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2화
다음 날, 나는 헨리에게로 갔다.
천채왕 프로듀서와 함께 알아낸 정보를 모두 가감 없이 그에게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그래, 어떤 일인가?”
“민티의 성분을 분석해보니. 놀라운 점이 있더군요.”
말하면서 천채왕 프로듀서가 이메일로 보내준 자료를 전달했다.
복잡한 화학식이 적혀 있었지만, 결론은 명약관화했다.
이 음료는, 중독을 노리고 만든 독약이었다.
단순히 너무 맛있어서 끊기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섭식장애를 일으킬 정도로 강력한 중독 성분이 들어 있었다.
지금껏 회사는 로비를 통해 규제 기관은 물론, 헨리에게도 꽁꽁 진실을 숨겨왔다.
하지만 오너인 헨리가 결국 외부 기관을 통해 사실을 알아 버렸다.
헨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내가 물었다.
“화나시나요?”
“아니. 신기할 정도로 분노가 생기지 않는군.”
의외의 답변이었다.
“왜요?”
헨리가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동문서답을 했다.
“내가 건강해 보이나?”
나는 헨리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살펴봤다.
허리는 전혀 굽지 않았고, 그 흔한 거북목 하나 없었다.
“저보다 건강해 보이시는데요?”
헨리가 씁쓸한 미소를 흘렸다.
“나는 그냥 약으로 돌아가고 있네. 하루만 약물을 끊으면 나는 죽을 걸세.”
“……!”
눈이 번쩍 뜨이는 이야기였다.
헨리가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나는 매번 약물로 위기를 돌파했네. 이제는 약물 없으면 하루도 일상을 살 수 없지. 민티가 중독성 소다를 만든다고 해서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 우리 집안에 약물 만능주의를 심어놓은 것은 누구도 아닌 나라네. 올 것이 왔구나 싶어질 뿐일세.”
“…앞으로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회사를 생각하면 자네를 입막음해야겠지.”
내 옆에 앉아있던 배영웅 실장의 주먹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헨리는 무표정을 유지했다.
“……하지만 그럴 거면 애초에 자네 같은 유명 인사에게 부탁하지 않았겠지. 안 그런가? 지금 자네가 죽으면 전 세계가 주목할 텐데?”
놀랄 정도로 냉정한 말이었다.
진짜 사람 한두 명은 죽여본 듯한 사람만 가능한 이야기랄까.
헨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로 뚜벅뚜벅 서재 한 가운데로 걸어가 그랜드 피아노 뚜껑을 열었다.
“노엘. 노래 해주겠나? 아무거나.”
“좋아하시는 노래를 들려 드리고 싶습니다.”
“그래. 원래 나는 엘비스를 좋아했지. 엘비스 노래로 해주게.”
나는 예전에 내가 리메이크했던 엘비스의 노래, It’s Now Or Never를 불렀다.
헨리는 소파에 편안히 앉아 내 노래를 감상했다.
내 노래의 클라이맥스에서는 미간 사이에 잔뜩 주름이 질 정도로 집중한 채로 내 노래를 들었다.
그의 입에 그윽한 미소가 걸려 있지 않았더라면, 아마 나는 내 노래가 마음에 안 들었을까 우려했을 정도로 집중하고 있었다.
내 노래가 끝나고, 헨리의 눈에 눈물이 한 방울 ‘톡’하고 떨어졌다.
나는 깜짝 놀라 헨리를 쳐다봤다.
헨리가 나를 비스듬히 쳐다보며 이야기했다.
“멋진 노래야. 나도 엘비스의 LP 하나면 만족했던 시절이 있었지. 지금은 엘비스의 집을 살 재력이 있지만. 그때 그 시절이 더 그리운 건 왜일까?”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헨리가 다시 날카로운 표정으로 돌아가서는, 내게 말했다.
“자네에게는 미래를 보여주지. 잘 듣도록 하게. 이 노래에 대한 보상이라 생각하게. 자네가 바랐던 바로 그것일세.”
“알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회사가 살 방법은 이제 단 하나뿐이야….”
* * *
헨리 회장과 이야기가 끝나고, 나는 곧장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서는 재호와 환희가 지금도 편곡 논의 중이었다.
환희가 반갑게 내게 인사했다.
“왔어요 형?”
“그래.”
환희의 손에는, 코카콜라 캔이 쥐어져 있었다.
나는 나지막이 말했다.
“탄산음료 몸에 안 좋아.”
“에이. 저 적당히 먹어요!”
“적당한 것이 어느 정도 분량인지가 중요하지. 너 민티는 안 먹지?”
환희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네, 안 먹는데요?”
“잘했어. 앞으로도 절대 입에 대지 마.”
재호가 한마디 했다.
“야! 아무리 그래도 대회를 스폰해 주는 음료인데 그런 말을 하냐?”
“너는 내가 말 안 해도 입에도 안 대잖아.”
“그건 그런데.”
“그냥 그런 줄 알고 있어.”
재호가 되물었다.
“왜?”
“그런 게 있어.”
곧 있으면 너희도 알게 될 테니까.
다음 날 아침,
헨리 회장이 시체로 발견됐다.
* * *
티비 화면 속 아나운서가 침울한 표정으로 헨리의 부고 내용을 전했다.
[헨리 회장은 세계적 음료 회사의 창립자였습니다. 동네 술집 웨이터로 시작, 자신이 직접 짜서 만든 주스를 동네 사람들에게 파는 일을 시작으로 전 세계를 주름잡는 기업을 일구어낸….]
티비 뉴스를 확인한 재호가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재호는 나를 쳐다보며 질문했다.
“저 사람, 어제 네가 봤던 사람 아냐?”
“맞아.”
“너, 살인 용의자 되는 거 아니냐?”
“야. 사람은 웬만하면 누군가에게 살해당하지 않아. 그냥 아파서 죽지. 저 사람도 사인이 명확하잖아?”
헨리는 매일 먹었던 약을 하루 빼먹어 죽었다.
하필 그날, 헨리가 절대 자신의 개인 간호사가 자신을 건드리지 못하게 엄명을 내렸다고 했다.
하필 그때 우연히도 헨리가 자신이 먹는 약을 빼먹었다.
흔한 사고사였다.
하지만 나는 진실을 알고 있었다.
‘곧 있으면 유서가 발표될 테지.’
이미 헨리의 회사는 마리가 장악하고 있었다.
아마도 론을 중독시키고, 자기 끄나풀로 조종한 것 또한 마리일 것이다.
마리는 철저하게 회사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다.
헨리가 자신의 회사에서 생산하는 음료의 부작용을 알지 못할 정도로 완벽하게 말이다.
헨리가 자신의 마음대로 외부에 공표할 수 있는 자료는… 기껏해야 ‘유서’ 정도였다.
‘뭐, 그게 아니었어도 헨리 저 할아버지, 이미 인생에 피곤함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긴 하지만.’
어제, 그가 자신의 계획을 내게 공유했다.
나는 헨리를 말렸다.
[아무리 그래도 인생은 좀 더 살아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헨리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나는 이미 죽었어야 하는 몸이야. 온갖 부자연스러운 약물의 힘으로 간신히 붙어 있는 중일세. 이대로 약물에 의지하는 한, 나는 자유로울 수 없어. 내 삶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자네는 그냥 듣고만 있게나.]
나는 헨리에 계획을 반대했다.
나는 자살을 반대하는 사람이었다.
혹시 아는가?
살다 보면 나처럼 후회되는 일을 바꿀 무언가 기적을 만나게 될지.
하지만 헨리에게는 그런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헨리의 유서가 곧 공개되었다.
유서의 내용은 간단했다.
‘민티’는 반사회적인 독약이니 즉각 처분할 것.
민티를 최근에 마신 모든 사람에게 해독제를 건네줄 것.
자신의 회사는 기존에 건강에 미치는 부작용이 검증된 음료수만을 만들 것.
이번 시즌의 글로벌 비전 대회는 책임지고 마무리까지 후원할 것 등등 무거운 내용이 잔뜩 담겨 있었다.
순식간에 사회가 뒤집혔다.
‘마리’는 중독 음료를 판 혐의로 구속되었다.
나는 이미 생각하고 있던 일이지만, 다른 이들은 적잖이 놀랐다.
뉴스를 들은 재호가 고개를 저었다.
“설마. 나는 당연히 실세는 론일 줄 알았어!”
론은 교묘하게 마리에 의해 조종당하는 꼭두각시일 뿐, 실세는 마리였다.
내게 파티 스폰을 제안한 것도 언제나 마리였다.
‘거꾸로 말하자면 론은 내게 회사 스폰을 제안할 만한 실권이 없었다는 거지.’
생각해보면 마리의 파티에는 단순히 연예인만 모이지 않았다.
꼭 고위직 임원들이 vip석에서 그녀와 어울려 놀고 있었다.
그중에는 아마 마리와 결탁해서 악독한 약물을 만들어 민티에 넣은 제약회사 출신 화학자 임원도 있었을 터였다.
그때 마리의 스폰을 받지 않은 것은 정답이었다.
역시나, 수상한 냄새가 나는 곳에 함부로 가면 안 되는구나, 하고 새삼 실감했다.
‘헨리에게 받은 ‘이것’…은 결승에서나 쓸 수 있겠지만 말이야.’
그리고, 헨리의 유서는 또 하나의 나비효과를 만들어냈다.
[민티의 해독제가 회사에 있을 경우, 1달간 대중에게 무료로 공개한다.]
이 내용이 그 시작이었다.
헨리는 이미 마리의 수를 읽었다.
그녀가 회사 내에 해독제를 만들어 두었을 것이라 미루어 짐작하고 있었다.
해독제를 먹으면 민티의 중독 증상이나, 섭식장애 등등을 해결할 수 있다.
문제는 해독제를 먹으면 민티를 많이 먹은 사람일수록 엄청난 구토감을 일정 기간 느낀다는 것이었다.
“우웨에에엑!”
어쩌다 한두 잔만 마신 나와 환희는 잠시 약간의 구토감을 느낀 것으로 마무리했다.
아예 민티를 먹지 않은 재호는 아무 일도 없었다.
하지만 그 외에, 최근 민티가 주최하는 파티에 가서 실컷 민티를 마셨던 사람들은 며칠 동안 앓았다.
그중에는 래퍼 키스도 있었다.
애드리아나가 드라이하게 내게 통화로 전달했다.
-키스, 너무 구토를 심하게 해서 방송 같이 못 하게 됐어요. 저희끼리 해야 해요.
“아이고, 데스티니가 실망이 크겠네.”
-안 커요. 헤어졌거든요. 구토하는 거 보고 정이 떨어졌다나? 그 정도면 그냥 Summer Fling(* 한여름의 짧은 사랑) 정도였던 거겠죠. 왓에버.
“그, 그러냐? 그래도 이미 노래 준비를 다 했을 텐데? 연습에는 차질이 생기지 않았어?”
-그건 아닐걸요? 오히려 평소보다 더 진심으로 준비하는 거 같은데요.
드디어, 루비아이와 비원더의 정면 승부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이제 진짜 승부다.’
* * *
세상을 뒤흔들 스캔들이 있긴 했지만, 우리에게 달라진 점은 별로 없었다.
굳이 말하자면 귀찮은 본사의 PPL 요청이 사라졌다는 점은 오히려 좋았다.
매일같이 마리가 내게 참여를 권유했던 민티의 파티도 사라졌다.
여러모로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된 셈이었다.
비원더는 우선 하우스 밴드 없이, 3명이서 아카펠라 파트부터 세심하게 연습했다.
음 하나라도 틀리지 않도록 철저하게 음정을 맞추었다.
밴드 없이 우리 셋의 목소리만으로 채워야 하는 부분에서는 조금의 어긋남도 허용할 수 없었다.
음이 조금씩 떨어지는 목소리가 하나 들렸다.
환희의 목소리였다.
“환희 너 자꾸 음이 조금씩 플랫 되는데?”
“그래요?”
환희가 ‘우~ 우~’ 소리를 내면서 목소리를 맞춰 보았다.
여전히 조금씩 음정이 어긋나고 있었다.
“너 음정 칼이었잖아? 뭐가 문제일까?”
환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잘 모르겠는데요. 왜 이러지?”
사실 여태껏 환희의 음정이 매우 정확했던 것이지, 지금 환희의 파트는 충분히 틀릴 만한 음이었다.
우리가 화음을 맞출 때면 나는 항상 주 멜로디를 맡았다.
곡의 주요 멜로디기에 딱히 틀릴 구석이 없었다.
재호는 높은 꾸밈음을 부를 때 가성을 주로 쓰거나, 아예 베이스를 맡았다.
가성은 음정을 맞추기가 쉬웠다.
베이스는 진성이지만 특성상 멜로디의 진행이 단순한 편이라 음을 잡기 용이했다.
그에 반해, 환희의 파트는 언제나 난이도가 높았다.
진성을 썼지만, 주 멜로디가 아닌 묘한 꾸밈음이나, 약간 낮은 멜로디를 주로 불렀다.
가장 아리까리한 진행이라는 뜻이었다.
‘당연히 틀릴 만한 파트인데, 지금껏 너무 잘 맞았던 거겠지.’
평소라면 당황했을 터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빅4와 김지태가 나에게 남겨준 아카펠라 매뉴얼이 있었다.
이 매뉴얼에는 음이 잘 안 맞을 때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도 나와 있었다.
“자자. 목 풀어 봐.”
환희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목은 이미 충분히 풀었는데요.”
“아니 목소리 말고, 물리적으로 ‘목’을 풀어 보라고.”
“목을요?”
나는 환희와 함께 쭉쭉 목을 풀어주는 스트레칭을 했다.
내친김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조심스럽게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었다.
그걸 지켜보던 재호는 살짝 투덜댔다.
“이렇게 한다고 될 리가….”
잠시 후, 다시 우리는 연습을 해봤다.
“어?”
환희의 음을 듣던 재호가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신기하게도, 환희의 음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져 갔다.
환희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게 왜 맞죠?”
“그야. 노래도 몸을 써서 하는 거니까. 몸 컨디션이 떨어지면 음도 안 맞지. 요새 우리 너무 강행군을 한 탓에 몸 상태가 많이 안 좋아졌을 거야. 구토감을 유발하는 민티 해독제를 먹기도 했고. 이럴 때일수록 잘 자고, 잘 먹고, 컨디션 조절 잘하자고. 아마 4강부터는 컨디션이 승부를 좌우할 거야. 절대 ‘민티’ 같은 위험한 거 마시지 말고.”
마지막 말에 재호가 빈정거렸다.
“하하. 하나도 안 웃긴다.”
환희가 만족스러운 듯, 몸 스트레칭을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질문했다.
“루비아이는 어떻게 할까요? 피처링 가수가 사라져 버렸는데.”
“글쎄?”
사실 나도 이번만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원래 루비아이는 래퍼 키스의 피처링을 중심으로 강력한 힙합 음악을 하려 했다.
핵심인 키스가 없는 지금, 어떻게 힙합 음악을 할 수 있을까?
‘뭐, 내가 신경 쓸 건 아니지. 나나 잘해야지.’
그 진실은 무대에서 알게 될 터였다.
그리고 드디어 4강전 날이 밝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