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8화
“…술 마셨나요?”
“네 마셨습니다.”
“술 마시고 바로 사우나 가는 건 위험해요. 앞으론 하지 마세요.”
관인이 장난스레 웃으며 대답을 회피했다.
“엄마 같네요!”
나는 관인의 치명적인 결점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관인은 술을 너무 좋아했다.
지금도 새벽부터 술에 거나하게 취한 채로 목욕탕에 왔다.
여기서부터 이미 제정신은 아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이 녀석, 지금도 품에 안고 온 보온병에서 뭔가 투명한 액체를 꺼내 홀랑 마시고 있었다.
아무래도 맹물이 아니라, 사케 같았다.
이건 술을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알콜 의존증이 의심되는 수준이었다.
‘그러고 보면 저 녀석이 쓴 노래란 노래마다 ‘drunk’(취하다)란 말이 나왔었지.
노래를 들었을 때는 그냥 시적인 표현이겠거니 하고 생각했었다.
사랑에 취했다, 음악에 취했다.
뭐 그런 말 많이 쓰니까.
하지만 지금 다시 보니 저 가사는 자신의 정신 상태를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었다.
‘저런 정신 상태를 가지고 여지까지 대체 어떻게 오디션을 치렀지?’
* * *
녹음실에서 연습 중인 우리에게 느닷없이 불청객이 찾아왔다.
글로벌 비전 대회를 운영하는 스폰서, 론이었다.
“PPL 타임이다.”
그가 불쑥 우리 비원더 3인에게 민티를 한 박스 내밀었다.
내가 되물었다.
“뭘 어쩔까요?”
“마시면서 연습해.”
“아, 예….”
미국 임원들은 다 이렇게 말투가 고압적인가?
여하튼 카메라가 이 내용을 찍지 않는 것을 보니, 방송으로 나가면 안 되는 내용이긴 한 모양이었다.
론이 빈정대며 말했다.
“8강은 일본인데. 베이즈 녀석들이 8강에 진출했으면. 민티 PPL 대박이 났을 거야. 네놈들이 떨어뜨렸으면 그 벌충을 해줘!”
‘한국 가수가 어떻게 일본 시장 PPL을 벌충합니까.’
속으로는 별생각이 다 들었지만 꾹 참았다.
우리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민티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번 무대 컨셉은….”
“볼륨이 좀 안 맞는 거 같은데… 밸런스를 조절하려면….”
동선부터 볼륨 조절까지, 이번 8강 무대에 대해 디테일하게 논의했다.
‘이런 재미없는 회의를 하는데 민티 음료를 깔아놓은들 민티 홍보에 도움이 되려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회의를 진행했다.
회의를 진행하는 동안, 론은 카메라 바깥에서 민티를 쭉쭉 마시면서 우리를 지켜봤다.
우리가 보기에 이미 10캔은 너끈히 비운 것 같았다.
잠시 녹화를 중지한 쉬는 시간에 내가 슬쩍 재호에게 속삭였다.
‘론 저 사람 대체 몇 잔을 마시는 거야? 1.5리터… 아니. 2리터는 마신 거 같은데?’
재호도 론을 힐끗 쳐다보며 내게 대답했다.
‘저 정도면 물도 못 마시겠는데.’
아무래도 저 사람, 뭔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닌 것 같았다.
관인은 매일 꼭두새벽부터 술을 마시질 않나. 누구는 탄산음료를 한 자리에서 10캔씩 비우지를 않나, 뭔가 주변에 죄다 중독자만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녹화가 끝나자, 론이 만족스러운 듯 다 마신 캔 하나를 구기며 우리에게 칭찬했다.
“그래, 하니까 잘하네! 다음부터는 시키지 않아도 잘 해달라구.”
할 말을 끝내고 건물을 나가려는 론에게 내가 슬쩍 쏘아붙였다.
“민티 말고 다른 음료에 중독되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론이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민티에도… 중독되면 원칙적으로는 안 되지. 뭐 나야 고맙지만. 그게 다른 음료면 더더욱 용서할 수 없고.”
“그게 말이죠. 다른 음료를 너무 지나치게 많이 마시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말하면서 내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 * *
그날 밤, 슬슬 잠을 자려는 자정쯤에 누가 과격하게 숙소 문을 두드렸다.
“뭐야?”
혹시 몰라, 배영웅 매니저를 호출했다.
잠시 후, 문밖에서 배영웅 매니저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태 확인했습니다. 열어주세요.”
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배영웅 매니저와 관인이 서 있었다.
느닷없이 관인이 내 방으로 들어와 내게 따졌다.
“너 무슨 짓 한 거야?”
“깜짝이야. 이 늦은 밤에 무슨 일이죠? 들어오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관인은 내 말은 아예 무시한 채로 내 호텔 방에 불쑥 들어와 거실 소파에 앉았다.
소파에 앉자마자 관인은 끝도 없이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대체 뭘 어떻게 한 거야? 갑자기 제작진이 왜 내 술을 다 빼앗는 거지? 난 술 없이는 잠도 한숨 못 잔다고. 아니 애초에, 술도 안 마시고 잠드는 사람도 있나? 그런 놈이 예술가야?”
배영웅 매니저가 관인을 뒤따라 들어왔다.
나는 가볍게 작은 한숨을 쉬고는, 문을 닫고 관인 앞에 자리 잡았다.
“무슨 일 있으셨나요?”
“갑자기 방송국에서 내 술을 압수하기 시작했어! 물어보니까 네가 불었다는데.”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방송해야 하는 사람이 방송을 술 마시고 하는 게 정상은 아니죠. 저는 그냥 염려되어 한 말이에요.”
“뭐를?”
“둘 다요. 방송도. 당신 건강도.”
“술 없이 어떻게 잠을 자? 잠을 못 자는데 무슨 건강이야. 빌어먹을!”
관인이 갑자기 주머니에서 민티 캔을 꺼내더니 벌컥벌컥 마셨다.
과연 ‘PPL은 저래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정도로 맛깔 나는 먹방이었다.
아직 먹방이 없던 시절이란 게 문제지만.
민티를 다 마신 관인이 내게 애원했다.
“제발! 그냥 철회해 줄 수 없어?”
“제가 말을 철회한들, 이미 당신이 매일 술을 마신 채로 방송한다는 걸 방송국이 알아 버렸는데 무슨 소용이에요?”
관인이 악을 썼다.
“뭔가 방법이 있겠지! 무엇이라도!”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방법은 딱 하나에요. 술 안 마시고 제정신으로 잠드는 거. 아니, 정 잠이 안 오면 종합 감기약이라도 하나 먹고 자요. 뭐가 문제예요?”
글로벌 비전에 참여하면서 급격히 시차에 적응해야 할 일이 많아졌다.
종합 감기약을 먹으면 비상 상황에서 잠이 솔솔 왔다.
시차 적응의 꿀 팁 중 하나였다.
‘뭐, 저 녀석이라면 혹시 감기약으로 이상한 마약을 제조해 내서 마시는 건 아니겠지?’
걱정스럽게 관인을 쳐다봤다.
관인이 온몸을 부르르 떨며 나를 노려봤다.
“그 녀석들… 그 자식들이 나를 감시하고 있어.”
“누구요?”
그건 또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정부 말야 정부!”
“아, 난 또.”
사실 관인은 지금 정부가 대신 프로듀싱해주는 기획사나 마찬가지였다.
마치, 나와 소속사의 관계와 비슷했다.
“그야 정부랑 같이 협업하니까 당연한 거 아니에요?”
“그놈들이 나를 구속한다고. 나는 빠져나올 수 없어…. 영원히….”
관인의 말은 좀 횡설수설했지만, 대충 느낌은 이해가 갔다.
정부는 관인을 어떻게든 성공시키려 했다.
정확히는 성공하게 만든 후 자신의 나라에 묶어 두려고 구속하려는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관인은 자기 주변의 모든 사람이 담합해서 자신이 해외에 도피하지 못하도록 감시한다고 하소연했다.
“그야말로 빅 브라더지. 조지 오웰이 만든 1984 지옥이 멀리 있는 게 아니야. 그러니 내가 어떻게 제정신으로 살겠어? 내 인생이 트루먼 쇼인데. 지금도 간신히 정부 사람들 눈 피해서 온 거야.”
뭐, 약간은 피해망상도 있겠지만 그래도 관인의 심정에도 공감이 갔다.
그는 지금 자신 주변의 모든 것이 갑갑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보기에 그에게는 해결책이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
내가 그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말했다.
“그렇게 이 나라가 싫어요?”
“그래!”
“그럼요 이번 무대가 당신의 탈출구에요 무대를 열심히 준비해요.”
관인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말이지?”
* * *
그리고 미디어 데이 날이 되었다.
인터뷰에 응해야 할 관인이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스웨덴 정부 요원들이 사색이 된 채로 관인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본 배영웅 매니저가 슬쩍 농을 던졌다.
“뭔가 문제가 생겼나 보네요. 대회 때도 이러면 우리가 부전승할 텐데.”
내가 배영웅 매니저에게 말했다.
“그렇게는 안 될 겁니다.”
나는 관인이 어디 있는지 대충 감이 왔다.
미도리에게 연락을 걸었다.
“…미도리, 네네. 노으루 입니다…. 미디어 데이 끝나고 부탁이 하나 있는데요. 폭주족분들하고 연결 좀 해주세요,”
* * *
오사카 근교의 한 사찰.
그곳에는 관음상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그 관음상에는 한 백인이 서 있었다.
내 예상대로 그는… 관인이었다.
나를 쳐다보더니 관인이 묘한 미소를 지었다.
“여길 어떻게 왔지?”
“‘관인’. 그건 ‘관세음보살’이라는 뜻이잖아요? 오사카 근처에 관세음보살상이 있는 사찰을 찾아보니 금방 나오던데요. 당신이 있을 곳은 여기밖에 없었어요.”
미도리의 동생이 ‘폭주족’과 연관이 있었기에 더욱 찾기 쉬웠다.
이곳 지리를 워낙 잘 알고 있었던 덕에 금방 나를 이곳으로 데려다주었다.
관인이 헛웃음을 날렸다.
“뭐야! 듣고 보니 별것도 아니네. 근데 왜 왔어?”
“되려 제가 묻고 싶은 말이에요. 미디어 데이에 왜 안 오셨죠?”
“가봤자 거짓말만 해야 할 뿐이야. 언론이 원하는 건 뻔해. 스웨덴 정부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어떻게 보답할 겁니까? 스웨덴의 교육 시스템이 그렇게 훌륭하다는데 사실입니까. 이 대회가 끝나면 스웨덴에 어떻게 공헌할 겁니까? 문장마다 스웨덴. 스웨덴. 스웨덴!”
사실, 내가 보기에 관인은 스웨덴 정부의 노력의 결과물이 맞았다.
하지만 때로 사람은 진실에 물리기도 하는 법이다.
가끔은 진실을 아예 외면하고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믿고 싶어지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서 도망쳤군요.”
“무대는 참여할 거야. 네 말대로…. 네 조언. 제법 쓸 만하더군.”
“준비가 다 됐나 보죠?”
"그래.”
“그거 잘됐네요.”
나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만약 그의 ‘준비’가 완성되었다면….
그는 우리를 절대 이길 수 없었다.
* * *
드디어 무대 당일.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무대를 준비했다.
어째 우리보다 밴드 마스터가 더 떨려 보였다.
“이렇게 내 솔로가 음악의 중심인 건 글로벌 비전에서도 처음이다! 와… 이런 영광을 내가 누려도 되나?”
내가 슬쩍 장난을 쳤다.
“아니, 30년 차 경력의 대한민국 최고의 키보디스트가 무슨 말씀이세요?”
밴드 마스터가 호통을 쳤다.
“마! 그건 한국이고. 이건 글로벌 비전 아이가. 글로벌 비전. 세계 최고의 무대라고! 그곳에서 내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다니 참.”
바로 그거다.
이 무대에 대한 감사함, 우리의 상대인 관인에게는 그것이 없었다.
그리고 그 차이 때문에 우리는 오늘 질 수가 없었다.
벌써 우리가 공연해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
이번 연주는 밴드 마스터의 신시사이저 연주를 중심으로 만든 가벼운 팝 음악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수준이 낮다는 뜻은 아니었다.
되려, 팝적이었기에 재호의 유려한 편곡이 더 돋보일 수 있었다.
내 피날레 고음에 맞춰 재호와 환희가 화음을 뿜어냈다.
[이제 하나가 돼~ 에에에~]
화음을 같이 맞출 때의 일체감은 정말 짜릿했다.
관객들의 반응도 점점 뜨거워졌다.
“우와아아아아!”
“노을 오빠 멋있어요.”
“외모 신동 원재호!”
게다가 이번 공연 장소는 오사카였다.
한국 바로 옆이란 것이다.
오랜만에 한국 부근에서 하는 공연에 한국 팬들도 대거 방문했다.
팬들 덕분에 더더욱 큰 감사를 느낄 수 있던 무대가 되었다.
‘이런 큰 기회가 오더라도, 그걸 즐기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가수도 고역이겠지.’
그게 바로 관인이었다.
우리 무대가 끝나고, 관인이 무대를 이어갔다.
상당히 괜찮은 음악이었다.
게다가 현역 최고의 여가수, 바로네스 메이어스의 놀라운 가창력까지 더해졌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우선 관인의 체력이 너무 부족했다.
알코올이 없어서였을까?
전반적으로 몸에 에너지가 부족해서 곧 쓰러질 것만 같았다.
무대에서 바로네스 메이어스의 비중도 너무 컸다.
‘아마 내 조언 때문이겠지.’
나는 관인에게 바로네스 메이어스와 친해지라 조언했다.
바로네스 메이어스는 남미의 한 소국 출신이지만, 팝스타 신분으로 미국에서 활동 중이었다.
만약 관인이 거점을 옮기고 싶다면, 그냥 미국이나 영국에 가면 됐다.
그걸 막으려 스웨덴 정부에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사실 민주 국가에서 본인의 의사만 있다면 누군가의 이민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그리고 바로네스 메이어스는 너무 쉽게 그 이민을 소개해줄 수 있었다.
아마 관인은 이민하는 방법을 모두 알게 되었을 것이다.
다만 문제가 생겼다.
관인의 목표가 ‘좋은 무대’가 아니라 ‘이민’이 돼버린 것이다.
그는 지금 무대가 어떻게 훌륭해질지를 고민하기보다, 어떻게든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바로네스 메이어스의 비위를 맞추려 노력했다.
바네사 심사위원장이 인상을 찌푸리며 관인의 심사평을 마무리했다.
“바로네스 메이어스의 무대였다? 그럼 비원더랑 박빙이었을 겁니다. 근데 이건 관인의 무대잖아요? 관인이 안 보여요. 엔간한 작곡가보다도 존재감이 없는 무대였어요. 어떻게 좋은 평가를 주겠어요?”
결과는, 관인의 대참패였다.
스웨덴의 공무원들은 시무룩한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관인은 전혀 그들을 신경 쓰지 않은 채, 간절한 표정으로 바로네스 메이어스를 쳐다보고 있었다.
바로네스 메이어스는 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딱히 이 정도 작곡가라면 내가 도와주고 싶지 않은데'라는 표정이었다.
관인도 나와 똑같이 바로네스 메이어스의 표정을 읽은 모양이다.
그의 얼굴이 절망으로 일그러졌다.
‘하지만 뭐, 바로네스 메이어스가 도와주든 말든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관인 정도라면 미국이든 스웨덴이든, 어느 곳이나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 선택에는 대가가 따를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은 사실 우리가 알 바 아니었다.
우리는 빌보드 1위 가수가 돼도 대한민국 국민을 선택하고 군대에 갈 거니까.
‘하긴, 뭐 남 걱정할 때가 아니지. 본인이 이민하든 말든.’ 왜냐면 진짜 이번에야말로 큰일 났으니까.’
우리는 4강에 진출했다.
그리고, 대망의 4강 상대는 0순위 우승 후보, 미국 대표 4인조 걸그룹 ‘루비아이’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