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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가왕-271화 (271/280)

제271화

키스(Keith)는 굉장히 강렬한 트랩 힙합 음악을 하는 래퍼였다.

2천 년대 중후반을 강타한 사우스 힙합 래퍼의 정석이라는 느낌이랄까.

데스티니와 키스가 친해진 이유도 짐작이 갔다.

이번 미션에서 아마 루비아이는 새로운 음악을 시도하려 할 터.

힙합을 시도하기 위해 힙합 프로듀서와 함께 래퍼 키스를 데려온 것이라는 짐작이 들었다.

그게 아니면 가뜩이나 바쁜 데스티니가 키스 같은 래퍼를 만날 이유가 없었으니 말이었다.

트렌디한 음악을 하는 키스와 함께 힙합 무대를 만들겠다는 계획은 제법 그럴듯했다.

하지만 연애 상대가 된다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였다.

이스트 웨이브가 말을 이어 갔다.

“나는 알고 있지. 키스는 키스꾼이야.”

“재치 있는 라임이네요. 래퍼다워요.”

이스트 웨이브의 얼굴에는 웃음기라곤 없었다.

“나는 그 녀석이 어떻게 여자를 만나는지 알지.”

“미국 래퍼들은 그루피라고, 한 번이라도 만나려는 여자들이 막 도시마다 줄 서서 기다리고 있다면서요? 그거 아닌가요?”

심지어 비원더에게도 그루피가 생겼다.

우리는 한국 정서상 그런 여자들을 절대 만나지 않았지만, 그루피와 관계를 맺고 다니는 팝 가수들도 제법 있다고 나는 알고 있었다.

이스트 웨이브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여자들 말고. 가수들 말야 가수들. 일단 무조건 마음에 드는 여자 가수랑 피처링을 해줘. 단순히 계약을 맺고 곡을 녹음하는 게 아냐. 자기랑 같이 활동하면 밀어주겠다는 식으로 제안을 하지. 아마 데스티니에게도 비슷하게 접근했을걸?”

“근데 뭐 그건 상관없는 거 아닌가요? 하여튼 어떻게든 잘 만나면 되는 거 같은데.”

“그런 식으로 동시에 여러 명을 만나고 다니면 문제지. 이거 봐.”

이스트 웨이브가 노트북을 꺼내 뭔가를 검색해서 보여주었다.

파파라치들의 사진이었다.

얼핏 봐도 키스는 현재도 동시에 5명은 넘는 여자들과 염문을 뿌리고 있었다.

이스트 웨이브가 말을 이었다.

“이게 전부가 아냐. 키스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여인만 5명이야. 흑인들은 그런 여자를 ‘베이비 마마’라고 부르지. 자기 애를 키우는 여자만 다섯 명이 넘는데 또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거야. 아주 생각 없는 놈이야 이놈.”

“무시무시하군요. 엄청난 정력이에요. 비꼬는 게 아니라, 저는 한 명만 있어도 활동이 어려울 거 같은데.”

하여간 이 업계에는 정말 이상할 정도로 여자를 밝히는 남자가 많았다.

내가 이스트 웨이브에게 되물었다.

“이거, 데스티니한테 말해줘야 할까요?”

“이미 알고 있지 않을까? 키스 주변에 걔가 이러는 거 모르는 사람이 없어.”

“글쎄요. 데스티니가 어떤 사람인지 당신도 잘 알잖아요? 완전 외골수. 그런 거 모를 거 같은데요.”

나는 이스트 웨이브의 노래 피처링하러 갔다가 데스티니를 처음 만났다.

그때의 본 그녀는 노래 외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소녀였다.

왠지 그녀는 이 남자의 실체를 모르는 채로 만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 슬쩍 애드리아나에게 말이나 해볼까?’

마침 연습 시간 외에 아무 일정도 없지만 딱 하나 외부 일정이 남아 있었다.

애드리아나의 식사 약속이었다.

문루아 선배가 나와 애드리아나를 호텔 방에 초대했던 것이다.

* * *

역시나 문루아 선배는 아시아 스타답게 멋진 스위트룸에 묵고 있었다.

문루아가 룸서비스로 시킨 고급 음식을 숙소 탁자에 펼쳤다.

‘애드리아나도 그렇고, 팝스타는 다 이렇게 하나?’

아무래도 워낙 사진을 찍으러 돌아다니는 파파라치도 많고, 경호 문제도 있고 하니 그냥 집에서 먹는 걸 선호하는 모양이었다.

나만 해도 슬슬 외식이 어려워질 터였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문루아는 애드리아나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다 나에게 말을 돌렸다.

“들었어요?”

“아, 뭘요?”

문루아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안 들었군요? 이제 팝 스타라고 선배 무시하는 거예요?”

내가 대답했다.

“그럴 리가요….”

“누가 이기든 결승 무대는 꼭 보고 싶다고 말했어요. 결승, 뉴욕에서 열리죠?”

“네.”

“제 지인이 글로벌 비전 결승까지 가다니. 놓칠 수 없죠. 꼭 갈게요. 특히, 비원더에 고마워요.”

“네, 저희에게요? 왜요?”

“아시아인은 안 된다는 선입견을 깨줬잖아요. 저도 미국 진출 실패한 게 한이었는데. 덕분에 어느 정도 마음이 풀렸어요. 고마워요.”

내게 말하는 문루아의 눈빛이 깊어졌다.

건조한 말투였지만 미국에서 그녀가 얼마나 고생했었는지가 눈빛으로 다 전달되었다.

그녀가 내게 미소 지으며 나를 격려했다.

“앞으로 어떻게 되든 미국 시장에서 활동할 수 있을 거예요. 멋지게 보여줘요.”

그녀 몫까지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시금 다짐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가수 3명이 함께 식사하다 보니 화제가 자연스럽게 음악으로 넘어갔다.

어차피 준결승쯤 되면 같이 하는 녹음이 너무 많아서 곡 컨셉을 숨기려고 해도 숨길 수가 없었다.

나도 루비아이가 힙합 컨셉을 한다는 걸 알고 있었고, 루비아이도 우리가 아카펠라 컨셉을 준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애드리아나가 나를 쳐다보며 내게 질문했다.

“아카펠라 컨셉은 잘돼요?”

“우리는 맨날 하던 거니까 그렇지 뭐. 어쩌다 보니까 이번 글로벌 비전에서는 준결승까지 한 번도 안 했지만. 익숙한 거라 아무래도 마음은 편해. 너는 어때? 완전 강렬한 힙합 한다며?”

문루아가 휘파람 부는 소리를 냈다.

“와… 힙합을 해요? 갑자기? 멋진데요.”

애드리아나는 정작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저는 그냥 하자는 대로 할 뿐이에요.”

"그럼 또 어머니가?”

애드리아나가 눈을 감더니 고개를 가만히 가로 저었다.

“이번에는 데스티니 언니가 주도하는 거예요. 부모님은 지금도 싫어하죠. 키스를 데려온 것도. 프로듀서로 스윗 치킨 파이를 데려온 것까지 모두 데스티니 언니 아이디어예요.”

아하.

애드리아나의 말을 듣고 보니 루비아이 팀의 내부 상황이 이해되었다.

평소에는 데스티니의 부모는 루비아이 주도권을 잡고 놔주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평소와 다른 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이번 미션이기 때문.

그래서 데스티니는 ‘평소에 부모님 위주의 무대가 아니라, 내 마음대로 해보겠다.’며 자연스럽게 전권을 잡았을 것이다.

그동안 부모의 방식에 쌓인 응어리도 많았을 테고 말이다.

“솔직히 노래 너무 좋던데? 트렌디하고. 여지까지 루비아이 음악보다 빌보드에서 더 잘 먹힐 거야.”

내 말에 애드리아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하지만 키스. 그 사람은 마음에 안 들어요.”

“아, 설마 너도? 키스에 대해서 아니?”

문루아가 무슨 소리냐는 듯 나를 살짝 노려보더니 말했다.

“여자들이 바보예요? 데스티니도 키스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만나는 거예요.”

“왜요?"

“데스티니가 원하는 무언가를 그 남자가 주나 보죠.”

애드리아나는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머리를 흔들었다.

“하여튼 저는 그 남자 마음에 안 들어요. 데스티니의 엄마 아빠도 키스를 정말 증오해요. 솔직히 저도 이번에는 그 사람들 말이 맞다고 생각해요.”

내가 애드리아나에게 물었다.

“그럼 네 의견을 데스티니한테 말해봤어?”

“말했죠. 근데 안 듣는 거죠.”

문루아가 말을 거들었다.

“그 정도면 자기가 직접 한 번 겪어봐야죠. 어떻게 할 수 없어요.”

“그래. 뭐 네가 말해서 말인데, 이스트 웨이브도 키스가 힙합신에서 소문이 안 좋다 그러더라고.”

“뭐 거기만 그러겠어요?”

애드리아나가 태연하게 대답하면서 스테이크를 먹었다.

나는 머릿속으로 이 상황이 비원더에게 유리한 건지 불리한 것인지를 슬쩍 계산해보았다.

좀 계산적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할 수 없었다.

‘…뭐 나는 애드리아나랑 친구지. 데스티니랑은 잘 모르는 사이긴 하니까.’

* * *

밥을 먹고 돌아와 보니 그사이 재호와 환희는 하우스 멤버들과 함께 아카펠라 곡을 완성해놓은 상태였다.

이후 나는 외부 활동은 줄이고, 노래 연습에 전념했다.

벌써 4강전, 이제 결승전까지 마지막 스퍼트를 내야 할 시점이었다.

후회를 남기고 싶지는 않았다.

그에 반해, 루비아이는 상당히 여유로웠다.

아니, 정확히는 ‘키스’가 여유롭다고 해야겠다.

분명 루비아이의 곡에 피처링하기로 했는데 연습은 아예 뒷전이었다.

대신 키스는 데스티니와 몰래 데이트하거나, 마리가 주최하는 런던의 파티에 빠짐없이 참여하며 시간을 보냈다.

민티가 주최하는 파티에 꾸준히 참여해서 그런지, 주최 측인 론과 마리 또한 오히려 루비아이와 비원더보다는 키스를 더 우대하는 느낌도 들었다.

‘하긴 뭐 스폰서 입장에서 실제 등수는 아무 상관 없지. 자기 음료수 잘 홍보해주는 가수가 장땡이지.’

하지만 나는 더더욱 스폰서가 주최하는 행사와는 거리를 두고 연습에 집중했다.

이번 곡은 반주가 거의 없이, 아카펠라로 승부하는 곡이라 비원더 멤버 3인의 연습량과 합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따르릉~!

민티의 창업주이자 론과 마리의 할아버지인 헨리가 다급하게 전화를 걸어왔다.

헨리 이 사람과는 본선이 시작했던 시점에 남아공에서 한 번 본 이후로 연락이 끊겼다.

90이 다 돼가는 나이에도 글로벌 기업을 주도적으로 운영하는 사람이니 바쁠 거로 생각했지.

그토록 바쁜 사람이 내게 갑자기 몇 달 만에 연락을 해왔다는 것은 뭔가 중요한 용무가 있다는 뜻이었다.

그의 메시지도 매우 다급했다.

-지금 당장, 민티 런던 지사로 와주게. 가능한 빨리!

‘역시나.’

* * *

배영웅 실장에게 부탁해서 함께 민티의 런던 지사에 도착했다.

으리으리한 빌딩이었다.

헨리의 초대라고 말하자 종업원이 다급히 우리를 펜트하우스로 안내했다.

다만 이번에는 배영웅 실장은 들어올 수 없었다.

나 혼자만 들어갈 수 있었다.

펜트하우스에 들어가 보니 검은 정장 차림의 헨리가 굳은 표정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왔나?”

“무슨 일이십니까?”

“……론이 쓰러졌네.”

“네?”

“오늘 새벽에 숙소에서 쓰러진 채로 발견되었네.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상당히 건강이 망가진 상태라고 하더군.”

어쩐지, 매번 민티 캔을 벌컥벌컥 마시던 폼이 심상치 않아 보이더라니.

“의사는 뭐라 하던가요?”

“뭔가에 중독된 거 같다고 하는군. 근데 그게 뭔지는 모르겠다 하네. 성분은 아는데, 그게 대체 어디에 들어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군. 그래서 내가 자네를 부른 걸세.”

‘뭔가에 중독? 설마….’

내가 헨리에게 되물었다.

“저를요? 아니, 대표님이신데. 그렇게 회사에 사람이 많은데 왜 굳이 저를….”

헨리가 고개를 저었다.

“이건 내부에서 생긴 문제네. 오히려 우리 집안사람은 절대 알아선 안 돼. 지금 자네를 부른 것도 절대 비밀일세. 그나마도 자네는 우리 글로벌 비전에 참여하는 가수니까 이렇게 만나도 어색하지 않아서 자네를 부른 걸세.”

“저는 그래 봐야 가수인데요? 셜록 홈즈 같은 탐정도 아니고.”

헨리가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니까 좋지. 마음대로 우리 집안을 탐색할 수 있으니. 게다가 우리 회사가 주최했던 파티에도 참석하지 않았고 말일세.”

아하.

그제야 저 어르신의 의도를 좀 알 것 같았다.

저 사람은 집안 내부를 의심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자신의 회사 자체를 의심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그래서 민티와 관계를 맺고 있지만, 절대 그들의 편이 아닌 나의 도움이 필요했다.

“알겠습니다. 한번 알아보죠.”

* * *

빌딩을 나가,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배영웅 실장이 운전하는 차에 탔다.

차에서 나는 일급비밀이라는 전제하에 배영웅에게 모든 정보를 알려 주었다.

배영웅이 침을 꿀꺽 삼켰다.

“글로벌 기업 오너가 굳이 외부인 도움을 받으려는 거라면 되게 큰 문제 아닌가요?”

“맞습니다. 사실 대충 무슨 내용인지도 짐작이 가요.”

대책도 이미 세워 두었다.

나는 핸드폰을 들어 천채왕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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