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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가왕-274화 (274/280)

제274화

동생이 암이라니,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애초에 내가 노래하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내가 노래하고 싶어서, 인기를 얻고 싶어서, 나를 위해 노래를 부른다는 이유가 하나 있었다.

또 하나의 이유는 동생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동생이 돈 걱정하지 않고 원하는 교육을 받고, 음악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서 나는 돈을 벌어야 했다.

동생을 위해 미친 듯이 일해서 돈을 벌었다.

그리고 이제야 간신히 그 노력이 조금씩 결실을 거두어가고 있었다.

‘이제 다 왔는데. 정말 고생 끝 행복 시작인데. 하필이면 지금?’

지금 나는 숙소 방에 처박힌 채 좌절 중이었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내가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 알고 있는 재호와 환희, 그리고 배영웅 매니저 또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침울하게 호텔 방 구석 어딘가에 앉아 있었다.

방 안에서 동생 생각을 하고 있자니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좋았을 텐데. 이제 나는 글로벌 비전 결승까지 가봤으니까 죽어도 여한도 별로 없는데. 하지만 동생은 아니야.’

동생은 이제 대학교 1학년이었다.

하지만 동생은 어린 나이에도 한국을 대표하는 국악 뮤지션이 되는 코스를 차근차근 밟아가고 있었다.

이미 정점에 가까워진 나와 달리, 동생은 이제 시작이었다.

그런데 그런 동생이 지금 죽는다니, 너무도 허망했다.

신도 믿지 않는데, 기독교의 신부터 부처 알라까지 온갖 신에다가 고함을 치고 싶은 기분이었다.

하다못해 이 모든 게 운빨이라면, 운이라는 놈의 멱살을 잡고 따지고 싶었다.

왜 하필 지금이냐고, 이제 거의 다 왔는데.

“…….”

내가 쥐 죽은 듯 조용히 내 눈치를 보고 있는 멤버들에게 나직하게 말했다.

“너희는 연습하러 가라.”

재호가 인상을 찌푸렸다.

“뭐?”

“글로벌 비전이 어디로 사라졌냐? 2주 뒤면 결승이야. 게다가 상대도 만만치 않아.”

다음 상대는 호주계 중국인 메이였다.

클래식 소프라노였는데, 비슷한 타입인 본토의 중국 대표를 대결에서 물리치고 결승까지 올라왔다.

메이가 단순한 클래식 소프라노가 아닌, 록부터 발라드까지 온갖 장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뛰어난 가창력을 소유한 디바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녀는 절대로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게다가 재호 너도 알잖아. 은근히 글로벌 비전은 클래식 베이스의 여성 소프라노가 우승을 많이 했어. 메이는 딱 글로벌 비전이 선호하는 타입의 참가자야. 지금 이렇게 있을 시간이 없어.”

환희가 똥 씹은 표정으로 읊조렸다.

“아무리 그래도 형을 두고 그러기가 좀….”

“괜찮다니까? 너희들이 여기에 있는 들 뭐가 해결되는 거도 아닌데.”

그 순간 문이 스르륵 열렸다.

문 앞에는 나의 제작자인 천채왕 대표가 서 있었다.

“선생님?”

“뭐 하고 있어?”

“네?”

“한국에 빨리 가봐야지. 그깟 방송이 대수야?”

“…….”

천채왕이 나를 지그시 쳐다봤다.

“지금 안 가면 후회한다. 어차피 연습은 한국에서도 할 수 있으니까, 지금 가. 오늘 밤 뉴욕 비행기 티켓 끊었어. 배영웅 매니저, 노을이랑 같이 가주세요. 여기 상황은 내가 김나리 담당자와 함께 처리할 테니.”

잠자코 말을 듣고 있던 배영웅 매니저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 짐을 싸기 시작했다.

나는 천채왕을 똑바로 쳐다본 채 질문했다.

“괜찮을까요?”

재호가 내게 언성을 높였다.

“야! 가, 인마! 언제 니가 처음부터 편곡 회의에 참여했다고 그래. 가라고!”

환희가 재호를 붙잡으며 말했다.

“형, 형. 진정해요. 하지만 저도 재호 형이랑 똑같은 생각이에요. 가요 형. 어차피 형은 곡도 안 쓰잖아요?”

“그래도 나도 오디션에서는 늘 곡 컨셉은 항상 같이 짜 왔는데….”

천채왕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번에는 그건 내가 도와줄 테니까. 어서 가봐. 나도 아내를 잃어봐서 알아. 아플 때 가족과 끝까지 함께하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후회 남기지 마.”

나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 * *

한국 성모 병원.

나는 크게 한숨을 쉰 후, 동생 담당 의사에게 되물었다.

“왜 아픈지 모른다고요?”

“네, 전혀…. 알려진 이유가 없습니다.”

“그럼 20살 애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백혈병이란 게 말이 됩니까?”

“아, 암세포라는 것은. 일종의 확률 개념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변이 확률이 높아지지만. 걸리려면 1살에도 걸릴 수는 있어요.”

“하지만 걸리면 100%잖아요!”

“그, 그건….”

의사는 말을 잇지 못했다.

시선을 피하는 의사의 모습을 보며 나도 입을 다물었다.

사실 의사에게 뭐라고 말한들 그에게 뾰족한 수가 없을 거라는 건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다만 화가 나서 누군가에게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이 모든 일이 그저 운이라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세상 모든 일이 운 아닌가.

나만 해도 그랬다.

원래 나는 40살도 되기 전에 심장마비로 요절할 운명이었다.

운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행운아기도 했다.

그 순간 다만 말도 안 되는 기적을 경험하고 회귀하여 새 삶을 얻었으니까.

그런 행운아인 내가 이제 와서 운을 탓한들 아무 소용없었다.

아니, 굳이 말하자면 이건 내 탓이라 볼 수도 있었다.

내 동생은 이전 생에서는 분명 30대까지는 건강했다.

흔한 병치레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스무 살에 암에 걸렸다.

회귀 후, 이전 생에는 없던 일이 생기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대부분 내가 운명을 내 취향에 바꾸어서 생긴 나비 효과의 결과였다.

‘그렇다면 동생의 암도 굳이 말하자면 운이 아니지 않을까? 가수 하고 싶다고 제멋대로 세계선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버린 내 탓은 아닐까?’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알겠습니다. 뭘 하면 됩니까? 비용은 신경 쓰지 마세요. 가장 생존확률이 높은 걸로 해주세요.”

“네, 그러면….”

세계적인 가수가 된 오빠가 할 수 있는 건 결국, 치료비를 대는 일 정도였다.

* * *

동생을 보러 한국에 온 지도 벌써 3일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매일 동생을 지켜보며 하염없이 울었다.

사실 이미 항암치료가 시작되었기에, 동생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도 없었다.

다만 유리창 너머로 동생을 보며 눈물을 삼킬 뿐이었다.

골수 이식이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이라 해서 당연히 내 골수를 이식해 주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골수 이식 수술은 그 자체만으로도 25% 확률로 사람이 죽을 수 있는 상당히 위험한 수술이었다.

또, 그놈의 확률이었다.

그저 온 세상의 모든 잡신에게 쾌유를 기도하는 일 외에는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게다가…. 골수 기증은 대회가 끝난 후에야 가능하다고 하고.’

막상, 동생을 도와줄 수도 없고, 심지어 동생과 대화할 수도 없었다.

그저 멀리서 동생이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가로젓는 모습만 지켜볼 뿐이었다.

동생이 내게 뭐라 말을 걸었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입 모양으로 내용은 짐작할 수 있었다.

‘왜. 왔. 어. 가.’

이 순간에도 나를 걱정하는 동생을 보면서 더더욱 마음이 착잡해졌다.

* * *

동생을 보러 한국에 온 지도 벌써 4일째.

나는 일단 다음 날 저녁 비행기를 타고 미국에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여기에 있는 들,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암이란 병이 그렇게 빠르게 사람을 죽이는 병도 요새는 아니라고 의사는 강조했다.

글로벌 비전 대회가 끝난 뒤에 마음을 추스르고 동생을 지켜도 괜찮다는 뜻이었다.

머리로는 의사의 말을 이해했다.

하지만 가슴은 왠지 지금 대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내 유일한 피붙이인 동생이 죽어 가는데, 노래가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었다.

원래 노래는 내 인생의 전부였다.

그랬던 내 세계관이 지금은 뿌리째 흔들리고 있었다.

한숨을 크게 내쉬며 미국에 다시 돌아가기 위해 짐을 싸기 시작했다.

배영웅 매니저는 출국 수속을 해주기 위해 바깥으로 나갔다.

그와는 내일 아침, 다시 만날 예정이었다.

짐을 싸다가 무언가 물건을 하나 발견했다.

‘내 MP3…….’

저절로 회한에 잠겼다.

이 요물을 발견하면서부터 모든 일이 시작됐다.

꼼짝없이 죽은 줄 알았던 내가, MP3를 주운 후 인생을 리셋했기 때문이었다.

이후 나는 내 인생을 나름 올바르게 바꾸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이제는 모르겠어. 내가 회귀한 후 옳게 살았는지.’

이전 생에서 내 동생은 적어도 내가 죽을 때까지는 건강했다.

결혼도 하지 않았고, 국악 뮤지션으로 성공하지도 못했지만…. 최소한 살아 있기는 했다.

지금은 내게 억만금이 있었고, 동생 또한 국악 뮤지션으로도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동생의 생명은 점점 빠르게 사라져가고 있었다.

‘나는 이 MP3를 줍고, 회귀한 일이 내 생에서 가장 좋은 일이라 생각했어. 하지만 이게 행운이 맞나? 사실 저주 아닌가? 어쩌면 내 동생의 생명을 빨아먹어서 이 모든 성공을 거둔 거는 아닐까?’

이번 생과 이전 생의 다른 점은 내가 성공했다는 것, 그리고 동생이 빠르게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둘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왠지 지금은 인생의 우연을 필연으로 바꾸고 싶은 기분이었다.

“젠장! 젠장!”

아무도 없는, 값비싼 집에서 나 혼자 소리를 질렀다.

이렇게 비싼 차, 비싼 집, 비싼 옷을 갖고 있는 들, 다 무슨 소용일까 싶었다.

그때였다.

‘…뭐야?’

MP3가, 오랜만에 반짝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헛것을 보나 했다.

하지만 이내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애초에, 나를 회귀하게 만든 것은 이 MP3였다.

다만 회귀 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찜찜해서 MP3 활용을 기피해왔던 것일 뿐이었다.

글로벌 비전 본선에 진출했을 즈음부터는 아예 MP3는 부적처럼 주머니에 넣고 간직만 하고 있었다.

이렇게 과거와 미래를 헤집고 다니면서 내 이득만 봐도 괜찮을지 의문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었다.

회귀자로서 내 강점은 과거에 없었던 일이 일어나는 순간 사라졌다.

지금 나는, 신이 아니라 악마라도 거래를 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홀린 듯이 MP3 화면에 눈을 집중했다.

하지만 MP3 화면에는 예전처럼 상태 창이 보이지는 않았다.

다만 건조한 문장이 하나 적혀 있을 뿐이었다.

[모든 일이 시작됐던 그 장소로 와라.]

* * *

나는 초조하게 방송국 1층 화장실 문을 두드렸다.

슈퍼스타 T 일반인 오디션을 치렀던, 바로 그곳이었다.

이곳에서 모든 일이 시작됐다.

그래서 이곳으로 왔건만, 화장실 문은 꼭 잠겨 있었다.

하긴, 벌써 시간은 새벽이었다.

외부 손님에게 화장실을 개방할 수 있는 시간대가 이미 아니었다.

나는 방송국 바깥에 나와, 공원 벤치에 나 홀로 앉아 다시 MP3를 켰다.

화면에는 여전히 같은 문장만 보였다.

[모든 일이 시작됐던 그 장소로 와라.]

“그래서 지금 왔는데, 아무 일도 안 생기는데? 네가 엉터리인 거냐? 아니면 내가 답을 못 맞춘 거냐?”

나는 찬찬히 내 과거를 되짚어봤다.

분명 여기서 모든 일이 시작됐다.

여기서 살을 단숨에 뺐다.

그리고 오디션에서 과거의 악연을 청산했다.

마지막으로, 내 노래가 베이비 심사위원의 눈에 띄면서 나는 성공할 수 있었다.

나는 미간을 찌푸린 채로 찬찬히 기억을 되짚어봤다.

‘잠깐. 과연 이 화장실이 모든 일의 시작이라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니 이 모든 일의 발단은 MP3였다.

그렇다면, 이 MP3를 처음 얻었던 곳, 그곳이 바로 모든 일의 시작이라 할 수 있을 터였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곳은 내가 MP3를 찾은 곳은 아니다.

오히려 내 소원을 들어주기로 한 MP3가 나를 이곳으로 인도했다고 봐야 했다.

‘아무래도 거기로군.’

나는 전화기를 꺼내 콜택시를 불렀다.

* * *

택시는 이전 생에서 내가 살던 집 앞에 나를 내려주었다.

수원 산성 근처 삼거리, 이곳에서 나는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그리고 내 시체 주위의 전봇대 아래에서 애플사의 구형 아이팟 플레이어를 주웠다.

나는 MP3를 켰고, ‘Gift Mode’란 것을 실행했다.

그렇게 모든 일이 시작됐다.

마침 시각은 새벽 2시, 이전 생에서 내가 죽었던 바로 그 시각이었다.

내가 죽었던 정확한 장소를 찾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마침 낯익은 가로등이 보였다.

“여기서 MP3를 주웠던 거 같은데.”

가로등 주변으로 가 보았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

잠시 기다려도 찬 바람 부는 소리만 귀를 울릴 뿐이었다.

주머니에서 MP3를 꺼내 봤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전과 같은 문장만 화면에 떠 있을 뿐.

‘역시나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짓을 한 건가?’

‘뭐 어쩔 수 없지. 집에 가서 잠이나 자자.’

그때였다.

어딘가에서 차 엔진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뒤를 확인해 봤다.

“이건…!”

내가 죽었을 바로 그 시점에, 내가 운전했던 경차가 내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운전석에는, 살쪘을 때 내 모습과 똑같이 생긴 사람이 보였다.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창문을 열고, 내게 말을 걸었다.

“늦었네 권노을. 기다리고 있었어.”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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