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3화
우선 베이즈는 그냥 연륜으로 밀어붙이는 밴드는 아니었다.
전반적으로 멤버들의 연주력이 뛰어났다.
그나마 실력이 부족하다고 하면 보컬리스트일까.
그것도 보컬 그룹인 우리 ‘비원더’에 비해 부족하다는 거지, 일본의 보컬리스트 중에서는 최상급의 실력이었다,
그 외에는 드러머, 베이시스트, 키보디스트 모두 입이 떡 벌어질 정도의 연주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특히 팀의 리더이자 곡의 작사, 작곡을 담당하는 기타리스트 ‘카이바라 토도’의 실력은 진짜였다.
하드록 사운드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재즈에 가까운 화려한 기타 연주를 보여주었다.
베이즈는 기타리스트를 중심으로, 록의 감각을 유지하면서도 70년대의 퓨전 재즈를 연상시키는 음악을 했다.
내가 재호에게 물었다.
“나는 편곡이나 작곡은 잘 모르지만, 저거 진짜 엄청난 거 아니야?”
“말도 안 되지. 테크닉은 뭐. 나는 흉내도 못 낼 수준이야. 허비 행콕이나 스티비 원더를 연상시키는 퓨전 재즈, 휭크(funk) 사운드인데. 저런 건 정말 세계적인 수준의 연주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못 하는 음악이야.”
재호는 잔뜩 겁먹은 표정이었다.
분명, 딱 봐도 대단한 합주긴 했다.
하지만 음악의 이론은 잘 모르지만, 최신 팝 음악 듣기를 즐기는 내가 느끼기에는 너무 올드한 과거 방식의 음악이었다.
‘그래, 수준이 있는 건 알겠어. 하지만 현재 트렌드와는 괴리가 있어도 너무 있는 음악이야.”
처음에 이런 음악이 미국에서 만들어질 때야 정말 세련된 음악이었다.
시대를 이끄는 음악이기도 했을 터였다.
지금부터 한 30년 전쯤?
하지만 지금은 솔직히, 베이즈의 음악은 거의 전통 음악, 클래식 음악을 듣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 솔직히 클래식보다도 심할 수도 있지. 고전 음악이야 이유가 있어서 지금까지 남은 거니까.’
저들의 음악의 올드함을 찌르면 충분히 우리에게 승산이 있어 보였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관객에게 트렌디한 음악을 선보임으로써 우리와 베이즈를 차별할 것인가.
여기에서 아마 이번 라운드의 승패가 갈릴 터였다.
‘요새 유행하는 알앤비 음악들은 어디 보자… 은근히 존 레전드, 앨리시아 키스 등 고전적인 소울 뮤지션도 인기였고 힙합 음악도 여전히 인기고.’
아무래도 나 혼자 고민한들, 큰 소용은 없을 듯했다.
마침 그때, 내가 상의해도 좋을 법한 인물이 숙소에 들어왔다.
이 집의 주인, 앤젤이었다.
“여어!”
내가 앤젤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야 엄청 피곤해 보인다? 살을 왜 이렇게 많이 뺐어?”
오랜만에 본 앤젤은 몸이 한층 말라 있었다.
거의 여성 아이돌 수준으로 뼈만 남은 느낌이었다.
보기 좋다기보다 안쓰럽다는 느낌이 더 들 정도였다.
“자기 관리한 거지… 아이고 좋다!”
앤젤은 집에 오자마자 고타츠(일본식 전기장판) 밑에 들어가 몸을 지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게 앤젤이 편하게 쉬는 방식인 모양이었다.
“그러게. 살이 찔 새가 없다.”
“왜, 활동이 잘돼?”
“잘되지! 벌써 곧 있으면 돔 투어 간다.”
“오우~.”
재호가 휘파람을 불었다.
일본에서 한국 아이돌이 아닌 한국의 발라드 가수가 돔 레벨의 경기장까지 가다니, 유례가 없는 성공 가도였다.
‘그렇다면 한 번 물어볼 만하겠네.’
“야 앤젤. 너 정도면 이제 일본 가수들도 잘 알겠네?”
“알 만큼은 알지.”
앤젤의 말의 내용은 겸손했지만 태도는 전혀 겸손하지 않았다.
앤젤은 은근히 어깨를 쭉 펴고, 두 손을 허리에 갖다 댄 채로 뻐기면서 대답했다.
“우리 말이야 사실. 글로벌 비전 다음 대결 상대가 ‘베이즈’야.”
“하… 하필 또?”
앤젤이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탄식했다.
“왜?”
“걔네들 ‘예당’이랑 엮여 있잖냐. 하여간 예당 근처에라도 있는 것들 치고 제대로 된 것들이 없어.”
“아하.”
그러고 보니 앤젤도 예당에서 일을 배웠던 대표 소속이었던 탓에 큰 곤욕을 치렀다.
“그거야 뭐 우리가 알아서 할 일이고. 그 사람들 음악은 어때? 인기 많아?”
앤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말해 뭐해! 제일 많지.”
환희가 질문했다.
“베이즈는 4050대 멤버들이 주축이잖아요? 사실 음악이나 인기나 전성기는 80년대고요. 그런 밴드가 지금까지도 인기가 있을 수가 있나요?”
하지만 앤젤은 자기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있지. 있는 정도가 아니야. 완전 최고라니깐? 아직도 티비에만 나오면 베이즈가 제일 프라임 타임이그던.”
내가 슬쩍 대화에 끼어들었다.
“네 생각에. 그런 베이즈의 약점이 있냐?”
“약점이라면… 음악이 막 새롭다거나, 유행을 이끈다거나. 그런 건 아니란 거지? 뭐 그렇게 보면 네 말이 맞긴 한데.”
역시나, 앤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이었다.
‘그런데 대체 베이즈는 어떻게 지금까지도 일본 최고 인기 밴드 자리를 유지하지?”
일반적으로 음악은 가장 세대교체가 심한 분야다.
새로운 음악을 위해서는 젊은 에너지가 필수였다.
대중 음악계에서 40살 이후에도 히트곡을 계속해서 써내는 작곡가가 드문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베이즈는 아직도 일본에서 최고의 인기였다.
“근데 왜 그렇게 인기가 많을까?”
“일본이 좀… 이 밴드만 그런 게 아니야. 아직도 80년대 음악 듣는 사람 많그던. 80년대 영화도 그렇고. 80년대랑 지금이랑 사실 크게 일본 사회가 달라지지도 않았고. 한국이라면 상상도 못 하는 말이지만.”
“이번 대결, 브라질에서 하거든? 베이즈랑 우리가 브라질 관중 앞에서 붙는 거야.”
“하필….”
“그래.”
역시나 일본 활동에 집중하고 있는 앤젤은 알고 있었다.
일본은 유독 브라질 이민자가 많은 나라였다.
그래서 브라질에는 일본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일본 음악의 팬덤이 있었다.
아무래도, 이번 글로벌 비전 16강전은 사실상 베이즈의 홈 무대에서 치러질 가능성이 높았다.
환희가 불평했다.
“아니, 예전에는 아프리카 가수랑 아프리카에서 붙더니만, 이제는 사실상 일본에서 일본 가수랑 붙네요?”
“하하.”
“게다가 그냥 일본 가수도 아니고 일본의 ‘국민 밴드’랑.”
“내가 보기에, 그나마 여기서 해볼 만한 건 트렌디함이야. 우리가 할 수 있는 트렌디한 노래가 뭘까? 80년대부터 지금까지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 베이즈의 음악이 낡게 느껴질 정도로 트렌디한 음악.”
“글쎄…”
재호가 말을 얼버무렸다.
환희와 앤젤도 뾰족한 수는 없는 눈치였다.
한참 고민하다 앤젤이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아! 난 잘 모르겠다. 난 비원더도 아니니까 뭐. 난 내일 아침부터 또 할 일이 있으니까.”
“무슨 일정을 아침부터 잡았어?”
“여기는 원래 동네 사람들하고 아침마다 인사하고 그래야 해. 안 그러면 이웃으로 인정을 안 해주거던.”
“무슨 조선시대냐?"
“일본은 원래 그래. 자기 동네마다 룰이 있어. 그건 지켜야지. 축제도 맨날 옛날식으로 한다고 여긴. 어차피 나는 화장 지우면 아무도 못 알아보기도 하고. 다 나 유학생인 줄 알아. 난 그럼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하니까 잔다.”
앤젤은 휘리릭 잠을 자러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참, 일본이란 나라는 알면 알수록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재호한테 말했다.
“너 오늘 봤던 신사 기억하지?”
“아, 그 계단 오르면 소원 들어준다는 그거?”
“그래. 당연히 아무 근거도 없지. 그냥 마음의 위안이야. 미신이지.”
재호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뭐, 누군가는 그런 위안이 필요한 거 아니겠어?”
“그 계단. 언제 만들어진 걸까? 최소 200년은 돼 보였지?”
“그렇지?”
“뭐 진실, 진리라면야 천 년이 지나도 지켜야겠지만. 200년 전의 그런 이상한 믿음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면 20년 정도 똑같은 음악을 반복하는 거는 당연하다는 생각도 드네.”
“하하. 뭐 그런 이야기 하려고 빌드업 한 거야?”
“웃지만 말고 너도 잘 생각해봐. 어떤 음악을 가져와야 베이즈를 이길 수 있을지.”
단순히 생각해서 요새 유행하는 힙합 밴드, 혹은 전자음악, 클럽 음악을 구사한다고 해서 브라질 관객에게 먹힐 것 같지는 않았다.
다른 아이디어가 필요했다.
* * *
다음 날 아침, 앤젤은 주변 동네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들어왔다.
아침부터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앤젤이 묵고 있는 이 숙소는 연습실이 지하에 구비되어 있었다.
방음시설은 물론, 간단한 키보드와 녹음 장비가 준비되어 있다.
비원더는 휴식 기간인 요즘에도 틈만 나면 연습실에서 연습 삼매경에 빠졌다.
앤젤은 문을 확 열어 버릴까 하다가, 연습실 앞에서 그냥 서성이며 비원더의 음악을 듣는 것을 택했다.
비원더가 하는 음악에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힙합 밴드인가. 좀 ‘더 루츠’ 느낌이 나네.’
이미 비원더는 한국 예선에서 ‘힙합 미션’을 치른 적이 있었다.
힙합을 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하지만 지금의 비원더는 또 달랐다.
“오호…….”
원재호의 키보드가 평소와는 달리 매우 직관적이고 쉽게 움직였다.
대중성을 한껏 넣은, 요즘 클럽 음악 느낌의 연주였다.
여지까지 비원더는 이런 단순한 팝 음악은 거의 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정통적인 흑인 알앤비를 추구했다.
이렇게 대중성을 한 스푼 더 추가하니 음악 자체가 더 세련되게 느껴졌다.
실제로 베이즈의 음악보다 훨씬 시대를 앞서간 음악이기도 했고 말이었다.
‘하지만 뭔가 좀 부족한데….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군.’
작곡가가 아닌 싱어인 앤젤이 느끼기에도, 지금 비원더의 음악에는 무언가가 부족해 보였다.
뭐랄까, 트렌디한 음악이라기에는 아주 조금 더 자극이 필요하다.
소금 간이 필요한 국 같달까?
그 자극을 어디에서 어떻게 찾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 * *
오랜만에 야외 공연 페스티벌에 나오니 너무 기분 좋았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그래, 공연이야!”
비원더 3인은 경호원 및 매니저들과 함께 도쿄의 음악 페스티벌에 참석했다.
물론, 퍼포머로서가 아니라, 오늘은 음악을 즐기는 관객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왔다.
아무리 머리를 짜내 봐도 마땅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이럴 때는 그냥 생각을 멈추고 다른 사람의 음악을 듣는 편이 나았다.
그래서 가장 다양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음악 페스티벌을 방문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소득이 없었다.
내가 재호에게 말했다.
“별거 없다. 그지?"
“아니 뭐 다 잘하긴 하는데 말이야.”
음악을 못하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아니, 되려 다들 음악을 잘해서 문제였다.
다들 음악은 잘하지만, 베이즈와 비슷한 느낌으로 다들 뭔가 낡았다.
보편성도 없었고, 유행을 선도하는 트렌디함도 없었다.
‘이런 게 일본 음악이구나’라고 연구하는 용도로는 매우 적절했지만, 딱히 베이즈를 이길 방법을 찾을 수는 없었다.
‘이러니까 제이팝이 아니라 케이팝이 세계를 제패한 게 아닐까 싶은 정도야.’
깨달음을 얻은 것은 기뻤지만, 당장은 아이디어가 필요했다.
기타리스트 미도리가 일본인이니, 그녀에게 일본 음악가 추천이라도 받아둘 걸 그랬나 후회가 들었을 정도였다.
그때였다.
길거리에 울려 퍼지는 목소리가 내 귓가에 울렸다.
‘오호?’
농담으로라도 테크닉이 좋다고 볼 수는 없었다.
그저 키보드 하나에 목소리뿐인 단출한 노래였다.
코드 워킹이 뛰어나다거나 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왠지 그녀의 음악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매우 흥미로웠다.
노래하는 소리보다는 숨소리가 굉장히 독특했다.
음이 정확한 것이 아니라, 플랫 된 음에 이상하게 눈길이 갔다.
‘코드 워크나 테크닉이 중요한 게 아니야. 그냥 계속 들어보고 싶은 음악인데?’
나는 서둘러 고개를 돌려 가수가 누구인지를 확인했다.
그런데, 갑자기 노래가 멈췄다.
내가 발견한 가수는 경찰과 실랑이를 버리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