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왕-264화 (264/280)

제264화

“잠시 검문 있겠습니다. 공연 허가증 갖고 하신 건가요?”

“아….”

여가수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나이는 기껏해야 20대 중반 정도일까.

큰 눈망울이 마치 토끼처럼 연약하면서도 맑아 보였다.

긴 갈색 머리와 오뚝한 코 덕에 큰 눈이 더욱 돋보이는 외모였다.

“허가증 없는 공연은 불법인데요.”

“저, 원래 가지고 있는데. 어쩌다 보니 오늘 못 가져온 거 같아요."

경찰관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안 되죠. 잠시 서까지 같이 가주셔야겠습니다.”

환희가 내게 손짓했다.

“저게 말이 돼요?”

“허가증이 있어야 한다잖아.”

“여기는 주택가가 아니라 음악 페스티벌이잖아요. 노래도 너무 좋고. 저 정도는 그냥 자유롭게 풀어주면 좋을 텐데요.”

사실 나도 환희와 같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외국까지 와서, 그것도 몰래 돌아다니는 입장에서 공권력과 부딪치면 안 될 것 같았다. 이 상황과 거리를 두고 싶었다.

‘앤젤처럼 페스티벌에 참여한 가수 입장이었다면 당연히 어떻게든 관여했겠지. 하지만 지금처럼 몰래 온 손님 입장에서는 너무 위험해.”

잠깐?

앤젤?

나는 재빠르게 핸드폰을 들어 어딘가에 연락했다.

그사이 경찰과 여가수의 실랑이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다.

“잠시만 같이 가시죠. 빠르게 응하지 않는다면 구속해야 할 수 있습니다.”

“자, 잠시만요!”

그때, 누군가가 급작스럽게 경찰에게 말을 걸었다.

“제 밴드 멤버입니다.”

경찰이 고개를 돌려 쳐다보았다.

한국 출신의 대형 가수, 앤젤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앤젤이 눈짓하자 매니저가 공연 허가증을 보여주었다.

“끄으음….”

여가수가 앤젤을 쳐다봤다.

그녀의 동공이 돌이 던져진 호수처럼 사정없이 흔들렸다.

“자, 이제 됐죠? 저희 팀 멤버니까 저희가 데려가겠습니다.”

경찰이 앤젤을 의심스럽게 쳐다보더니만 총총 밤거리로 사라졌다.

경찰이 떠난 걸 확인한 앤젤이 내 일행을 손짓으로 불렀다.

나는 그녀에게 인사했다.

“노래 너무 잘 들었습니다.

“어맛! 노으루 상?”

나를 본 여가수가 깜짝 놀랐다.

아무래도 내 얼굴을 알아본 눈치였다.

다행히 지금은 평소와는 달리 앤젤의 경호 인력이 우리 모두를 지켜주고 있었다.

뮤직 페스티벌 한 가운데라고 해도 안전에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우리가 도쿄에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 여러모로 귀찮아질 수는 있지.’

그래서 나는 손가락으로 내 입을 막으며 ‘쉿!’ 하는 포즈를 취했다.

그녀가 ‘아!’ 소리를 내며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다행히 주변은 조용했다.

“너무 보는 눈이 많으니, 다른 데서 이야기해도 될까요? 방금 들었던 음악이 너무 놀라워서요.”

여가수가 입을 틀어막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우리는 바로 앤젤이 작업하는 작업실로 자리를 옮겼다.

세계 어디나 작업실은 비슷했다.

소파와 녹음 장비, 그리고 적당히 편안한 가구들이 전부였다.

우선 가장 좋은 고급 소파 자리를 여가수에게 권했다.

그녀는 조심스레 소파에 앉았다.

“비원더…? 거기다가 앤제루까지…? 대체 뭐죠? 꿈을 꾸는 건가요?”

앤젤이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 저… 저도 페스티발 참여했거든요? 댁이나 나나 같은 가수예요. 뭐 그리 저자세예요?”

여가수가 손을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에에~! 아니요! 감히 제가 어떻게.”

앤젤은 겉보기에는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실 저건 자신이 인정하는 훌륭한 노래를 하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질투의 표정이었다.

‘주로 나한테 많이 보여줬던 표정이지.’

내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고등학생이세요? 나이는 어떻게 되시나요?”

“네 네에. 저는 아이 요한슨이라고 합니다. 대학생이고요. 노래를 좋아해서 어제도 저도 모르게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어요. 허가증 있어야 하는 거 알았는데…. 너무 노래하고 싶어서. 제, 제발 저를 경찰에 넘기지 말아주세요!”

앤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저희는 일본인도 아닌데요 뭐. 그보다, 방금 노래 어떻게 된 거예요? 기가 막히던데? 왜 아직 데뷔를 못 했어요?”

그녀가 자기 인생 이야기를 했다.

상당히 기구한 인생이었다.

처음에 그녀는 풍운의 꿈을 안고 일본에서 아이돌로 데뷔했다.

“아이돌이 되면 가수의 길이 열릴 줄 알았어요. 저, 곡 쓰고 노래하는 걸 워낙 좋아해서요. 그런데 정작 아이돌을 해보니까 아무도 제 노래에는 관심이 없더라구요. 어떻게 카와이한(귀여운) 모습을 보이는지, 어떤 포즈를 취하는지, 얼마나 팬들에게 사근사근한 미소를 보여주는지. 그런 걸로 성공이 결정됐어요. 저는 그런 일은 잘하지 못했어요. 결국 어떻게 해도 생활이 해결되지 않아서 포기하게 됐죠.”

환희가 탄식했다.

“이런 재능을 그렇게 썩히나요. 그래서, 그다음은 어쩌셨나요?”

“디즈니랜드 알바도 하고, 클럽에서 노래도 하면서 버티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노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앤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무슨 말이에요? 이 정도 노래하기가 얼마나 힘든 건데! 당연히 노래해야죠. 대체 일본 레이블들은 뭘 하는 건지 모르겠네. 이런 인재가 있는데.”

나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아이 요한슨의 음악에는 독특한 정서가 있었다.

일본 특유의 고전적인 80년대 시티팝의 정취가 있으면서도 묘하게 세련된 리듬감과 정서가 가미되어 있었다.

듣다 보면 계속 듣고 싶다는 느낌을 받게 만드는, 그런 매력이 있었다.

하지만 아이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었다.

“인기가 전혀 없어요. 아무런 성과도 없고요. 그냥 아르바이트하는 학생에 불과한데. 이럴 바엔 빨리 취직이라도 하는 편이 나을 거 같아요.”

안타까운 이야기였다.

아이 요한슨이 왜 일본에서 큰 인기를 못 얻었는지는 알 것 같았다.

그녀의 음악은 일본 기준으로 너무 어정쩡했다.

아이돌처럼 매우 귀엽고 밝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여성 싱어송라이터나 밴드로 밀어붙일 정도로 록 성향이 두드러지는 강렬한 음악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 음악은 세계적으로는 터질 가능성이 있는 음악이었다.

‘아무래도 찾은 것 같군. 베이즈를 쓰러뜨릴 비밀병기.’

그야말로 아이 요한슨이라는 이름의 ‘실버불렛’이랄까.

그러고 보니 풀이름이 신경이 쓰였다.

“근데 왜 요한슨이죠?”

“아, 저 아버지가 스웨덴 분이세요. 아버지가 일본의 스웨덴 대사관에서 일하실 때 어머니랑 만났어요. 지금도 외교관 일 하시고요.”

“아하.”

그러고 보니 외모에 약간 백인의 느낌이 가미되어 있었다.

약간 갈색빛이 도는 머리카락도 염색 머리가 아닌 실제 머리카락인 모양.

“그래서 음악에 묘하게 스웨디시 팝의 느낌이 들어 있었군요. 제이팝과 스웨디시 팝, 두 음악이 섞여서 엄청난 매력을 만들고 있어요.”

스웨덴은 전 세계의 음악을 지배하는 초강대국 중 하나였다.

아바 때부터 2020년대까지 항상 그래왔다.

그러고 보니, 아이 요한슨의 음악에는 은근히 서구적인 요소가 느껴졌다.

아이는 내 말을 못 믿겠다는 눈치였다.

“제가 그렇게 대단한 존재일까요…?”

“한 번 같이 음악 해보죠. 저희 소속사도 소개해 드릴게요. 지금은 제가 보여 드릴 게 있습니다.”

아이가 우리를 두리번거렸다.

“뭘 어떻게 보여주신다는 거죠?”

“저희 다음 글로벌 비전 대결 상대가 누군지 아시죠?”

“알죠. 베이즈잖아요.”

‘베이즈’라는 이름을 꺼내는 그녀의 표정이 왠지 심히 어두워 보였다.

“베이즈는 일본 국민 밴드라 들었는데. 안 좋아하시나요?”

“아 네네. 좋아하죠 좋아하죠. 그래서요?”

하지만 표정은 전혀 좋아한다는 표정이 아니었다.

여하튼 나는 일단 무시하고 말을 이어갔다.

“거기 무대에 우리랑 함께 서주세요.”

“네에에엣?”

아이가 펄쩍 뛰었다.

재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부탁드리고 싶네요.”

사실 녹음실에 오는 길에 우리는 아이와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앤젤에게 아이와 대화를 맡긴 채, 아이에게 어떤 제안을 할지를 셋이서 논의했다.

그녀에게 피처링을 부탁하기로 우리 셋은 합의했다.

그녀에게는 베이즈에게는 없는 ‘새로움’이 있었으니까.

아이 요한슨은 어안이 벙벙한 듯 우리를 번갈아 보며 되물었다.

“제가 감히 그런 큰 무대에 서도 될까요? 저는 그냥 무명 가수인데!”

환희가 그녀를 위로했다.

“에이, 처음부터 유명 가수가 어딨습니까. 저도 만년 중고 연습생이었어요. 아이님은 잘하실 수 있어요. 일단 가지고 계신 데모들부터 좀 들어볼 수 있을까요? 방금 공연하신 곡 모두 직접 쓰신 거죠?”

자연스럽게, 우리는 다음 글로벌 비전 무대 준비를 시작했다.

우리는 아이의 곡 데모를 하나씩 들어보기 시작했다.

정말 끝내주는 노래들이었다.

특히, 의외로 리듬 파트가 강렬해서 좋은 의미에서 일본 음악 같지 않은 흥겨움이 있었다.

재호가 감탄했다.

“리듬 파트 녹음을 너무 잘하셨네요. 대체 어떻게 녹음하신 건가요?”

“여기저기에 도움을 받았어요.”

“도움을 받아서 이렇게 되면 저도 그 도움 받고 싶네요. 혹시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아 네… 모두 제가 음악 하면서 알게 된 친구들인데, 다들 유명하진 않아요.”

유명하지 않다니, 오히려 좋았다.

우리 공연에 참여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뜻이니 말이었다.

우리는 천천히 아이의 모든 노래를 다 확인했다.

들으면 들을수록 놀라운 맛이 있는 노래들이었다.

1980년대에 나왔어도 잘될 것 같은 음악인데 2020년대에 발표해도 빌보드 차트를 휩쓸 것 같은 놀라운 노래들이었다.

곡을 들으면 들을수록 재호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내가 졌다’는 표정이었다.

내가 슬쩍 재호에게 물었다.

‘물건이지?’

‘이건 영재야 영재. 솔직히 기술이 뛰어난 건 아냐. 나나 조민하 선배처럼 음악의 이론을 잘 아는 것도 아니구. 근데 그냥 감각이 좋아. 계속 듣고 싶어지는 느낌이야.’

‘우리랑 계속할 수야 없겠지만, 딱 한 번 정도 이 사람 곡을 부른다면….’

아이 요한슨의 약점은 테크닉이었다.

더듬더듬 서툴게 코드만 짚은 기타, 가끔 플랫 되는 음정, 결코 뛰어나다 말할 수 없는 키보드 실력.

하지만 그녀는 타고난 센스와 감각으로 가볍게 이런 약점을 뛰어넘었다.

숨소리 하나, 플랫 된 끝 음 처리 하나만으로도 너무나도 매력적인 음악이었다.

그에 반해 비원더는 멤버들은 물론 하우스 밴드까지, 모두 테크닉은 끝판왕 수준이었다.

우리가 아이의 노래를 부른다면 어떤 시너지가 날지 상상도 하기 어려웠다.

‘이거라면… 충분히 가능성은 있겠어.’

노래를 다 들은 후, 재호가 짧게 평했다.

“이번 글로벌 비전에서 저희랑 베이즈가 붙는데요. 일본에서도 이 대결은 많이들 보겠죠?”

아이가 턱에 손가락을 댄 채로 골똘히 생각했다.

“그러지 않을까요? 국가대항전이니까… 거의 다 볼 같은데요.”

재호가 예언했다.

“이번 라운드의 주인공은 저희도, 베이즈도 아니고 아이 요한슨, 당신이 될 겁니다. 장담해요.”

아이의 눈에 파문이 일었다.

“그 그런… 감사해요.”

“그러면 일단 잠시 쉴까요?”

잠시, 노래 확인이 끝나고 휴식 시간을 가졌다.

아이 요한슨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배영웅 실장과 김나리 사원이 따라주는 차를 마셨다.

환희가 그녀에게 물었다.

“다른 아이돌 동기들은 지금 뭐 해요? 아이처럼 알바하고 가수 준비해요?”

“대부분은 상처가 심해서 그만뒀어요. 가끔 그냥 연애로 만족하고 사는 경우도 있고요.”

“연애요?”

“연예인 관계자랑 사귀는 거죠. 시집갈 수도 있고. 여자친구가 될 수도 있고. 내연녀가 될 수도 있고.”

내연녀라는 단어가 나오자 재호와 침을 꿀꺽 삼켰다.

아이가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제 동기 중 한 명이 베이즈 멤버를 만난 적도 있어요.”

“…어라?”

베이즈 멤버는 모두 기혼자였다.

그렇다면 그녀는 ‘내연녀’였다는 말이 된다.

아이가 말을 계속 이어갔다.

“그게 전부가 아닌데요.”

또 있어요?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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