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왕-276화 (276/280)

제276화

나는 뚫어져라 MP3 화면을 살펴봤다.

1번과 2번, 두 가지 옵션이 화면에 떠 있었다.

[1번: 영원히 목소리를 잃는다.]

[2번: 권노을 급사]

둘 다 쉽사리 선택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특히 두 옵션 다 내 결승은 망치게 된다는 점이 걸렸다.

‘일단 이렇게라도 해 보자.’

나는 그대로 MP3를 통해 메시지를 적어 보냈다.

이렇게 메시지를 보내면, 아마 MP3의 배후에 있는 날 닮은 존재에게 전해질 것이다.

그가 내 제안을 받아 줄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한번 시도해 보고 싶었다.

메시지를 보내 놓고, 일단 화면을 껐다.

이제, ‘날 닮은 이’의 대답만 기다릴 뿐이었다.

* * *

할 수 있는 일을 모두 다 했다는 생각이 들자 비로소 무대 준비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번 노래도 만만치 않았다.

이번에 비원더가 준비한 곡은 가스펠 콰이어의 대형 발라드 ‘Reason For Singing’.

재호와 환희가 천채왕 프로듀서, 키미 프로듀서와 함께 만든 회심의 발라드곡이었다.

특히나 언제나처럼 마지막 절정의 고음 애드립 부분을 내가 불러야 했다.

정말 끝도 없이 고음이 이어지는 진행의 멜로디였다.

‘내가 목소리를 잃거나, 내가 죽으면 결승 무대도 망하겠지?’

딱 봐도 재호와 환희가 나를 위해 맞춰서 쓴 곡이었다.

나 외에 다른 누구도 부를 수 없을 정도 난이도의 음역대와 테크닉을 필요로 하는 곡이었으니까.

결승에서 이 노래를 부르려면 1번도 2번도 선택할 수 없었다.

이번에는 가사지를 확인했다.

가사를 확인하니 절로 쓴웃음이 나왔다.

[내가 노래하는 이유

너를 위해 노래할게.

모두에게 사랑을 전할게.

이 세상 끝까지라도.]

돈이나 명예가 아닌, 온 세상에 긍정적인 에너지와 사랑을 전파하기 위해 노래하고 있다는 선언을 담은 가사였다.

예전이라면 고개를 끄덕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솔직히 몰입이 쉽지 않았다.

내가 죽게 생겼는데 사랑이라는 말이 귀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설사 나나 여동생의 목숨이 걸려있지 않더라도, 글로벌 비전 결승은 충분히 소중한 무대였다.

살면서 몇 명에게나 세계 대회 결승에서 노래할 기회가 주어질까?

정말 나는 억세게 축복받은 행운아였다.

신기하게도, 여지까지 내가 해왔던 경험들을 생각해보니 마음속에 감사함이 생겼다.

가장 안 좋은 상황에서, 비로소 여태껏 내가 얼마나 많은 축복을 받았는지 떠올린 것이다.

내가 얼마나 더 노래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모든 순간을 최선을 다해 노래하기로 결심했다.

‘그럴 기회가 내게 온다면 말이지만.’

다시금 나는 슬쩍 MP3 화면을 확인했다.

아무런 메시지도 없었다.

* * *

오늘은 오랜만에 방송에 나섰다.

언론 인터뷰는 모두 사양했지만, 결승전에 메이와 함께 촬영하는 대담만은 함께 하기로 했다.

재호, 환희와 함께 뉴욕의 한 방송 스튜디오에 왔다.

붉은색 차이나 드레스 차림의 메이가 미리 스튜디오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메이가 내게 인사했다.

메이와는 이전에 대회 초반에 식사를 한 적도 있었다.

“노엘! 오랜만이에요. 동생 이야기 들었어요. 안 됐네요.”

“이젠 괜찮습니다. 동생이 나아진 건 아니고요. 제 마음이 상황에 적응했습니다.”

우리 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나는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대화 주제를 틀었다.

“설마 메이가 결승까지 올 줄이야. 아시아인은 이번 대회 전까지는 16강도 와본 적 없다고 하지 않았어요? 근데 이번에는 8강에 베이즈까지 3명. 심지어 그중 둘은 결승 진출이라니. 아시아인의 시대네요!"

메이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비원더의 시대겠죠. 비원더가 저보다 훨씬 인기 많잖아요? 바로네스 메이어즈나 루비아이 같은 글로벌 인기 팀하고 대결하면서 주목도도 높였고. 내 입장에서 너무 불리한 게임이에요. 다들 대진빨로 내가 올라왔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사실 메이가 결승에 온 것이 대진 덕이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었다.

실제로 거의 모든 우승 후보는 우리가 상대했었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결승까지 오는 동안 충분한 실력을 보여주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그녀를 위로했다.

“설마요. 중국 인구가 10억 명도 넘는데. 모두 중국계인 메이 편이지 않을까요? 1인 1표제니 메이가 유리하죠.”

“중국인이 모두 저를 응원하는 거 아니에요. 비원더 인기도 많다구요.”

“또 있어요. 은근히 글로벌 비전에서 클래식 전공 소프라노가 우승 많이 했어요. 알죠?”

메이가 파하하 웃었다.

“뭐라 해도 비원더가 압도적인 우승 후보 0순위예요! 엄살 너무 심한 거 같아요 노엘. 그렇게 안 봤는데.”

사실, 그녀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번 결승에서는 비원더가 유리하다는 평가가 정론이었다.

나도 그들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아마 평소처럼 내가 이 무대에만 최선을 다할 수 있었다면, 분명 승산은 우리 비원더에 있을 것이다.

‘내게 아무 일도 없었다면 그렇겠지만.’

하지만 이미 내게는 엄청난 문제가 터졌다.

우승이 중요한 게 아니란 뜻이었다.

지금껏 모든 걸 걸고, 글로벌 비전 세계 대회 우승을 위해 달려왔다.

그런데 정작, 그 마지막, 최후의 대결에서는 대결 자체에는 아무런 신경을 못 쓰게 됐다.

지금처럼 방송 준비를 하는 동안에도 혹시나 동생에 대한 소식이 있지 않을까 싶어 자꾸 핸드폰을 쳐다보곤 했다.

따르르르릉~

마침, 문루아 선배가 내게 전화했다.

아직 촬영 전이기도 하니 전화 통화를 해도 무방해 보였다.

나는 양해를 구하고는, 스튜디오에서 복도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동생 상황 알려주려 연락했어요. 시간 괜찮아요?

문루아는 오디션장에 내 동생이 놀러 왔던 일을 계기로 내 동생과 친해졌었다.

내 동생이 혈액암으로 쓰러진 후, 문루아 또한 자기 일처럼 슬퍼해 주었다.

지금은 나 대신 문루아 선배가 내 여동생 곁에 남아 상황을 매일 확인하고 내게 연락해주고 있었다.

내 예상대로, 동생의 상황은 딱히 좋아지지도, 또 나빠지지도 않았다.

‘아마 내가 아무 선택도 하지 않으면 동생은 죽겠지. 아마도 대회 직전에.’

그것만은 피해야 했다.

문루아 선배의 말을 다 들은 후 나는 감사를 표했다.

“고맙습니다, 선배. 동생을 서울에 두고 어떻게 뉴욕에서 연습하나 했는데.”

-그건 신경 쓰지 마요. 어차피 당신이 의사도 아니고, 여기 남았던들 아무 도움도 안 돼요. 힘내요.

“…네.”

-그리고, 저는 대회 결승은 못 갈 거 같네요. 아쉽지만 여기를 지켜야죠.

“…혹시 모르니 비행기 티켓은 일단 둬 주세요. 동생 티켓도 끊어 주세요. 갑자기 나을 수도 있으니까.”

-하하! 농담도 잘하네요.

문루아는 내 말을 농담으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사실 나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날 닮은 자’의 말에 따르면, 내가 다른 옵션을 택하면 그 순간 동생의 병은 나을 것이다.

당연히 비과학적이다 못해 초자연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정말 지금 나는 회귀해서 살아났고, 살이 빠진 채로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이미 내 인생이 초자연적이었으니 초자연적인 일을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대회 때 뉴욕에 저 대신 베이비 선배님이 가시겠데요.

“베이비 선배님이요?”

-네. 아마 벌써 뉴욕에 도착하셨을 것 같은데요. 한번 연락해 봐요.

나는 대화를 마무리하고 통화를 끊었다.

베이비 선배는 내가 회귀한 후 제일 먼저 만났던 심사위원이었다.

원래도 나는 합격했지만, 회귀한 후에는 그녀에게 일찌감치 간택을 받았고, 이후 나는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지금 내 소속사 대표인 천채왕을 소개해 준 것도 베이비였다.

그녀는 한국에서 결혼했고, 아이도 키우고 있었기에 비원더의 주 활동 무대가 한국에서 세계로 옮겨진 후에는 한동안 선배를 만나지 못했다.

그런 선배다, 나를 응원하러 이미 뉴욕에 왔다고 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첫 오디션을 떠올렸다.

베이비 선배를 만나서, 슈퍼스타 T 오디션에 참여했다.

그리고 이전 생에서는 우승하지 못했던 오디션에서 우승하며 화려하게 가수 생활에 데뷔했었다.

‘…그때는 그렇게 좋았었는데.’

지금은 모두 허망한 꿈같았다.

* * *

얼마 후, 나는 베이비 선배를 만나기 위해 호텔 카페로 이동했다.

이미 배영웅 실장은 베이비 선배가 뉴욕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덕분에 금방 연락이 되었다.

호텔에 가니 베이비 선배가 이미 자리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노을 군. 오랜만입니다. 가족 소식 루아 양에게 들었습니다. 정말 안 됐어요. 힘내요,”

“고맙습니다….”

“동생도 노을 군이 힘내서 노래를 열심히 부르길 바랄 거예요.”

나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베이비 선배의 말대로 동생은 내가 동생의 안위에 신경 쓰기보다, 오디션에 집중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동생의 불행이 나 때문이라는 걸 알고 있다.

당연히 마음 편히 무대에 몰입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MP3 플레이어도 왠지 아직도 답이 없고.’

베이비 선배가 내게 말했다.

“벌써 2년이네요.”

“예?”

“권노을 군을 만난 지 벌써 2년이 지났어요. 노을 군은 잘 기억 안 나죠? 워낙 정신없이 활발하게 활동했으니까요. 저는 나이가 좀 있으니까, 과거가 선명하게 기억난답니다.”

“아하, 네….”

사실 베이비 선배 말처럼, 한동안 나는 커리어 초기를 아예 잊고 있었다.

너무 정신없는 삶을 살았다.

하지만 지금은 처음 베이비 선배를 만난 날이 정확하게 기억났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불과 며칠 전, 나는 ‘날 닮은 자’를 만나기 위해 회귀 첫날을 내 기억 속에서 끄집어냈다.

물론 선배는 내 이런 사정을 알 리가 없었다.

베이비 선배가 계속해서 내게 말을 이어갔다.

“처음에 권노을 군을 봤을 때는 믿겨지지 않았어요. 프로필 사진과 비교해서 몸무게를 완전히 쪽 빼서 왔으니까요. 게다가 노래 실력은 천하제일이었구요! 딱 하나, 근성만 있으면 무조건 월드 스타가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죠.”

“아, 감사합니다.”

“아니, 정말이에요. 슈퍼스타 T만 해도. 정말 별의별 일이 다 있었잖아요? 루아 씨 가족이 아파 쓰러지기도 하고, 승부조작까지…. 그런 과정 과정에서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과정을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권노을 군이 우승했을 때쯤에는 ‘아! 이 사람 월드 스타 되겠다!’라고 확신했죠. 설마 이렇게 빨리 월드 스타 자리에 오를 줄은 몰랐지만요. 정말 자랑스러워요,”

“너무 비행기를 태워 주시니까…. 감사할 따름입니다.”

나는 말로는 선배에게 감사를 표하면서, 머릿속으로는 최근 2년을 회상하고 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트러블이 계속되는 일상이었다.

다이어트가 어렵다, 같은 아주 단순하고 소소한 문제부터 글로벌 기업의 음료수 문제까지, 그야말로 온갖 문제에 얽혀 왔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이제 닥쳐놓고 보니 내 최고의 재산이었다.

‘정말로 이 ‘과정’이 내게는 월드 스타 타이틀보다 더 가치 있는 진짜 보물이었어.’

그때였다.

MP3가 미친 듯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자, 잠시만요.”

나는 베이비 선배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호텔 로비로 가서 아무도 없는 곳에서 MP3를 확인했다.

“옳거니!”

드디어, ‘날 닮은 이’의 답장이 왔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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