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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가왕-277화 (277/280)

제277화

새벽 시간에 나는 호텔 방을 나와 주차장으로 향했다.

‘날 닮은 이’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사실 미친 짓이었다.

한국에서 만났던 정체불명의 남자를, 미국 뉴욕에서 또다시 만난다?

도저히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왠지 지금은 그런 비정상적인 일이 현실이 되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애초에 내가 회귀했다는 사실이 가장 비정상적인 일이었으니까.

정확히 시간이 새벽 1시가 되자, 내가 배달했던 시절 사용했던 경차와 똑같이 생긴 쑥색 마티즈가 호텔 주차장으로 불쑥 들어왔다.

‘아니, 뉴욕에서 마티스를 볼 수는 있나? 나는 한 번도 못 본 거 같은데!’

내가 놀라고 있는 사이 쑥색 마티즈가 내가 타고 있던 볼보 차량 옆에 주차했다.

운전자석 창문이 내려오더니, 날 닮은 이가 얼굴을 삐죽 내밀었다.

“야. 내가 부르면 오는 콜택시 운전자냐? 왜 자꾸 부르는 거야.”

“그런 것치곤 상당히 빨리 왔는데. 연락한 지 하루 만에 미국으로 오다니.”

날 닮은 이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내가 너처럼 지리 같은 거에 구애받는 존재로 보이냐? 네놈 행동이 너무 황당해서 호기심 때문에 온 거야. 그건 그렇고 대체 옷은 왜 이따위로 입은 거야? 안색도 창백하고.”

‘이 인간, 엄마야? 왜 자꾸 이렇게 내 얼굴이랑 옷에 신경을 써.’

나는 날 닮은 이를 쏘아붙였다.

“내가 살면 동생이 죽는다는데, 그럼 안색이 좋을 리가 있겠어? 가장 기분 나빠질 상황을 줘 놓고 병 주고 약 주네?”

“그건 그렇군.”

왠지 그의 표정이 밝아 보였다.

나의 고통이 날 닮은 이의 행복인가 싶었지만, 그 정도가 아니었다.

진심으로 내 대답이 기쁜 모양이었다.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대체 이 자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하지만 일단 지금은 날 닮은 이를 간신히 만난 만큼 그와 협상을 빠르게 시작해야 하는 시점이었다.

“다른 걸 걸고 싶어.”

“뭐?”

“어차피 내 인생에 가장 소중한 무언가를 걸면 되는 거잖아? 그렇다면 내가 걸고 싶은 게 있어.”

“…….”

날 닮은 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로 침묵을 지켰다.

나는 이를 ‘긍정’으로 받아들였다.

“내게는 지금까지 겪었던 모든 과정이 무엇보다 소중했어. 그래, 내 가수 커리어보다도! 그 과정이 없어진다면 정말 허무할 거야. 내가 느끼기엔 죽는 거 수준일 거 같기도 하거든. 모든 과정을 없애고 처음으로 돌아오게 해주면 어때? 내가 회귀한 2년 전으로 말야.”

갑자기 그가 불쑥 내게 손을 뻗었다.

“으악…!”

어마어마한 중력이 나를 덮쳤다.

이걸 ‘가위눌린다’라고 표현하던가?

사실 이건 가위눌리는 정도가 아니었다.

코끼리가 나를 짓밟고 있는 듯한 위압적인 힘이 나를 짓눌렀다.

숨쉬기도 힘들 정도의 강도였다.

날 닮은 이는 신음조차 내지 못하는 나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이게 게임인 줄 알아? 리셋 버튼을 누른다고 새로 시작할 수 있게?”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이를 악물며 중력의 무게를 견뎠다.

잠시 후, 날 닮은 이가 손을 다시 거두자 중력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날 닮은 이도 심력을 제법 소모했는지, 숨을 헐떡거렸다.

간신히 숨을 고른 날 닮은 이가 말을 이어갔다.

“가능은 하다.”

“뭐?”

날 닮은 이가 언성을 높였다.

“가능은 하지만! 공짜로는 안 돼. 무언가 희생을 해야지. 그래, 누군가의 목숨이라도.”

“……!”

“애초에 너는 동생의 목숨을 희생할까? 아니면 네 목숨을 희생할까? 둘 중 선택을 고민하고 있던 것 아니었어? 그러니까 네가 안 된다는 거야. 목숨도 걸지 않고서, 그런 척하지. 아무것도 안 걸어도 인생을 리셋할 수 있다면 누구나 그렇게 하겠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고민에 빠졌다.

‘…잠깐, 내 인생은 실제로 리셋 됐잖아? 그럼 누가 희생했다는 건데?’

그날 닮은 이는 슬슬 떠나려는 눈치였다.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한 후, 날 닮은 이에게 제안했다.

“잠깐만. 이틀만 더 시간을 줘.”

“뭐라고? 너 진짜 보자 보자 하니까….”

그는 다시 손을 꺼내려 했다.

나는 재빠르게 말을 이어갔다.

“그 정도는 가능하잖아? 재호랑 환희 둘은 무슨 죄야?”

날 닮은 이가 입술을 깨물었다.

“생각해 봐. 이틀 전보다, 결승이 끝났을 때가 더 큰 판돈이야, 만약에 우승이라도 한다면. 내가 정점에 선 그 순간 죽는 게 더 비참하지 않을까?”

“그건 그래.”

“어?”

뜻밖에 날 닮은 자가 순순히 내 말에 동의했다.

내가 오히려 당황했다.

그사이 날 닮은 이가 운전석 창문을 닫으며 작별 인사를 했다.

“자, 됐지? 결승 직후로 데드라인은 옮길게. 여전히 옵션은 1, 2번뿐이야. 이제 돌아가. 잘 생각해 보라고. 그리고 나랑 거래하려 하지 마. 선택을 해.”

나는 한숨을 쉬면서 날 닮은 자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런데, 내 눈이 저절로 휘둥그레졌다.

저 녀석, 저렇게 심각한 말을 하면서도, 입이 웃고 있었다.

내 불행이 곧 자기 행복인 걸까 싶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러기엔 너무 내 편의를 봐줘. 은근히 나를 아끼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럼 대체 뭐지?’

저 녀석은 내게 뭘 바라는 것일까?

어쩌면, 내가 던지는 ‘질문’ 자체를 바꿔봐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한편, 천채왕 대표는 호텔의 자기 방에서 배영웅 실장에게 비원더 관련 보고를 듣고 있었다.

회의 주제는 권노을이었다.

천채왕이 나직하게 되물었다.

“노을이가?”

“…네, 어젯밤 굉장히 늦은 시각에 주차장에 나갔다 왔더라고요.”

“어딜 갔는데?”

“호텔 바깥을 나가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주차장에는 저희 볼보 차량이 있으니 차에 잠시 있었던 듯합니다.”

천채왕 대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권노을은 꼭두새벽에 어딘가로 나가서 개인행동을 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권노을답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천채왕은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논리를 만들어냈다.

“워낙 요새 주변 상황이 안 좋으니까. 특이한 행동을 좀 해도 이상하지 않지. 나도 가족이 아팠을 때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거든. 한두 달 일을 못 했어.”

배영웅 매니저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천채왕이 말을 이었다.

“이런 상태에서 노을이가 무대에 설 수는 있을까? 이제 일주일도 채 안 남았는데. 게다가 이번에도 노을이 비중 높잖아.”

“언제나 그랬죠. 메인보컬이니까요.”

“그렇지.”

권노을은 늘 비원더 음악의 하이라이트를 담당했다.

이번 결승 무대에서도 이는 마찬가지였다.

결승에서 그의 비중을 줄이기엔 권노을은 너무나도 중요한 멤버였다.

하지만 이렇게 권노을이 흔들리고 있다는 상황 보고를 전달받고 나니, 천채왕은 왠지 자신이 권노을에게 지나친 부담을 주는 것은 아닐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번 무대만은 권노을을 좀 쉬게 해주는 편이 맞을 것 같기도 했기 때문이다.

천채왕이 무언가 결심한 듯, 주먹을 꽉 쥔 채로 권노을을 호출했다.

곧 권노을이 천채왕이 머무는 방으로 들어왔다.

천채왕이 배영웅 실장에게 부탁했다.

“실장님 잠시 둘만 있게 해주세요.”

배영웅 실장은 가볍게 목례한 후 로비로 사라졌다.

이윽고 방에는 천채왕 대표와 권노을, 두 사람만 남았다.

권노을은 천채왕이 왜 자신을 불렀을까 탐색하는 눈치였다.

천채왕이 먼저 입을 열었다.

“어때? 힘들지?”

권노을이 쓴웃음을 지었다.

“네 뭐. 좋지는 않네요. 음악에만 집중했던 예전이 얼마나 행복했는지는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

천채왕이 권노을을 안쓰러운 시선으로 쳐다봤다.

지금 권노을은 노래에 집중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닌 게 분명했다.

가수의 상태를 알아보고 배려해주는 것도 제작자의 책무 중 하나였다.

“이번 결승에서는 재호랑 환희에게 하이라이트 부분을 줘보는 건 어때? 비원더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편이 투표에도 더 유리할지 몰라.”

권노을은 대답 대신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고는 나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는, 노래하고 싶습니다.”

“노래하자 노을아. 다만 이번에는 그냥 멜로디만. 누구도 네가 그렇게까지 지나치게 노래하기를 바라지 않아.”

권노을은 단호한 태도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제는 그가 천채왕과 눈빛을 마주치고 있었다.

“아마, 제 팬들은 제가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노래하길 바랄 겁니다. 심지어 저를 괴롭히는 악성 팬까지도요.”

“악성 팬?”

“세상 지독한 악성 팬이 있거든요. 하지만 그 사람을 위해서라도 꼭 최선을 다해 노래하고 싶습니다. 이제부터는 연습에 차질 없게 하겠습니다.”

권노을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분명,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권노을을 막아야 했다.

하지만 왠지 천채왕은 권노을을 막고 싶지 않았다.

그저 마른침을 꿀꺽 삼킨 후, 이런 말을 해줄 수밖에 없었다.

“…힘들면 꼭 말해라. 언제든 바꿔 줄 테니까.”

“감사합니다.”

권노을은 감사의 말을 전한 채 천채왕의 방을 떠났다.

‘하긴 저런 녀석이 진짜 슈퍼스타기는 한대.’

천채왕이 혀 차는 소리를 냈다.

분명 권노을은 최고의 가수였다.

하지만 동생이 죽어가는 와중에도 완벽하게 노래하는 일은 뛰어난 가수라기보다는 뭐랄까, 괴물이 되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굳이 소속 가수가 그런 사람이 되어주길 기대해야 할까?

‘하지만 그렇다고 본인이 그렇게 하고 싶다는데 그걸 막는 것도 내 월권 아닌가?’

대한민국 최고의 음반 제작자인 천채왕.

그가 오랜만에 무력감을 느꼈다.

이제는 그저, 권노을에게 무대를 맡길 수밖에 없었다.

* * *

한편, 권노을은 천채왕의 방을 나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연습실로 꾸민 호텔 스위트룸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동생이 아픈 뒤로 처음으로 입가에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천채왕과의 대화를 통해 무언가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거야…!’

대체 날 닮은 이는, 대체 뭐 하는 녀석인가?

이 질문을 했어야 했다.

우선 날 닮은 자는 나를 괴롭히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그는 심지어 나를 만날 때마다 내 건강을 걱정하기까지 했다.

또한 날 닮은 이는 내가 냉정하게 노래나 커리어를 추구하기보다는, 동생을 구하기를 바랐다.

내가 동생을 걱정할 때마다 날 닮은 자의 표정이 밝아졌다.

내 성공을 기뻐하면서도 내가 가족을 위해 성공을 버리기를 바란, 이율배반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은 어느 정도 이율배반적이긴 하잖아?’

이 사람은 분명 굉장히 어려운 과제를 주었다.

하지만 내가 이 과제의 함정에 빠져 몰락하기보다는 과제를 뛰어넘고 행복을 쟁취하길 기원했다.

그렇게 봐야지만 이 사람의 말과 행동이 모두 납득이 됐다.

갑자기 날 닮은 이와의 마지막 작별 인사가 문득 떠올랐다.

[나랑 거래하려 하지 마. 선택을 해.]

‘거래하지 말라고?’

내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승부욕이 발동한 탓이었다.

그래, 나는 거래를 통해서는 영영 당신을 이길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절대 포기할 수는 없다.

나는 끝까지, 악착같이 달려들어 보기로 했다.

점차, 내가 어떻게 이길 수 있을지 방향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웃으며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를 딱 하나 발견했다.

‘그것… 뿐인가.’

나는 마음을 정하자마자 한국 시차를 확인했다.

아직 한국은 저녁 시간이란 걸 확인한 뒤 문루아 선배에게 전화했다.

-무슨 일이에요?

“선배, 정말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동생을 지켜 주셔서요.”

-갑자기 왜 그래요. 어디 가요?

어딜 간다고 말은 못 하지만, 아주 먼 곳을 갈 수도 있었다.

“이번 주 토요일이 드디어 결승입니다.”

문루아가 살짝 한숨을 내쉬며 내게 대답했다.

“알죠. 나도 가고 싶었는데.”

“꼭 동생도 결승 보여주세요. TV는 볼 수 있죠?”

“물론이죠.”

“제 마지막 무대가 될지도 모릅니다. 꼭 보여주고 싶어요.”

문루아 선배가 언성을 살짝 높였다.

“마지막 무대라고요? 무슨 소리예요?”

“…아닙니다. 글로벌 비전이 이제 끝나니까요.”

-놀라게 할 거예요??

문루아 선배를 간신히 진정시킨 후 통화를 끊었다.

물론 내 말은 거짓말이었다.

나는 정말로 이번 결승이 생의 마지막 무대라는 각오로 임할 셈이었다.

‘이젠, 정말 최선을 다해서 무대를 준비해야 할 때야.’

나는 바로 연습실로 향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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