤버들이 격정적으로 무대를 연습하고 있었다.
자세히 들어보니 내 파트는 비워둔 채로 진행하고 있었다.
나는 가만히 문 앞에 선 채로 합주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굉장히 편곡에 신경 많이 썼네.’
무대 구성이 굉장히 탄탄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가스펠 합창단 파트가 놀라웠다.
무시무시한 실력의 콰이어가 노래로 불을 뿜는 소리가 들렸다.
물론 지금 연습실에 콰이어는 없었다.
그저 녹음물로만 함께할 뿐인데도, 콰이어의 실력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딱 하나 단점이 있다면 나의 부재였다.
역시나 메인 보컬이 없으니 노래가 허전했다.
비원더의 킬링 포인트는 대개 메인 보컬인 내 몫이었으니까.
연주가 끝나자 나는 조심스레 연습실 문을 열었다.
“노을아…!”
연습실 안의 모두의 시선이 내게 집중됐다.
모두가 연민이 가득 담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애써 웃어 보였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이제 연습해야죠. 가사랑 곡은 다 외워 왔습니다.”
연습실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이후, 밴드 마스터의 피아노 연주를 시작으로 연습이 재개됐다.
다시 들어봐도 훌륭한 무대였다.
그래도 우려되는 점이 있었다.
뭔가 사이즈로만 밀어붙이려는 느낌이 든달까?
아무래도 나를 걱정해서, 비원더의 노래 파트를 평탄한 수준으로 만들었다.
그 대신 편곡의 규모를 키웠다.
노래가 끝난 후, 내가 재호에게 물었다.
“이게 최선이냐?”
“…지금 상황에선 최선이지.”
“무슨 말이야?”
재호는 입을 꾹 다물었다.
‘권노을 네가 노래에 집중하지 못하는 지금 상황에서는 이게 최선’이라는 뜻이겠지.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건 최선이 아니야. 일단 내가 최선을 다할 만큼 난이도 있게 짜주지도 않았잖아?”
재호가 미간을 찌푸렸다.
“야 권노을. 그건 좀.”
환희 또한 내 어깨를 잡고 나를 설득하려 했다.
“형. 그렇게까지 노력할 필요 없어요.”
나는 둘을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글로벌 비전 마지막 무대인데. 내 최고 모습을 보여줘야지… 안 그래?”
연습실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내가 슬쩍, 재호에게 말을 걸었다.
“이렇게 해보면 어때?”
* * *
드디어 글로벌 비전 결승 날이 밝았다.
문루아는 새벽같이 일어났다.
글로벌 비전 결승은 뉴욕시간으로 저녁 8시에 시작했다.
한국에서 결승을 생방송으로 시청하려면 아침 일찍 일어나야 했다.
‘이 정도 시간이면 예슬이는 일어나기 어려울 거 같은데.’
일단 권노을의 동생, 권예슬에게 슬쩍 문자를 보내봤다.
그 순간, 권예슬이 문루아에게 전화했다.
문루아는 크게 심호흡을 한 후 전화를 받았다.
“깼어?”
-이미 일어났지 언니. 오늘은 무균실에서 나 혼자 방송 보게 간호사 언니가 배려해줬어.
문루아가 한숨을 쉬었다.
권예슬은 이미 문루아보다도 먼저 일어나서 오빠의 결승 무대를 시청하기 위해 대기 중이었다.
문루아 또한, 권예슬과 통화를 끊지 않은 채로 TV를 켰다.
글로벌 비전의 진행자인 말론이 호들갑을 떨면서 무대를 달구는 모습이 보였다.
“드디어! 지상 최대의 결승전이!!! 시작되는 이곳!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드은!!!”
이전에 준결승을 워낙 큰 장소인 런던의 윔블던에서 진행해서 그렇지, 매디슨 스퀘어 가든 또한 2만 명이 넘는 관중을 모을 수 있는 거대한 곳이었다.
게다가 이곳은 세계 최대의 도시인 뉴욕의 상징과도 같은 장소였다.
팝스타만이 설 수 있는 무대라는 뜻이다.
‘나도 한 번쯤 저기서 권노을이 공연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데. 그런 날이 올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그간 글로벌 비전에서 비원더가 거쳤던 여정이 편집되어 방송됐다.
세계 최고의 팝스타인 바로네스 메이어스부터 아시아 최대 밴드 베이즈, 팝의 본고장 미국의 걸그룹인 루비아이까지, 수많은 강자와 싸워 이겨나간 모습이 화면에 나왔다.
다음 순간, 관중석에 앉아있는 한 소녀가 화면에 등장했다.
대학생 나이쯤 되어 보이는 흑인 소녀가 훌쩍거리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노엘의 시스터가 아프다며? 노엘은 여지까지 우리에게 이렇게 많은 힘을 줬는데. 우리는 노엘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다는 게 너무 안타까워. 꼭 오늘 멋진 노래를 불렀으면 좋겠고. 시스터도 완치하길 기도할게!”
문루아도 백혈병으로 투병 중인 권예슬을 생각하니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손수건으로 눈가를 정리하는 동안, 어느새 방송은 메이를 소개하는 영상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관중석을 얼핏 확인해보니, 절반 이상의 인파가 메이의 팬으로 보였다.
중국어로 된 메이를 응원하는 간판이 메이를 응원하는 사이드의 관중석을 뒤덮고 있었다.
이거, 왠지 생각보다는 힘든 싸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윽고, 메이가 노래를 시작했다.
메이는 자신이 처음 클래식 음악을 시작한 이유인 오페라 ‘토스카’에 수록된 유명 아리아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를 불렀다.
마리아 칼라스가 불러서 유명해졌던 곡이었다.
이건, 매우 안 좋은 선곡이었다.
아무리 클래식 보컬이라고 해도, 결승에서는 최소한 자신을 위한 창작곡을 부르는 것이 글로벌 비전 대회의 관례다.
게다가 클래식을 아는 사람이라면 모두 마리아 칼라스 버전의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를 기억하고 있었다.
이런 세계적인 가수가 이미 완벽하게 불러버린 노래를 오디션 프로에서 선곡하는 것은 실수다.
제아무리 잘 불러도 본전을 치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메이의 노래는 문루아의 예상을 아득히 능가했다.
[나의 노래도 별들이 빛나는 하늘 높이 더욱 아름다운 미소로 바쳤건만
그런데 내가 고통받을 때
어찌하여, 주여
왜 저를 이렇게 내버려 두시나요?]
메이는 노래의 절정인 마지막 애드립 부분에서 마리아 칼라스도 울고 갈 어마어마한 고음 테크닉을 보여주었다.
TV 화면으로만 듣는 문루아마저 팔에 소름이 돋는 느낌이 들게 만드는 강렬한 노래였다.
‘게다가 하필, 가사는 예슬이를 떠오르게 만들고 말이지.’
여러모로 쓴웃음이 나왔다.
메이의 노래가 끝났으니 다음은 비원더의 차례였다.
비원더 3인이 말쑥한 정장 차림으로 무대 한가운데에 걸어 들어왔다.
“어?”
문루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비원더의 하우스 밴드 멤버들 뒤로 끝도 없이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걸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대형을 만들어 비원더 뒤에 섰다.
아무래도 이번 노래에서 코러스를 담당하는 콰이어인 모양이었다.
전주가 시작되자마자 가스펠 콰이어의 화음이 은은하게 무대에 울려 퍼졌다.
마음까지 포근해지는 소리였다.
원재호와 주환희가 이에 맞춰 부드럽게 노래를 시작했다.
차분하게 노래하면서도 감미로운 감성을 놓치지 않는 원재호의 저음이 사람들의 귀를 자극했다.
이후 악센트를 강조한 특유의 창법으로 그루브와 리듬감을 노래에 더하는 주환희의 브릿지 파트가 이어졌다.
매번 들어왔던 전형적인 비원더의 음악이었다.
이윽고 후렴 파트에서는 권노을이 무대 중앙에 우뚝 서서 노래했다.
[내가 노래를 시작한 이유.
사랑을 전하기 위해서
너에게 전하기 위해서
지금 듣고 있어?]
그야말로 태산처럼 거대한 성량과 호흡이 느껴지는 노래였다.
이제는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보컬이 된 권노을다웠다.
2절이 되자 밴드가 1절보다 훨씬 화려하게 연주하기 시작했다.
콰이어 또한 화음을 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본격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며 노래 전체에 관여했다.
노래 자체는 평소의 비원더의 노래보다 훨씬 더 풍성해졌다.
스케일이 커진 덕분이었다.
하지만 문루아는 뭔가 지금 비원더의 노래에 아쉬움이 느껴졌다.
비원더는 3인의 절묘한 조화로 승부했던 팀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체적인 편곡의 덩치는 커졌지만 대신 비원더 특유의 아기자기한 맛은 없어졌다.
분명 밴드는 평소보다 화려하게 연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게스트로 등장한 가스펠 콰이어가 곡에 무게감을 더해준 것도 사실이었다.
심지어 비원더 3인도 평소처럼 단단하게 노래했다.
하지만 뭔가 합이 예전만큼 주효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문루아가 보기에, 이번 결승 무대는 평소 비원더의 무대보다 낮은 평가를 받을 만한 무대였다.
‘아쉬운데.’
그때였다.
원재호와 주환희가 차례차례 릴레이로 솔로를 부르더니만, 그래도 권노을에게 노래를 넘겼다.
그리고 권노을이 노래를 부르는 순간, 밴드 연주와 가스펠 콰이어가 모두 숨을 죽였다.
침묵 상태였다.
반주도 없는 상황에서 권노을이 어마어마한 고음을 뿜어냈다.
[사랑을 전하겠어.
설사 내가 불타 없어진다 해도.
결국 언젠가는 사라져야 했어
너에게 전하겠어!]
마지막에 권노을은 한 번 더 음을 올렸다.
그 순간 밴드도 연주를 다시 시작했다.
가스펠 콰이어 또한 허밍으로 무게감을 더했다.
보통 노래에서 이 부분은 일종의 ‘간주’였다.
노래와 노래 사이에 악기를 연주하는 부분 말이다.
하지만 일반 간주와는 달리, 이번 무대에서 권노을은 간주 때에도 화려한 고음 애드립을 넣었다.
그야말로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모든 것을 다 쏟아내겠다는 권노을의 의지가 느껴졌다.
마지막 후렴에서는 3인 멤버는 물론, 가스펠 콰이어까지 노래에 가담했다.
[내가 노래를 시작한 이유.
사랑을 전하기 위해서
너에게 전하기 위해서
같이 부르지 않을래?
이 노래.
이 노래!]
노래가 끝났다.
문루아는 심호흡을 크게 하며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정말 의외의 무대였어.’
사실, 문루아는 이번에야말로 비원더 특유의 서정적인 발라드가 나올 거라 생각했다.
아무래도 권노을의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슬픈 선율의 노래가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발라드는 비원더가 가장 잘하는 음악이기도 했다.
하지만 비원더는 결국 마지막 무대에 새로운 장르를 도전했다.
노래의 끝으로 가면 갈수록 점점 더 에너지가 폭발한, 춤판에 가까운 노래였다.
이렇게 슬픈 상황에서도, 어떻게 권노을은 저렇게 열정적으로 노래할 수 있었을까.
그때였다.
핸드폰을 타고 권예슬이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훌쩍…훌쩍….
문루아는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 입술을 꽉 깨물었다.
‘꼭, 비원더가 이겼으면 좋겠다!’
일단 결승 투표 분위기는 백중세였다.
메이를 보기 위해 결집한 중국계 관중들은 메이에게 격정적인 환호를 보내 주었다.
하지만 이번 결승의 대미를 장식한 비원더의 무대 또한 관중의 반응이 뜨거웠다.
처음에 현장 인터뷰에 참여했던 비원더 팬이었던 흑인 여성이 펑펑 우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을 정도였다.
TV를 통해서 확인한 현장 상황만으로는 누가 유리하다 판단하기 어려웠다.
‘아마 심사위원들도 이번 무대에는 큰 점수 차를 주지 않겠지. 결국 시청자 투표가 승부야.’
하지만… 왠지 누가 이길지 알 것만 같았다.
그 순간, 진행자 말론이 무대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노엘! 멋진 무대였어. 개인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걸로 아는데. 우선 정말 안 됐고.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이렇게 멋진 무대를 했지?”
“이번 노래는 동생에게 바치는 노래였습니다. 동생까지 우울해지면 안 되니까요.”
“동생은 괜찮은 거지?”
권노을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오늘 일만 끝나면 바로 본격적인 간호에 들어갈 겁니다. 꼭 이겨낼 거니까 걱정 마세요.”
말론이 권노을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분위기를 띄웠다.
말론이 메이와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문루아는 계속해서 권노을의 표정을 살폈다.
권노을은 뭔가 삶을 통달한 듯,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단순히 동생이 걱정되는 표정조차 아니었다.
뭔가 큰 결단을 내린 표정이었다.
대체 뭘 하려고 저러는 걸까?
게다가, 권노을은 방송 중임에도 한 손을 주머니에 꽂고 있었다.
당연히 방송에서는 금기다.
‘권노을이 벌써 방송 경력이 몇 년인데, 저런 초보적인 실수를 할 리가 없는데? 대체 뭐지?’
그사이, 말론이 제작진이 전해준 봉투를 집었다.
“지금 내 손에는 글로벌 비전, 우승자가 누구인지, 그 결과가 들려 있어!”
말을 이어가면서 말론이 슬쩍 결승 결과가 담긴 봉투의 봉인을 뗐다.
“글로벌 비전… 올해 우승자는….”
통화음을 통해 권예슬의 목소리가 들렸다.
“제발, 제발, 제발!”
문루아도 성모 마리아에게 빌었다.
그 순간, 말론이 결과를 공표했다.
“비! 원! 더!”
문루아가 저도 모르게 탄식했다.
“와!”
핸드폰을 타고 권예슬이 통곡하는 소리도 들렸다.
“오빠! 오빠! 오빠아~~~ 오빠가 이겼어! 오빠가 세계 최고야.”
비원더 멤버들 또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주환희는 펄쩍펄쩍 무릎 높이까지 뛰면서 까불거리고 있었고, 원재호는 무릎을 꿇고 오열 중이었다.
심지어 밴드 멤버들까지 정신을 못 차리고 서로 얼싸안고 있을 정도니 말 다했다.
하지만 문루아는 자꾸 권노을에게 시선이 갔다.
권노을이 자꾸,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계 대회를 우승했건만, 이를 기뻐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엄청난 결심을 한 듯, 입술을 꽉 깨문 채로 무언가 행동하려 하고 있었다.
“노을 씨… 대체 뭐 하려는 거예요?”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