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7화
요한슨 씨가 무거운 표정으로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이어 나갔다.
“스웨덴이 얼마나 작은 나라인지 아십니까?”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잘 모르겠는데요.”
“1천만 명뿐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음악은 세계 음악을 휩쓸죠.”
“대단하네요.”
재호가 되물었다.
“비결이 뭔가요?”
“글쎄요. 누군가는 정부 시스템 덕분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교육 제도 덕이라고도 하고. 심지어 누군가는 신의 가호 덕이라고도 하죠.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게 우리 공동체가 다 함께 이뤄낸 거란 겁니다. 누구 한 명이 한 게 아니에요.”
나도 그의 말에 동의했다.
아이 한 명을 키우려면 온 동네가 필요하다는 말도 있었다.
계속해서 스웨덴에서 훌륭한 음악가가 나온다는 것은 분명, 혼자만의 노력은 아닐 거라고 나도 생각했다.
요한슨 씨가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하지만, 성공한 뮤지션들은 대개 이 나라를 떠납니다.”
“그럼 어떻게 되나요?”
“영국이나 미국으로 국적을 옮기기도 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세금을 내지 않고 어딘가로 보내기도 하죠. 일종의 편법 탈세랄까요. 뭐 흔한 이야기입니다. 아바도 성공한 이후에는 스웨덴을 떠났고요. ‘저스트 클릭’의 프로듀서 프레드릭도 원래는 스웨덴 사람이에요. 세제 혜택을 많이 준 아일랜드로 가서 활동해버리더군요.”
요한슨 씨의 눈썹이 분노로 파르르 떨렸다.
나는 대충 그의 아쉬움이 뭔지는 알 것 같았다.
글로벌 비전에 참여하면서 알게 된 아프리카나 남미 뮤지션들도 마찬가지였다.
성공하면 미국의 ‘팝 시장’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아프리카 뮤지션, 남미 뮤지션, 유럽 뮤지션이 아니라 그냥 팝 뮤지션이 돼버리는 것이다.
자국민 입장에서는 아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또 그런 생각도 든다.
‘나라면 어떨까?’
나는 이미 글로벌 비전 16강전까지 통과했다.
게다가 곧 있으면 세계적인 작곡가 이스트 웨이브와 협업한 음악 작업물도 발표할 예정이었다.
나도 그들처럼 팝스타가 되는 길목에 서 있었다.
만약 내가, 그들처럼 팝스타로 거대한 성공을 거둔다면 나는 어찌 될까?
나도 나라를 버리고 팝가수가 되는 걸 바라게 될까?
‘일단 나는 한국인이라 군대는 가야 하니까. 버릴 순 없지.’
그사이, 요한슨 씨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이번에는 그렇게 두지 않을 겁니다. 반드시 우리나라에 남게 설득하고 말겠어요.”
‘그게… 되나? 하여튼 나라를 버리는 것 또한 개인의 자유인데?’
가능성에 의문이 들었지만, 일단 굳이 토를 달진 않았다.
대신, 재호가 요한슨 씨에게 질문했다.
“근데, 관인은 어떤 사람인가요? 죄송하지만, 이번 대회 이전에는 전혀 못 들어본 이름인데.”
* * *
관인. (Guanyin)
한국어로 ‘관세음보살'이란 뜻이다.
전 국민의 절반 이상이 기록상으로 기독교인인 나라에서 관세음보살이라는 활동명으로 활동하다니, 뭔가 범상치 않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관인이라는 이름은 이전 생에서도 들어본 적이 있었다.
우울하면서도 주술적인, 소위 ‘멜랑꼴리한' 전자음악을 만드는 작곡가였다.
이전 생에서는 분명 2010년대에야 빛을 보는 프로듀서였는데, 이상하게도 이번 생에서는 예정보다 빠르게 2006년도 글로벌 비전 8강에 진출했다.
‘이거도 내가 일으킨 나비효과인가?’
우선 그가 대동했던 무대에는 피처링 진이 어마무시했다.
심사위원인 래퍼 이스트 웨이브부터, 아프리카의 영웅 제롬, 심지어 팝스타 마이크 넬슨까지 그의 무대에서 객원 보컬을 맡았다.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지는 피처링 진이었다.
‘아니, 아무리 전자음악 뮤지션이라고 해도 오디션인데. 자기가 노래를 불러야지 매 라운드마다 이렇게 화려한 가수를 부르는 건 반칙 아니야?’
게다가 이번 라운드의 피처링 진은 이전까지 보다도 더 화려했다.
바로 지금 이 시대의 디바, 바로네스 메이어스를 초대했다.
우리가 탈락시킨, 바로 그 가수였다.
지금 우리는 요한슨 씨와의 식사를 끝내고, 숙소로 돌아와 관인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있었다.
바로네스 메이어스가 관인의 객원 보컬이라는 사실을 들은 환희가 머리를 벅벅 긁으며 살짝 투정을 부렸다.
“아니, 어떻게 세계 최고 디바랑 한 대회에서 두 번을 붙어요? 그 사람을 대체 어떻게 바로네스 메이어스를 섭외한 거죠? 컴백 앨범 준비한다고 엄청 바쁘다 들었는데요.”
배영웅 매니저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전혀 모르겠습니다. 사실 관인이라는 가수가 어떻게 이렇게 주목받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방금 배영웅 매니저의 말이 매우 신경 쓰였다.
내 기억과 일치하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배영웅 매니저에게 되물었다.
“무슨 말씀이시죠? 원래는 주목받지 못한 가수였나요?”
배영웅 매니저가 고개를 끄덕이며 준비한 자료를 읽어 나갔다.
“맞습니다. 분명히 올해 초까지만 해도 싱글만 몇 개 인터넷으로 발표한 신인이었어요. 나이도 이제 18살밖에 안 되었고요. 근데 어느새 글로벌 비전을 거치면서 북유럽 일렉트로닉 신을 대변하는 가수가 됐습니다. 자연스럽지 않은 성장이에요.”
“혹시, 배영웅 실장님 생각은 어떠세요?”
배영웅 실장은 자신이 운전하는 차 안에서 우리에게 관인의 음악을 소개했던 적이 있었다.
‘힙합, 파티 음악 다음에는 이런 멜랑꼴리한 음악이 될 것 같다면서 추천해줬지.’
분명 배영웅 실장은 이전부터 관인의 음악을 주목하고 있던 것이 분명했다.
“데이터가 아니라. 배영웅 실장님에 직감을 한번 들어보고 싶습니다.”
배영웅 실장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제 생각에는, 음… 아마도 스웨덴 정부가 엮여 있는 거 같습니다.”
역시나,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
스웨덴에서 바로네스 메이어스 정도의 존재를 섭외할 수 있는 곳은 오직 정부뿐이니까.
하지만 정부가 자국 가수를 돕는다고 해도 그게 반칙은 아니었다.
우리도 정도의 차이일 뿐, 한국 정부의 도움을 받고 있는 셈이니까.
그냥, 더 좋은 무대로 상대를 이길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정보를 모으는 사이 하우스 밴드 멤버들이 하나하나 숙소에 도착했다.
우선 숙소에서 모여서, 바로 걸어서 근처의 연습실로 갈 계획이었다.
“좋은 아침이에요 노으루 군~.’
모인 멤버 중에는 바로 이곳, 일본이 고향인 기타리스트 미도리도 있었다.
재호가 미도리에게 질문했다.
“어때요? 고향에서 하는 글로벌 비전 공연에 참여하게 되는 거잖아요? 기분 이상하겠어요.”
“저 교토 사람이에요. 오사카는 제 고향 아니라고요. 뭐, 이번에는 연습 끝나고 집에 가서 쉬긴 할 건데.”
그녀가 먼저 ‘집’ 이야기를 꺼내니, 그녀에 집안이 궁금해졌다.
“미도리 상은 전업 기타리스트의 길을 간다고 해서 가족과 크게 다퉜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래도 일본에 올 때마다 집에 방문하시는 거 보면 사이는 좋나 보네요?”
“원래 엄청 안 좋았죠! 그러다 부모님이 보기에 제가 상대적으로 나아지게 됐어요. 여동생이 폭주족과 결혼했거든요. 동생 덕분에 결혼도 안 하는 속 터지는 아이에서 적어도 결혼 사고는 안 치는 아이로 신분 상승했어요.”
말하면서 미도리는 손가락으로 브이 자를 만들어 흔들어 보였다.
그사이, 가만히 나와 미도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재호가 회의를 시작했다.
“자! 자! 이제 회의 시작해 볼까요? 관인의 음악 다들 들어 보셨나요?”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환희가 손을 들고 대답했다.
“진짜 힙한 일렉트로닉이던데요. 뭔가 금속성의 사운드인데 우울감이 느껴지던데. 전자음악인데 되게 고급스러운 알앤비를 듣는 듯한 느낌이 들더라구요.”
환희의 감상평은 정확히 나와 일치했다.
사실 여기까지야 다들 생각이 비슷할 터, 문제는 대처법이었다.
다들 말이 없자, 내가 나섰다.
“미도리의 기타 연주에 밴드 마스터 선배님의 연주를 섞으면 얼추 관인에게 퀄리티로 밀리지 않는 세련된 연주는 나올 거 같은데요.”
밴드 마스터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이리저리 신시사이저를 만졌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관인의 음악과 비슷한 몽환적인 키보드 연주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자연스럽게 미도리가 디스토션을 걸은 록 기타를 추가해봤다.
‘이거야!’
관인의 음악은 물론 창의적이었지만, 결국 전자음악으로 흉내 낸 밴드 사운드라는 느낌이 강렬하게 들었다.
전자음악만이 낼 수 있는 소리는 아니었다.
관인이 가상악기를 통해 카피했던 밴드 음악의 정통 사운드를 밴드가 라이브로 연주해 대항한다면 뭔가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박찬용 드러머가 어느새 두 사람의 연주에 슬쩍 드럼을 얹었다.
드럼까지 넣으니 정말 정통적인 록 음악처럼 강렬하면서도 팝 음악처럼 중독성 있는, 그러면서도 비원더 특유의 알앤비의 그루브 감이 살린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재호가 환희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그래 이거야! 관인의 음악하고는 비교도 되지 않아! 바로 가녹음 갈까요? 소닉 독, 편곡에 어느 정도 시간 필요해요?”
소닉 독 또한 다른 이들의 연주에 자극을 받았는지 모자를 고쳐 쓰며 대답했다.
“지금 바로 해도 됩니다.”
순식간에 곡 작업이 시작됐다.
관인의 곡을 뛰어넘을 희망을 모두가 봐서였을까, 다들 힘이 넘쳤다.
하지만 나는 아쉽게도 그들과는 달리 안심까지는 되지 않았다.
내게는 그들이 보지 못한 문제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관인의 음악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어. 분명 아직은 우리 음악이 더 완성도가 뛰어나. 게다가 관인 스타일의 음악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려면 아직 4~5년 정도 남았고.‘
그렇게 보면 우리가 엄청 유리해 보였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관인의 무대의 피처링 가수는 다름 아닌 바로네스 메이어스였다.
현재 가장 뜨거운 팝 디바이자, 지금 관인이 구사하는 다크 팝, 멜랑콜리한 힙합 음악을 누구보다 잘 소화할 수 있는 가수였다.
그녀의 실력은 이미 우리가 글로벌 비전에서 대결하면서 실컷 봤다.
심지어 그때와는 달리, 한번 우리와 대결에서 진 바로네스 메이어스가 또 한 번 우리 상대로 방심하겠다 기대하기도 어려워 보였다.
‘지금 상태도 나쁘진 않아. 하지만 그래도 뭐 하나 정도 더 준비해야 할 거 같은데?'
다른 사람들이 곡 작업을 하는 동안 나는 남몰래 관인을 이기기 위한 작전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 * *
다음 날 아침.
새벽 4시에 문득 눈이 떠졌다.
‘잠이… 안 오네.’
별수 없이 호텔 내 공중목욕탕을 찾았다.
일본답게 호텔마다 훌륭한 온천이 있었다.
여기에 남녀 혼탕이 있다면 정말 클리셰겠지만, 다행히도 그런 건 없었다.
온탕에서 몸을 지지고 있는데 누군가 목욕탕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확인해 보니 온몸이 얼굴부터 다리 끝까지 문신으로 가득 찬 백인 남성이었다.
짧은 갈색의 반삭 머리가 인상적이었다.
연기가 뿌옇게 가득 찬 방이었지만, 총기가 가득한 초록빛의 눈이 연기를 뚫고 계속해서 번득이고 있었다.
‘저 특유의 문신은….”
관인이었다.
관인이 나를 보더니 반갑게 인사했다.
“아니! 노엘 퀀이잖아요! 반가워요.”
“네네 반갑습니다. 일찍 일어나셨네요?”
관인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일어나요? 사우나 한 판 때리고 자려는 건데요. 벌써 일어나셨어요? “
“아, 조크입니다, 조크.”
내가 웃자 관인도 따라 웃었다.
“아 역시! 다른 멤버분들은요.”
“잡니다.”
“그렇군요. 비원더 무대 봤는데. 너무 빡세더라고요. 벌써 쓰러져서 잠들 만해요.”
‘너무 빡세다?’
사실 크게 생각해본 적 없는 말이었다.
“무슨 말씀이시죠?”
“비원더의 음악뿐 아니라. 코리아의 음악. 너무 경쟁적인 거 같아요. 경쟁에서 이기려고 자극적인 요소를 가득 넣는달까. 저는 그런 거보다는 제 감정 표현을 중시합니다. 단순한 구성의 음악이더라도 거기에 제 감정이 제대로 실려 있으면 좋겠어요.”
“저희도 저희 나름대로 그렇게 하려는 거긴 한데요.”
“이기려는 태도가 너무 보이는 거도 좋지 않아요.”
피식 웃는 관인의 얼굴 표정이 매우 빨게 보였다.
냄새를 맡아보니 특유의 알싸한 냄새가 났다.
‘이거… 설마?’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