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왕-270화 (270/280)

제270화

그러고 보니 다른 인터뷰들도 모두 의심이 들었다.

특히, 데스티니가 모든 곡을 다 쓴다는 인터뷰를 재호가 문제 삼았다.

“야 루비아이 노래 들어 봤어? 이건 데스티니 같은 20대 초반이 쓸 수 있는 곡이 아니야. 나도 이런 건 못 써.”

“하긴.”

루비아이의 곡들에는 60, 70년대 모타운 걸그룹의 향취가 제대로 느껴졌다.

게다가 어마어마하게 화려한 코드 진행과 리듬감이 핵심 포인트인 음악들이었다.

20대 초반의 보컬리스트가 노래를 병행하면서 만들 수 있는 곡은 아니었다.

어마어마한 내공과 경력을 가진 음악 전문가들이 온 힘을 다해 만든 음악이었다.

“근데 뭐 멜로디를 만든다거나 하는 건 할 수 있는 거 아냐?”

재호가 고개를 저었다.

재호는 프로듀서였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크레딧 분배에 까다로웠다.

밴드 마스터나 조민하 선배가 쓴 곡은 모두 철저하게 권리를 배분했다.

재호의 기준에서 데스티니의 인터뷰에는 크나큰 문제가 있었다.

“마치 자기가 곡을 다 쓴 것처럼 인터뷰를 했잖아. 이건 범죄야 범죄. 어차피 멜로디를 감각적으로 만드는 건 누구나 할 수는 있는 거고 편곡은 누군가 도움을 받는 건데 그걸 이렇게 적당히 다 자기 거라고 치면 어떻게 하냐구.”

“이게 과연 데스티니가 한 인터뷰일까?”

재호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럼 본인 인터뷰인데 누가 해?”

나는 애드리아나의 인터뷰를 떠올렸다.

‘애드리아나가 과연 자신이 패션 디자이너라고 속이고 싶을까? 옷에 아무 관심도 없는 애가?’

그녀의 뒤에 누군가 흑막이 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었다.

아마도, 데스티니의 엄마겠지.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배영웅 실장이 내게 슬쩍 다가와 어떤 소식을 전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의외의 좋은 소식이었다.

바로 애드리아나에게 통화했다.

마침 그녀에게 전할 소식도 하나 있었고, 무엇보다 궁금한 점이 많았다.

-뭐예요 오빠.

“조금 전에 우리 회사 매니저에게 연락받았는데. 문루아 선배가 런던에 오시겠데.”

-와! 언니가요? 왜요?

“우리 대회 보러 오신데. 지인이 두 명이나 세계 대회 4강까지 왔다는 게 자랑스럽다면서.”

-언니답네요. 언니가 보는 곳에서는 절대 안 질 거예요.

“그래라.”

나도 호락호락하게 질 생각은 없었지만 말이다.

-내가 언니랑 같이 갈 만한 레스토랑 목록 공유해 줄게요. 그중에 루아 언니가 가고 싶은 데서 밥 먹어요.

“오케이.”

-용건은 그게 전부예요?

사실 그 외에도 물어보고 싶은 말이 하나 있었다.

“네가 디자인했다는 브랜드 런칭 인터뷰 봤는데.”

-악!

애드리아나의 반응이 시작부터 심상치 않았다.

“너 옷 디자인도 할 줄 아니? 그건 처음 알았네?”

-쉬잇! 닭살 돋으니까 그만 말해요. 주변에 아무도 없죠?

“숙소야. 멤버들하고 실장님? 다 믿을만한 사람이야.”

애드리아나가 한숨을 푹 쉬더니 비밀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역시나 가짜 인터뷰는 데스티니의 엄마의 소행이었다.

그녀는 리얼리티쇼의 인기를 위해 멤버들이 옷 디자이너고, 작곡과 작사까지 모두 도맡아 하며, 앨범 커버까지 제작하는 다방면의 천재라고 포장하길 바랐다.

그래서 멤버들을 아주 조금씩 일에 참여시켰다.

물론 실제 일은 다 전문가가 했지만, 일의 모든 공로를 다 멤버들에게 돌렸다.

-그게 전부가 아니에요. 연애도 유명인하고만 하라고 간섭하고. 식사도 PPL에 돈을 낼 의향이 있는 브랜드 음식만 먹어야 할 판이고요.

심지어 루비아이의 음악 또한 오로지 부모들의 취향인 모타운 음악만 했다.

삶의 모든 부분을 부모가 간섭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런 식으로 일일이 간섭받으면서 제대로 활동이 되겠어?”

-몰라요. 어떻게든 되겠죠.

애드리아나는 최대한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도 그녀의 목소리에는 울분이 느껴졌다.

뭔가, 폭발 직전이라는 느낌이었다.

‘이거 아무래도 이렇게 가다간 내부에서 문제가 터질 거 같은데?’

* * *

루비아이에 무슨 문제가 있든 간에, 일단은 내 무대부터 챙겨야 했다.

상대가 누구든 우리 최고의 무대를 보여줘야 하는 의무가 있었으니까.

이번 무대 미션은 ‘지금까지 우리와는 다른 새로운 모습’이었다.

나는 그 해답을 ‘본질’에서 찾았다.

“지금껏 우리는 너무 매번 새로운 무대를 보여 줬어.”

내 말을 들은 환희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네요. 매번 우리는 상대를 분석해서, 맞춤 무대를 준비해오는 방식을 썼어요. 우리만의 음악을 하기보다는 점수를 받기 위한 노래를 한 거죠. 슬슬 지칠 때가 됐어요.”

“맞아. 그것도 한두 번이지. 이번에는 진짜 정통 비원더 음악으로 가보면 어떨까? 역발상으로 가보는 거야.”

환희가 팔짱을 끼고는 고민에 빠졌다.

“정통 비원더 음악이 뭘까요?”

우리의 본질은 무엇일까?

나는 ‘시작’에서 그 본질을 찾았다.

우리 셋이 오디션에서 맞춰본 스티비 원더라는 ‘공통점’.

그 공통점을 찾은 순간이 바로 비원더의 시작이었다.

스티비 원더의 음악을 아카펠라로 부르던 그 순간을 떠올려보니 어떤 노래를 해야 할지 바로 떠올릴 수 있었다.

그래서 글로벌 비전 본선 직전 우리를 가르쳐 준 아카펠라 그룹 빅4를 부르기로 했다.

제대로 된 아카펠라 그룹의 알앤비를 보여 주기 위해서였다.

서둘러 배영웅 실장을 통해 빅4를 런던에 초청했다.

다행히도 빅4는 흔쾌히 우리의 초청을 받아들였다.

재호가 빅4를 보자마자 감사를 표현했다.

“덕분에 음악이 끊어지는 돌발상황에도 잘 대처할 수 있었습니다. 그게 아니면 절대 우리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거예요.”

빅4의 베이스가 손을 저었다.

“무슨 말씀을, 모두 비원더 실력이에요. 4강이면 저희보다 더 높게 올라온 거잖아요? 이제 두 번만 더 이기면 우승입니다. 제가 다 떨리네요.”

내가 나서서 말을 이어갔다.

“맞습니다. 그래서 빅4의 도움이 필요해서 이렇게 도움을 부탁드렸습니다. 이번에 저희가 아카펠라를 해보려 하거든요.”

‘아카펠라’라는 말이 나오자 빅4의 눈빛이 달라졌다.

내가 빅4의 멤버 한 명 한 명과 일일이 눈을 맞추며 부탁했다.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아카펠라 음악을 해보고 싶습니다.”

아카펠라 특훈의 시작이었다.

* * *

우리는 빅4와의 아카펠라 트레이닝에 모든 힘을 쏟았다.

하지만 그게 우리가 할 일의 전부는 아니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패라고, 그래도 상대를 분석할 필요는 있었다.

밤마다 우리는 루비아이의 리얼리티쇼 ‘루비아이즈’를 봤다.

혹시나 루비아이에 대해서 더 잘 알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방송을 보고 나니 비로소 루비아이의 인기를 제대로 실감할 수 있었다.

애드리아나의 말대로 루비아이의 인기의 비결은 글로벌 비전보다는 리얼리티쇼 ‘루비아이즈’였다.

매주 ‘루비아이즈’를 통해 전 세계의 시청자들이 루비아이의 사생활을 즐겼다.

SNS가 없었던 2007년에, 루비아이즈는 일종의 인스타그램 셀럽이었던 셈이다.

처음에는 우리 멤버들도 욕하면서 이 프로그램을 봤다.

특히 데스티니의 부모들이 돈 욕심으로 만든 방송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런데 이게 또 보면 볼수록 빠져들게 만드는 재미가 있었다.

나중에는 루비아이가 우리의 다음 라운드 상대라는 걸 잊어버리고 멤버들 모두 진심으로 즐기면서 ‘루비아이즈’를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오늘 밤에는 엄청나게 안타까운 공지가 올라왔다.

<제작진 사정으로 오늘 ‘루비아이즈’는 결방합니다.>

나도 모르게 티비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뭐야! 지난주에 애드리아나가 회사랑 신상품 가격 책정 가지고 싸웠었는데. 떡밥 회수는 어떻게 하고?”

재호가 내게 핀잔을 줬다.

“뭔가 일이 있나 보지. 준결승도 코앞이잖아?”

“글쎄… 뭐. 어쨌든. 어차피 오늘 ‘루비아이즈’도 없는데 한번 외식이나 나갈까?”

갑자기 먹성이 많은 편인 환희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럴까요?"

사실 런던은 최고의 미식 도시였다.

영국 음식은 맛없기로 악명이 높았지만, 그런 만큼 영국은 전 세계의 맛있는 음식들을 자기 도시로 가져왔다.

나는 이전에 애드리아나가 줬던 추천 레스토랑 리스트를 확인했다.

“그리스 요리. 인도 요리… 뭐 다 맛있었는데. 왠지 이런 거보다 쌀밥 먹고 싶지 않냐? 인도식 말고 한국식 쌀밥.”

재호가 내 말을 듣고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말했다.

“그럼 갈 곳은 한 곳뿐이지.”

* * *

우리는 경호 인력을 대동하고 ‘뉴 메이플라워’로 향했다.

최대한 유명인 티를 내지 않고 레스토랑에 입장했다.

다행히 누구도 우리를 알아보는 것 같지는 않았다.

우리는 조용히 VIP들이 주로 이용하는 좌석으로 들어가, 베이징 덕을 주문해서 찬찬히 먹었다.

입에 넣자마자 살살 녹는, 멋진 요리였다.

거기다가 곁들인 볶음밥도 끝내주는 맛이 났다.

환희가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날렸다.

“야 이거 진짜 맛있네요!”

요리를 먹고 있는데, 환희의 목소리를 듣고 우리를 쳐다본 옆 탁자의 누군가와 눈을 마주쳤다.

‘설마…? 에이. 설마….”

나는 다시 음식에 집중했다.

그런데, 옆자리의 여성이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자꾸 나를 보고 있는 모습을 보다 보니, 처음의 내 의심이 점차 확신으로 변했다.

“…데스티니?”

“노엘…! 역시나. 방금 그 목소리는 미스터 주지?”

루비아이의 메인 보컬이자 핵심인 데스티니가 바로 우리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하긴 생각해보면 애드리아나가 준 레스토랑 리스트에 있는 음식점이었으니 같은 팀 멤버인 데스티니가 아는 곳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설마 이렇게 만날 줄이야.’

내가 그녀에게 되물었다.

“근데 왜 굳이 위험하게 레스토랑에 혼자 왔어요?”

“혼자는 아닌데.”

그러고 보니 데스티니 옆에 머리를 민 흑인 남성 한 명이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저 사람은….

데스티니가 내게 그를 소개했다.

“키스예요. 여긴 비원더의 노엘, 재호, 미스터 주.”

키스가 쿨하게 눈인사를 했다.

뭔가 했더니, 두 사람이 데이트를 위해 몰래 레스토랑으로 놀러 온 모양이었다.

“네… 좋은 시간 되세요.”

그와 이야기를 마무리한 후, 다시 음식에 집중했다.

두 사람이 만나든 말든 딱히 우리가 상관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만남은 더 큰 태풍의 전조일 뿐이었다.

* * *

다음 날 아침, 이스트 웨이브가 우리 연습실에 놀러 왔다.

손에는 제작진이 쥐여 줬는지 ‘민티’ 캔을 들고 있었다.

나는 장난스럽게 이스트 웨이브를 놀렸다.

“심사위원이 참가자 연습실에 놀러 오면 공평성 논란 생기는 거 아니에요?”

이스트 웨이브가 씨이익 미소를 지으며 내 장난을 받아쳤다.

“바네사가 루비아이에게 갔어. 되려 너희가 더 불리한 거야. 심사위원장은 바네사니까.”

이스트 웨이브는 들어오자마자 주변을 돌아봤다.

“무대 준비는 잘 되나?”

“뭐 나쁘지 않아요.”

“컨셉은 뭐야? 물어봐도 돼?”

연습실에는 나 혼자뿐이었다.

재호와 환희는 빅4와 하우스 밴드와 함께 곡 작업을 녹음실에서 진행 중이었다.

나는 곡을 만드는 기간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으니 대신 노래 연습에 전념하는 중이었다.

‘뭐. 우리 컨셉은 어차피 알려질 테니까.’

“아카펠라 해보려고요. 완전 정통 알앤비로.”

“맘에 드네. 그러고 보니 비원더는 본선 시작되고 한 번도 정통 아카펠라 발라드를 한 적이 없네? 한국 예선 때는 했었지만. 좋기는 하지만 좀 생각해야 할 게 있어.”

이스트 웨이브는 프로듀서 입장에서 아카펠라가 오디션 무대에서 적합하지 않은 이유를 조목조목 알려주었다.

“음악이 너무 단순해질 수가 있어. 그러면 지루해져. 그렇다고 아카펠라 특유의 기술적인 요소를 너무 많이 넣으면 대중음악이 아니라 팝이 돼버리지. 이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게 쉬운 게 아니야. 나도 그래서 앨범에서 함부로 아카펠라를 쓰지 못하고 말이야.”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이었다.

현대 대중음악에서 가수들이 아카펠라를 별로 하지 않는 것에는 이유가 있으니 뭔가 대중성을 더해야 한다는 충고였다.

그러면서도 너무 복잡해지면 대중이 이해하기 어려워졌다.

‘쉽지 않은 일이군.’

멤버들과 회의를 더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녹화가 끝났다.

카메라가 철수하자 이스트 웨이브가 먹다 남은 민티 캔을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내가 물었다.

“저래도 돼요?”

“이상하게 저 음료수. 내 몸에 안 받아. 요즘은 어때? 런던은 좀 봤나?”

“네, 뭐 기회가 되는 대로.”

이스트 웨이브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띠었다.

“그럼 그 소문도 알겠군?”

“무슨 소문이오?”

“키스 말야 키스. 키스랑 데스티니가 그렇게 런던 시내에서 돌아다닌다더군. 둘이 애인이라며.”

“그런가요?”

나는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뗐다.

그런데 그다음에 이스트 웨이브가 한 말이 좀 재미있었다.

“키스 그 녀석 쓰레기잖아. 루비아이에게는 위기인데. 그러면 비원더에게는 희소식인가?”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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