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왕-275화 (275/280)

제275화

나는 뚫어져라 나와 똑 닮은 존재를 쳐다봤다.

“너는 누구지?”

나와 닮은 인물이 하하 소리 내어 웃었다.

내 웃음소리와 똑 닮은 소리라 소름이 끼쳤다.

날 닮은 이는 나를 보며 되물었다.

“그게 뭐가 중요해? 내가 너에게 뭘 해줄 수 있는지가 중요하지. 자, 타.”

차 문이 열렸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모르는 사람의 차에 타는 것은 위험했다.

연예인이라면 더더욱.

하지만 지금 나는 동생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제는 더 이상 잃을 것도 없었다.

나는 경차에 탔다.

나와 꼭 닮은 자가 사이드 브레이크를 내린 후, 내게 물었다.

“이전 생보다 살이 많이 빠졌군.”

“그래.”

날 닮은 이가 눈웃음을 지었다.

“뭐 이리 퉁명스러워? 칭찬인데.”

나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이런 무의미한 대화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한시라도 빨리 동생을 구하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대화를 계속하고 싶은 눈치였다.

나는 그의 장단에 조금만 맞춰주기로 했다.

“내가 고생해서 살 뺀 거도 아니고. 그냥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어.”

나와 닮은 이가 나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훑어봤다.

“헤어스타일도 아주 고급스럽고. 옷도 연예인 느낌이 나고. 카메라 마사지를 받았는지 아주 모습이 달라졌네. 신수가 훤해.”

‘무슨 엄마 같은 말을 하고 있어.’

나는 날 닮은 이의 말을 끊었다.

“됐고. 왜 나를 불렀지? 네가 MP3인가?”

“내가 MP3냐니, MP3가 나인 거지.”

“……!”

그러고 보니 날 닮은 이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이 아이팟은 그냥 기계일 뿐, 이 기계를 조종하는 무언가 인격체가 그 뒤에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아니, 그게 더 자연스러웠다.

기계에는 자유 의지가 없으니까.

나는 침을 꿀꺽 삼킨 채, 말을 이어갔다.

“하여튼 네가 그 메시지를 남겼단 거네. 그렇다면 네가 나를 이곳에 부른 이유가 있을 거잖아?”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럼. 다 이유가 있지. 일단 네 상태를 알고 싶어. 지금 기분이 어때? 개 같지?”

개 같다…라.

평소에 내가 자주 쓰는 말은 아니지만 정말 지금 내 기분과 딱 들어맞는 표현이었다.

“그래, 정말 개 같네.”

날 닮은 이가 큭큭 웃었다.

날 닮은 자가 고개를 돌려 나와 눈을 마주치며 내게 말을 이어 나갔다.

“처음에는 너무 좋았을 거 아냐? 회귀하게 해줬지. 살 빼줬지. 그야말로 선물 같은 나날 아니었을까? 전 세계의, 아니, 인류 역사상 누구도 너만큼 축복받은 이는 없을 걸, 권노을? 노력 없이 날씬하게 만들어줘. 상대방의 정보와 약점은 미리 알고 있어. 게다가 노래는 원래 좀 잘해. 얼마나 쉬웠어? 그냥 술술 성공해 왔잖아? 이제는 세계 최고의 가수가 되기 직전이고.”

나와 똑같이 생긴 자가 내게 말을 걸고 있는 걸 보다 보니, 마치 거울과 대화를 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것도 나의 이전 생의, 뚱뚱하고 실패했던 시절의 내 모습을 비추는 거울을 보는 느낌이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

날 닮은 이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 기억해? 거기서 말하잖아. 인생은 초콜릿 박스와 같다고. 좋아하는 맛 초콜릿도 있고, 싫어하는 맛의 초콜릿도 있는 것뿐이라고.”

“기억하지.”

왠지 느낌이 안 좋았다.

이 이야기가,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대충 짐작이 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날 닮은 이가 말을 계속했다.

“너처럼 크나큰 축복을 받은 사람은, 저주도 그만큼 커져야 하지 않겠어? 그래야 초콜릿 박스 전체의 균형이 맞겠지? 그런 거야. 초콜릿 하나 줄까?”

그가 장난스럽게 과자봉지를 뜯고는 초콜릿 과자를 꺼냈다.

그리고 과자를 우걱우걱 먹었다.

분명히 저 ‘날 닮은 이’는 초자연적인 무언가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지금 내 앞에서 당당하게 과자를 까먹고 있지 않은가.

‘하긴 내 MP3도 실제로 존재했지. MP3로서 기능도 정상적이었고.’

나는 날 닮은 자가 준 과자를 사양했다.

군것질할 기분은 아니었다.

“아니 됐어.”

날 닮은 이는 내 대답은 싹 무시한 채로 말을 이어갔다.

“그거뿐이야. 무슨 개인적인 저주를 걸었다거나. 그런 건 전혀 아니야. 굳이 말하자면 자연법이지. 초콜릿 박스 전체의 균형을 맞춰야 하니까. 그게 공평한 거잖아?”

균형이라.

하지만 나는 아직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균형을 맞추는 다른 방법은 없어? 꼭 이렇게 내 동생을 죽여야 해? 동생은 아무런 잘못이 없어! 나만 희생당하면 되잖아?”

날 닮은 이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러니까 이게 균형이 맞는다는 거지. 네 반응을 봐. 너무너무 슬퍼하잖아? ‘아무런 잘못이 없는 동생이 죽어간다’는 불행이 네 약점을 제대로 건든 거지. 이 정도는 돼야 회귀와 균형이 맞는 저주 아니겠어?”

그의 말 그대로였다.

날 위한 불행이라면, 지금만큼 슬프지는 않았을 테니까.

내가 납득한 걸로 보이자, 날 닮은 이가 날 내보낼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이제 이해했지? 너무 날 원망하지 마. 그냥 룰대로 한 거니까. 그러면 이제 내가 할 말은 다 했으니 슬슬 가볼….”

나는 얼른 날 닮은 이에게 질문했다.

“저주를 다른 거로 바꿔줄 순 없나?”

날 닮은 이의 미간이 좁아졌다.

혀 차는 소리도 들렸다.

아무래도 내가 처음으로 이 녀석의 예상을 뛰어넘은 발언을 한 모양이었다.

“다른 거?”

“네 말 대로라면, 내가 슬프면 그걸로 되는 거 아니야? 굳이 동생을 죽일 필요는 없어. 다른 방법도 많은데! 동생은 엄연히 나와 다른 존재이야. 군대도 아니고, 연대 책임이 말이 돼? 동생이 무슨 죄야? 초콜릿 박스고 뭐고 좋은데, 나만 불행하게 해 달라고!”

내 말을 듣고 있던 날 닮은 이가 입술을 깨물었다.

내 말에 조금 설득이 된 모양이었다.

‘이 녀석이 귀신인지 악마인지 저승사자인지. 뭐 하는 놈인지 모르겠지만 의외로 말은 통하는 놈인 거 같은데.’

그렇다면 나도 물러설 수 없었다.

바짓가랑이를 잡아서라도 어떻게든 무언가를 받아내야 했다.

그러려고 MP3의 메시지를 찾아 여기까지 왔다.

“동생 입장에서 이건, 초콜릿 박스의 균형이 깨진 거라고.”

날 닮은 이가 고개를 푹 숙이더니,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나가.”

“안 돼. 못 나가. 다른 저주를 주기 전에는.”

“네가 나가야 새로운 제안을 줄 수 있으니까 빨리 나가라고.”

“그럼….”

“새 옵션을 보고 싶으면 내가 사라진 다음 MP3를 확인해.”

내가 나가자마자, 날 닮은 이는 경차를 운전해 사라져 버렸다.

* * *

그날 밤, 배영웅 실장이 나를 깨워 준 덕분에 간신히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에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멍하니 내게 주어진 두 개의 옵션을 생각했다.

내 MP3 화면에는 새로운 메시지 로그가 떠 있었다.

[새로운 옵션을 두 개 확인합니다.]

터치해서 내용을 확인했다.

[12월 23일까지 옵션을 바꿀 수 있습니다.]

12월 23일이라면, 크리스마스 이브이자 글로벌 비전 결승전 바로 전날이었다.

‘그때까지 두 개의 옵션 중 하나를 정해야 한다.’

크게 심호흡을 했다.

사실 지금 전보다는 훨씬 나은 상황이었다.

날 닮은 이를 만나기 전까지는, 동생은 아마 죽을 운명이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동생을 잃는 것 외에도 옵션을 두 개나 더 얻었다.

‘둘 다 쉽사리 선택할 수 없는 저주란 게 문제지.’

역시나, 공짜는 없었다.

첫 번째 저주 옵션은 목소리였다.

[1번: 영원히 목소리를 잃는다.]

노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었다.

노래를 못 한다면, 이후의 나의 삶에 무슨 가치가 있을까?

쉽사리 대답할 수 없었다.

목소리를 잃는다는 것이 노래만 부르지 못한다는 뜻인지, 아니면 정말 한마디도 못 하는 벙어리가 된다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둘 중 무엇이든 이 옵션은 결코 내가 쉽게 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하긴, 그러니까 날 닮은 이가 이걸 대체 옵션으로 제안한 것일 테다.

2번 안 또한 가관이었다.

[2번: 권노을 급사]

하하….

기껏 요절한 후에 회귀해서 사람같이 살아보나 했는데, 2년도 채 되지 않아 다시 죽을 수도 있는 운명일 줄은 몰랐다.

죽으라고 하니, 당연히 과히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1번이고 2번이고, 하여튼 동생은 살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는 이전보다는 진일보한 옵션이었다.

적어도 동생은 살았으니까.

게다가, 지금까지 내가 벌어놓은 돈이라면 어떻게든 동생은 대학 졸업을 할 수는 있었다.

학생 시절만 지나면 동생은 스스로 씩씩하게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동생의 음악 재능은 분명 진짜였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또 다른 사람들이 눈에 밟혔다.

‘멤버들. 멤버들이 문제야….’

1번을 택하든, 혹은 2번을 택하든, 비원더라는 팀은 반드시 붕괴된다.

나는 메인보컬이었고, 이 팀의 방향을 결정하는 리더였다.

내가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되거나, 내가 죽게 되면 재호랑 환희는 어떻게 될지가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당연히 나 자신도 문제였다.

죽거나, 아니면 죽느니만 못한 상태가 되라는 요구였으니 말이다.

노래가 없는 삶은 내게는 죽음이나 마찬가지였다.

죽음은 죽음이니, 당연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마음이 무거워졌다.

일단 MP3를 끄고, 깊게 한숨을 토해냈다.

‘생각을 해보자 생각을! 뭔가 방법이 없을까?’

지금껏 나는, 수많은 위기를 겪었었다.

하지만 내가 고민해서 답이 나오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어쩌면 이번에도 그런 해답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

‘아무것도 없었던 상황에서, 어떻게든 억지를 부려서 옵션을 두 개는 받아냈으니까. 한 걸음이라도 나아가긴 했지.’

하지만 아직은 한 걸음만 나아갔을 뿐, 근본적인 해답을 찾지는 못했다.

그저 탄식만 나올 뿐이었다.

‘일단. 뉴욕에 가서 생각해 보자.’

경험상 이럴 때는 잠시 고민을 멈추고, 전혀 다른 상황에 몰입해보는 것이 정답이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뉴욕에 돌아가면, 바로 새로운 상황이 내게 주어질 것이다.

* * *

뉴욕으로 돌아온 내게 전 세계 언론이 폭발적인 관심을 보였다.

동생이 암 투병을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온 세계인의 심금을 울린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번만은 언론의 모든 인터뷰를 사양했다.

동생의 중병을 팔아서 관심을 얻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그것만은 죄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채왕 대표도 내 의견에 동의해주었다.

“…그래. 노을이 너는 인터뷰하지 말고. 컨디션 조절이나 해라. 노래 준비도 다 끝나가니까 걱정하지 말고 쉬어.”

“어떤 컨셉의 노래인가요?”

무대 준비를 조금씩 시작하려는 내게 천채왕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일단 그런 건 신경 쓰지 말고 쉬고 있어. 내가 멤버들이랑, 밴드랑 같이 곡 준비해 둘 테니까.”

할 수 없이 나는 회사가 구해준 숙소에 틀어박힌 채 휴식에만 전념했다.

얼마 후, 배영웅 매니저가 내게 다른 멤버들이 만든 결승 곡 초안을 MP3 파일로 보내주었다.

굉장히 가스펠 콰이어와 함께한 심플하면서도 규모만 큰 대형 발라드곡이었다.

다만 가사가 특별했다.

마지막 결승 곡 미션은 ‘내가 노래하는 이유’였다.

결승답게, 참가자에게 가수의 본질을 되짚어보게 하는 무거운 과제였다.

예전에 나라면 즐겁게 이 미션에 몰입했을 것이다.

언제나처럼 미션에 대한 나만의 해답이 뭘까 고민하고, 멤버들과 토론을 했겠지.

하지만 지금은 그럴 정신이 없었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다른 멤버들이 써 준 가사를 수동적으로 읽어 내려가고 있었다.

이 가사에 따르면 우리 비원더는 남을 지키기 위해, 그들에게 사랑의 힘과 음악의 놀라움을 전하기 위해 노래했다.

예전이라면 이 가사에 나도 동의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참 나…. ‘내가 노래하는 이유’라니. 이건 꼭 지금 내 상황 같잖아?’

아무리 생각해봐도 결론은 하나였다.

지금, MP3는 내게 묻고 있었다.

내가 노래하는 ‘진짜’ 이유가 뭐냐고.

여지까지 나는 내가 가족을 지키기 위해 노래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MP3는 내게 재차 질문했다.

이제 너는 충분히 돈을 벌었다.

한풀이도 이만하면 할 만큼 했다.

그렇다면 너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노래를 포기할 수 있겠느냐?

그게 아니라면 너는 그냥 너를 위해 이기적으로 노래하는 것뿐이다.

‘…정말 네가 가족을 지키기 위해 노래하는 거라면, 가족을 지키기 위해 노래를 포기할 수 있겠어?’

등골이 오싹해지는 질문이었다.

자연스럽게 나는 지난 2년간의 내 모습을 되돌아봤다.

동생을 위해 노래한다고 했지만, 사실 동생과 함께한 시간은 극히 적었다.

대부분의 경우 나는 가수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게 동생을 위해서였을까?

힘든 일도 있었고, 바빴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나는 가수 활동을 즐겼다.

동생과 시간을 보낸 것도, 수능 시험 직전에 동생의 멘탈을 ‘관리’하기 위해서가 컸다.

어쩌면 나는 그저 나를 한껏 과시하고 싶어서 지금껏 노래를 해왔는지도 몰랐다.

“지난 2년이 모두 부정당하는 느낌이군. 참 나!”

나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그 순간, 내 뇌리에 반짝, 하고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잠깐만. 지난 2년이 모두 부정당해?”

나는 서둘러서 MP3를 다시 켰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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